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정부는 헌법재판소에 그 해산을 제소할 수 있고, 정당은 헌법재판소의 심판에 의하여 해산된다.”(헌법 제8조 4항)
전제가 있다. 목적·활동이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될 때여야 한다. 또 헌재의 심판이 있어야 한다. 다른 조항(제113조 1항)에선 헌법재판관 9명 가운데 6명이 찬성해야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서, 정당을 위한 방어 수단이란 얘기다.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정부나 집권여당이 아무렇게나 다른 정당을 해산시킬 수 없다는 뜻이다. 학자들은 ‘방어적 민주주의’라고 한다.
비단 헌재의 심판만이 아니다. 정당해산심판 제소 자격을 가진 정부도 신중해야 한다. 지난해 총선에서 10%가 넘는 정당투표 지지를 얻은 통합진보당을 해산하라는 것은 투표에 참여한 유권자 10명 가운데 1명꼴인 지지자에 대한 공격으로 읽힐 수밖에 없다. 국론 분열을 조장했다는 비판도 피할 수 없다. 그럼에도 정부가 11월5일 정당해산심판 청구를 강행하면서, 이 헌법 조항은 진보당에 제대로 방패 구실을 해주지 못하게 됐다.
그래서 궁금해진다. 만약 진보당의 방어 수단이 되지 못한다면, 다른 당엔 방어 수단이 돼줄 수 있을까? 이를테면 새누리당과 민주당에 그렇겠느냐는 말이다.
정당을 만드는 것은 자유다. 각각 1천 명 이상의 당원이 있는 시·도당 5곳 등 소정의 요건을 충족시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하면 법적으로 창당이 된다. 하지만 그 생명은 영원하지 않다. 각 시·도당원 수가 줄어 1천 명에 미치지 못하거나, 4년 동안 각종 선거에 참여하지 않으면 등록이 취소된다. 또 국회의원 선거에서 의석을 얻지 못하고 유효투표 수가 2%에 미치지 못해도 등록 취소의 운명을 피할 수 없다(정당법 제44조). 많은 정당이 이런 이유로 생명을 잃는다. 지난해 총선 이튿날인 4월12일, 진보신당·국민생각·창조한국당 등 모두 18개 정당이 등록 취소됐다. 지역·비례 후보를 냈던 22개 정당 가운데, 이들은 의석도 못 얻었고 득표율도 2%에 미치지 못했다.
국민행동본부 즉각 환영 성명통합진보당도 그 전신인 민주노동당이 창당 직후 치른 2000년 총선 때 등록이 취소된 바 있다. 지역구 당선은커녕, 유효득표율도 1.2%에 그쳤다. 그러나 2년 뒤인 2002년 지방선거에서 기초단체장 2명과 광역의원 11명을 당선시켰고, 2004년 총선에선 10명의 국회의원(지역 2명·비례 8명)을 배출했다. 2006년 지방선거(광역의원 15명, 기초의원 66명), 2008년 총선(국회의원 5명, 지역 2명·비례 3명), 2010년 지방선거(기초단체장 3명, 광역의원 24명, 기초의원 115명)를 거쳐, 당명을 통합진보당으로 바꾼 지난해 총선에선 의석수를 13석(지역 7명·비례 6명)으로 늘리며 제3당의 지위를 굳혔다. 비록 비례대표 경선 부정 사태 속에서 당이 쪼개졌지만, 지난 10여 년간 적지 않은 유권자가 꾸준히 그들에게 지지를 보내온 것은 지울 수 없는 역사다. 가장 최근에 보낸 지지의 유효기간, 다시 말해 각 의원·단체장의 임기는 내년 지방선거와 2016년 총선까지다. 아직 상당한 시간이 남았다.
하지만 한쪽에서는 이를 무시한 채, 2004년부터 줄곧 민노당과 진보당의 해산을 요구해왔다. 이들의 ‘노력’은 11월5일 법무부의 해산심판 청구로 ‘열매’를 맺었다.
“정부가 어제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통합진보당 해산 청구를 헌법재판소에 내게 된 계기는 9년 전인 2004년 6월 국민행동본부가 통진당의 전신인 민주노동당 해산을 법무부에 청원한 사건이다. 서정갑 본부장은 대구의 애국변호사 서석구씨에게 부탁, 청원서를 썼다. …이 청원은 기각되었으나 그 뒤에도 계속하여 청원서를 내고 기자회견, 시위, 국민서명 운동을 벌였다. 민노당이 통진당으로 바뀌면 또 통진당을 걸어 청원서를 냈고, …법무부가 작성한 해산 청구의 논리는 공안 검사 출신인 고영주 변호사(국가정상화추진위원장)가 국민행동본부의 청원서를 쓰면서 적시한 내용과 거의 일치한다.”(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11월6일)
국민행동본부는 2004년, 2011년, 2012년, 2013년 모두 4차례 법무부에 청원을 냈다. 국민행동본부는 법무부의 해산 청구 직후 즉각 환영 성명을 내어 “비록 늦은 감이 있지만 당연한 결정이다. 법무부와 장관의 용단에 경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극우 성향 사이트 ‘일베저장소’에선 “우리 애국·호국 단체 어르신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라는 반응이 나왔다.
기자회견에서 국민행동본부 청원서 내용 읊어조갑제 대표가 언급한 대로, 법무부가 11월5일 33쪽 분량의 보도자료를 통해 밝힌 해산 청구 논리는 이들의 청원서와 상당 부분 일치한다. 주요 뼈대는 △진보당이 강령 등으로 내건 ‘일하는 사람이 주인되는 자주적 민주정부’(국민주권 부정) △연방제 통일방안 등 통일·외교 정책(북한 대남 적화통일 방안 추종) △‘진보적 민주주의’란 개념 사용(김일성 사상) 등이다. 여기에 법무부는 이석기 의원 관련 사건을 반영해 ‘무장봉기를 통한 대한민국 체제 파괴 시도’라는 부분을 추가했다.
국민행동본부 청원서 내용 가운데 △김정일 국방위원장 찬양(사망을 ‘서거’로 표현하며 애도 성명) △향토예비군 폐지 주장(안보기능 해체) 등은 법무부 보도자료에 들어가지 않았다. 법무부는 해산심판 청구서가 415쪽 분량이라며 내용을 공개하진 않는다. 하지만 핵심 논리가 국민행동본부의 논리 구조를 닮았다면, 나머지도 직간접적으로 반영됐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법무부는 이것이 모두 헌법 제8조 4항의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될 때”에 해당한다고 본 셈이다. 과연 문제는 없을까?
①‘진보적 민주주의’는 김일성 사상법무부: 김일성이 1945년 10월 “진보적 민주주의가 인민에게 자유·권리를 주고 나라의 완전한 자주독립을 보장한다”라는 강연을 한 후, 진보적 민주주의는 북한의 건국 이념이 되었고, 통합진보당은 이를 계승. 김일성의 진보적 민주주의는 자주, 연대연합, 평등, 부강한 국가 건설, 혁명, 평화를 핵심 내용으로 하는데, 왕재산 사건의 북한 지령에서 확인된 통합진보당의 진보적 민주주의 내용과 완전히 동일.
국민행동본부: 진보적 민주주의란 김일성이 북한 공산독재 체제, 즉 인민민주주의를 미화하여 사용한 언어일 뿐이다. 통합진보당이 진보적 민주주의 사회를 실현하겠다는 것은 현재 대한민국이 채택하고 있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고, 이를 전복 내지 파괴하여 다른 체제를 만들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정점식 법무부 위헌정당·단체 관련 대책 TF팀장은 11월5일 기자회견에서 ‘용어만 놓고 보면 좋은 의미 아니냐’는 질문에, “그렇게 오인하기 쉽도록 용어 혼란 전술을 쓰고 있다”고 답했다. 정 팀장은 민노당 시절 북한이 전한 지령을 보면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표현을 관철시키라는 내용이 있었고, 그에 따라 민노당 강령도 개정됐으며 진보당으로까지 이어져왔다고 설명했다.
김일성 주석은 생전에 많은 강연을 했다. 1946년 5월9일 ‘여성동맹의 금후 과업에 대하여’라는 연설에서는 모성 보호에 대해 역설했다. “우리는 여성들에게 정치·경제적으로 남성들과 같은 권리를 줄 뿐 아니라, 그들이 체질상으로 보아 남자들보다 연약하며 또 모성으로서의 큰 부담을 지고 있는 것만큼 극진히 돌봐주어야 한다. 여성 노동자들에게는 마땅히 산전산후휴가를 주어야 하며 휴가 기간에는 정액임금의 100%를 지불하여야 할 것이다.” 게다가 김 주석은 같은 연설에서 여성의 사회적 해방과 남녀평등의 실현이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의 한 부분이며 나아가서는 더 높은 혁명 단계의 과업 수행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는 것”이라고 했다. 여성의 산전산후휴가 및 임금 100% 지급 보장도 ‘혁명’인 셈이다.
새누리당은 강령(6-3)에서 “여성의 정치·경제·사회 참여를 확대하는 성평등 정책을 적극 추진함으로써 여성과 남성이 공존 공영하는 양성평등사회를 구현한다. 자녀 양육에 있어 남성과 여성이 동등하게 그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제도적·실질적 지원을 증대한다. 직장에서 출산과 육아로 인한 불이익을 받는 일이 없도록 정부가 적극적으로 노력한다”고 밝히고 있다.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다운 강령이라 볼 수도 있지만, 김일성 주석이 60여 년 전 내걸었던 ‘혁명’과 일치하는 것도 사실이다. 지령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새누리당의 이 강령은 김일성 주석으로부터 자유로운가? 이를테면 그렇단 말이다.
②폭력적인 지배 추구법무부: 비례대표 부정경선 등으로 민주적 선거제도를 부정하고, 국회 본회의장 최루탄 투척, 5·12 중앙위원회 집단폭력 등으로 민주적 의회제 및 정당민주주의를 부정. → 헌법의 민주적 선거제도, 의회주의 원칙, 정당민주주의 위배.
진보당이 폭력적인 방식을 추구한다면 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배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부분은 법무부 논리의 핵심 뼈대 가운데 하나다. 물론 어떤 경우에도 폭력이 민주주의로 포장될 수는 없다. 철저히 반성해야 하고,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의회제도는 존중돼야 하며, 정당민주주의도 지켜져야 한다. 현실은 어떤가.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의 2007년 대선 후보 선출 과정에선 폭력이 난무했다. 차기 집권이 유력시되는 가운데 ‘본선 진출=당선’을 기대하며 치열하게 맞붙은 박근혜 후보와 이명박 후보의 지지자들이 전국 각지 합동연설회장에서 난투극과 몸싸움을 벌이며 서로를 비방했다. 지난해 경선 때도 대구·경북 합동연설회에서 박근혜 후보의 한 지지자가 김문수 후보의 멱살을 잡는 사건이 있었다. 새누리당은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운가?
2003년 9월 민주당 당무회의장에선 ‘난닝구’ 차림의 사내가 나타나 분당을 주장하던 이미경 의원의 머리채를 잡고 휘둘렀다. 이 사내는 2011년 12월 민주당 전당대회장에도 등장해 20대 여성 당직자의 뺨을 때렸다. 시민사회 등과의 ‘통합’에 대한 동의가 주요 의제였던 이날 전당대회는 반대파의 폭력으로 얼룩졌다. 민주당은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운가?
노회찬 전 정의당 대표는 11월6일 CBS 인터뷰에서 “비례대표 부정경선이나 최루탄 투척 같은 것이 정당 해산 사유가 된다면, 과거 한나라당의 불법 정치자금으로 차떼기 사건이 났을 때도 정당을 해산했어야 한다. 그런 식으로 하면 새누리당은 10번 이상 해산당했어야 할 정당”이라고 말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새누리당의 뿌리에는 1980년 12·12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독재 세력의 정당 민주정의당이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이를테면 그렇단 말이다.
③일하는 사람이 주인되는 사회는 국민주권 위배법무부: 통합진보당 강령은 “일하는 사람이 주인되는 자주적 민주정부를 세우고…”라고 규정. 강령 해설 자료집은 “소수 특권 세력은 통합진보당의 주인이 될 수 없다. 정치·경제적 특권 세력들이 정권에서 완전히 물러나고…”라고 설명. 소위 특권계층의 주권을 박탈하고 일하는 사람인 ‘민중’만이 주권을 가지는 사회를 추구한다는 개념이므로, 모든 국민이 주권을 가진다는 ‘국민주권주의’에 반하는 것.
국민행동본부: 민중민주주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변종으로서, 국민 중 일부인 민중계급만의 주권을 주장함으로써 “국민 전체가 주인이요,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국민주권주의와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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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촛불시위를 풍미했던 노래 를 즐겨 부르던 이들은 노래 가사였던 헌법 제1조가 이런 식으로 변용됐다는 데 놀라기도 한다.
‘민중’이란 단어는 재해석됐다. 정홍원 총리는 “민중은 사회주의적 개념”이라고 말했다가 입길에 올랐다. 법무부의 진보당 해산심판 청구를 맡은 정점식 팀장의 설명은 한층 구체적이다. “민중이라는 건 전체 국민을 의미하지 않는다. ‘일하는 사람이 주인되는 세상을 원한다’고 할 때 주력은 노동자·농민, 보조 동력은 상인·지주 등만을 민중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장사를 해도 크게 안 한다. 중소기업을 하는 사람, 우리같이 5급 이상 공무원, 이런 사람들은 민중을 지배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이 사람들이 가진 권리를 모두 박탈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11월5일 기자회견)
박용진 민주당 대변인은 “‘민중’이라는 단어가 사회주의적 개념이면 ‘민중의 지팡이’라고 자부하는 대한민국 경찰은 사회주의 개념 단체냐. ‘3천만 민중의 단결’을 호소했던 이승만 대통령은 (극우반공주의자가 아니라) 사회주의자냐”고 비꼬았다. 사전에선 “국가나 사회를 구성하는 일반 국민. 피지배 계급으로서의 일반 대중을 이른다”고 설명한다(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지난 5월 개정한 민주당의 새 강령 전문에는 “우리는 서민과 중산층을 중심으로 하는 국민정당을 지향한다” “우리는 일하는 사람들의 권익을 보장하고,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를 추구한다” “우리는 당면한 사회·경제적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공정한 시장경제의 확립이 필요하며 재벌과 대기업에 대한 근본적 개혁이 필요하다는 데 인식을 공유한다”는 대목이 있다. ‘민중’이란 단어는 쓰이지 않았지만, 법무부 논리대로라면 국민주권론은 이곳에서도 위협에 처했다. 이를테면 그렇단 말이다.
④연방제 통일방안은 북한의 적화통일 방안법무부: 진보당 대선 후보들의 통일 공약은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체제로의 통일이 아닌 북한의 사회주의 체제로의 통일을 추구하는 것으로, 북한의 연방제 주장과 동일.
국민행동본부: 통합진보당 강령에 나타난 통일정책 내용들은 모두 북한의 대남 적화통일 방안인 ‘고려연방제 통일방안’의 핵심내용들.
무엇보다 통일 방안에 대한 논의가 왜 정당해산 심판의 구성 요건인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되는지도 논란거리다. 진보당 강령에선 연방제 관련 내용이 빠진 탓에, 법무부는 진보당 대선 후보들의 공약을, 국민행동본부는 강령의 다른 내용을 문제 삼는다.
전광석 연세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우리 사회에서 단계적 통일 방안으로 국가연합을 거친 연방제가 오랫동안 제안되어왔던 점을 고려하면 북한이 통일 방안으로 ‘고려연방제’를 제안한다는 이유로 이런 용어를 사용하는 정당을 북한의 동조세력으로 비난할 수는 없다”고 지적한다.
게다가 이런 해석은 남북관계를 2000년 6·15 이전으로 돌려놓는 논리다. 당시 공동선언문은 2항에서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나가기로 하였다”고 했다.
민주당 강령은 “우리는 6·15 공동선언, 10·4 정상선언 등 남북한의 기존 합의를 존중하고 계승한다.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고 평화체제를 구축하며, 남북 교류협력의 활성화 및 공동의 이익을 증진하는 호혜적 남북관계를 지향한다”고 돼 있다. 진보당 강령은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등 한반도·동북아의 비핵·평화 체제를 조기에 구축한다. 7·4 남북공동성명과 남북기본합의서의 정신을 존중하며, 6·15 공동선언, 10·4 선언을 이행하고 자주적 평화통일을 추구한다”고 돼 있다.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를테면 그렇단 말이다.
법무부 논리의 가장 큰 줄기에는 최근 이석기 의원 관련 사건이 자리한다. 이 사건에 등장한 이른바 ‘RO’(혁명조직)가 현재 진보당을 장악하고 있고, RO는 무장봉기를 시도하는 단체이므로 진보당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정당이란 논리다. 이석기 의원 등의 내란음모죄 혐의에 대한 형사재판이 진행 중이지만, 헌재에서도 별도로 심사안의 핵심인 이 사건을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고, 이 사건이 어떻게 해석되느냐에 따라 판결의 향배가 달라질 수 있다. 결국 법원과 헌재가 같은 사건을 놓고 서로를 견제 또는 압박하는 구도로 풀이될 가능성이 크다.
‘세계 네 번째’를 위한 결단?헌재가 어떤 결론을 내리더라도 정국에 미칠 파장은 크다. 진보당을 해산시키라고 결정하면 소수정당 탄압이라며 박근혜 정부를 향한 비난이 거세질 수 있다. 진보당을 해산시킬 수 없다고 결정하면 박근혜 정부가 타격을 입고 진보당이 공안 탄압을 이겨낸 ‘영웅’이 될 수도 있다.
정점식 팀장은 헌재에 해산심판을 청구하면서, “이게 확정되면 (독일 두 차례, 터키 한 차례에 이어) 전세계 네 번째가 될 텐데, (결과를) 어느 누가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겠나”라고 했다. 2009년 법제처가 발간한 ‘헌법주석서’는 “정당해산 사유는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야당을 탄압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한다. 정점식 팀장은 “야당 탄압하는 거하고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다. 정당을 해산하는 결정으로 인해 그 정당이 입을 피해와 정당을 존치시킴으로 인해 국가가 입을 손해를 비교해 결정해야 한다는 유럽인권법원의 결정을 유념”했다고 했다.
세계적으로 법원이 정당을 해산시킨 결정은 1950년대 후반 극좌 독일공산당(KPD)과 극우 사회주의제국당(SRP)을 해산시킨 독일 사례와 1998년 세속주의를 견지하려는 큰 틀 속에서 정교분리에 소홀했던 정당을 해산시킨 터키의 사례 등 모두 3건뿐이다. 독일의 경우 전쟁 직후 분단돼 이념적으로 예민했던 상황이 어느 정도 우리와 닮았다고 볼 수도 있다. 동구권과의 이념 전선에서는 극좌를 용납할 수 없었고, 나치 독재의 경험은 극우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위헌정당해산 결정에 참여했던 한 재판관은 끝내 다음과 같은 ‘반성’을 털어놨다고 한다.
“선거를 통해 자연스럽게 소멸되도록 하는 것이 좀더 정치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았겠는가.”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참고 문헌 ‘정당해산심판에 대한 헌법적 및 정치적 이해’(전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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