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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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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와 눈물 위에 세운 ‘황금의제국’

15년 만에 내는 <다원 철거범죄 2차 보고서>
일개 철거업체가 13개 이상 회사 거느린 그룹으로 성장한 비밀은
1천억원대 횡령·배임 혐의로 구속된 이금열 회장의 지능적 폭력의 재구성
등록 2013-08-08 13:16 수정 2020-05-03 04:27
<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tr><td height="22px"></td></tr><tr><td bgcolor="#DFE5CE" style="padding: 4px;"><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 bgcolor="#EBF1D9"><tr><td class="news_text03" style="padding:10px"><font color="#C21A8D">‘다원’이다. 맞다. 그 다원이다.
1990년대 악명 높았던 철거용역 업체의 대명사, ‘적준’의 후신, 그 이름 다원이 언론 보도에 다시 등장했다. 최근 검찰은 이금열 다원그룹 회장을 구속했다. 검찰 중간수사 결과 발표가 묘사하는 다원의 오늘은 우리가 알던 다원이 아니다.
15년 전이다. 1998년 인권운동사랑방과 천주교인권위원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 12개 단체는 를 펴냈다. 철거 현장을 살인·방화·폭력·성폭행으로 물들였던 다원의 사법처리를 위한 시민사회 차원의 노력이었다. 공동대책위원회를 결성했고, 고발장도 제출했다. 당시 철거민들에게 다원은 잔혹함과 인권유린의 상징이었다.
15년이 지났다. 다원은 더 이상 일개 철거용역 업체가 아니다. 13개 이상 계열사를 거느린 기업으로 덩치를 불렸다. 철거 단일 업종에서 재개발·재건축, 시행, 시공, 골프장으로까지 사업영역을 넓혔다. 불법의 방식도 폭력에서 횡령, 배임 등으로 ‘전문화’됐다.
은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15년 만에 를 펴낸다. 15년 사이 다원의 범죄는 훨씬 조직적·체계적으로 발전했다. 2차 보고서는 사업 확장 과정에서 동원된 불법과 탈법에 초점을 맞췄다. 1차 보고서가 철거용역의 범죄행위에 초점을 맞췄다면, 2차 보고서는 ‘1조원 가까운 거액을 대출받는 회사로의 성장 비결’에 관한 보고서다. 다원의 성장이 낳은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들었고, 다원의 변신을 가능케 한 의혹도 점검했다.
2차 보고서 작성엔 강제퇴거금지법제정특별위원회가 함께했다. 용산참사진상규명및재개발제도개선위원회와 인권운동사랑방,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빈곤사회연대 등의 단체와 개인들이 특위에서 활동하고 있다. 은 검찰의 이금열 회장 추가 수사와 시민사회단체의 이슈화에 발맞춰 단계별로 보고서를 업데이트할 예정이다. _편집자
</font></td></tr></table></td></tr><tr><td height="23px"></td></tr></table>
다원이 시행사·시공사·철거업체 ‘패키지’로 뛰어든 경기도 김포 신곡6지구 도시개발사업의 현재 모습. 다원(새날)의 지분쪼개기가 적발돼 지난해 8월 개발구역 지정이 해제되면서 철거의 상흔만 폐허로 남았다. 김명진 기자

다원이 시행사·시공사·철거업체 ‘패키지’로 뛰어든 경기도 김포 신곡6지구 도시개발사업의 현재 모습. 다원(새날)의 지분쪼개기가 적발돼 지난해 8월 개발구역 지정이 해제되면서 철거의 상흔만 폐허로 남았다. 김명진 기자

40대 남자가 서울 상도동의 한 건물에서 나왔다. 잠복 중이던 검찰은 숨을 죽였다. 남자는 차명으로 집을 구해 친구와 은신 중이었다. 검찰은 지난 1월부터 남자에게 소환을 요구했다. 검찰 요구에 불응하던 남자는 연락을 끊고 잠적했다. 검찰이 남자의 소재 파악에 실패한 것은 3월부터였다. 남자는 대포폰(다른 사람 명의로 개통한 휴대전화)을 사용하며 옮겨다녔다. 도피 중 변호사를 통해 소환 연기를 요청하기도 했다. 4개월간 남자를 추적하던 검찰이 은신처로 보이는 건물 주위에서 잠복했다. 눈치챈 남자가 도망쳤다. 200여m 달아나다 붙잡혔다. 7월22일 오후 6시50분께였다. 열흘 전(7월12일) 수원지방검찰청은 남자가 회장으로 있는 다원그룹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7월25일 검찰은 그를 구속(968억원 횡령·150억원 배임·168억원 편취 등 혐의)했다.

 

<font size="3">수주율 80%, 철거용역계 천하통일</font>

그, 이금열. ‘철거업계의 대부’로 불린다. 1970년생이다. ‘대부’라고 하기엔 젊다. 그만큼 일찍부터 ‘명성’을 떨쳤다는 뜻이다. 그는 업계 사상 가장 성공한 인물로 꼽힌다. 1998년 12개 시민사회단체가 펴낸 (상자 기사 참고)는 이금열 회장의 ‘출발’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ㄱ(이니셜 처리) 등은 적준개발용역을 1996년 12월 적준개발로 변경하고 대표이사로 취임한다. 1998년 1월5일에는 주식회사 다원건설로 변경하여 ㄴ과 이금열이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ㄱ은 ㄴ의 힘이 커지자 그를 견제하기 위해 자신의 운전기사였던 이금열을 내세우게 되며, 이에 따라 1970년생인 이금열이 ㄴ과 대표이사로 취임하게 된다.”

보고서는 당시 이금열씨를 ㄱ씨 형제의 ‘대리인’으로 묘사했다. ㄱ씨는 친동생 및 ㄴ씨 등과 철거용역의 시초인 ‘입산’에서 일을 시작한 뒤1990년 ‘적준개발용역’을 만든 인물이다. 다원건설은 적준 시절인 1994년 이후부터 재개발 철거 현장을 독점하며 악명을 떨쳤다. 끔찍한 폭력을 동원해 철거용역계의 ‘천하통일’(수주율 80%)을 이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금열씨는 전라남도 완도군 금일읍 출신이다.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뒤 해병대에서 군 복무를 했다. 서울로 올라와 동대문에서 조직폭력 쪽에 잠시 몸담은 뒤 20대 초반부터 적준에서 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지인은 “이 회장은 킥복싱을 잘했다. 적준 당시 ㄱ씨의 운전기사가 아니라 수행비서였다. 남들이 힘겨워하는 철거 현장을 해결하면서 ㄱ씨 눈에 들었다”고 했다. 한때 다원 철거 계열에서 일했던 전직 직원은 “이금열씨는 적준 시절 현장관리이사였다. 철거 현장의 두목 같은 개념이라고 보면 된다”고 했다.

15년이 지났다. 20대 후반의 철거업체 대표는 40대 중반의 ‘회장’이 됐다. ㄱ씨의 ‘대리인’이 아니라 확실한 ‘주인’이 된 것이다. 등기부등본을 보면, 다원건설은 2003년 12월2일 공식 해산한다. 3년 뒤인 2006년 12월4일엔 최종 사업청산 절차를 마무리한다. ㄱ씨가 이 회장을 통해 견제토록 했다는 ㄴ씨는 2003년 12월 회사 해산과 동시에 이 회장과 함께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난다. 이후 ㄴ씨는 다원 쪽 임원 명단에서 이름을 찾아볼 수 없다. 다원건설이 해산하기 2년 전인 2001년 11월8일 이 회장은 ‘다원이앤씨’를 설립한다. 다원건설의 후신이라고 할 수 있다.

검찰 발표에 따르면, 이 회장은 현재 최소 13개 이상의 회사(‘다원그룹 구조도’ 참고)를 거느리고 있다. 철거 업종이 4개사, 건설시행사 3개사, 시공사 1개사, 재건축·재개발 쪽 3개사, 골프장 2개사다. 철거폐기물 업체인 다원환경(1997년 7월 설립)을 제외하면 1차 보고서에선 보이지 않던 회사들이다. 검찰은 13개 외에 다원 계열사가 더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 반포 쪽 재건축·재개발 현장에 들어간 업체가 이 회장 회사인 것으로 파악된다”고 검찰은 전했다. 일개 철거업체였던 다원에 15년간 무슨 일이 있었을까.

 

<font size="3">‘김일성’이라 불린 독불장군</font>

검찰 수사로 수배 중이던 지난 4월 이 회장은 한 계열사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해당 회사의 100억원이 넘는 자금 횡령 사실을 총대메고 대신 뒤집어쓰란 요구였다. 대표는 “사건 당시 회사에서 근무하지 않았고 횡령 사실도 모르는 상태라 황당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을 잘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는 ‘김일성’이라 불렸다. 강력한 카리스마와 주위 말을 듣지 않는 독불장군식 경영을 일컫는 표현이다.

지난해 말 검찰은 다원환경이 세무조사를 무마하기 위해 중부지방국세청 5~7급 공무원 3명에게 각각 2300만원과 1600만원, 1400만원을 건넨 혐의를 적발했다.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다원환경 계좌에 숨겨둔 비자금을 발견했다. 가짜 세금계산서를 발급해 매입대금을 허위로 지급하는 방식이었다. 비자금 조성 업체가 다원이앤씨와 다원이앤아이(2006년 3월 설립)란 사실이 확인됐다. 검찰은 다원 계열사들을 압수수색하며 수사를 확대했다. 이 회장의 범죄행위가 줄줄이 꼬리를 밟혔다. 꼬리의 흔적을 따라가다보면 다원 ‘15년의 비밀’이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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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범죄는 사업 확장의 욕망과 맞물려 있다. 부족한 자금을 이 회사에서 빼 저 회사로 옮기는 식으로 회사를 키웠다. 사업 확장의 비결이 불법과 탈법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이 회장은 철거로 번 돈으로 건설업 진출을 꾀한다. 다원 계열사의 한 전직 임원은 “1997년 외환위기 직후 철거로 번 돈이 현금으로만 500억원이라고 이 회장이 직접 얘기하더라”며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선 7층 규모의 ‘풀살롱’(한 건물에서 룸살롱과 성매매 겸업)까지 운영했다”고 말했다. 집 없는 서민들의 고혈을 밑천 삼아 거액의 돈을 번 것이다. 검찰은 “이씨가 철거업으로 돈을 번 뒤 폼 나는 회장을 해보고 싶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과거 철거업의 주요 시장이던 주거환경개선사업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서 도시개발에 직접 뛰어드는 방식으로 사업 활로를 찾으려 했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다원의 한 관계자는 “계속 깡패로 남을 순 없지 않느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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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장은 2003년 4월 시행사 ‘새날’을 만든다. 철거를 뿌리로 성장한 다원이 ‘시행사→시공사→골프업’으로 사업을 넓히는 분기점이다. 새날씨앤피를 세우고(2006년 1월), 건설사 청구를 인수(2007년 8월)하며, 이와소종합건설(2010년 7월)을 설립한다. 마론뉴데이CC와 화순도곡CC도 다원 소유의 골프장이 된다. 새날 설립 전후로 철거 쪽 업무는 공식적으론 둘째·셋째 동생인 이표열·이중열씨 등이 맡고 있다. 다원의 첫 건설사업은 2004년 ‘아인스건설’이란 이름으로 시행·시공한 화성마도산업단지 개발이다. 사업은 성공했다. 다원의 건설 분야에서 일했던 관계자는 “이 회장은 마도산업단지 성공 직후 직원들에게 1억원씩 인센티브를 줬다”고 했다. 다른 관계자는 “이 사업으로 번 돈이 1천억원 정도였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역설이다. ‘화성 성공’의 자신감은 무리한 사업 확장과 자금 마련을 위한 범죄로 귀결되고 만다.

 

<font size="3">PF 대출 신곡 6500억원, 가재 2700억원</font>

이 회장은 2005년 김포 신곡6지구 도시개발사업에 뛰어든다. 다원 계열사 중 새날은 시행사로, 청구는 시공사로, 다원이앤씨는 철거업체로 참여했다. 농협과 중소기업은행 등 11개 금융기관에서 6500억원이란 거액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받았다. 이 회장은 김포 사업을 벌여놓은 채 이듬해 평택 가재지구 개발사업에도 참여했다. 새날씨앤피가 시행을 맡았다. 자금은 군인공제회로부터 PF대출로 2700억원을 조달했다. 자신감은 독이 됐다. 이 회장은 사업이 커지면서 자금 압박이 심해지자 사채를 끌어다 쓰기 시작했다.

2006년 11월엔 이사회 의결 없이 새날의 사업자금 150억원을 새날 씨앤피에 대여했다. 배임이었다. 당시 새날에서 일했던 한 직원은 “이 회장이 측근 2~3명과 서류 조작으로 처리한 일”이라고 말했다. 새날이 도시개발사업 조합 성립 요건(토지 67% 이상 매입과 토지소유주 3분의 2 이상 동의)을 충족하기 위해 저

지른 ‘지분쪼개기’(해당 면적 토지소유자 부풀리기)까지 적발됐다. 법원은 2011년 12월 ‘조합설립 인가 무효’를 판결했고, 지난해 8월 신곡6지구 개발구역 지정이 해제됐다. PF에 연대보증을 섰던 시공사 남광토건과 신동아건설이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11개 금융기관은 6500억원을 회수하지 못하고 있다.

일은 새날의 돈이 넘어간 평택에서도 터졌다. 이번엔 횡령이었다. ‘허위 지주작업’이란 방식이 동원됐다. 한 다원 관계자는 “용역업체가 땅 1평을 매입해줄 때마다 10만원씩 지급하기로 한 계약을 이용했다. 하지도 않은 용역 대가를 지급했다고 꾸며 134억원을 횡령했다”고 기억했다. 허위 용역업체로 내세운 두 회사는 동생 이표열씨가 대표로 있는 ‘프라나’와 이 회장이 사채를 빌린 ㄴ사다. 횡령 금액은 이 회장 개인의 채무 상환에 활용했다. 일부는 청구 인수자금으로 썼다. 피해는 군인공제회 회원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게 됐다.

서대문 가재울뉴타운에서도 횡령은 발생했다. 이 회장은 하도급 업체 공사비를 과다 지급한 뒤 돌려받는 방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했다. 개인 빚을 갚는 데 썼다. 다원 계열사 이와소종합건설과 비젼이 엔지 자금 370억원을 횡령했다.

그는 다원이앤씨·다원이앤아이·다원환경의 매출도 누락했다. 비자금을 만든 뒤 67억원을 횡령했다. 이표열씨 명의로 전남 화순에서건설하는 골프장 사업자금으로 활용했다. 중부지방국세청 공무원들에게 로비자금으로 쓰인 5300만원이 이 돈에서 나왔다. 이표열씨는 현재 수배 중이다.

계열사 사업 확장 혹은 채무 변제를 위해 계열사와 임·직원에게 손해를 입히는 ‘비정한 행태’를 이 회장은 반복하고 있다. 청구 파산과정이 가장 극단적이다. 청구는 1980~90년대 우방·보성과 함께 대구 3대 건설사로 꼽혔던 중견기업이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 워크아웃에 들어간 뒤 8년 만인 2006년 3월 모든 빚을 털고 화인파트너스에 인수됐다. 1년5개월 만에 청구는 ‘새날’에 재인수된다. 당시지역 언론은 새날을 “화성마도산업단

지를 국내 최초로 100% 민간분양한 부동산 개발 전문 기업”으로 소개했다. 당시 새날 상무 ㄷ씨는 “새날의 신용도와 자금력에 청구의 명성과 기술력이 합쳐져 얻을 수 있는 시너지 효과를 노렸다”며 “청구의 옛 명성을 되찾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다(2007년 8월26일치 ). 공언은 허언이었다. 청구는 새날에 빨릴 수 있는 모든 단물을 빨린 채 파산하고 만다. 그 선두에 이 회장 및 새날 자금담당 ㄹ씨와 공모한 ㄷ씨가 있었다.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위치한 다원그룹의 철거업체 사무실. 다원이앤씨와 다원이앤아이는 별도의 사업을 하는 두 개의 회사지만, 동일한 주소를 가진 하나의 사무실을 쓰고 있다(위). 다원그룹의 계열사인 골프장 마론뉴데이CC 누리집(아래).정용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위치한 다원그룹의 철거업체 사무실. 다원이앤씨와 다원이앤아이는 별도의 사업을 하는 두 개의 회사지만, 동일한 주소를 가진 하나의 사무실을 쓰고 있다(위). 다원그룹의 계열사인 골프장 마론뉴데이CC 누리집(아래).정용일

<font size="3">정·관계 로비, ‘제2의 함바 비리’ 가능성</font>

이 회장은 청구 인수를 위해 CK홀딩스를 급조했다. 자기자본 없이 금융기관에서 700억원을 대출받고 개인 차입금 300억원을 보태 청구를 인수했다. 당시 인수 금액은 1080억원이다. 인수엔 LBO(매수할 기업의 자산을 담보로 금융기관에서 매수자금 조달) 방식이 활용됐다. 청구가 새날에 합병되기 위해 청구가 보증을 서는 모양새다. 청구의 한 퇴직 임원은 “대구 수성구 청구 사옥, 대구방송 사옥, 경주 시래지구 땅 등을 팔았는데 그 돈이 어디로 갔는지도 모른다. 담보 금액 상환을 빼고라도 남은 돈은 청구로 와야 하는데 행방을 알 수 없다. 새날이 청구를 껍데기로 만들었다”며 분노했다. 새날은 청구 자산을 매각해 대출금 700억원을 변제했다. 청구 재산을 담보로 돈을 빌려 청구를 인수한 뒤 청구 재산을 팔아 빌린 돈을 갚는 구조다. 이 회장은 청구 자금 372억원을 횡령해 인수대금을 갚거나 골프장을 사는 데 사용하기도 했다. 청구 인수가 끝난 뒤 ㄷ씨는 청구의 바지사장 뒤에서 실질적인 사장 역할을 한다. ㄷ씨와 ㄹ씨는 이 회장에 앞서 구속됐다.

2008년 청구가 시공한 아파트의 허위 분양 사태는 이 회장 범죄 여정의 정점이다. 청구 및 다원 계열사 일부 직원들이 이 회장에게 가장 분노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는 사업자금 마련을 위해 청구와 새날·새날씨앤피 및 기타 계열사 임직원 90여 명에게 청구가 시공한 경북 포항 우현아파트를 허위 분양받도록 했다. 회사에서 대준 계약금 1천만원으로 분양 신청을 한 뒤 계약을 근거로 은행에서 각각 1억5천만∼2억원을 대출받을 것을 강요했다. 당시 청구의 한 임원은 “직원들은 거짓 분양인 줄 알았지만 피고용인 처지에 인사상 불이익이 걱정돼 거부할 수 없었다. 대출금만큼은 회사 공사대금으로 쓰일 거라 생각했는데 그 돈 168억원마저 이 회장이 착복했다”고 했다. 이 회장은 직원들의 고통을 외면했다. 자신이 가져간 은행 대출금을 개인이 갚도록 했고, 문제 해결을 호소하는 이들에겐 파산 신청을 종용했다. 명의를 빌려준 사람들 중엔 대출금을 갚지 못해 가정이 해체되기도 했다. 행방불명은 물론 자살한 사람까지 나왔다. 월급 압류를 피하느라 4대보험이 안 되는 열악한 직업을 전전하는 사람도 많다. 이 회장의 친·인척 다수도 피해를 입었다. 측근들이 등을 돌린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현재 피해자들 일부가 고소장을 제출한 상태다. 후속 고소도 추진 중이다.

다원의 성장 비결로 비자금 조성을 통한 정·관계 로비 의혹을 빼놓을 수 없다. 검찰의 다원 수사 결과 발표와 동시에 ‘제2의 함바 비리’ 가능성이 거론되는 이유다. 검찰도 이 회장 체포 뒤 정·관계 로비 실체를 밝히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건설 경험이 많지 않은 기업이 6500억원과 2700억원이라는 거액의 PF를 일으킬 수 있었던 데 의문을 갖고 있다. 금융기관들이 연관됐을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검찰 수사 자체가 ‘다원환경의 세무조사 무마 로비’에서 시작됐다. 이 사건을 경찰이 내사 종결한 이유도 석연치 않다. 검찰은 지난 1월 초 경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를 압수수색했다. 경기경찰청 관계자는 “우리가 고의로 사건을 묻은 것 아니냐고 해서 검찰이 조사했으나 특별한 혐의점은 없었다”고 말했다. 검찰은 “경찰이 다원환경의 세무조사 로비를 내사 종결한 이유는 아직 수사 대상”이라고 했다.

 

<font size="3">“2~3월 매일 2억, 일시불로 180억 배달”</font>

비자금 조성 및 로비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정황도 포착되고 있다. 다원 계열사가 도시개발에 참여하고 있는 한 지역의 조합장은 “지난해부터 인구 배정을 늘리기 위한 로비자금이 필요하다며 20억원을 만들라는 요구가 이 회장 쪽에서 수차례 전달됐다. 내가 거부하면서 사이가 나빠졌다”고 했다. 다원 계열사에서 일했던 관계자도 “지난 2월 초부터 3월 중순까지 매일 현금으로 2억~2억5천만원, 3월 하순엔 일시불로 180억원을 직원이 가방으로 이 회장 쪽에 배달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고 귀띔했다. 수배 시기와 겹치는 만큼 이 회장이 비자금을 현금화해 도피자금을 만들려 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 결과 발표조차 이 회장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면서도 “갑자기 로비 사실을 자백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다원의 철거 사업체 다원이앤씨·다원이앤아이의 이중열 대표는 “이앤씨와 이앤아이가 다원환경 계좌에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검찰 발표는 사실이 아니”라며 “비자금은 없다”고 부인했다. 그는 “이 회장이 우리와 일 안 한 지가 10년이 넘었다”고 말했다. 도피 중인 이표열 대표의 휴대전화기는 줄곧 꺼져 있다. 지난 15년간 다원에선 무슨 일이 있었는가. 더욱 지능화된 폭력이 있었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tr><td height="22px"></td></tr><tr><td bgcolor="#E7E7E2" style="padding: 4px;"><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 bgcolor="#F7F6F4"><tr><td class="news_text02" style="padding:10px"><font color="#008ABD"></font>1998년 다원건설 철거범죄 1차 보고서
<font size="3">“임산모 때리고 똥물 먹이고…”</font>

그가 떨어진 망루를 허물고 지은 아파트는 우뚝하다.
지난 7월25일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SK아파트 앞에서 그의 16주기를 기억하는 소박한 추모제가 열렸다. 박순덕. 그의 이름이 새겨진 추모비(사진) 앞에서 사람들은 다원과 이금열 회장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1998년 는 그의 죽음을 이렇게 요약하고 있다. “1997년 7월25일 공권력 300명+적준토건 철거반원 300여 명 강제철거. 망루 농성 중인 철거민 해산을 위해 이불·폐타이어 등을 놓고 유류를 이용해 방화(일명 ‘너구리작전’ 수행)→주민들 18m 아래로 투신. 주부 박순덕(두 아이의 어머니) 사망.”
‘다원건설 사법처리를 위한 공동대책위’의 보고서 발간은 그해 3~4월 서울 용산구 도원동에서 벌어진 철거폭력 사태가 계기가 됐다. “가장 많은 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인력동원 체계를 갖추고, 공권력마저 해체하면서 벌어지는 다원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철거 현장에서의 인권유린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문제의식”이 작업을 재촉했다. 보고서가 정리한 다원의 폭력 사례는 끔찍하다. “임신 5개월 된 임산모를 때리”거나 “아주머니들에게 강제로 똥물을 먹이는 폭행”을 저질렀다. “부녀자의 국부를 발로 밟는 성추행”도 빈번했다. “저항하는 60세 여성의 옷을 갈기갈기 찢어 알몸으로 실신시켰다”는 기록도 있다.
대책위는 그해 7월 다원의 불법행위 처벌을 요구하며 고발장을 제출했다. 보고서 작업 실무를 주도한 박래군 ‘인권중심 사람’ 소장은 “당시 서울중앙지검 특수부가 맡아 수사할 것 같더니, 다원이 여당 실세의 비호를 받고 있다는 말이 나오면서 흐지부지됐다”고 기억했다. 보고서 발간 뒤 15년이 흘렀고, 다원의 철거폭력은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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