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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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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용산 그리고 쌍용차

‘밀어붙이기’ 카드로 ‘진압 정국’, 2009년 연상돼…
‘저강도 독재’의 일상적인 구축인가
등록 2014-06-18 14:28 수정 2020-05-03 04:27

“시위대의 함성과 함께 제가 오래전부터 즐겨 부르던 노래 소리도 들었습니다. 캄캄한 산 중턱에 홀로 앉아 시가지를 가득 메운 촛불의 행렬을 보면서, 국민들을 편안하게 모시지 못한 제 자신을 자책했습니다.”(2008년 6월19일 대통령 특별기자회견)
청와대 춘추관 단상에 선 이명박 전 대통령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서울광장 일대를 가득 메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가 벌어진 지 한 달이 훌쩍 넘은 시점이었다. 기자회견은 광우병국민대책회의가 미국과의 쇠고기 수입 재협상 시한으로 내건 6월20일을 하루 앞두고 이뤄졌다. 그러나 “뼈저린 반성을 하고 있다”는 대통령의 사과에도 성난 촛불집회 인파는 쉽사리 줄어들지 않았다.

2008년의 반성, 2009년의 폭거

대통령의 ‘뼈저린 반성’도 오래가지 않았다. 보수 언론과 경제 5단체의 비판이 이어지자 닷새 뒤 이 전 대통령은 검찰·경찰에 “국가 정체성에 도전하는 시위나 불법 폭력시위는 엄격히 구분해 대처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주말 촛불집회 현장에는 진압을 위한 경찰특공대와 물대포가 등장했다. 경찰의 토끼몰이식 진압으로 연행자가 속출했다.
이명박 정부가 선언한 ‘공안 정국’은 도미노처럼 비극을 낳았다. 모두가 알고 있듯, 2009년 1월 경찰특공대가 진입을 시도한 서울 용산 남일당 건물에서 불이 나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해 여름,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에서 구조조정에 반발하던 노조원들은 경찰의 테이저건과 테러 진압용 다목적발사기와 마주했다. 노조원 64명이 구속된 것보다 충격적이었던 건, 과거 군사독재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상황이었다.
역사의 반복은 가혹한 순간에만 찾아오는 걸까. 6·4 지방선거를 끝낸 박근혜 정부의 모습이 정확히 이명박 정부 초기 상황과 겹쳐 묘한 ‘기시감’을 불러온다. 세월호 참사 한 달을 갓 넘긴 지난 5월19일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해 ‘눈물의 사과’를 보였던 박근혜 대통령은 선거가 끝나자 ‘마이웨이’식 진압 정국을 사실상 선언했기 때문이다. 지난 6월10일 극우 논객인 문창극 전 주필을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목하고, 경남 밀양의 송전탑 공사 현장을 점거한 반대 주민들에게 ‘행정대집행’을 예고한 박근혜 정부는 같은 날 밤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는 6·10 민주항쟁 기념 행진 참가자들을 연행했다. 박 대통령의 인식은 총리 인선을 발표한 날 오후 국무회의 발언에서 짐작해볼 수 있다. “유병언 검거를 위해 검찰과 경찰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이렇게 못 잡고 있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검거 방식을 재점검하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검토해 반드시 법의 심판을 받도록 해야 한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법무부·검찰뿐만 아니라 군의 합동참모본부 고위 관계자까지 합세한 ‘유병언 체포 대책회의’가 열렸다. 박근혜 정부가 보여줄 ‘법을 앞세운 권력통치’를 암시하는 순간이다.

죽이거나 살게 내버려두는 권력

박근혜 정부는 왜 선거 이후에도 ‘사회 대통합’이 아닌 법을 앞세운 권력 재정비에만 몰두하고 있을까. 김종엽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초기의 공통점으로 선거에서 크게 이기고도 국민의 저항을 받았다는 것을 꼽았다. 이명박 정부가 ‘죽게 내버려두는 권력’이었다면, 박근혜 정부 들어 ‘죽이거나 죽게 내버려두는 권력’에 도달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칼럼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대중이 현대사를 통해서 줄곧 원한 것은 ‘살게 하고 살게 내버려두는 권력’이었지만, 그것의 정반대 조합에 직면한 대중은 촛불을 들고 저항했다. 그런 흐름은 선거정치로도 연결되었다. 하지만 문턱을 넘지 못했고 박근혜 정부가 수립되었다. 보수 재집권의 귀결은 죽게 내버려두는 권력이 무엇을 가져오는지를 실제로 체험하는 것이었다. 세월호 참사에서 보듯이 국가권력이 사람들을 죽게 내버려두는 광경을 국민 모두가 며칠에 걸쳐 티브이로 목도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광우병 공포가 돌고 돌아 세월호 참사로 이어진 셈이다.”
그동안 교과서적인 ‘권력정치’를 지향해온 박근혜 정부가 여론과 상관없이 문 총리 후보자를 내세우고 밀양 송전탑 공사 현장에 공권력을 투입하는 행보를 보이는 건, 박근혜 정부가 가장 우선적인 가치로 두고 있는 ‘권력 누수 방지’를 위해 예견된 조치라는 분석이 있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은 사회 통합이나 민주적 다원주의가 아닌 권력 누수(레임덕)를 차단하는 데 가장 큰 관심사를 두고 있는 전형적인 소극적 권력정치론자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경찰·검찰을 사회 관리의 중요한 기능으로 보고 자신은 해외 순방 등 국제관계를 통해 자신의 성과에 대한 이미지를 관리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소수에게만 나눠준 권력을 관리하고자 엄정한 법질서를 계속 강조해왔다. 세월호 관련 대국민 담화문에서도 알 수 있듯 선거 뒤에는 촛불집회나 법에 저촉되는 것은 정치적 후과를 덜 고려하더라도 강하게 밀어붙여 법을 통한 사회불안의 억압을 확실하게 하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볼 수 있다.”


“이명박 정부는 ‘국토 대개조’를 내세웠지만, 박근혜 정부에서는 ‘국가 대개조’로 옮겨가고 있다. 15년 민주화를 최대한 약화시키고 다시금 그들이 지배하는 정치 체제를 만드는 ‘국가 재건’의 개념은 ‘저강도 독재’다.” -홍성태 상지대 문화콘텐츠학부 교수


결국 이러한 행보는 ‘저강도 독재’의 일상적인 구축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홍성태 상지대 문화콘텐츠학부 교수는 “이명박 정부 당시에는 4대강 사업 등을 통한 ‘국토 대개조’를 내세웠지만, 박근혜 정부에서는 더 확장된 개념의 ‘국가 대개조’로 옮겨가고 있다. 문 총리 후보자의 지명 등을 통해 문민정부 때부터 추진해온 15년 민주화를 최대한 약화시키고 다시금 그들이 지배하는 정치체제를 만드는 ‘국가 재건’(Nation Rebuilding)의 개념은 ‘저강도 독재’다”라고 말했다. “대통령을 직선제로 뽑았지만, 사회 저변의 상황이나 현실정치 안의 모습을 보면 여전히 보수 독재가 작용하고 있다. 우리 민주화가 ‘반민주 세대에 포위된 민주화’ ‘취약한 민주화’라고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 정부의 행보는 단순히 민주적 정당정치의 결과물로 보지 않는 관점의 전환이 절실한 상태다.”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에 다다를 때

사정이 이러하니, 박근혜 정부가 보여주는 진압 정국은 단순히 선거나 정당정치를 통해 견제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과거 2008년 촛불 정국이 끝난 뒤, 야당인 민주당이 이명박 정부 심판론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의 영향으로 2010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한 뒤, 2012년 총선·대선에서는 연달아 패배한 경험을 미뤄봐도 그렇다. 게다가 집권 중반기를 넘어가는 박근혜 정부가 ‘법을 앞세운 권력통치’ 이후에 보여줄 행보도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박상훈 대표는 “권력정치를 추구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도 권력의 궁지에 몰리자 전두환 전 대통령 수사라는 카드를 내건 바 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당분간 집권당에는 쉽지 않은 보궐선거를 넘기고 통치자로서 이미지 아웃소싱 작업을 계속 이어갈 텐데, 그 성과가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에 다다를 때 기존 권력정치가와 다른 그가 어떤 선택을 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역사의 기시감을 넘어설 고민이 필요한 이유다.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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