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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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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유족은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

국회 바닥에서 2박3일을 견디고서 국정조사 증인에 ‘김기춘’ 이름 넣어…

유가족들 전국으로 흩어져 서명운동과 촛불집회에 조직적으로 참여
등록 2014-06-04 13:53 수정 2020-05-03 04:27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5월28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 바닥에서 쪽잠을 자고 있다. 한겨레 이종근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5월28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 바닥에서 쪽잠을 자고 있다. 한겨레 이종근

기다리라는 강요가 세월호 피해 가족들을 기다리고만 있지 않도록 만들고 있다. 2박3일 국회의 기다림을 경험한 가족들은 참사 이후 처음으로 시민들과 적극적인 연대에 나서고 있다.

‘세월호 선장’ 같은 여야 의원

기다리다 죽어간 이들을 위해 세월호 유가족들은 기다림으로써 싸워왔다. KBS 앞(5월8일)에서 기다리고 청와대 앞(5월9일)에서 기다렸던 그들은 국회에서도 끝내 기다려야 했다.

“조금만? 조금만? 그러다 우리 아이들 다 죽었다.”

5월27일 세월호 유가족 한 명이 외쳤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국정조사 계획서 채택을 직접 보려고 찾아왔던 130여 명의 가족들은 여야 국회의원들의 밀고 당기기에 울분을 터뜨렸다.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등 증인들 이름을 계획서에 명시하자는 야당의 요구를 여당이 거부하자 유족들의 ‘기다림의 싸움’은 다시 시작됐다. 팽목항(경남 진도)에 앉아 아들딸의 소식을 기다렸던 가족들은 오직 기다리는 근육으로 버텨온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기다렸고, 여야 간사들 협상장 앞에서도 기다렸다. 자리를 뜨는 의원들을 협상장 안으로 밀어넣으면서 그들은 계속 기다렸다.

가족들에게 국회는 세월호 참사의 고통보다 정치적 이해관계만을 따지는 집단일 뿐이었다. 여야 의원들을 향해 “세월호 선장과 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는 비난이 터져나왔다. 가족들은 “대통령뿐 아니라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청문회 증인으로 채택해야 한다”며 항의했다. 김병권 가족대책위원장은 “국정조사 문제가 해결 안 되면 계속 국회에 있을 것이다. 이조차 해결 안 되면 그다음은 없다. 죽을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고 했다. 기다림은 결사적이었다. ‘임시 거처’가 된 대회의실 정면엔 “실종자 조속 구조, 특별법 제정, 철저한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대형 펼침막이 붙었고, 토론 테이블과 의자엔 가족들의 절규를 담은 손팻말들이 자리잡았다.

합의안이 도출된 건 국회 바닥에서 2박3일을 견딘 5월29일이었다. 여야는 김기춘 실장이 특위에 참석·보고하는 형식으로 최대 쟁점이던 김 실장의 증인 채택 문제를 처리했다. 가족들은 이날 본회의에서 계획서(6월2일부터 90일간 운영)가 의결되는 과정까지 지켜본 뒤 안산으로 돌아갔다.

국회에서의 기다림은 가족들이 보폭을 넓히는 계기가 됐다. 유경근 가족대책위 대변인은 국회에서 돌아온 이튿날 전국 서명운동과 촛불집회 참여 계획을 밝혔다. 그는 “2박3일간 머물며 국회를 지켜본 가족들은 우리만의 힘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란 자각을 하게 됐다”고 했다.

실종자 수, 9일째 제자리

가족들은 국회에서 기다리던 5월28일에도 대회의실 앞에 부스를 차려놓고 의원들과 직원들의 서명을 받았다. 서명지를 들고 시민사회·노동·종교단체를 찾아 ‘1천만 서명’에 동참해줄 것도 호소했다. 주말인 5월31일엔 가족들이 전국으로 흩어져 서명운동과 촛불집회에 조직적으로 참여할 계획이다. 참사 이후 처음이다. 시민단체도 가족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서명운동에 힘을 모으고 있다.

진도 팽목항의 절망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참사 45일째인 5월30일 세월호 4층 선미에서 창문 작업을 하던 민간 잠수사 이아무개(46)씨가 숨졌다. 범정부대책본부는 “오후 2시20분께 충격음과 함께 신음 소리가 들렸다”며 ‘폐 파열에 의한 공기 유입’이 사망 원인이라고 밝혔다. 이날까지 실종자 수는 16명에서 9일째 줄어들지 않았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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