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박근혜’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국민의 선택이 있었으나 분명 국민의 선택만으로 탄생한 대통령은 아니었다. 권력기관의 ‘작전’이 있었다. 국가정보원이 나섰고, 국방부가 개입됐다. 박근혜 대선캠프 SNS미디어본부장이 운영한 ‘십자군 알바단’(십알단)도 ‘합’을 맞췄다. ‘작전의 흔적’을 덮으려는 ‘은폐의 흔적’도 보인다. 작전은 끝났고, 은폐는 진행형인데, 은밀하기보다 노골적이다.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사용된 ‘작전의 공식’을 재구성해봤다. 검찰이 찾아낸 ‘국정원-국방부 사이버사령부-십알단’ 3각 동맹의 트위터 발자국(선거가 임박한 2012년 9월 이후 중심)을 재료로 썼다. 이명박 정부 권력기관들의 활동이 박 대통령과 무관할 수 없는 이유를 ‘작전의 설계도’는 증명하고 있다.
대화록 때 ‘속보’로 논란 확산국정원-국방부 사이버사령부-십알단은 트위터로 ‘각개전투’를 벌이거나, 서로의 글을 주고받는(리트위트(RT)) 방식으로 ‘연합작전’을 펼쳤다. 작전의 흔적에선 중요한 흐름들이 읽힌다. 2012년 10월8일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의 ‘노무현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 직후 국정원 요원들은 NLL을 활용한 ‘종북 공세’를 트위터에 집중 유포한다. 현재까지 이어지는 ‘대화록 총공세’의 서막부터 국정원이 치밀하게 앞장서온 정황들로 볼 수 있다. 지난 대선부터 국정원은 정 의원과 김무성 의원 등에게 NLL 대화록을 유출하며 정치에 개입해왔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노무현의 북핵 지지 NLL 발언 당시 비서실장 문재인 후보도 책임져야.(10월16일 국정원 RT) 노무현-김정일 비공개 회담록 까라!(10월17일 국정원 RT) 노 전 대통령의 NLL 발언 합의하여 공개하라. 공개하지 않으니 더욱 수상하다.(10월18일 국정원 작성)◀
10월29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해 대화록의 존재 여부를 확인했다. 이튿날 그의 직원들은 ‘속보’로 논란을 확산시킨다. ▶ 국정원 노무현-김정일 서해 해상 영토선(NLL) 대화록 갖고 있다(10월30일 국정원 RT).◀
박근혜 정부 출범 뒤 국정원이 정국 전환용으로 고비마다 꺼내든 ‘NLL→이석기→여적죄’의 연쇄 카드도 이때 벌써 관찰된다. 지난 대선 당시 전략이 현 정부 비상상황 때마다 재가동된 듯한 의혹이 이는 대목이다. ▶종북 이석기, 盧무현 정부가 만든 셈. 이해찬·박지원 막후 조종 원탁회의. 문재인도 참여.(10월19일 국정원 RT) ‘적국과 합세하여 대한민국에 항적한 자는 사형에 처한다.’ 여적죄에는 형량이 사형 하나밖에 없다. 노무현이 적장 김정일에게 우리나라 영토의 일부를 포기하겠다는 구두약속을 했다.(10월19일 국정원 작성)◀
‘3각 동맹’이 대선 후보들을 묘사하는 전략은 극도의 ‘박근혜 미화’와 극도의 ‘문·안 비하’다. 문재인 후보를 겨냥한 화살은 ‘종북 이미지 씌우기’였다. ‘문재인이 대통령 되면 북한에 나라를 넘긴다’는 뉘앙스를 끊임없이 전파했다. ▶문재인은 서해 NLL을 북한과 공유하겠다고 한다. 피로 지켜왔던 국군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민주당 문재인은 국군통수권자로서 대통령 자격이 안 된다.(11월5일 국정원·사이버사령부 RT)◀ 문 후보의 민주당 대선 후보 선출을 막으려 경쟁 후보 지지자들을 선동하는 방법도 썼다. ▶손학규 지지자들 보세요. 양경숙 돈이 친노 인사 곳곳에 흘러 들어간 정황이 계속 포착되고 있습니다. 이런 친노 문재인이 대선 후보 돼봐야 완주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검찰 수사 나올 때까지 경선 중단을 요구하세요.(9월3일 국정원 RT)◀
“박정희 이름 석 자만 들어도 가슴이 뛴다”대권 도전을 저울질하다 공식 출마 선언(9월19일)을 한 안철수 후보에겐 노골적인 인신공격이 시도된다. ▶목동 황태자 안철수의 여자관계 의혹.(9월8일 국정원 작성) 안철수는 핏기 없는 창백한 몰골과 언변으로 곽노현이 연상.(9월10일 RT) 안철수, 제발 곱게 잠드소서. 밤마다 대통령 꿈꾸지 마시구요.(9월19일 십알단 윤정훈 목사의 글을 국정원 직원이 RT) 안철수 아무래도 남장 여인 같아요. 잡아다가 바지 벗겨볼 수도 없고.(9월24일 RT)◀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에겐 입에 담기 어려운 인격모독이 가해졌다. ▶통진당 이정희가 대통령 선거에 나온단다. 누구랑 ‘스와핑’을 하려고? 언 놈과 붙어먹으려고 나왔을까?ㅋ(9월25일 국정원 RT)◀
반면 박근혜 후보에겐 최상급의 찬사가 동원된다. 박 후보는 신뢰와 브랜드 가치로 중국 차기 지도자 시진핑이나 후진타오를 움직일 수 있고(10월16일 국정원 RT), 확실하게 준비된 소신과 원칙의 대통령(10월18일 국정원 RT)이며, 때와 장소에 맞게 가장 옷을 잘 입는 패셔니스타 대선 후보(10월30일 국정원 작성)다. 박 후보 띄우기는 박정희 띄우기와 동시에 진행됐다. ‘아버지 시대’에 대한 박 후보의 과거사 인식을 놓고 제기되던 논란을 불식시키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박근혜 18년 된 LG 에어컨 사용. 기초 화장품은 직접 만들어 사용. 화장·머리도 직접 헐~ 아빠 닮기.(9월3일 작성) 50~70년대를 살아본 우리 세대들은 박정희 이름 석 자만 들어도 가슴이 뛴다.(9월13일 RT) 가난한 국민들 어루만져주던 어머니 육영수의 피 묻은 한복을 빨고, 산업화로 강국을 만들려던 아버지 박정희의 피 묻은 와이셔츠를 빨았던 박근혜. 흉탄에 서거한 아버지를 비판한 박근혜의 진정성을 나는 믿는다.(9월24일 십알단 윤정훈 목사의 글을 국정원이 RT. 이날은 박 후보가 유신과 인혁당 사건 등에 대해 사과하던 날이었다!)◀
오늘도 기분 좋게 5통화 했어요~♬국정원과 국방부 사이버사령부는 박 후보의 선거운동원을 자처했다. 박 후보 후원·지지·전파 활동에 총력을 기울였다. 지지를 독려하고. ▶(11월21일 작성) 편하게 살 수도 있을 텐데 오로지 국민과 나라를 위한 일념으로 개인의 모든 걸 버리고 희생하는 박근혜 후보를 밀어주셔야 합니다.(11월20일 RT)◀ 정책을 홍보하며. ▶박근혜, 정보통신 최강국을 만들겠습니다!(11월5일 RT) 오늘 오전 10시30분에 박근혜 후보의 국민안전정책 관련 공약 발표 기자회견이 생중계됩니다. 많은 시청.(11월5일 RT) ♬박근헤(혜) 고령자 임플란트, 암등 4대 질환은 무료로 치료하게 한다!(12월3일 작성)◀ 선거 구호를 전파했다. ▶☞확실하게 준비된 대한민국 1등 대통령 박근혜 후보☜(11월6일·14일 RT, 12월1일·7일 작성) 확실하게 준비된 여성 대통령 박근혜 후보의 로고소(송)입니다! 무한 RT 부탁해요.(11월30일 작성)◀ 박 후보 팬클럽(‘박사모’) 간부의 후원 요청 글을 전파하는가 하면. ▶오늘도 기분 좋게 5통화 했어요~♬ 박근혜 후보 후원계좌 안내 대선 승리로 가는 큰 힘이 됩니다. ARS후원전화(1통화에 3000원) 060-700-×××× 여러 통화해도 됩니다.(10월28일 등 수백 차례 박사모 간부 글 RT)◀ 새누리당 보도자료와 논평까지 퍼날랐다. ▶박근혜 대통령 후보, 서울시립고덕양로원 방문 주요 내용[보도자료](9월30일 RT) KSCJFTN 후보, 딸의 해외 유학 의혹에 대한 진중권 교수의 요구에 답하라[논평](10월20일 RT)◀
박 후보에게 유리한 선거 지형 조성 작업도 추진됐다. 국정원과 사이버사령부는 젊은 층 투표율을 높일 것으로 예상됐던 투표 시간 연장 움직임 차단에 나섰다. ▶투표 시간 연장? 공휴일 놀기 위해 투표 시간을 연장시켜준다는 것은 용납 어렵고 그럴 필요 있나?(10월27일 사이버사령부 요원 작성) 문재인과 안철수가 투표 시간 연장은 일 때문에 투표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거란다. 참 속 보이는 개소리다.(10월29일 RT)◀ 박 후보가 꺼리던 텔레비전 토론 거부 여론도 조성했다. ▶후보 확정도 안 된 상태에서 뭔 놈의 티브(이) 토론이고. 니들이지 정신들이가? 니들 단일화쇼 하는대(데) 박 후(보)가 들러리 서라는 말이가!(11월5일 국정원 작성)◀ 지역감정 조장은 그들의 영원한 무기였다. ▶정말 웃긴 금년도 대통령 선거!!ㅋ 전라디언은 대췌(체) 어디로 가라능겨?ㅋㅋ 박근혜는 동교동계와 껴안았지! 촬스(안철수)는 처갓집 연일 미소짓지! 문죄인(문재인)은 고향이고 나발이고 다 버리고 전라디안 표 구걸하고 앉아 있지.(10월5일 국정원 RT)◀ 사실 왜곡도 적재적소에 배치했다. ▶속지 말자 민주당 자작극. 강원도지사 재·보궐 선거에서도 민주당은, 자시느이(자신들이) 당원을 여관에 투입시켜 여당 후보인 엄기영 후보를 불법 전화 홍보하는 위장을 하다 선관위에 잡혀 들어가게 했다.(12월12일 국정원 작성. 당시 엄 후보는 전화 홍보를 통한 불법 선거운동이 적발돼 곤혹을 치르다 낙선했다)◀
이정희는 애국가 1절 알려나이런 대목도 있다. ▶‘굳빠이 전교조’를 읽다가 문득 초3짜리 아들에게 애국가 아느냐 물어봤다. 4절까지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줄줄 외운다.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근데 통진당 이정희는 애국가 1절이나 제대로 알려나?(9월27일 국정원 RT)◀ 는 국정원이 원내 초청강연 때 참가자들에게 나눠주는 전교조 비방 책자다.
작전의 설계도면 위로 권력기관들이 짓고자 한 건축물의 뼈대가 또렷하다. 박근혜 정부다. 국정원으로부터 아무런 도움도 받지 않았다는 그의 말과 달리 트위터 글이 가리키는 작전의 수혜자는 분명하다. 국정원과 국방부 사이버사령부와 십알단은 인터넷 댓글 달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양의 흔적들을 트위터에 남겼다.
작전의 실체를 추적해온 검찰 특별수사팀은 찾아낸 흔적들을 모아 원 전 원장 공소장 변경 신청을 했다. 그 과정에서 수사팀장이 경질됐고, 팀은 공중분해될 위기에 몰렸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을 잇는 후임자 인선도 진행 중이다. 전임자가 인격 살해를 당하며 쫓겨나는 상황을 지켜본 새 총장이 정권을 불편하게 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진실 규명 노력이 ‘항명’으로 비난받고 진실 은폐 목소리가 더 핏대를 세우는 이상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법원은 10월30일 예정된 원 전 원장 공판에서 수사팀의 공소장 변경 신청을 받아들일지 결정한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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