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들 보기가 민망하더라.”
한 대기업 부사장은 등기임원의 연봉이 공개된 뒤 이렇게 한숨을 쉬었다. 대기업 집단(재벌)에 속하지 않는 이 회사에서 5억원 이상의 연봉을 받는 임원은 사장 한 명뿐이었다. 그는 “재벌그룹은 성과급을 오너가 알아서 떼어주는데 우리는 아닌 거지”라고 말했다.
급여보다 큰 상여금·격려금
올해 처음으로 각 기업의 개별 등기임원 연봉이 공개되면서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한국 사회’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 먼저 ‘소득 상위 1%’ 내의 재벌 총수 일가와 전문경영인의 격차다. 가 30대 그룹 주요 상장사 173곳을 대상으로 임원 연봉을 분석해 4월3일 내놓은 결과를 보면, 재벌 오너 일가인 임원 34명의 평균연봉(여러 계열사의 임원인 경우 합산)은 38억3600만원에 이르렀다. 그 외 전문경영인 132명의 평균연봉은 13억2500만원으로 2.9배의 차이가 났다. ‘어느 성’을 가졌느냐에 따라 연봉을 3배 더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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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부의 차이는 기업 규모에 따라 더 커진다. 한국 수출을 이끌고 있는 ‘전차군단’인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만 떼놓고 보면, 삼성전자의 등기임원 1인당 평균 보수액은 65억8900만원, 현대차는 23억600만원이었다. 주요 상장사 173곳 181명의 임원 평균연봉인 16억1300만원을 훌쩍 넘어선다. 이 차이는 기업의 매출에 따른 성과 배분과 임원에게 개별적으로 주는 격려금 등에서도 기인한다.
예를 들어 권오현 삼성전자 사장은 지난해 67억7300만원을 받았는데 급여(17억8800만원)보다 상여금(20억3400만원)과 기타근로소득(29억5100만원)이 훨씬 많았다. 상여금은 설과 추석 상여금(월급여의 100%), 목표인센티브(부서별 목표달성도에 따라 월급여의 0~400% 내에서 연 2회 지급), 성과인센티브(회사 손익목표를 초과했을 때 이익의 20%를 나눠 기준 연봉의 0~70%에서 지급) 등이 합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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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근로소득은 상여금보다 9억원이나 더 많은데 내역은 자세하지 않다. 기타근로소득엔 등기임원 공로금, 신경영 20주년 격려금 등 특별 성과급과 개인연금, 건강검진비 등 복리후생 관련 처우가 포함된다. 대기업 임원급을 주로 스카우트하는 한 헤드헌터는 “임원에게 주는 격려금은 총수 등이 책정해주는 것으로 보면 된다. 성과급도 삼성의 경우 기본급의 2~3배 정도로 생각한다. 계약서에는 나와 있지 않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는 삼성전자보다 공개된 내용이 적어 구체적 내역을 알 수 없었다.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 등 등기임원 4명에 대해 전체 근로소득만 공시했을 뿐, 어떤 항목으로 이를 받아갔는지 내역을 공개하지 않았다.
저임금 노동자 규모, 17개국 중 가장 심각1
1% 내부의 차이는 바깥으로 눈을 돌리면 훨씬 더 커진다. 재계 정보 사이트 ‘재벌닷컴’이 총수가 있는 자산 상위 10대 그룹 상장사의 사업보고서를 분석해 내놓은 결과를 보면, 등기임원의 평균연봉(10억4353만원)이 직원 평균연봉(7581만원)의 13.8배에 이른 것으로 조사됐다. 그나마 10대 그룹 상장사인 대기업 직원의 보수와 비교한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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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쪽으로 눈을 돌리면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진다. 지난해 5월 통계청이 내놓은 자료(3월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결과)를 보면, 정규직 노동자의 평균월급(명목임금)은 253만원이었다. 2013년 같은 기간 연봉 기준으로 보면 3036만원으로 임원 평균연봉에 견줘 2.91%에 불과했다. 평균임금의 노동자가 34년 동안 일하며 월급을 모두 모아도 임원 연봉 1년치를 못 번다는 얘기다.
비정규직 노동자 임금과의 비교는 무의미할 정도다. 지난해 비정규직 노동자의 평균월급은 141만원이었다. 연봉 기준 1692만원으로 임원 평균연봉의 1.62%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평생 일해서 벌어도 대기업 등기임원 1년치 연봉의 근처에도 갈 수 없다. 국제노동기구(ILO)의 세계임금보고서(2010년)는 한국의 저임금 노동자 규모가 25.6%로, 통계가 집계된 17개국 가운데 가장 심각한 수준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연구조정관은 “일반적인 소득 불평등의 원인은 재분배의 실패라기보다 노동시장 내부에서 생겼다고 본다. 최고경영자가 돈을 더 많이 가져간다든지 봉급생활자 내에서 임금의 분배가 훨씬 불평등해졌다”고 말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내놓은 ‘경제적 불평등과 노동시장 연구’ 보고서도 한국 사회의 소득 불평등에 대해 “하위 노동소득 분위의 실질 노동소득이 하락하고 상위 노동소득 분위의 실질 노동소득이 크게 증가해, 취업자의 개인별 노동소득의 불평등이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노동시장 불평등을 방치하면서 조세정책 등 재분배 정책이 불평등을 줄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 노동시장의 불안정과 격차를 억제하는 정책 노력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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