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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의 순서를 뒤집지 말라

대우가 낮은 선장의 책임은 어디까지인가, 왜 고위 공무원 중 누구도 내 책임이라고 하지 않는가,

잘못한 일이 있으면 누구든 책임을 진다는 ‘신뢰’가 우리 사회에 있는가
등록 2014-04-30 14:21 수정 2020-05-03 04:27
경찰청 등은 유언비어를 주의하라고 하지만, 정부가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는 의혹이 유언비어를 부추긴다. 그러나 이런 떠도는 말들도 허위로 밝혀지면서 허탈감은 더해진다. 경찰청 화면 갈무리

경찰청 등은 유언비어를 주의하라고 하지만, 정부가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는 의혹이 유언비어를 부추긴다. 그러나 이런 떠도는 말들도 허위로 밝혀지면서 허탈감은 더해진다. 경찰청 화면 갈무리

세월호 선박직 선원 15명 모두 살아남았다. 선박직이란, 선장·항해사·기관장 등 운항과 관련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다. 이준석(69) 선장은 500명 가까운 승객이 제대로 탈출하는지 확인하지도 않은 채 배를 버리고 떠났다. 이보다 앞서, 기관장 등 기관실 근무자 일부는 선장으로부터 퇴선 명령을 받고 승무원 전용 통로로 배를 빠져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선실에선 ‘제자리에 있으라’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오던 시점이었다. 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선원들보다 앞서 119 신고전화로 구조 요청을 한 경기도 안산 단원고 최덕하(17)군은 결국 차디찬 주검으로 발견됐다.

선박직, 승객에 대한 애착 떨어져

침몰하는 배에 승객을 내버려둔 선장과 일부 선원은 도덕적 비난뿐 아니라 형사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그런데, 만약 당신이 세월호 선원이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선원들은 나와는 다른 ‘특별히’ 비도덕적인 사람들인가. 물론 양심보다 사욕을 앞세우는 성격을 가진 사람도 있을 것이다. 조은경 한림대 교수(심리학)는 위급한 상황에서의 순간적인 판단은 ‘몸이 먼저 기억하는 대로’ 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민방위 훈련 사이렌이 울리면, 투덜투덜하면서도 어디론가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나. 그런데 세월호 선원들은 이러한 교육이 덜 된 것으로 보인다. 직접 승객을 만나 서비스를 수행하지도 않고, 강한 책임감으로 무장하지도 않은 사람들이 배가 기울었을 때 순간적으로 자기 보호 본능이 나온 것 같다.” 선원 일부는 검경 합동수사본부 조사 과정에서, 안전교육을 한 번도 받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선박직은 다른 직군에 비해 승객이나 배에 대한 애착이 떨어진다는 시각도 있다. 청해진해운 보유 선박을 탄 적이 있는 한 선원은 “선박직은 더 나은 자리를 찾아 이동하는 일이 잦고,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다. 반면 영업직은 거의 자리 이동이 없고 서로 간의 관계도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외환위기 이후 선박뿐 아니라 모든 분야의 일자리 질이 낮아지지 않았는가. 배도 사람이 운영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자질을 높여야 한다. 그 질을 높이려면 대우도 잘해주고 교육도 시켜줘야 한다.” -익명의 항해사


선원들은 왜 그렇게 이동이 잦을까. 한국해운조합 자료를 보면, 2012년 연안여객선업체 63곳 중 자본 규모가 10억원 미만인 업체는 38곳에 이른다. 이러한 영세업체는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단기계약직을 선호한다. 은 세월호 선원들의 고용 형태 및 근무 여건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근로계약서를 수소문했다. 선원법 제43조 1항을 보면, 선박 소유자는 선원이 승선하기 전에 근로계약서를 해양항만관청에 신고해야 한다. 그러나 해양수산부에는 세월호 직원들의 근로계약서가 없다. 취업규칙을 낸 경우, 근로계약서를 제출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은수미 의원실에서 입수한 ‘청해진해운 취업규칙’엔 2013년 3월 기준 세월호 선원들이 매달 받는 통상임금이 포함돼 있다. 선원 정년은 60살이다. 정년을 훌쩍 넘은 이 선장은 촉탁직으로 근무한다. 세월호 선장 두 명에겐 각각 287만8천원과 270만1천원이 지급됐다. 기본급·성과수당·연장수당·휴일수당·야간근로수당을 합친 금액이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여객선 업계 관계자는 “인천~제주를 매일 왕복하는 선박은 비싼 급여를 줘야 하는 도선사(항구를 출입하는 선박을 안내하는 전문가)를 두지 않는다. 그런데 도선사 역할까지 할 수 있는 선장은 귀하다. 세월호 선장은 1천만원 정도의 급여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경과 진도 관제센터는 수사 대상 아냐

익명을 요구한 한 항해사는 “세월호 선장이 판단을 잘못한 부분이 분명히 있다”면서도 씁쓸한 한마디를 덧붙였다. “선박 사고는 한번 발생하면 인명 피해뿐 아니라 해양오염 등 피해가 클 수 있다. 외환위기 이후 선박뿐 아니라 모든 분야의 일자리 질이 낮아지지 않았는가. 배도 사람이 운영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자질을 높여야 한다. 그 질을 높이려면 대우도 잘해주고 교육도 시켜줘야 한다.”

선박직 생존자 15명 중 어느 누구도 승객을 구하려고 나서지 않았다. 조은경 교수는 “눈앞에 보이는 다른 사람들이 탈출하려는 모습을 보면서 서로 ‘그래도 괜찮다’는 집단적인 자기 합리화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방관자 효과(주위에 사람이 많을수록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지 않는 현상)처럼 책임감이 분산된 것으로도 보인다”고 설명했다. 목수정 작가는 페이스북에 게시한 글에서 이러한 선원들의 선택을 ‘집단주의적 태도’라고 해석한다. “한국 사회에서 윗사람의 말을 따르는 것은 천부인권을 가진 시민으로서 행동하는 것보다, 막강한 힘을 갖는 행동의 룰이다. 거기서 한 사람이 뒤돌아서 난 승객들을 구하겠다고 했다면, 배반자가 되고 잘난 척한 놈이 된다. 무조건 대세를 따라줘야 하는 것이다.”

세월호 뱃머리에 있던 선원들만 책임을 회피한 건 아니다. 대한민국호 뱃머리에 앉은 대통령과 고위 공무원 어느 누구도 ‘내 책임’이라는 말을 뱉지 않는다. 사고 당일인 4월16일 아침 7시8분 세월호는 해양경찰청 산하 진도 연안해상교통관제센터(VTS) 관제 해역에 들어온다. 세월호는 진도 관제센터에 진입 신고를 하지 않았다. 관제센터는 선박이 진입 신고를 하지 않더라도 이를 확인해야 한다. 해사안전법 시행령 제12조를 보면, 선박 교통관제 업무가 무엇인지 나와 있다. ‘선박 좌초 등 위험이 있는지 관찰해, 해양사고 예방 관련 정보를 선박에 제공해야 한다.’ 해양사고 예방 관련 정보를 선박에 제공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진도 관제센터는 ‘세월호가 침몰 중’이라는 제주 관제센터의 연락을 받기 전까지 2시간 동안 세월호를 방치했다.

사고 초기 진도 관제센터는 세월호와의 교신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다. 은폐 의혹이 불거지자 4월20일에야 그 내용을 공개했다. 4월16일 오전 9시24분 세월호 항해사는 “승객을 탈출시키면 구조가 바로 되냐”고 묻는다. 진도 관제센터 쪽에선 “선장님이 직접 판단해서 탈출시키라”고만 답한다. 해경과 진도 관제센터 등의 사고 대처가 적절했는지에 대한 규명도 필요하다. 그러나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이러한 부분을 수사하고 있지 않다. 참여연대는 4월25일 논평을 내어 “검경 합동수사본부에서 해경을 배제하고 초동 대처 실패와 소극적인 구조 활동에 따른 직무유기 혐의에 대해 수사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인권에 대한 책임은 ‘위’로부터

박근혜 대통령은 침몰하는 세월호에 승객을 놔두고 탈출한 선원들에 대해 “살인과도 같은 행위”라고 비난했다. 수사가 마무리되기도 전에, 국가 최고책임자가 ‘죄명’을 붙여준 셈이다. 그런데 잘못한 일이 있으면 어느 누구든 책임을 진다는 ‘신뢰’가 우리 사회에 남아 있을까. 4월23일 다산인권센터 등 40여 개 인권단체는 정부에 ‘책임의 순위를 뒤집지 말라’고 촉구했다. “규제를 푼 자, 무리한 증축을 인정한 자, 무리한 운행을 지시하고 방관한 자 등 명확한 책임자는 더 나올 것이다. 사고 발생부터 지금껏 보여준 정부의 태도는 꼬리를 자르고 도망치는 뱀을 연상시킨다. 뻔히 드러난 선원부터 처벌하는 일이 지금 가장 급한 일인가? 재난으로부터 보호받을 인권에 대한 책임은 ‘위로부터’ 지는 것이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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