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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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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을까 말까

어떻게 할 것인가 대답으로 새정치와 진보정당의 ‘빅텐트’, 진보정당 연합인 ‘진보대통합’ 모델 제기…
더 통렬하게 성찰하고 ‘품질과 실력’을 높여야 한다는 내부
비판도
등록 2014-06-28 11:43 수정 2020-05-03 04:27

6·4 지방선거에서 참담한 성적을 받은 진보정당은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진보정당에 대해 “유령이 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라고 했다. “이름만 있고 존재감을 느낄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우리 당의 종북 이미지가 너무 셌다”(오병윤 통합진보당 원내대표), “지금의 진보정당은 야권 연대의 파트너도 되지 못할 만큼의 실력”(이정미 정의당 부대표)이라는 진보정당의 자기반성도 나온다.

네 당 합쳐서 9.8%, 223만 명

이번 선거에서 통합진보당·정의당·노동당·녹색당 등 4개 당이 얻은 ‘광역비례 정당득표율’의 총합인 9.8%는 진보정당이 낙담의 한복판에서 보는 작은 희망이다. 허약한 진보정당을 찍어준 유권자가 그래도 223만4520명이나 된다. 정의당 정책위의장인 박원석 의원은 “양당(새누리당·새정치민주연합)에 수렴되지 않는 시민들의 진보적 욕망이 있지만, 그걸 대변하지 못하는 진보정당 주체들이 문제라는 것을 보여주는 수치”라고 했다. 진보정당이 다른 정당과 견줘 도덕적 우월성의 차별화마저 갖지 못하는 진보의 쇠락을 딛고, ‘쓸모 있는 진보’로 거듭나야 한다는 강한 명령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야권 연대를 이룬 2010년 지방선거 직후만큼은 아니지만, 진보의 생존을 위해선 흩어진 진보가 뭉쳐야 한다는 통합론이 다시 대두된다. 통합론은 새정치민주연합과 진보정당이 한 지붕 아래 모이는 ‘빅텐트’와, 진보정당끼리 모이는 ‘진보대통합’이 핵심을 이룬다. ‘빅텐트’는 새정치민주연합에서 이인영 의원 등 진보개혁 성향 의원들도 거론하는 것으로, 통합야당에서 ‘힘있는 진보 블록’을 만들자는 주장이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정치학 박사)도 ‘보수 양당제→보수·진보 양당제’로의 전환을 진보가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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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민주연합에 들어가라는 것이 아니다. (통합) 야권에서 진보 블록을 만들고 그 범위를 넓혀감으로써, 현재 야권의 헤게모니(지배권)를 장악한 새정치민주연합의 영역까지 진보가 먹어 보수·진보 양당제를 만드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보수 양당제 바깥에서 진보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지만, 유권자들은 그것이 현실이 될 수 없음을 선거 때마다 보여주고 있다.”

반론도 많다. 박원석 의원은 “양당 구조가 되는 것은 기득권 정치를 온존시킨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전신인) 민주당이 고 김근태 전 의원 등 대단한 분들을 수혈했지만, 당의 고질적 문제를 넘어 정당 혁신, 진보 블록 형성을 해본 적이 있나? 결국 진보정치가 흡수되고 말 것”이라고 했다. 김종철 전 노동당 부대표도 “진성당원들이 토론을 통해 대안을 찾아가는 진보정당의 정치문화나 정치지향이 새정치민주연합과 다르다. 빅텐트는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했다.

김 전 부대표는 진보끼리 힘을 합치는 ‘진보대통합’의 필요성을 얘기한다. 그는 “쉽지 않지만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민주노동당으로 단일화한 2004년 총선에서 민노당은 13.03%의 정당득표율을 얻었다.

“진보정당 내에서도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 차이의) 문제들이 있고, 지금의 통합진보당과 정의당이 (통합했다가) 폭력 사태를 거쳐 분당하면서 감정의 골도 틀어져 통합이 만만치 않다. 녹색당도 (기존 정당과) 완전히 다른 정치를 하려는 생각이 강하다. 당분간 어쩔 수 없이 진보정당이 각개약진하겠지만, 그게 해결책은 아니다. 사람들이 묻는다. ‘너희들 뭐가 다르냐?’ ‘북한 문제가 다르고…’라고 얘기하면 ‘그건 알겠고, 그건 내부에서 해결하고 와라, 너희들은 좋은 친구들이긴 한데 사회를 변화시킬 만큼의 믿음과 힘이 없다, (진보정당이) 힘을 합치면 모를까’란 반응이다. 당장 모두 합치기 어렵다면 마음이 맞는 정당들이라도 통합해야 한다.”

뭘 해줄 것이냐는 물음에 답 못 줘

통합진보당은 6월19일 당 중앙위원회에서 “지방선거에서 확인된 진보정당 약화의 중요한 원인은 진보 진영의 분열”이라며 ‘진보정치 단결’을 선거 이후 과제로 뽑았다. 박원석 의원은 “운동을 하려는 사람들이 아니라, 진보정치를 하려는 주체들이 재결집하는 진보재통합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통합을 얘기하는 이들도 ‘현재의 조건’에서 ‘당장’ 통합이 될 가능성은 적다고 본다. 통합진보당에 덧씌워진 종북 이미지가 강하고, 당이 쪼개지는 과정에서 통합진보당과 정의당이 재회하기 힘든 연인처럼 헤어진 탓이다. 오병윤 통합진보당 원내대표는 “당장 합치는 게 쉽지 않다. 통합을 위한 현장의 조건도 성숙돼야 하고. 우리 내부의 혁신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정미 정의당 부대표는 “진보정당 분열로 인한 선거 패배를 절대적으로 평가해 재통합 논의를 요구하는 건 정당하지 않다. 당의 가치는 정강정책뿐 아니라, 정당과 정치를 대하는 태도와 문화, 양식 등이 포함된 것이다. 당분간 건전한 경쟁을 회피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결국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통령 선거 전후 등 야권 지형 재편의 계기가 될 만한 굵직한 시점 이전까지는 진보정당이 ‘진보의 품질과 실력’을 높이기 위해 각자도생하는 형국이 될 가능성이 높다.

정권 차원의 정당 해산 시도를 극복해야 하는 통합진보당은 종북 이미지를 걷어낼 혁신도 요구받고 있다. 지방선거에 출마한 당 소속 일부 인사들 사이에서 내란음모 혐의로 구속된 이석기 의원과의 결별과 지도부 사퇴 필요성을 언급하지만 당 차원에서 논의가 확대된 바는 없다. 통합진보당은 중앙위원회에서 ‘당 사수투쟁 전개, 노동조합·농민회와 같은 대중조직 강화, 종북정당 이미지를 벗는 당 혁신과 대중화’를 선거 이후 주요 과제로 선정했다. 오병윤 원내대표는 “정권의 종북 공세가 거세지만, 우리 내부도 대중과 소통하는 데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진보정당이 실질적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비전과, 이를 실현할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내부 자성도 나온다. 노회찬 전 정의당 대표는 “상대방(보수 기득권)을 ‘나쁜 세력’이라고만 할 게 아니다. 그럼 진보는 뭘 해줄 것이냐는 물음에 답을 못 줄 것이다. 과거에 ‘토지를 농민에게’란 구호는 누구(진보)의 구호였나? 그러나 지금은 누가 욕망을 실현시켜줄 것이냐는 경쟁에서 우리가 지고 있다”고 자평했다. 박원석 의원은 “깨끗하다는 진보정당의 초창기 론칭 효과는 사라졌다. 그걸 기대하면 망한다”고 말했다.

“진보 교육감들이 많이 당선된 것에서 보듯, 무상급식·혁신학교 등이 진보정책이지만 실생활에서 우월성이 입증되면 진보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우리 사회의 욕망이 뉴타운 광풍 때 몰아친 욕망과는 달라지고 있다. 사회 양극화가 심해지고 중산층이 붕괴되면서 우리 사회의 욕망도 진보의 가치로 넓어지고 있다. 진보정당의 눈높이를 그런 국민의 욕망과 맞춰야 한다. 멋있는 얘기만 하는 게 아니라, 집요하게 구멍을 뚫어 작은 성과라도 만들어야 한다. 중대선거구제 확대,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등 양당 구조를 깨는 정치제도 개혁도 중요하다.”

참패하고도 유유자적

진보가 다시 뛰려면 지금보다 더 통렬한 성찰이 이뤄져야 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박상훈 대표는 “진보정당이 선거에서 이런(참패) 평가를 받았으면 지도부가 책임져야 하는데 유유자적하고 있다. 제대로 해보기 위한 몸부림이 부족하다”고 했다. 김윤철 교수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진보정당은 2004년 민노당의 원내 진출 이전 시기에 비해 활력이 떨어진다. 신문에 한 줄이라도 실리기 위해, 또 국민에게 조금이라도 더 다가가려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고심하던 모습을 찾기 어렵다. 연이은 분열, 집권세력의 종북주의 공세, 진보정당을 떠난 이들을 탓하며 탄식만 하고 있다.”

실상은 그렇지 않더라도, 진보정당이 외부에 그렇게 보일 만큼 나태에 빠진 것 아니냐는 고언을 던진 것이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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