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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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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짱이 만들려고? 부자에게도?

쟁점 토론회
(옹호) 강남훈 한신대 교수·백승호 가톨릭대 교수 (비판) 김태현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장·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등록 2014-02-28 07:49 수정 2020-05-02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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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을 바라보는 시선은 진보 진영 안에서도 상당히 복잡하다. 국가가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최소한의 생활권을 보장해줘야 한다는 기본소득의 문제의식에는 동의하더라도, 세부 내용으로 들어가면 의견이 엇갈린다. ‘보편복지’를 지지하는 쪽에선 기본소득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미래의 유토피아일지는 몰라도, 현실에선 무상보육, 공평한 기초연금 정착 등 사회 안전망의 틈새를 메꾸는 게 먼저라고 주장한다. 노동운동 쪽에선 기본소득 논의가 임금을 깎는 근거로 ‘부메랑’이 될 것을 우려한다. 불안정노동자의 삶을 바꾸는 대안으로는 기본소득보다 당장 최저임금 인상이 더 시급하다고도 주장한다. 지난 2월20일 한겨레신문사 4층 회의실에서 좌담회를 열어 기본소득을 둘러싼 이같은 논쟁 지점을 짚어봤다. 기본소득을 찬성하는 쪽에서는 강남훈 한신대 교수(경제학), 백승호 가톨릭대 교수(사회복지학)가, 비판하는 쪽에서는 김태현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장, 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이 참석했다.

소득분배율, 외환위기 직전 수준 회복 못해

사회 전세계적으로 분배 구조가 악화되고 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많다. ‘기본소득제도’가 대안이 될 수 있을까.

강남훈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이하 강) - 지금까지의 성장은 ‘금융 주도 성장’이었다. 금융자산 가격이 올라가면서 부와 일자리가 생겨나는 것이다. 이게 깨지면서 대안으로 ‘임금 주도 성장’이 나왔다. 임금을 올려서 경제를 활성화하자는 거다. 비정규직, 반실업자, 영세 자영업자 등을 포괄해 ‘소득 주도 성장’이라고도 부른다. 기본소득은 ‘소득 주도 성장’의 가장 급진적인 방법의 하나다. 거시담론 차원에선 자본주의의 대안적인 사회체제로서 의미도 있다.

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이하 오) - 금융자본 중심의 성장 모델이 벽에 부딪혔다는 사실은 이를 주도한 세력까지도 인정한다. 보수는 보수대로, 진보는 진보대로 새로운 대안을 찾아가는 상황이다. 소득 주도 성장론은 유효한 문제제기다. 문제는 ‘소득을 늘리는 적합한 방식이 무엇이냐’다. 협동조합 등 사회적 경제모델을 찾는 게 하나의 흐름이고, 기본소득도 또 하나의 흐름인 것 같다. 다만 기본소득이 얼마나 유효한 대안인지는 의문이다.

김태현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장(이하 김) - 우리나라의 노동소득분배율은 외환위기 직전 수준을 여전히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노동자 비중은 늘었지만, 노동소득분배율은 더 떨어졌다. 일부 재벌만 살찌웠다. 결국 1차 생산 영역에선 기업 이윤보다 현저히 떨어져 있는 임금을 올려야 한다. 2차 재분배 영역에서는 기본소득과 기존 복지제도를 연계해서 바라보는 게 필요하다.

백승호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이하 백) - 기본소득을 소득 주도 성장의 측면에서 바라보면, 소비를 통해 내수를 진작하고 공장을 잘 굴러가게 한다는 맥락과 맞닿아 있다. 이는 산업사회에서 나타난 소비를 통한 발전전략의 또 다른 버전인 것 같다. 기본소득 논의에서 소비를 지양하는 생태적 복지국가 모델도 언급되는데, 소비를 중심으로 소득만 강조해서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수 없을 것 같다.

사회 완전고용이 더 이상 불가능하고 노동의 성격 자체가 바뀌고 있는 상황도 기본소득의 등장 배경 아닌가.

기술혁신도 기본소득 논의가 나온 중요한 배경이다. 구글은 2017년 무인자동차를 상용화할 계획이라 하고, 월마트는 바코드 대신 RFID(전자태그)를 심어서 점원이 없는 매장을 시범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기술혁신이 제조업과 서비스업을 가리지 않고 일자리를 줄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열악한 일자리를 개선하기란 굉장히 어렵다. 마지막 남은 답은 노동시간 단축이다. 기본소득이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노동시간 단축에 많은 도움이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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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목은 동의가 잘 안 된다. 기술혁신으로 제조업 비중은 축소되고 있지만, 임금노동자 수는 계속 늘고 있다. 서비스 영역이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돌봄 노동은 엄청난 저임금 일자리다. 노동의 소멸이라는 측면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면 안 된다.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근거가 반드시 ‘노동의 소멸’에 있다고 보진 않는다. 일자리가 제조업에선 줄고 서비스업에선 늘어났는데, 여기서 불안정한 노동이 늘어났다는 게 문제다. 임금이 낮고 고용보험 등 전통적인 사회보험 시스템에선 배제돼 있다. 게다가 노동시장 진입 자체가 어려워진 청년층도 늘어나고 있다. 이처럼 사회보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맥락에서 기본소득이 논의되는 거다.

30만원, 필요로 볼까 권리로 볼까

사회 불안정노동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전통적인 복지제도가 이런 문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기본소득은 다를까.

늘어나는 빈곤층, 불안정노동층의 소득을 보장해주는 방식으로 보편복지와 기본소득 간의 비교우위를 따져보자. 보편복지는 노인·아동·학생 등 집단에 따라 특수한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런데 그 필요가 보편적인 성격이 있으니, (그 계층) 모두에게 주자는 게 보편복지다. 반면 기본소득은 기초생활보장비·무상보육비·기초연금 등 서로 다른 필요를 한꺼번에 다 소화해버린다. 1인당 월 30만원씩 주면, 필요가 분명했던 계층의 소득은 변하지 않고 별다른 필요가 없던 최저생계비 이상의 계층에도 돈을 주는 거다. 이게 형평성이 있다고 할 수 있나.

최소한 굶지 않을 정도로 살 권리는 기본권이다. 살아 있는 개인이라는 존재만으로도 사회에 공헌한다고 믿고, 최저 월 30만원 정도는 국가나 시장의 승인 없이도 그냥 주자는 거다. 기본소득이 철학적으로 지향하는 바다. 30만원을 ‘필요’로 보는 관점과 ‘권리’로 보는 관점은 조금 차이가 있다.

기본소득 모델은 대단히 이상적이다. 그런데 지금 사회 구성원들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살고 있다. 사회적으로 성공해 노동시장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기본소득을 줘야 한다는 주장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노동시장 밖에 있는) 아동·노인·여성이기 때문에 수당을 줘야 한다는 것과, 돈 잘 버는 사람에게도 30만원을 줘야 한다는 건 사회적 정당성을 얻는 데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보편복지 지지자들이) 무상급식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을 때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손주에게도 줘야 하냐?”는 공격을 받았다. 똑같은 공격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는 건, 제도 자체가 아니라 정치적으로 어떻게 얻어낼 것이냐의 문제라고 본다. ‘재분배의 역설’이라는 게 있다. 많은 사람에게 주는 게 지출 규모도 키우고 궁극적으로 재분배 달성에 유리하다는 뜻이다. 그런 면에서 (모두가 수혜층인) 기본소득이 더 필요하다. 또 사회보험 사각지대 규모가 30~50%라고 얘기한다. 보편복지로는 이 부분을 해결하기 어렵다.

불안정노동자들이 시간제로 일해서 버는 월소득이 3인 가구 기준 100만원이 안 된다. 그런데 인구의 3%만 기초생활보장비 등 공공부조를 받는다. 최저생계비를 올리고, 부양의무제를 폐지하고, 수급자를 500만 명까지 늘리자. 또 기존 실업급여 등에서 배제된 영세 자영업자, 아르바이트 노동자들도 수급권을 가질 수 있도록 사회가 지원하자. 이렇게 보편복지 방식으로 기존 틈새를 줄여나가는 게, 기본소득처럼 (현금을) 계층 위에서 아래까지 쭉 까는 것보다 더 사회적인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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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들이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이유가 있다. 가난한 사람에게 30만원을 주되 부자에게는 안 주는 방식이나, 가난하건 부자이건 모두에게 30만원을 주면서 부자에게 세금을 더 많이 걷는 방식이나 사실 결과는 같다. 복지가 필요한 사람에게 돈이 가는 거다. 그런데 기본소득은 분명한 장점이 있다. 행정적으로 굉장히 간단하다. 특정 집단에게 각종 수당을 지급하려면 자산 심사 등 행정비용이 많이 드는데, 기본소득은 거의 비용이 안 든다. 또 만약 계층별로 필요에 따라 현금 보조를 해준다고 치자. 소득 보조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직업을 바꾸거나 일을 하지 않게 된다. 예를 들어 지금도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월 90만원을 지급하면 그들은 월급 80만원을 받는 일은 안 하려고 한다. 이른바 도덕적 해이가 생긴다. 복지제도를 이런 식으로 설계하면, 멀쩡한 개미들이 오히려 베짱이가 될 수 있다.

궁박한 상태에서 기업과 계약하지 않아도 돼

사회 독일에선 우파가 기본소득을 지지하기도 한다. 그들에게 분명 유리한 측면이 있어서다. 기본소득제도에 근본적인 결함은 없을까.

기업 입장에선 기본소득이 지급되면 임금을 대폭 낮출 수도 있다. 우파 중엔 최저임금제를 없애자는 기본소득론자도 있다. 과거 영국에선 구빈법(일하지 않는 빈민이 받는 복지급여는 일하는 노동자의 최하 임금보다 높아선 안 된다는 ‘열등처우의 원칙’이 있었다) 때문에 최저임금이 굉장히 어려워진 적이 있었다.

영국 스핀햄랜드법(구빈법의 원외구제를 목적으로 최저생활 기준을 선정해 실업자와 저임금 노동자에게 수당을 지급하는 임금보조제도)을 말했는데, 이는 기본소득제도라고 볼 수도 있지만 원래는 최저임금제도다. 국가가 최저임금을 보장했더니 임금이 낮아진 거다. 그런데 최저임금제도가 있는 지금의 현실을 보자. 최저임금도 못 받고 일하는 노동자가 10%다. 기업주가 불법행위를 저지르는 것인데도, 노동자가 곤궁함 때문에 기꺼이 타협해 일을 하는 것이다. 만약 노동자가 그런 일자리에서 일하지 않으려 한다면? 기본소득은 노동자들이 이런 궁박한 상태에서 기업과 계약할 필요가 없게 만드는 제도다. 노동자들이 가장 열악한 일자리를 거부할 수 있는 최소한의 버팀목이 돼주자는 거다. 최저임금을 당장 1만원으로 2배 올린다면 기업이 고용을 줄이면서 실업자가 늘어날 것 아닌가. 그때 기본소득은 노동자들이 한두 달 취업하지 않고 버틸 힘은 된다.

이론과 현실은 다르다. 최저임금도 안 주는 일자리에서 노동자가 타협해서 일한다? 강도에게 돈을 주는 것도 타협인가. 결국 문제는 기본소득을 주려면 국가권력을 장악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점이다. 조세를 대폭적으로 이전해서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모든 국민에게 (장기적으로) 월 100만원씩 주려면 어마어마한 조세 저항을 극복해야 할 거다. 이런 현실을 고려하면, 엄청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기본소득제도가 시행된다 하더라도 국가보조금의 성격이 클 거라고 본다. (기본소득 지급액이) 껌값밖에 안 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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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과정’의 문제다. 기본소득까지 어떻게 갈 것인가. 대중의 권리의식을 높이는 방법으로 어떤 게 유효한지를 따져보자. 예를 들어 시민연금으로 월 100만원을 주는 게 우리의 목표라고 해보자. 기본소득 지지자들 쪽에선 30만원에서 50만원, 70만원으로 높여나가는 경로를 제시한다. 보편복지론자 쪽에서는 각 집단에 따라, 아동·실업자·농민·가사노동자·불안정노동자 등 각각의 계층에게 적합한 수당을 먼저 만들자는 거다. 잘 벌든 못 벌든 모두에게 30만원씩 주자는 것과, 농민이기 때문에 가사노동자이기 때문에 청년실업자이기 때문에 월 30만원의 수당을 주자는 것 중에서 어느 쪽이 사회적 공감대를 얻기 쉽겠나.

사회 자연스럽게 지금 시점에서 기본소득운동에 필요한 전략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는 것 같다. 보편복지라는 이야기가 나오기까지도 엄청난 세월이 필요했다. 기본소득은 전혀 새로운 쟁점을 제시하는 것인데, 정치적인 프로젝트를 어떻게 만들어나갈 건가.

기본소득운동의 현실적인 주체로 불안정노동자들이 나서기엔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 다수의 노동자는 자기 임금을 제대로 받는 걸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 불안정노동자들에게 유일한 돌파구는 최저임금 인상이다. 그런데 현실적 어려움 때문에 이들이 최저임금 투쟁의 주체가 되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불안정노동자들이 정규직도 주고 비정규직도 주는 기본소득운동에 정치적 주체로 나서려 할까? 똑같이 기본소득을 받으면 뭐가 달라지겠느냐고 반문할 거다. 추상적인 기본소득 모델 설계보다는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하는 구체적인 내용이 제시돼야 노동조합이 운동으로서 결합할 수 있을 것 같다. ‘권리’로서의 기본소득과, 인간다운 대접을 받는 좋은 일자리, 즉 노동권이 함께 결합돼야만 우리가 바라는 대안사회에 다다를 수 있다.

생산적 토론 거쳐 총선·대선에서 지혜를

한국에서 기본소득운동을 시작한 지 5년쯤 됐다. 기본소득네트워크 등 초동 주체는 형성됐고, 실행 모델도 나왔다. 이제 중요한 건 정치적 유효성을 검증받는 거다. 당장 낮은 수준의 기본소득을 모두에게 지급해나가는 게 나을지, 청년·농민 등 계층별 필요에 기반한 부분 기본소득(현금수당)을 만들어나가는 게 나을지 두 전략을 검증해보는 것도 좋겠다. 생산적인 토론을 거쳐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까지 가장 지혜로운 방안을 모아보자. 만약 대중적인 호응이 높다면 기본소득에도 얼마든지 힘을 모으겠다.

우리나라에서는 정치인이 기본소득에 대한 공약을 내놔야 현실성이 높아진다. 그런데 정치인은 유권자를 바라본다. 여론조사에서 기본소득 찬성이 많아지면, 정치인이 움직일 수도 있다. 자본주의 안에서도 충분히 실현 가능한 제도다. 유럽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지지가 높은 나라 중 하나가 핀란드인데, 석 달 전에 찬성률이 55%가 나왔다고 한다. 20대 청년은 80% 넘게 찬성한단다. 이 정도만 되면 (적어도) 청년 기본소득은 해볼 만해질 거다.

정치적으로 짧은 시간 안에 실현되기는 어려울 거다. 학생들에게 “기본소득이 필요하냐”고 물으니 “아니다”라고 하더라. 난 일할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다. 그런데 “학업에 열중하기 위해 기본소득이 필요하냐”고 질문을 바꾸면 찬성한다. 한국에는 복지를 받을 자격에 대한 판단 기준이 너무 높다. 지금은 기본소득 또는 복지가 ‘권리’라는 점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생각의 전환이 일어나야 한다. 모두가 기본소득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사회 최우성 편집장,정리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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