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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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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렸으나 위태로운 ‘불씨’

동양 사태로 순환출자 금지, 금산분리 강화 등 경제민주화 입법 논의 다시 불붙어… 새누리당 의지와 민주당 대응 중요
등록 2013-10-23 18:05 수정 2020-05-03 04:27

한순간이었다. 동양그룹의 5개 계열사가 법정관리를 신청하자, 5만 명의 개인투자자는 총 1조7천억원의 투자금 가운데 상당수를 날리게 됐다. 그러나 개인투자자의 품에서 터져버린 메가톤급 폭탄이 하루아침에 갑자기 커진 건 아니다. 동양은 그룹의 세가 기울기 시작하던 2008년부터 불행의 씨앗을 싹틔워왔다. 현재현 회장 일가가 그룹 지배권을 유지하기 위해 지주회사처럼 비교적 단순했던 소유구조를 지금의 복잡한 순환출자(동양-동양인터내셔널-동양레저-동양증권-동양파이낸셜대부-동양)로 얽혀놓기 시작한 것이다.

“신규는 물론 기존 순환출자도 규제하자”

이때부터 금융회사와 비금융회사는 한 덩어리로 운영됐다. 금융회사들은 비실대는 비금융회사에 자금을 대는 현금자동입출금기(ATM)처럼 활용됐다. 계열사인 동양파이낸셜대부는 제대로 담보도 받지 않고 동양레저·동양인터내셔널 등에 돈을 대줬다. 동양증권도 이들 계열사가 발행한 투기등급의 회사채와 기업어음을 개인투자자에게 마구잡이로 판매했다. 그러나 이런 부당 지원을 받은 비금융회사들은 끝내 정상화되지 못했다. 금융회사들은 빠르게 동반 부실화됐다. 비금융회사들이 진 빚은 금융회사 고객에게도 넘겨졌다. 순환출자로 유지된 허약한 지배구조, 금융회사의 사금고화,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 소액주주·금융소비자 외면 등 경제민주화가 겨냥하고 있는 불법·편법 행위가 총망라된 결과로 빚어진 비극이었다. 동양 사태를 가리켜 “경제민주화 역주행의 만물백화점”(박민식 새누리당 의원)이라는 비판이 여당에서조차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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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동양 사태는 꺼져가는 듯했던 경제민주화 입법 논의에 다시 불을 붙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6월 임시국회가 끝난 직후 “중요 법안이 7개 정도였는데 6개가 이번에 통과가 됐다. 그래서 거의 끝에 오지 않았나 생각한다”며 취임 6개월 만에 ‘경제민주화의 종결’을 선언했지만, 지금껏 통과된 법안 가운데는 제2, 제3의 동양 사태를 방지할 핵심 조처가 거의 없는 까닭이다. 경제민주화 입법은 원점에 서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 상황인 셈이다.

가장 탄력을 받는 건 순환출자(재벌 총수가 적은 지분으로도 그룹을 지배할 수 있도록 계열사가 연쇄적으로 출자해 자본금을 늘려나가는 변칙적인 출자 방식) 금지다. 동양그룹은 금융계열사와 비금융계열사가 순환출자 고리 안에서 뒤엉켜 있던 탓에 서로 간에 부당 지원이 쉽게 이뤄졌을 뿐 아니라, 결국엔 비금융회사의 부실이 그룹 전반으로 전이되면서 파국을 맞았기 때문이다.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도 10월15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동양 등 재벌그룹의 탈법·위법 사례가 빈발하고 있어 재벌이 순환출자를 활용해 부실 계열사를 지원하는 폐해를 시급히 차단할 필요가 있다”며 정기국회에서 신규 순환출자 금지를 경제민주화 입법 중에서 최우선적으로 처리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하다. 그러나 야당에서는 이번 기회에 신규는 물론 기존 순환출자도 해소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김영주·김기식 민주당 의원 등 발의)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벼르고 있다.

금산분리·상법 개정안 등 여아 입장차

금산분리(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이 상대 업종을 소유·지배하는 것을 금지하는 원칙)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현재 산업자본과 은행자본 간에는 칸막이가 쳐져 있다. 어느 정도는 은산분리가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산업자본과 보험·증권 등 제2금융권 간에는 벽이 거의 없다. 동양의 금융회사들이 비금융회사의 돈줄이 될 수 있었던 배경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금융·보험사가 보유한 비금융계열사 주식에 관한 의결권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금산분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왔다. 새누리당에선 금융회사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 한도는 현행처럼 15%로 유지하되, 금융·보험 계열사의 의결권 합은 5%로 제한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강석훈 새누리당 의원 발의)을 주로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야당에선 금융·보험사가 비금융계열사의 주식을 아예 소유하지 못하게 하는 금융지주회사법 개정(김기식 민주당 의원 발의)을 요구하고 있다.

대주주 적격성 심사 대상 확대 역시 금산분리 강화를 위한 주된 논의 대상이다. 이는 금융회사 대주주가 범죄를 저질렀을 때 의결권을 제한하거나 주식 처분을 명령할 수 있는 제도다. 일정한 자격을 갖 못한 산업자본의 대주주가 남의 돈으로 운용되는 금융회사를 지배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장치다. 현재 은행과 저축은행의 대주주에 대해선 6개월~2년마다 심사가 이뤄지지만, 보험·증권·카드 등 제2금융권 대주주는 전혀 규제를 받지 않는다. 만약 이 제도가 도입된 상태에서 현재현 회장이 동양증권을 동원해 사기성으로 회사채와 기업어음을 판매한 혐의가 사실로 드러난다면, 현 회장은 동양증권에 대한 지배권을 잃을 가능성도 있다. 이 제도의 도입에 대해선 여야가 이견이 없다. 다만 심사를 받는 대주주의 범위와 대주주의 귀책사유로 인정되는 형사처벌의 종류 등에 대해선 여야의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어 법안 통과까지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상법 개정안도 동양 사태와 맞물려 있다. 현재현 회장 일가가 전형적으로 보여준 대주주의 전횡과 도덕적 해이를 막으려면 이사회 견제·감시 기능을 정상화하고 소수 주주권도 강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법무부도 박 대통령의 공약에 따라 지난 7월 이런 내용을 담은 상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그러나 재계의 강력한 반발에 박 대통령이 “이 문제는 정부가 신중히 검토하겠다”(8월28일 10대 재벌 총수와의 간담회)며 물러선 이후, 경제민주화 입법의 최대 쟁점으로 떠올랐다. 야당은 원안 고수를 주장하는 반면, 여당은 대폭 수정을 요구하고 있는 까닭이다. 첨예한 충돌 지점은 이사회에서 감독 기능을 맡고 있는 감사위원의 분리 선출이다. 법무부는 독립성이 보장돼야 하는 감사위원을 다른 사내·외 이사와 분리해 선출하고, 이 과정에서 대주주는 보유 지분 3% 이상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했다. 감사위원 선출에 대주주의 입김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3% 룰을 완화하고, 분리 선출되는 감사위원 수에도 제한을 둬야 한다는 입장이다. 소수 주주의 이해를 대변할 수 있는 이사 선출에 유리한 ‘집중투표제’, 모회사 주주들이 자회사 경영진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다중대표소송제’ 등의 도입에 대해서도 여야는 정면으로 부딪치고 있다.

법안 실효성 크게 담보하기 어려울 수도

앞으로 경제민주화 법안 처리와 관련한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의 의견은 이렇다.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활성화를 명분으로 ‘경제민주화는 이제 그만하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동양 사태로 ) 논의의 불쏘시개가 다시 생기기는 했다. 그러나 새누리당이 청와대에서 벗어나 얼마나 주체적으로 움직일지, 힘을 못 쓰고 있는 민주당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대응할지가 관건이다.”

강정민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원의 전망도 어둡다. “동양 사태로 지금까지 여야가 충돌했던 법안에 대한 협의가 어느 정도는 이뤄지면서 몇 개의 법안은 통과될 것이다. 그러나 (지난 6월 임시국회 때 본회의를 통과한) 일감 몰아주기 규제가 그랬듯, 정부와 여당이 끝내 핵심적인 규제 내용은 배제하면서 법안이 주는 실효성은 크게 담보하기 어려울 것이다.” 다시 시작된 경제민주화 논의가 마냥 반갑지만은 않은 이유다.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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