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의원 127명 가운데 ‘진정한 야당’ 출신은 얼마 되지 않는다는 시각이 있다. 여당이었던 16대(2000년)·17대(2004년) 총선은 말할 것도 없고, ‘차기 집권’을 낙관하며 들어온 18대(2008년)·19대(2012년)에 정치를 시작한 이들도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게다가 15대(1996년) 총선 때 당선된 이들도 이듬해 치른 대선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돼 집권했으니 야당 경험이 일천하다고 본다. 그렇게 따지면 13대(1988년)에 처음 당선된 이해찬 의원과 14대에 첫 배지를 단 문희상·박지원·신계륜·원혜영·유인태·이석현 의원 등 7명이 남는다. ‘야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는 민주당의 현실에 대해, ‘진정한 야당’ 출신인 이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지난 10월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유인태 의원은 “그게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라고 했다.
의원들 수준 옛날보다 나아져-먼저, 민주당을 주도하는 세력은 누구라고 봐야 하나.=김대중 전 대통령을 따랐던 세력과 노무현 전 대통령을 따랐던 두 세력이 민주당을 주도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그건 어느 정도 진보적 정체성을 가진 세력이라고 봐야겠지.
-정체성은 균질한가.=그렇진 않다. 좀더 중도로 가야 한다는 세력이 당내에 꽤 있다. (당으로서도) 당선 가능성 때문에 그 사람들을 공천 안 할 수가 없다.
-과거 김대중·노무현 같은 지도자가 있었을 때와 어떤 차이가 있는가.=김대중 전 대통령은 오랜 민주화 투쟁 과정을 거치면서 호남의 전폭적이고 확고한 지지를 갖고 있었다. (그걸 바탕으로) 몇십 명의 국회의원을 만들 힘이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당에서 한 번도 지분을 갖고 지도자를 해본 적이 없다. 오히려 대통령이 되면서 지도자가 됐다. 2004년 총선을 앞두고 신당을 만드니 마니 할 때, 노 전 대통령 본인이 한탄하면서 나한테 한 말이 있다. “대한민국에서 단 한 곳도 내 공천장을 갖고 안정적으로 당선될 곳이 없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남의 정치적 운명을 이래라저래라 하겠느냐.” 나는 신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인데, 노 전 대통령은 나한테 분당을 부추기지 말라는 얘기였던 거지. 결국은 열린우리당이 창당됐다.
-과거와 지금 의원들을 비교하면 어떤가. 초선 의원들의 패기 부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14대 때부터 한 20년을 돌이켜보면, 전체적으로 의원들 수준이 옛날보다 갈수록 나아지는 게 사실이다. 옛날엔 (민주화운동 및 재야 시절) 오래 고생한 것에 대한 보답도 있고, 선거자금 때문에 돈 좀 내면 비례를 주는 게 공공연한 일이기도 했다. 17대 이후에 여기저기서 참신하다는 사람들이 많이 들어왔고, 의원들 성향이나 자질이 나아졌다. 이번 우리 당 초선 의원들도, 뛰어난 스타가 배출되진 않아도, 상당히 잘하고 있다고 본다.
-반대로 역량이 오히려 떨어졌다는 비판도 있다. 야성이 없다는 이야기도 많이 한다.=그렇진 않다. 지난해 대선에서 진 상황인데다, 새 대통령이 저렇게 답답하게 하는데도 꽤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다보니 제대로 된 수단이 없다.
“당선 가능성 높은 중도 세력, 공천 안 할 수 없다”-예전에도 수단이 없었던 건 마찬가지 아닌가.=예전 ‘김대중 총재’ 시절엔 절대적인 신봉자가 상당수 있었기 때문에, 예를 들어 보라매공원에서 장외집회를 한번 하면 몇만 명이 모였다. 그러면 언론에는 50만 명이 모였다고 했는데, (웃음) 그런 힘을 갖고 있었지. 지금은 서울시청 광장에서 1만 명 모으기도 힘들다. 장외집회를 한다 하면 그래도 운집을 해야 압박 효과가 있다. 지금은 그런 대중 동원력을 가진 정치인이 없고, 그런 시대도 아니다. 김대중 총재라는 카리스마는 오랜 민주화 투쟁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국가정보원 정치 개입 등 국기 문란 사건에 대한 민주당의 대응은 충분했나.=민주당은 7월31일부터 장외투쟁을 선언하고 시청 앞에 천막을 쳐놓고, 당 대표가 노숙하면서 주말마다 집회를 해왔다. 여름휴가철이라 장외투쟁이 사실상 불가한 때인데도, 도저히 안 되겠다 해서 하느라고 했다. 그랬는데도 박 대통령 지지율이 60% 중반을 상회했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뭐하냐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어째야 하나? 그냥 답답하니까 하는 푸념으로 듣긴 하지만, 나는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한다.
-민주당 지지층에서 이런 비판이 나오는 핵심적 이유는, 과연 이 상태로 이후 정권 교체를 기대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 때문일 것 같다.=대선에서 거푸 지고 나니 지지자들이 무력감에 빠져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민주당 비판론에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를 귀찮아하는 세력, 재벌이나 검찰, 언론 같은 여러 기득권, 평상시에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이 집단은 어떻게든 정치를 희화화해서 정치 불신을 키우려 한다는 점이다. 민주주의의 꽃은 의회가 정부를 견제하는 것인데, 의회의 힘을 빼놓으려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살려면 정치가 지금처럼 불신을 받아선 안 된다. 단순히 민주당이 잘 싸우는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니다.
-민주당을 맥락 없이 비판하는 과정에서 조장된 정치 불신으로 누군가 득을 본다는 얘긴가.=기득권이 득을 본다. 의회는 싸우는 곳이 아니라 타협을 하는 곳이다. 원래 국회는 이해관계가 각각 다른 사람들이 조정하고 타협하라고 만든 곳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국가보안법 완전 철폐를 주장하지만, 저쪽은 국가보안법이 없으면 간첩이 생길 거라고 우려한다. 여론도 팽팽했다. 그럼 절충을 할 수밖에 없다. 17대 때 찬양·고무 같은 악법 조항만 없애는 걸로 절충안을 만들었는데, 국회까지 와서 농성하던 사람들은 “이렇게 개정하느니 놔두라”고 했다. 앞으로 더 좋은 세월이 올 테니 지금 건드려서 폐지하기 어렵게 만들지 말라는 논리였다. 그때 그 조항만 없앴어도 이후에 국가보안법으로 감옥에 간 사람들 다 안 갔을 것이다. 한국 사회를 구성하는 양쪽 대표자들이 간신히 만들어온 합의안을 안 받아들인 것이다.
지역 구도가 여전히 문제의 본질-한편으로는 핵심 당직을 거쳐온 의원이 너무 많아 지도부에 힘이 실리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전당대회를 치러서 지도부를 뽑으면 거기에 어느 정도 승복하는, 우리 스스로 그런 민주적 훈련이 돼 있어야 한다. 당(黨)은 ‘무리’라는 뜻이다. 질서가 있어야 무리가 제구실을 할 수 있다. 또 서로 마음에 좀 안 들어도 당 밖에 대고 떠들 게 아니라 찾아가서 의논할 일이다. 하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아니다.
-문제의 본질은 어디에 있을까.=선거제도를 바꿔야 한다. 지역 구도가 여전히 한국 정치의 최대 이데올로기다. 영남을 근거로 한 보수 진영과 호남에 의존하는 다소 진보적인 진영, 이 두 정치세력에 끼지 못하면 판에 들어오지 못하는 구조가 1987년 이래 26년 동안 계속되고 있다. 공업화 과정에서 영남이 의석수가 2배 이상 많다보니, 보수 우위가 지속될 수밖에 없다.
-양당 구조에서는 민주당이 뭘 해도 한계가 있다는 뜻인가.=이른바 ‘선진 정치’라는 건 극단적인 세력을 배제하는 것 아닌가. 프랑스처럼 결선투표에 극우가 올라오면, 우파는 좌파를 밀지 극우를 밀진 않는다. 그런데 한국의 보수는 전쟁 이후 극우가 이끌어왔다. 이 정권에선 그게 더 강화됐다. 지금 새누리당 의원들 중에는 극우보다는 합리적 보수가 더 많은데, 어쩔 수 없이 동거할 수밖에 없다. 민주당에도 새누리당과 가까운 생각을 가진 사람이 생존을 위해 동거하는 경우가 있다. 두 정당이 항상 득표율보다 많은 의석을 갖게 되는 과다 대표성이나, 5년 단임제 대통령이 임기 후반 레임덕으로 권력 공백기가 생기는 것도 문제다. 선거제도가 고쳐지고 좀더 정치와 의회가 제 기능을 하는 게 나라를 위해 바람직한 길이다.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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