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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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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법으로 피해자 구제하라

이미 준 배상금마저 내놓으라는 정부
국가폭력 배·보상 특별법 제정해 일괄적으로 피해자 구제하는 적극적 조처 필요
등록 2014-04-05 16:58 수정 2020-05-03 04:27
2010년 한국전쟁 당시 실종된 아버지를 둔 60대 여성이 울부짖고 있다. 전쟁 때 끌려가 집단학살된 수많은 민간인들의 유해는 지금까지도 학살된 자리에 방치돼 있다.한겨레 강재훈

2010년 한국전쟁 당시 실종된 아버지를 둔 60대 여성이 울부짖고 있다. 전쟁 때 끌려가 집단학살된 수많은 민간인들의 유해는 지금까지도 학살된 자리에 방치돼 있다.한겨레 강재훈

1974년 중앙정보부에 체포 → 1975년 대법원, 무기징역 선고 → 1982년 석방 →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인민혁명당(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가혹행위에 의해 조작됐다고 발표 → 2008년 재심에서 무죄 확정 → 2009년 서울중앙지법, 본인 등 가족 5명에게 위자료 18억5천만원에 이자 더한 약 30억원 배상 선고 → 2010년 대법원, 배상금 이자 발생일을 무기징역형 확정일에서 손해배상 1심 변론 종결일로 변경해 총 배상금 절반으로 축소.

국가폭력 책임자에게 구상권 행사해야

8명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겪은 피해자 전창일(93)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의 지난한 세월이다. 혹독한 고초를 겪은 뒤, 누명을 벗고 금전적 손해를 배상받기까지 산 넘어 산이었다. 끝내 국가는 이미 쥐어준 배상금마저 도로 내놓으라 한다. 국가가 저지른 대량학살·인권침해 역사는 제대로 청산되고 있는가. 과거를 돌아보는 이유는 미래 때문이다. 사회정의를 바로 세워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려면 진상 규명뿐 아니라 피해 배상·회복·사죄·재발방지책 마련 등이 유기적으로 연결돼야 한다.

우리 사회는 ‘진상 규명’이라는 첫 단추도 제대로 꿰지 못했다. 2005년부터 5년간 활동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를 통해 국가폭력 실체가 드러난 사건들이 있다. 그러나 정부와 국회는 배상 등 피해자 구제책을 마련하지 않았다. 누명을 벗고 배상금이라도 받으려면 일일이 소송을 내는 수고를 들여야 한다. 이러한 피해자들에게 사법부는 ‘과잉배상’을 운운하며 고통을 얹어주고 있는 셈이다. 국가의 잘못으로 피해를 입은 개인에게 구제 책임을 전가하는 건 부당하다. 대신 국가폭력 배·보상 특별법을 제정해 일괄적으로 피해자를 구제하는 적극적 조처가 필요하다.

박정희 정권 시절 의문사를 당한 최종길 서울대 교수의 아들인 최광준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피해자 설득을 통해 어떻게 배상할지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과거 청산은 피해자에게 돈만 쥐어주고 끝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배상, 지속적 치유 등을 수행하는 공공재단 설립을 고민했다면 적은 돈을 들여 사회 갈등을 해소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정부가 국가폭력 책임자들에게 구상권(국가가 피해자에게 손해배상금을 준 뒤 배상금을 물어내도록 요구)을 적극적으로 행사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재정 부담을 빌미로 구제를 외면하는 현실 때문이다. 국가배상법에는 ‘공무원에게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있으면 국가는 구상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2003년 법무부는 5공 시절 대표적 간첩 조작 사건인 ‘수지김 사건’의 손해배상과 관련해 장세동 전 국가안전기획부장에게 구상권 청구소송을 내 승소했다.

안병욱 전 진실화해위원장은 “한국전쟁 당시 최소 10만 명 이상이 희생됐지만 위원회에 진상 규명을 신청한 사람은 8천여 명에 불과했다. 많은 피해자가 또다시 국가로부터 보복당할까봐, 신고 기간이 지나 뒤늦게 조사를 요청했다”며 안타까워했다. 멈춰선 과거 청산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이유다.

과거사 재단 강제화 조항 포함돼야

현재 국회에는 진실화해위 재가동을 위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개정안이 여러 개 발의돼 있다. 20여 년간 국가폭력 문제를 다룬 장완익 변호사는 이렇게 평가했다. “배·보상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강제한 안과 피해 사실을 통보받은 피해자 및 유족이 손해배상 청구권을 3년간 행사할 수 있도록 한 안이 합쳐진 형태가 바람직해 보인다. 위원회가 없어지더라도 역사적 기록을 보존하고 공개할 재단이 필요한데 이를 강하게 요구하는 조항도 덧붙여져야 한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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