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래 친구를 잃었다. 어른들은 우왕좌왕한다. 10대들은 세월호 참사를 어떻게 겪어내고 있을까.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집단 중 하나는 고등학생이다. 4월24일 밤 10시. 각각 다른 학교를 다니는 여섯 명의 아이들은 독서실·학원에 있거나 집 혹은 또 다른 학원으로 향하던 참이었다. 새벽 1시가 넘어서까지 잠자리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자투리 시간이 날 때마다 카카오톡 채팅방으로 그들의 심경이 전송됐다. 그리고 몇 시간 뒤, 아이들은 모자란 잠에서 깨어나 다시 학교로 향했다. 중간고사 기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버스를 타고 가다 잘못되면…-세월호 참사 이후 학교 분위기는 어떤가요.심은조(이하 심)- 일이 커지면서 다들 우울해해요. 수학여행도 취소됐어요. 반 친구가 초등학교 때부터 친했던 아이도 가족과 함께 실종됐어요. 옆에서 우는 친구를 보니까 덩달아 마음이 아프고, 피해자가 많다는 것이 실감났어요. 친구의 친구는, 결국 사망한 채로 발견됐습니다.
[%%IMAGE2%%]박지영(이하 박)- 사고 일주일 전, 중국 상하이로 수학여행을 다녀왔어요. 사고 이튿날까지 공부를 못할 정도로 충격을 받았어요. 계속 울었어요. 단원고 친구들은 저랑 동갑이니까요. 어떤 친구들은 엘리베이터도 못 타겠다고, 혼자 있으면 너무 무섭다고 했어요. 이번주엔 일상으로 돌아오는 분위기예요. 친구들한테 왜 세월호 이야기를 안 하냐고 물어보니, 다른 이야기를 하는 편이 낫다고 해요. 정부에 대한 비판이 너무 심한 것 아니냐는 친구도 있어요.
강지수(이하 강)- 저랑 친구들은 세월호 이야기를 많이 해요. 쉬는 시간마다 생존자·사망자 수를 확인해보고…. 처음엔 안타까워하고, 슬퍼했어요. 지금은 정부나 정치인, 언론에 대한 분노가 많아요. 학교 특성상 주말마다 단체로 차를 빌려 타고 백일장에 가는 경우가 많아요. 관광버스를 타고 가다 잘못되면 어떻게 하나 두려워요. 물에 불은 주검이 가득 나오는 꿈을 꾼 친구도 있어요.
고승효(이하 고)- 제가 2학년 4반이에요. 오늘 반 친구들이 단원고 2학년 4반은 구조자가 한 명도 없더라는 이야기를 했어요. 학생에겐 학교라는 세계가 거의 전부인데, 단원고 비극은 같은 세계 다른 공간에서 일어난 것이라 주변 사람들이 심적으로 더 흔들리는 거 같아요.
신윤경(이하 신)- 지난주 수요일 4교시 쉬는 시간에 사고 뉴스를 봤어요. ‘전원 구조 중’이라고 했기 때문에 다들 그냥 넘겼어요. 평소처럼 독서실에 다녀온 뒤, 저녁에 TV를 봤어요. 저는 그렇게 많은 실종자 수를 본 기억이 없어요. 저도 지난해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갔었어요. 며칠 동안 친구들과 수학여행에 대해 이야기하고, 새 옷을 사기도 하고. 단원고 아이들도 그랬을 걸 아니까, 무섭고 슬펐어요.
나라를 완벽히 불신하게 됐죠-이번 참사를 보면서 어떤 ‘장면’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나요.강- 처음 구조 신고를 한 사람이 단원고 학생이라고 들었어요. 배가 기울기 시작했을 때, 많은 학생들이 가족과 카카오톡이나 문자로 연락했던 흔적이 있잖아요. 아이들이 신고를 하고 가족과 연락할 동안 왜 구조 작업에 들어가지 않았는지 의문이 들어요.
박- 학생이 구조 요청을 해서 세월호에 다가온 배를 타고 가장 먼저 탈출한 승무원과 선장의 모습이오.
고- 학생이 배가 기운다고 신고했는데, 위도·경도를 물어보면서 시간 낭비한 해경이오.
심- 구명보트가 배에 있었는데 그런 장비를 사용하라고 하지도 않고 탈출한 선장의 모습이 이해되지 않았어요. 피해 학생들에게 과도한 질문을 하는 기자들의 모습도 보기 불편했어요.
고- 모든 잘못을 선장과 선원에게 전가하는 정부의 태도가 실망스러웠어요.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나라나 어른들에 대해 생각이 달라진 부분이 있나요.박- 어른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18년 동안 교육을 받았어요. 하지만 이번 일로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어른들이 ‘가만히 있으라’고 하면 반발심이 들 것 같아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참사를 이용하는 어른들을 보고 정말 충격받았습니다. 선거철을 앞두고 후보로 나온 분들이 조의 문자를 보내며 홍보한다는 기사를 봤어요.
강-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이고, 나라의 발전을 위해 힘쓰고 세금을 내고. 나와 우리나라는 아주 가깝게 연결돼 있다고 생각했어요. 국가는 당연히 국민을 살리는 존재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또래 친구들이 속수무책으로 목숨을 잃고 여러 정치인들이 막말을 하는 걸 보면서 국가는 우리를 지켜줄 수 없는 존재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완벽히 불신하게 됐죠. 예전엔 잘 알지 못했던 우리나라의 추악한 모습에 대한 분노가 큰 것 같아요.
심- 예전엔 ‘당연히 안전하겠지’란 생각도 컸고. 그런 사고가 일어나도 신속하게 구조될 거라고 믿었어요. 사회와 국가가 나를 지켜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없고, 내 안전을 운에 맡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 원망스러워요.
김채운(이하 김)- 무엇보다 가장 화가 났던 건,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거예요. 국민은 경찰과 정부를 믿지 못하고, 실종자 가족들은 언론을 믿지 못하고, 아무도 방송을 신뢰하지 않게 되면서 근거 없는 정보가 넘쳐나게 된 거요.
-이번 사고 전엔 ‘신뢰’가 있었다고 했는데, 그 신뢰는 어디서 온 거였을까요.고- 경제 규모 몇 위처럼, 선진국 반열에 드는 우리나라에 대한 막연한 신뢰감이 있었어요. 국제적인 행사도 많았고요. 이번에 그런 신뢰가 모두 깨졌어요. 단 한 명의 생존자도 구조하지 못하는 걸 보며 심한 분노를 느꼈어요.
심- ‘국민이 안전한 나라’라는 말 때문인 것 같아요. 해외에서 살아본 사람들은 한국이 더 안전하다고 해요. 저는 당연히 구조자가 많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많은 사망자가 나온 것이 혼란스러워요. 어른이 된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껴요. 책임감 없고 능력 없는 어른들이 어떤 재앙을 만드는지 보았어요.
김- 주위 친구들은 우리나라에 대한 신뢰가 크진 않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해요. 우리나라 망했다, 나중에 외국으로 나가야겠다고 많이 말하죠. 감정적인 말이겠지만 그만큼 실망이 커요. 단원고가 아니라 강남 8학군 학교였다면 항공모함이 출동했을 거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어요.
강- 국가를 맹신한 건 아니지만, 제가 불신을 느꼈던 사건은 저와 거리가 있는 것 같았어요. 나에게 그런 일이 일어날 거라는 불안감이 없었죠.
‘국민이 안전한 나라’라는 말에 대한 신뢰-이번 참사는 학생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김- 친구들이 웃고 떠드는 모습이 갑자기 멀게 느껴지는 때가 있었어요. 가치관은 오히려 확고해졌어요. 진실의 편에 서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했어요.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좋은 대학에 가서 잘 먹고 잘 살겠다는 게 아니라, 어떠한 방식이든 사회에 기여하는 쪽으로 공부를 하려고요.
강- 저는 공부를 열심히 할 마음이 들지 않아요. 무기력해졌어요. 이 나라에서 왜 살고 있을까, 이런 생각이 자주 들어요. 일상으로 돌아와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아요.
신- 사고 뒤 며칠 동안 친구들과 온통 세월호 이야기만 했어요. 급식을 먹으면서도, 그 아이들은 얼마나 배고플까. 쉬는 시간엔 그 아이들은 얼마나 답답할까. 친구들은 웃지도 않았고, 서로 다른 곳을 보면서 생각에 잠겼어요. 다음주 월요일이 고3 첫 중간고사라, 저희는 일상으로 빨리 돌아와야 했어요. 뉴스를 보다가 공부를 하면 어느새 무뎌지는데, 그게 참 자책감이 들었어요. 일상대로 지내는 게 불편하고 이래선 안 될 것 같고….
더 소중한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는 계기로박- 수학여행을 다녀온 직후라 부모님도 많이 놀라셨나봐요. 사고가 난 날 저녁에 집에 가니 두 분이 울고 계시더라고요. 살아 있어줘서 고맙다고 하셨어요. 그래도 잔소리는 계속 하시는데.
심- 부모님도 혼란스러워하세요. 뉴스를 보다 울먹이며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 고맙다고 했어요. 친구들 이야기로는, 각자 부모님들이 공부하라는 말을 덜 한다고 해요.
김- 주위 어른들이 이런 나라를 물려주게 돼서 미안하다는 말씀을 많이 하세요.
고- 엄마는 뉴스를 보면서 매일 우셨어요. 엄마 친구분들 중에도 그런 분이 많다고 들었어요.
김- 세월호 참사가 어른들에게 ‘우리 아이를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만들었으면 해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에 대한 관심도 어른들이 꼭 가졌으면 좋겠어요. 내 자식만 잘되는 세상이 아니라요.
심- 평소 부모님이 저희 학업이나 대입에 관한 고민을 많이 하셨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더 소중한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시는 걸 봤어요. 사회가 많이 바뀌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리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표지이야기] 폐허에 성난 눈만이 서성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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