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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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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아덜 다 쥑이고 할매들까지 인자 죽일라카나”

경찰 2천 명과 공무원·한전 직원 200명이 노인 20명을 들어낸,
6월11일 밀양 송전탑 반대 농성장 행정대집행 현장
등록 2014-06-18 12:49 수정 2020-05-03 04:27
경찰의 경남 밀양 송전탑 반대 농성장 철거 작전은 일사불란하게 진행됐다. “죽음도 두렵지 않다”며 다른 주민들과 알몸에 쇠사슬을 감은 채 시위하던 한옥순 할머니가 경찰들에게 끌려나오고 있다.

경찰의 경남 밀양 송전탑 반대 농성장 철거 작전은 일사불란하게 진행됐다. “죽음도 두렵지 않다”며 다른 주민들과 알몸에 쇠사슬을 감은 채 시위하던 한옥순 할머니가 경찰들에게 끌려나오고 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삶을 어디론가 몰고 가는 것에/ 그토록 열중하지만 않는다면/ 그래서 잠시만이라도 아무것도 안 할 수 있다면/ 어쩌면 거대한 침묵이/ 이 슬픔을 사라지게 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결코 이해하지 못하는 이 슬픔/ 죽음으로 우리를 위협하는 이 슬픔을.
-파블로 네루다, ‘침묵 속에서’

패배가 예정된 싸움이었다. 늘 지기만 하는 싸움이었다. 그래도 싸우지 않을 수 없는 싸움이었다. 지난 6월11일 경남 밀양시 상동면의 움막에서 목에 쇠사슬을 이어걸며 주민 엄성자(61)씨가 말했다. “우리가 후손한테 물려줄 건 이 자연뿐이야. 아무것도 없다. 지금 합의해주고 나면 후손에게는 뭐라고 할 기가. 최소한 마지막까지 싸웠다는 자존심이라도 물려줘야 할 거 아이가.”

주민들의 눈에 두려움과 긴장이 선명했다. 그날 오전, 이미 부북면 평밭마을(129번 송전탑 건설 예정지)과 위양마을(127번) 농성장이 모두 강제철거됐다. 115번 고답마을과 101번 용회마을 두 곳만 남겨둔 터였다. “참말로 그렇게 쉽게 철거했나? 그 할매들이 젤로 무서운 할매들인데…. 다 불지르고 죽어삔다 캤는데….” 한켠에서 다른 주민이 말을 거들었다. “말이 그렇제, 경찰들이 막 들이닥치면 할매들 다 무서워서 바들바들 안 떨겠나.”

주고받던 말이 기자에게 날아온다. “우린 인제 우찌해야 되나?” 경력 투입 30여 분 만에 두 농성장이 모두 완전 철거되는 것을 보았다.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정오를 막 넘긴 12시20분 이미 경찰이 모여드는 중이었다. 평화를 기도하던 사제와 수녀들의 미사가 채 끝나기 전, 밀양 115번 송전탑 건설 예정지의 ‘불법 시설물’ 철거를 위한 행정대집행이 개시됐다.

‘느그들 살라’고 싸워온 9년

몇 시간 전. 초여름 산중의 새벽은 고요했다. 까마득한 봉우리는 없지만 향봉산, 천황산, 가지산, 운문산이 병풍처럼 둘러싼 밀양은 이름만큼 은밀하게 감춰져 있다. 이렇다 할 소요만 없다면 이른 새벽, 저 고요한 땅의 사람들은 논일을 나가기 전 마지막 단잠을 청하고 있었을 것이다.


한 종합일간지 비표를 목에 건 사복 경관은 기자들 틈에 끼어 기자들을 통제했다. “기자님들, 일단 작전 시작되면 뒤로 좀 빠져주십시오.” 폭력적인 장면이 연출될 때는 온 힘을 다해 취재진을 밀어내기 위한 것이었다.


밀양 송전탑 건설 예정지의 주민들이 그처럼 발을 뻗고 잠들어본 것은 벌써 9년 전의 일이다. 6월11일 새벽은 좀더 일찍 시작되었다. 이 부북면 장동마을 입구 농성장에서 새벽 4시께 만난 주민들은 밤새 한숨도 잠들지 못하고 보초를 선 눈치였다.

지팡이를 짚은 노인들은 의자에 앉아 미동 없이 논두렁만 내려다보았다. 전조등을 밝힌 소형 버스들이 짙푸른 어스름을 찢고 꾸역꾸역 마을로 들어오고 있었다. 경찰 20개 중대 2천여 명과 밀양시 공무원, 한전 직원 200여 명을 실은 그 행렬에 끝이 보이지 않았다. 장동마을 움막에선 고작 20명 남짓한 노인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하루 전인 6월10일 오후부터 경찰은 철저하게 부북면 일대를 통제했다. 밀양은 마치 작은 ‘그린존’(이라크 내 미군의 특별경계구역)이라도 된 것 같았다. 산으로 오르는 마을 어귀마다 경찰이 막아서지 않는 곳이 없었다. 경남도경찰청이 내준 언론인 비표 목걸이가 없으면 한 걸음도 내주지 않았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들 시민들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농사지을 트럭, 트랙터 한 대도 통과할 수 없었다. 내 고향 내 집 앞에서 이게 무슨 꼴인지 알 수 없는 노인들은 기어이 분통을 터뜨렸다. “내가 뭔 죄를 지었노. 말을 좀 해봐라.”

이에 맞서는 주민들은 이미 목숨까지 내놓을 준비가 돼 있었다. “우리는 죽어도 괜찮다 아입니꺼. 정부가 하는 일이 너무 개판 아인교. 10대째 이어온 고향 지키려고 하는 거지, 딴 거 없어요.” 주민 김이수(73)씨가 경찰을 내려다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죽는 거 안 무섭다. 경찰 1천 명이 와서 개 끌듯이 끌어내봐라. 나는 유서도 써놨다. 죽으면 내 시체 갖고 철탑 막으라고. 나는 한국에 태어난 기 수치스럽다. 느그는 이렇게 안 살라고 우리가 9년 동안 싸운 기다.” 평밭마을 농성에 앞장서온 주민 한옥순(67)씨도 말했다.

4년을 ‘사수’했다. 말 그대로 목숨 걸고 지켜온 움막이었다. 그것을 내주는 것은 평생 지켜온 자존을 통째로 넘겨주는 것과 다름없었다. 농성 주민들은 경찰과 밀양시의 진입을 막기 위해 비탈마다 자가용을 주차해두거나 밧줄과 쇠사슬을 설치했다. 나중에 그 쇠사슬과 밧줄이 얼마나 쉽게 잘려나갈지 그들은 알고 있었을까.

고작 꼬집거나 부채로 찰싹 때리기

새벽 5시를 좀 넘기자 산등성이의 129번 움막에서 사이렌이 울렸다. “경찰이 오고 있다”는 신호였다. 전운마저 감돌았다. 6시로 예고된 집행 시각에 맞춰 비탈마다 줄지어선 경찰들이 범위를 좁혀오고 있었다. “느그들도 인간이면 생각 좀 해봐라. 할매들이 와 이카는지. 세월호의 젊은 아덜 다 쥑이고 할매들까지 인자 죽일라카나.” 장동마을의 한 할머니가 도열한 수백 명의 경찰을 향해 소리쳤다.

밀양시가 초고압 송전탑 농성현장에 대한 행정대집행에 들어 간 11일 오후 경남 밀양시 상동면 고답마을 115번 송전탑 농성장에서 경찰들과 밀양시 직원들이 행정대집행을 하고 있다. 밀양/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밀양시가 초고압 송전탑 농성현장에 대한 행정대집행에 들어 간 11일 오후 경남 밀양시 상동면 고답마을 115번 송전탑 농성장에서 경찰들과 밀양시 직원들이 행정대집행을 하고 있다. 밀양/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새벽 6시, 마침내 밀양시 공무원의 계고장 낭독과 함께 진압이 시작됐다. LPG 가스통, 도끼며 낫은 막상 방패를 앞세운 경찰 병력 앞에 별무소용이었다. 애당초 ‘죽음을 무릅쓴 싸움’임을 정부에 보여주기 위한 전시물에 불과했는지 모른다. 굽은 허리와 절룩이는 다리로 도망치며 노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김칫국물과 똥물 바가지를 끼얹는 것이 고작이었다. 바가지 하나 든 할머니를 방패로 제압한 뒤 여경 10여 명이 사지를 붙들어 연행했다.

이날 ‘정부’는 그 어느 때보다 치밀했다. 지난 4월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국민을 지켜내는 일에 그토록 무능했던 국가가, 국민을 침탈하는 일에는 완벽할 정도로 유능했다. 가장 굳건했던 129번 움막을 걷어내는 데도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노인들은 자꾸만 되물었다. “느그들 우리 보호하러 온 것 맞나.”


경찰에게 들려나가는 노인과 수녀들은 흙바닥을 나뒹굴던 집기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달싹 들려나가는 팔순 노인들을 지켜보며 경찰 지휘부는 기꺼운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빨리 해치워버렸다 아이가.”


한 종합 일간지 취재기자 비표를 목에 건 경남도경찰청 소속 사복 경관은 천연덕스럽게 기자들 틈에 끼어 기자들을 통제했다.(이날 경찰은 이 일간지 이외에도 또 다른 일간지 기자를 사칭하다 해당 언론으로부터 항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기자님들, 일단 작전 시작되면 뒤로 좀 빠져주십시오.” 폭력적인 장면이 연출될 때 온 힘을 다해 취재진을 밀어내기 위한 것이었다. 기자들에게 연행 협박까지 해가며 취재를 방해하는 사이 할머니들의 목에 건 쇠사슬이 절단기에 잘려나갔다. 연좌한 채 기도하는 천주교 수녀들을 끌어내는 과정에서 수녀들의 종교적 상징인 두건이 여러 차례 벗겨졌다.

방패와 팔목 보호대를 착용한 경찰에 대항해 할머니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꼬집거나 부채, 효자손으로 찰싹 때리는 게 고작이었다. 여경은 채증하며 앵무새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경찰 꼬집지 마세요. 경찰 꼬집는 거 아닙니다. 공무집행방해입니다.”

구덩이 속에서 알몸에 쇠사슬을 감고 버티던 팔순 노인들은 반쯤 까무러친 채 끌려나왔다. 경찰에게 들려나가는 노인과 수녀들은 흙바닥을 나뒹굴던 집기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달싹 들려나가는 팔순 노인들을 지켜보며 경찰 지휘부는 기꺼운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빨리 해치워버렸다 아이가.” 간부로 보이는 사복 경찰들이 서로 낄낄거리며 말했다. 어르신들의 ‘자결’을 비롯한 사고를 가장 우려했던 129번 농성장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데 대한 안도였을 것이다.

권한 없는 경찰, 철거와 다름없는 행위

노인들이 어디 한 군데 크게 다치기라도 하면, 그러다 끝내 사달이 나기라도 하면, 일이 커질 것이다. 죽음은 분노를 증폭시킬 것이다. 분노는 밀양을 넘어 전국을 덮을 것이다. 세월호 정국에서 간신히 벗어나고 있는 이때, 그 분노가 청와대를 향하도록 둘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 된다면 누군가는 ‘모가지’를 당할 것이고 누군가는 좌천을 당할 것이다. 그 모든 함수를 막기 위해 경찰의 작전은 마지막까지 빈틈없이 치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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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을 제압하기 위한 법은 쉽게 강제됐지만 국민을 지키기 위한 법과 절차는 무시되었다. 오랜 움막 생활로 체력이 저하된 노인들을 끌어내면서 밀양시는 구급차량을 1대만 배치해두었다. 127번 움막에서 노인 2명이 실신했지만 구급차량이 없어 20여 분 동안 방치될 수밖에 없었다. 이날 행정대집행 과정에서 다쳐 병원에 호송된 사람은 모두 21명이다. 이 과정에서 국가인권위원회가 파견한 인권지킴이단 13명의 역할은 관찰자에 그쳤다.

밀양 송전탑 반대대책위원회는 “행정대집행법에 의하면, 경찰은 현장의 안전을 위해 대집행시 발생할 사고에 대비한 보조적 활동만을 할 수 있을 뿐, 대집행의 권한이 없다. 그러나 4개의 모든 움막 현장에서 경찰은 직접 농성 움막을 찢고, 움막의 뼈대를 들어내는 등 철거와 다름없는 행위를 했다”고 비판했다.

알몸으로 끌려나온 이금자(83)씨는 좀체 기력을 회복하지 못한 채 울먹였다. “여보게나, 느그들 진짜 바보다. 늬들 잘되라고 우리가 이렇게 하는 긴데, 이렇게 되면 느그 어디 가서 살을래.” 손녀뻘인 여경들이 그래도 안쓰러운 듯 노인은 말을 길게 잇지 못했다. “나 욕쟁이 할머닌데 느그 불쌍해서 욕도 몬하겠다. 나라가 좋아야 늬들도 이런 꼴 안 하고 살지.”

산 아래까지 통곡과 비명이 울려퍼졌다. “옥순아! 네가 여기서 죽는구나.” 노인의 울음이었다. “제발 조심하세요. 구덩이에 사람이 있어요.” 천주교 수녀들의 호소였다. 연대를 위해 찾은 한 여성은 주저앉은 채 경찰을 향해 소리쳤다. “세월호가 진도에만 있는 줄 알아요? 여기가 세월호야.” 누구도 들어주지 않는 외침이었다. 짓밟혀도 돌봐주는 이 없는 꽃밭이었다.

철거한 날, 벌목 공사와 터 다지기

지상의 소요는 아랑곳없이, 밀양의 하늘에선 공사 자재를 실어나르는 헬기가 분주히 오갔다. 한국전력공사는 움막을 철거한 이날 곧바로 벌목 공사와 터 다지기에 들어갔다. 송전탑 건설 예정지 69곳 전 현장에서 공사를 착수한 것이다.

지난 9년, 늘 지기만 했던 싸움이다. 다시 한번 졌다고 해서 주저앉을 리 없다. 반대대책위는 “행정대집행은 끝이 아니다. 밀양 송전탑 시즌2를 열어갈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들은 6월14일 저녁 밀양에서 ‘150번째 촛불집회’를 열었다.

밀양=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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