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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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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갇혀 있던 말이 달린다

직접 국가에 묻기 위해 안산에 모인 10대들…

동정할 것 없이 무너진 세상에 보내는 원망과 다짐
등록 2014-05-13 15:25 수정 2020-05-03 04:27
지난 5월9일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 문화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희생자 추모 촛불문 화제에서 지역 고등학생들이 실종자들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노란 리본을 달고 있다.  한겨레 박종식

지난 5월9일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 문화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희생자 추모 촛불문 화제에서 지역 고등학생들이 실종자들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노란 리본을 달고 있다. 한겨레 박종식

우리가 직접 국가에게 묻겠다.

며, 그들이 나섰다. 그들은 직접 물어볼 기회를 허락받은 적이 없었다.

우리는 왜 가만히 있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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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그들은 말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누구보다 가만히 있을 것을 요구받는 존재였다.

그들. 세월호 참사가 말과 행동을 촉발한 그들.

은, 청소년들이다. 경희대학생 용혜인씨의 제안으로 시작돼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는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행진에 청소년들이 뛰어들고 있다. 청소년들의 갇혀 있던 언어가 탈주를 시작했다.

분향소 출발 “영혼이라도 같이 걸었으면…”

“참사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쉽게 잊기 때문”이라고 그들은 말했다. ‘슬픔의 도시’ 경기도 안산의 청소년들이 5월9일 저녁 침묵으로 거리를 행진했다. 안산고교회장단연합회(23개교학생회 연합 모임)는 “단원고의 아픔이 잊히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행사 기획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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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500여 명이 단원고 친구들을 기억하자며 정부 합동분향소(화랑유원지)부터 고잔동 문화광장까지 2km가량을 걸었다. 손엔 “잊지 말아주세요”라고 쓴 펼침막과 손팻말을 들었다. “(영정 속) 친구들이 같이 걷지는 못하겠지만 영혼만큼은 함께 걸어갔으면 좋겠다는 뜻에서 분향소에서 출발했다”고 연합회 쪽은 설명했다. 연합회가 만든 추모 동영상엔 어른을 향한 불신과 ‘기억해달라’는 호소가 선명했다.

“우리는 무섭습니다. 이러한 비극이 이러한 아픔이 조용히 잊혀질까 너무 무섭습니다. 가만히 있으라는 어른들의 말을 믿지 못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용기를 내려고 합니다. 어른들이 우리들의 목소리를 들어주길. 우리들의 작은 변화로 세상을 바꾸고 싶습니다.”

침묵행진 1시간 뒤 도착한 문화광장에선 먼저 와 기다리던 학생들과 시민들이 그들을 맞았다. 2부 행사의 제목은 ‘학생들이여 울분을 뱉어라!’였다. ‘작은 변화’를 위해 그들은 ‘말’을 했다. 그들이 발언을 시작했을 때 학생과 교사, 일반 시민 등 3천여 명이 광장을 채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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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살려달라고 외쳐도 와주지 않는 어른들이 원망스러웠죠?” 13살의 어린 청소년은 언니·오빠에게 물었다. 사망·실종 학생들 또래의 누군가는 원망하고 토로했다. “국가는 뭘 하는지.”


마이크를 잡은 한 학생은 말했다. “누군가는 동요하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하라고 한다. 분향소는 왜 가냐는 말도 한다. 사람의 상처는 가만히 두면 썩어문드러진다. 그래서 우리 가슴 한켠에 감춰둔 울분을 터뜨리려고 한다. 단호하게 말한다. 더 이상 침묵하지 말자.”

다른 학생도 말했다. “사고 직후 전원 구조됐다는 말이 들렸다. 그 뒤엔 친구들을 우리 곁에 꼭 돌려보내주겠다는 어른들의 말을 믿었다. 지금은 어른들의 말과 행동을 믿지 않는다. 왜 사실대로 이야기하지 않고 숨기기에만 급급한가.”

ㄱ군도 “우리를 지켜주지 못한 정부도,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없는 언론도, 무능력한 사회도 믿지 않는다”고 했다.

“양심 좀 가지세요”

광장 곳곳에서 촛불을 든 학생들이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닦았다. 연합회 쪽은 “오늘 행사는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학생들의 순수한 모임이다. 정치적 이념이나 어떤 갈등도 없다”며 행사 취지를 왜곡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청소년들의 언어가 끓고 있다. 세월호 참사가 그들을 가둬왔던 언어의 빗장을 열고 있다. 생중계되는 참사의 현장을 지켜보며 키운 불신과 분노의 언어가 ‘틀’을 부수고 ‘틈’을 비집어 분출하고 있다. 청소년들은 자신들의 말과 글에 생각과 감정을 실어 기성과 어른의 부조리에 부딪히고 있다. 단원고 안팎과 합동분향소에 메모지를 붙여 남긴 글들에선 어른이 만든 세계를 향한 총체적 거부가 읽힌다.

“아무리 살려달라고 외쳐도 와주지 않는 어른들이 원망스러웠죠?” 13살의 어린 청소년은 배에서 내리지 못한 언니·오빠에게 물었다. 사망·실종 학생들 또래의 누군가는 원망하고 토로했다. “국가는 뭘 하는지. 몹쓸 어른들이 다 죽였다. 아직 청소년인 사람으로서 지금의 정부 밑에서 살기 싫다. 말로만 난리 치지 말고 제대로 좀 해라.”

ㄷ은 어른들의 이중성을 혐오했다. “한편에선 생명의 소중함을 다시 깨닫고 고쳐나가자, 새롭게 하자, 다시는 이런 일 없게 하자 외치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선 내 책임 아니다, 사과는 고려해보겠다, 내 정치적 생명이 끝나버리면 어쩌지 안절부절못하며 손 놓은 이들도 있어요.” ㄷ에게 정치인은 ‘잇속’만 따지고 필요하면 이 비극의 순간에도 ‘쇼’를 하는 사람이다. “대통령을 지키고 자기 밥그릇을 지키는 게 더 중요한 사람들이지요. 여러분들 영정 앞에서 추도는커녕 쇼를 하는 사람도 있어요.”

‘고3’이란 이름을 남긴 청소년은 박근혜 대통령을 지목해 분노를 표출했다. “박근혜 대통령님, 책임자를 엄벌하신다고만 하시는데 최고 책임자는 당신 아니십니까. 정말 부끄럽습니다. 제가 투표권을 가지게 되면 절대 수첩공주님 같은 분은 안 뽑을 거예요. 양심 좀 가지세요.”

‘어른이 되면 다 바꿔버리겠다’는 선언

다음 생에선 ‘이런 나라’에서 태어나지 말라고 빌어주는 목소리도 많았다. “대한민국이라서 죄송하다”거나 “해주는 것도 없고 제대로 구조하지도 않고 거짓말만 언론에 내뱉는 나라에서 태어나지 마시라”는 말이 곳곳에 나붙었다. “부디 대한민국이 아닌 더 좋은 나라에서 태어나세요. 어떤 것을 위해서 살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지켜본 청소년들은 이 나라와 이 땅을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절망은 기존 질서에 대한 전면 부정으로 발산됐다. ‘어른이 되면 다 바꿔버리겠다’는 선언이 줄을 이었다. “정부는 지금 뭐하고 선장이란 사람은 뭐하냐. 뉴스와 기사들은 잘못된 오도로 국민과 학부모의 마음을 애태우는데, 나중에 성공해서 다 바꿔야 한다.”(ㅅ고 학생)

‘부정’은 이른 생을 마친 친구들을 위로하는 ‘약속’의 언어이기도 하다. “정부의 많고 많은 사람들은 무얼 했으며, 어떤 대책을 세웠고, 다음에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기 위해 과연 어떤 계획을 세웠을지. 꼭 올바로 성장해서 이 나라를 다시 살릴게요. 약속합니다.”(ㄱ)

미래의 어른인 그들에게 미래에 대한 기대는 없어 보였다. 청소년들의 언어 속에서 한국 사회는 이미 동정할 것 없이 허물어진 상태였다.

‘국가에게 직접 물음’으로써 자신의 언어를 획득·생산하는 청소년들도 있다. 지난 5월4일 오전 청와대 자유게시판엔 같은 제목(‘전국의 청소년들에게 “우리는 왜 가만히 있어야 하는가?”’)의 글 3건이 2분 간격으로 잇달아 올라갔다. 양지혜(일산중산고 2학년)·강원희(용화여고 3학년)·박소현(청원여고 3학년)양이 ‘가만히 있지 말자’며 침묵행진(5월10일 오후 3시 서울 명동성당 앞)을 제안하는 내용이었다. 그들의 제안에 화답하는 같은 제목의 글도 등장했다.

4월30일과 5월3일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에 참여했던 그들이 청소년 중심의 행진을 조직하자고 뜻을 모았다. 세월호 참사가 청소년들이 겪는 삶의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다고 봐서다. 양지혜양은 말했다.

왜 가만히 있을 수 없는지 이야기하자

“가만히 있으라는 말 때문에 청소년이 가장 많이 희생됐다. 평소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듣는 사람도 청소년이다. 청소년은 살고 싶은 삶과 살아야 하는 삶이 다른 존재다. 행복을 유예당한 채 단원고 친구들도 죽어갔다.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강원희양도 제안글에서 “(세월호에서 어떤 상황도) 결정할 수 없던 학생들을 차가운 물속으로 몰아넣은 것은 과연 누구냐”고 썼다.

양지혜양은 “청소년은 언제까지 ‘우리 아이들’이어야 하냐”고 물었다. ‘청소년인데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어른들의 말도 그는 불편하다고 했다. “청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우리를 주체성이 없는 존재로 보는 것이다. 가만히 있어야 하는 존재라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그는 “이야기하는 데 의미를 두는 행진”을 꿈꿨다. “우리가 가만히 있지 않는다고 해서 바뀌는 게 없을 수도 있지만 왜 가만히 있을 수 없는지를 서로 이야기하는 자리”로 만들길 희망했다. 그들에게 ‘이야기하기’는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적극적인 행위였다.


양지혜양은 “청소년은 언제까지 ‘우리 아이들’이어야 하냐”고 물었다. ‘청소년인데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어른들의 말도 그는 불편하다고 했다. 그는 “이야기하는 데 의미를 두는 행진”을 꿈꿨다.


경기도 의정부 지역 10여 개 고등학교 학생들도 5월10일 의정부동 행복로에 모여 침묵행진을 벌인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청소년들은 곳곳에서 말하기 시작했다.

가만히 있지 않고 자신의 말과 언어를 찾으려는 청소년들에게 ‘가만히 있으라’며 압박하는 정황도 포착되고 있다. 교육부가 세월호 침몰 뒤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에 학교·학생 안정화 방안으로 ‘유언비어 유포 금지’를 명기한 공문을 하달했다. 서울시교육청도 동일한 내용을 학교에 내려보냈다. 서울의 일부 교육지청에선 고위 관계자가 관내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 학생들의 동향을 파악한 사실이 확인되기도 했다. 하병수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변인은 “5월9일 시내 고등학생들이 침묵행진에 나선 안산 지역의 경우 경찰들이 학교장을 통해 학생들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교육’의 외피를 쓴 통제와 관리는 지난해 말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를 강제로 뜯거나 경찰에 신고한 중·고등학교에서도 연출됐다.

경기도교육청이 보낸 집회 관련 공문

교사들도 자유롭지 못하다. 대구의 한 교육지원청은 세월호 침몰 이후 페이스북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실명 비판한 교사를 ‘공무원 품위 유지 위반’으로 징계를 추진하다 논란을 불렀다. 경기도교육청도 산하 교육지청과 학교에 ‘집회 관련 복무관리 철저 알림’이란 제목의 공문을 내렸다. “세월호 사고로 인하여 전 국민적 추모 분위기 속에 공무원들이 집회에 참여하는 행위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므로 각급 기관(학교)장께서는 소속 공무원들의 복무관리에 철저”를 기하란 지시를 담았다.

참사를 말하며 족쇄로부터 벗어나려는 언어와 참사를 이유로 언어를 가두려는 족쇄가 다투고 있다.

안산=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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