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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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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여성’ 흔들리는 마음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에서 ‘잘못한다’가 ‘잘한다’보다 앞서지만 새정치연합으로 옮겨타진 않아…
전체에서 무당층이 4월 초 15%에서 4월 말 28.9%로 증가
등록 2014-05-14 15:17 수정 2020-05-03 04:27

‘세월호 조문’ 정국에서 6·4 지방선거가 치러진다. 선거 전날인 6월3일에는 참사 희생자들의 ‘49재’가 있다. 애도와 분노가 휘발되지 않고 선거를 맞을 가능성이 높다.
여야 모두 참사 충격이 표심에 미칠 영향을 대놓고 말하진 못한다. ‘표 계산이나 하는 집단’으로 더 찍힐 수 있어서다. 이겨야 하는 선거를 앞둔 여야 모두 고민은 깊다. 여당은 정국 주도권을 뺏기지 않기 위해, 야당은 총선·대통령선거(2012년) 패배 등 만성적인 무력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방선거 승리가 필요하다.
“선거는 (세월호가 침몰한) 4월16일로 끝났다. 정부·여당을 향한 분노가 크다. 어떻게 대통령이 유족 앞에서 눈물 한번 보이지 않나. 난 뉴스만 봐도 눈물이 나는데.”
새누리당 인사의 한숨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도 시름이 없는 게 아니다. 여권을 향한 비판 여론을 수렴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제1야당’이란 시선 탓이다.
“당과 지도부가 국민보다 한두 걸음 뒤처져 가고 있다. 정부에 화난 시민들이 우릴 죄다 찍을까? 여당과 야당 지지율이 같이 떨어지고 있지 않나.”

40대 남성보다 높은 지지

야권에선 이번 선거에서 야당이 적어도 우세승을 거두지 못하면, ‘대형 참사가 나도 박근혜 정부는 견고하다’는 정치적 무력함이 시민들 사이에 누적될 것도 우려한다. 하지만 정치권에선 새정치연합이 설정한 정권견제론을 넘어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묻는 정권심판론이 힘을 얻을지, 정치 불신의 표시로 선거 무관심이 높아질지도 쉽게 가늠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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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 여야는 ‘40대 여성’들의 출렁이는 민심을 눈여겨본다. 박근혜 대통령, 새누리당 지지가 비교적 높은 편인 이들이 술렁이고 있어서다. 대체로 중·고등학생 자녀를 둔 40대 여성들은 단원고 교복을 입은 아이들의 영정을 껴안은 세월호 참사 유족들의 눈물에 크게 공감한다. 정부 무능에 분노하는 유족의 마음에도 감정을 이입한다. 이는 40대 여성들의 새누리당 지지 이탈로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고 새정치연합 지지로 두드러지게 갈아타지도 않는다. 일단 ‘무당층’(지지정당 판단유보)으로 남아 슬픔과 분노를 삭이는 것으로 보인다. 여야가 40대 여성들을 주시하는 것은, 여당 지지세가 높았던 이들이 정부·여당에 화가 났으면서도, 야당으로 대거 옮겨타지도 않는 다른 무당층의 흐름을 읽는 상징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에서 2013년부터 현재까지 박 대통령과 정당의 지지도를 물은 여론조사 자료를 받아 분석한 결과, 여성들은 자녀교육비·집문제 등 가계경제에 민감한 40대로 들어서면서 상대적으로 보수 색채를 띠는 것으로 나타났다. 20~30대 여성들이 ‘반(反) 박근혜·새누리당 정서’가 강한 그룹인 것과 비교된다.

2013년 1~12월 한국갤럽이 매주 조사한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 응답에 대한 1년 평균치에서 40대 여성들은 ‘잘못하고 있다’(26%)보다 ‘잘하고 있다’(51%)는 데 후한 평가를 줬다. 같은 기간 40대 남성의 ‘잘하고 있다’(45%)는 평가를 웃돈다. 40대 여성들은 정당 지지에서도 새정치연합(24%)보다 새누리당(34%)을 선호했다. 올해 1~3월까지 응답한 평균에서도 40대 여성의 52%가 대통령이 ‘잘하고 있다’고 답했다. 새누리당 지지는 전년 평균보다 더 높은 36%였다. 같은 기간 20대 여성의 61%, 30대 여성의 50%가 대통령이 ‘잘못하고 있다’고 박하게 평가한 것과 큰 차이가 난다.

소속 정당 지지도보다 개인 지지도 높은 경우

40대 여성들의 여론은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균열을 겪고 있다. 대통령 직무수행에서 부정적 평가가 앞서기 시작했다. 이들은 참사 직후인 4월 마지막 주 한국갤럽 조사에서 대통령이 ‘잘하고 있다’(42%)보다 ‘잘못하고 있다’(45%)고 더 판단했다. 5월 첫쨋주 조사에선 ‘잘못하고 있다’(47%)가 2%포인트 더 늘었다.

5월5일 여론조사에서도 40대 여성들은 지방선거에서 ‘여당 승리’(28%)보다 ‘야당이 승리해야 한다’(51.3%)며 여권에 등을 삐딱하게 돌렸다. 다만 한국갤럽 4월 마지막 주, 5월 첫쨋주 조사에서 40대 여성의 무당층 비율이 각각 38%와 37%에 달해, 이들이 야권에 표를 대거 몰아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여야는 일단 40대 여성들의 흐름에서 보듯 세월호 참사 ‘정부 책임론’이 야권에 다소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내다본다. 특히 단원고 학생 합동분향소에서 직접 아이들의 웃음이 네모난 영정 사진에 갇힌 모습을 본 수도권 유권자들의 분노가 투표로 표출될 가능성도 예상한다.


새정치연합 핵심 당직자는 “정치 불신, 정치권 공동책임론도 깔려 있어서 심판론을 강하게 제기하면 역풍이 불 수 있다”고 경계했다. 한 재선 의원은 “정권 심판론이 아니라, 세월호 책임론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여권의 한 인사는 “지방선거와 7월 재·보궐 선거까지는 여당이 피하지 말고 두들겨 맞을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새정치연합의 수도권 의원은 “40대 여성들 사이에서 ‘야당 승리론’이 커진 것은 의미 있는 지표”라고 평가했다.

“그간 야권 후보들이 40대 여성 유권자층에서도 여권 후보한테 졌다. 아이를 가진 그 세대 부모들이 완전히 야권 지지자로 돌아서지 않겠지만, 이번 참사만큼은 정부·여당에 경고 카드를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참사 이후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가 40%대로 떨어진 여론도 정권에 책임을 묻고 있기 때문이다. 제1야당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지방선거는 인물투표 성격이 있기 때문에 우리 야권 후보가 조금 유리해진 측면이 있다.”

소속 정당 지지도보다 개인 지지도가 높은 박원순 서울시장, 송영길 인천시장, 안희정 충남지사 등 새정치연합 후보들이 더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최근 조사에서 서울 지역 무당층의 48.1%, 새누리당 지지층의 12.8%가 새정치연합 소속 박 시장을 찍겠다고 한 것도 그런 흐름이란 뜻이다.

새정치연합에선 ‘박근혜 정권 심판론’(김상곤 경기지사 예비후보)을 적극 내세워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정권 심판론’이 위험하다는 분위기도 강하다. ‘너희도 나을 게 없다’고 여기는 무당층의 반발과, 새누리당 지지층의 결집을 부추길 수 있다는 고려 때문이다.

핵심 당직자는 “정치 불신, 정치권 공동책임론도 깔려 있어서 심판론을 강하게 제기하면 역풍이 불 수 있다”고 경계했다. 한 재선 의원은 “정권 심판론이 아니라, 세월호 책임론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당직자는 “지도부도 낮은 자세로 선거를 치를 생각이다. 안전 이슈, 삶의 질을 개선하는 민생 중심 정치, 약속을 지키는 정치 등을 강조할 것”이라고 했다.

무관심일지 중간평가일지 야권에 달려

여권에선 박근혜 대통령이 지방선거 이전에 전향적 사과와 특단의 대책을 내놓으면 성난 민심을 조금 달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품는다. 투표율이 높은 50대 이상의 보수 유권자층은 여권 지지로 결속하고, 젊은 야권 지지층과 여야 사이에서 고민하던 무당층이 투표 기권을 할 경우 여권이 선전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 조사에선 무당층이 15%(4월14~18일 조사)→18.2%(4월21~25일)→28.9%(4월28일~5월2일)로 증가했다.

김지연 미디어리서치 부사장은 “무당층에서 기권할 가능성도 있다. 요즘은 기권도 여야 정치권을 향한 경고의 표시로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선거 무관심으로 흐를지, 정권 중간평가 선거가 될지는 야권의 태도에 달렸다는 의견도 있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정치외교학)의 얘기다.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 새로 뽑힌 박영선 원내대표 등 새정치연합 지도부가 지방선거 이전까지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세월호 참사 수습 및 후속 대책 마련과 관련해 야당의 구실을 잘하면, 정권 중간평가 성격의 선거로 끌어올릴 수도 있다.”

야권은 2010년 지방선거 두 달 전 천안함 사태가 일어난 뒤 전쟁 위기를 거론하는 여권의 안보 이슈에 맞서 ‘평화·무상급식’으로 대응해 승리를 이끈 추억이 있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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