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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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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친, 카친, 페친…내가 누구인지 말해줄 친구 누구인가

SNS를 끼고 살고 먹방을 보며 먹고 공부방을 보며 공부하는, 각자의 방에 갇힌 사람들
등록 2014-01-30 16:13 수정 2020-05-03 04:27
언제나 실시간 온라인인 ‘디지털 원주민’들에게 네트워크 속 가상의 관계들은 혼자라는 외로움을 떨쳐낼 몇 안 되는 해법이다.정용일

언제나 실시간 온라인인 ‘디지털 원주민’들에게 네트워크 속 가상의 관계들은 혼자라는 외로움을 떨쳐낼 몇 안 되는 해법이다.정용일

언제 생긴 버릇인지 모른다. ‘쓸쓸씨’(33·닉네임)는 자꾸 누군가에게 말 걸고 싶어진다.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다 내려놓는다. 카카오톡 대화창을 열고 몇 마디 적었다가 이내 닫는다. 페이스북에 무언가를 적다가도 덮어버린다. 친절하게도 팝업창이 묻는다. “이 페이지에서 나가시겠습니까.” 더 볼 것 없이 창을 닫는다.

페이스북 많이 쓴 사람, 행복감 떨어져

잔뜩 술을 마신 다음날, 쓸쓸씨는 다른 버릇이 생긴 것을 알게 된다. 친구에게 카카오톡으로 “@#$@!” 같은 외계어를 전송하고, 몇 차례 여기저기와 통화를 시도한 것을 말이다. 류의 노래나 통속시가 잘 팔린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페이스북에 진정성 과잉의 수사까지 늘어놓았다면, 죄질이 조금 달라진다. 음주운전만큼 삼가야 할 일이 ‘음주페북’ ‘음주카톡’이 아니라던가. 읍참마속의 심경으로 죄없는 손가락을 꺾어버리고 싶어도 때는 늦었다. 그저 인정하면 될 일이다. 지금 그는 사무치게 외로운 것이다.

카카오톡과 마이피플, 라인과 밴드, 페이스북과 트위터. 대학생 강선진(25)씨의 스마트폰에는 다양한 네트워크의 회로들이 열려 있다. 늘 ‘온라인’ 상태이면서도 강씨는 그 회로들이 자신을 더 외롭게 만들었다고 확신한다. “진동이 울려서 확인했는데 단체 메시지이거나, 친구에게 카톡을 보냈는데 메시지를 확인하고도 즉시 답이 없으면 신경 쓰이죠. 아주 오랫동안 답이 없으면 ‘나한테 화가 났나’ 하는 생각까지 들고요.”

지난 세기에 비해 만남의 회로들은 늘었지만, 그 회로들이 진정한 소통의 통로가 되지는 못한다는 연구는 거듭 나오고 있다. 2013년 미국 미시간대 신경과학연구팀은 “페이스북을 많이 쓴 사람은 사용하지 않은 사람보다 행복감이 크게 떨어진다”고 발표했다. 반면 친구와 전화로 대화하거나 직접 만난 이들은 행복감이 크게 상승한 것으로 조사됐다. 연구팀은 스마트폰과 페이스북 계정을 가지고 있는 젊은 성인 82명을 대상으로 약 2주간 감정 변화를 추적한 뒤 이렇게 결론지었다.

자질구레한 것까지 모두 즉각적으로 친구들의 반응을 확인해야 한다. 그래서 스마트폰 세대는 역설적으로 ‘혼자라는 두려움’을 더 크게 느낄 수밖에 없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셰리 터클은 그의 저서 에서 일명 ‘디지털 원주민’으로 불리는 젊은 세대를 “계속적인 연결에의 기대를 안고 자라는 첫 세대”라고 설명했다. 그는 부연했다. “이 모든 것은 그들을 테크놀로지에 능숙하도록 만들지만 한편으론 일군의 새로운 불안감도 가져온다. 소셜네트워킹 사이트에서 우정을 키워가다보면 문득 자기가 친구들 속에 있는 게 맞는지 의문이 든다. 하루 종일 의사소통을 하긴 하는데 상대방과 친해진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트친, 페친, 카친은 셀 수 없이 많다. 그들 가운데 내가 누구인지 말해줄 수 있는 자가 없다는 게 비애다. 외로움은 증폭된다.

내 밥 친구, 요리왕 비룡

외로움에도 심급이 있다. 2년 전 대학 진학을 위해 서울에 온 ‘머그랑’(21·닉네임)은 물 만 밥을 혼자 욱여넣으며 처음 외로움을 마주했다. 고교 시절까지 12년 동안 그에게 끼니란 대개 모둠밥이었다. 한솥밥을 먹던 친구들과 떨어져 대학에 온 뒤 머그랑은 학식(학생식당)에서, 자취방에서 자주 혼자 끼니를 때우게 됐다.

그의 밥상머리 친구는 ‘요리왕 비룡’이다. 군 취사병 출신인 비룡은 개인 방송국 ‘아프리카TV’(afreeca.com)의 비제이(BJ·Broadcast Jockey)다. 매일 밤 군복을 입고 생방송으로 ‘먹방’(음식 먹는 방송)을 진행한다. ‘피자 한 판+핫도그+샐러드 먹기’ 등의 무리한 미션을 완수해내는 식이다. 그의 고정팬을 자처하는 팬클럽 회원이 2만5천 명이 넘고 지금까지 방송을 감상한 누적 시청자 수가 5800만여 명에 이른다. 비룡 말고도 아프리카TV에선 다양한 먹방들이 실시간 중계된다. 1월22일 밤 11시30분 기준, 379건의 먹방이 생방송으로 진행되고 있다. 지난 1월 초순에는 부친상을 당한 인기 BJ가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까지 생방송 먹방을 진행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머그랑은 일주일에 한두 차례 스마트폰 앱을 통해 비룡의 먹방을 본다. “먹방을 보면서 먹으면, 사람들과 채팅도 하고 혼자 먹는다는 느낌도 덜해요.” 먹방에서 이뤄지는 채팅이란 대개 맥락 없는 희롱에 지나지 않는다. “BJ 귀여워.” “쩝쩝거리는 소리 짜증나.” “맛있겠다.” 말들은 ‘대화’가 되지 못하고 허공에서 부서진다.

그래도 그에겐 ‘먹방’이, 때론 좁은 그의 자취방과 다른 이들의 방을 연결하는 유일무이한 회로다. “방학하고 나서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아무와도 말 안 하고 지낼 때도 있어요. 별풍선(BJ들에게 시청자가 선물하는 유료 아이템. 일종의 특별 시청료)을 보내면 최소한 BJ들은 제 이름이라도 한 번 불러주잖아요.” 달리 현란한 말재주가 있는 것도 아닌데 일반인 BJ들의 먹방이 큰 인기를 끄는 것은 그런 까닭인지 모른다.

먹방에 이어 최근 새로 등장한 회로는 ‘공부방’(공부방송)이다. ‘고시 낭인’에서 ‘공시 낭인’까지 숱한 취업 장수생들이 분투하는 우리 사회에서 응당 있을 법한 일이다. ‘공부합시다(9급공무원 직렬미정 사회 행정학)’ ‘2014 공시 공부’ ‘공부 9급 지방직 D-149, 월화수목금금금’ ‘여고 2년 공무원 시험 BIG CHALLENGE’. 아프리카에 개설된 공부방들에 붙여진 이름이다.

공부방 보며 “죄책감 느껴요”

공부방송의 BJ는 말하거나 채팅하지 않는다. 그저 약속한 시간 동안 공부하는 자신의 모습을 스마트폰으로 찍어 생중계한다. 스마트폰이 그를 감시하는 폐쇄회로텔레비전(CCTV)이 되는 셈이다. 시청자와 BJ는 서로의 감시자가 된다. 공부방송을 진행하는 BJ들의 게시판에는 “다른 분들 다 열심히 하시는데 부끄럽다. 스스로도 죄책감 느껴지고, 면목도 없어요”와 같은 참회성 글까지 올라온다.

끊임없이 재잘대거나, 먹고 입은 것들을 사진으로 공개하는 것을 넘어, 사생활이 불특정 다수에게 생중계되길 선택하는 것은 네트워크에 대한 과잉 기대에서 비롯된다. ‘워크맨’을 개발한 소니는 워크맨 출시와 함께 약속했다. “당신은 결코 다시는 혼자 있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에서 이렇게 답했다. “계속해서 워크맨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의존하는 방식은 동료들이 사라져버린 자리에 남겨진 공허감을 더욱 깊게 느끼게 할 뿐이다. 공허감에 빠져들면 들수록, 사람들은 하이테크가 발전하기 이전에 자신들의 근육이나 상상력 같은 것을 활용해서 그런 공허감을 빠져나오던 수단들을 점점 더 잃어버린다.”

경찰공무원을 준비하는 ‘딸기우유’(25·닉네임)는 얼마 전부터 공부방송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종종 이방 저방을 돌아다니며 ‘함께’ 공부하곤 한다. “시험 준비한 지 2년째예요. 첫해엔 학원을 다녔지만 지금은 혼자 공부하니까 쉽지 않아요. 시험에 떨어지면 죽어버리고 싶고, 그런데 말할 사람은 없고…. 취직한 친구들은 창피해서 안 만나요. 집에 가서 가족들과 말 섞는 것도 피곤해요. 자꾸 (취업 이야기로) 짜증나게 하니까. 공부방 하면 같이 수험생 처지인 사람들이 북돋아주니까 안심이 돼요.”


“방학하고 나서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아무와도 말 안 하고 지낼 때도 있어요. 별풍선(BJ들에게 시청자가 선물하는 유료 아이템. 일종의 특별 시청료) 보내면 최소한 BJ들은 제 이름이라도 한 번 불러주잖아요.” -먹방 시청자 머그랑


긴 외로움의 시간을 보낸 청년백수들에겐 후유증이 남는다. 터널을 빠져나와도, 오래 묵은 외로움은 쉬 떨쳐지지 않는다. 3년 넘도록 취업시장에서 쓴잔을 들이켰던 허가영(33·가명)씨는 그것을 ‘만성화된 불안’이라고 설명했다. 간신히 원하는 직장에 입사하고도 그에겐 기갈이 있다. 길게 품어온 꿈은, 그가 상상한 그대로의 현실이 되지 못했다. 어쩌면 너무 오래 유예된 시간 속에 살았는지 모른다. 숱한 낙방의 경험은 질기게 달라붙어 아직도 자존을 파고든다.

“혼자서 불안한 생활을 너무 오래 한 것 같아요.” 또래 친구들은 이미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서 기른다. “생애주기를 잘 밟아가는 사람들과 분리된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글을 남겨도 100% 소통되지 못하는 것을 그는 잘 안다. 그래서 “늘 고독하고 늘 서러운” 허씨는 외로워질 때 자꾸만 술잔을 든다. 뒤처진 속도를 따라잡는 데 분주했던 그는 달리 ‘생애주기’에 맞는 취미를 형성하지 못했다. “술 먹거나, 술 먹거나, 술 먹거나죠.” 문제는 네트워크이기보단, 네트워크로 구현되는 이 시대의 속도인 셈이다.

외로움을 피하려는 자, 고독을 택하라

정신없는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느라 바쁜 남수진(30·가명)씨는 SNS를 할 겨를도 없다. 사람들을 만날 마음의 짬도 없다. 대신 그는 퇴근 뒤 집에 오면 침대에 누워 한참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자기 전에 몇 시간씩 모바일 쇼핑을 해요. 필요한 물건도 아닌데 막 검색하고, 장바구니에 넣었다 뺐다 하다보면 새벽이에요. 그러다 그냥 쓰러져 자요.” 자기만의 방에서 누리는 쇼핑은 그가 끊임없이 ‘유동하는 시간’ 속에서 아직 뒤처지지 않고 있음을 확인하는 방식이다. 속도에 뒤처져 홀로 남겨지는 것, 오늘날 화수분 같은 외로움의 본질은 결국 그런 것이 아닐까.

철학자는 역으로 제안한다. “결국 외로움으로부터 멀리 도망쳐나가는 바로 그 길 위에서 당신은 고독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린다. 놓친 그 고독은 바로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을 집중하게 해서 신중하게 하고 반성하게 하며 창조할 수 있게 하고 더 나아가 최종적으로는 인간끼리의 의사소통에 의미와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숭고한 조건이기도 하다.”(지그문트 바우만) 그러니 답은 분명하다. 외로움을 피하려는 자, 고독을 택하라는 것. 고독의 근육이야말로 외로움을 바수는 단 하나의 답일지니.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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