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 위에 하얀 천이 씌워졌다. 그는 운구 행렬의 발걸음을 따라 움직이는 관 위에서 손을 떼지 못했다. “미안해…, 아빠가 미안해. 아빠가 사랑해….” 지난 7월25일 오전, 충남 공주시 반죽동 공주사대 부속고교에서는 안면도에서 일어난 해병대 사설캠프 사고로 숨진 공주사대 부고 2학년 학생 5명의 영결식이 열렸다. 희생자 가운데한 명인 진아무개(17)군의 아버지는 그렇게 아들의 마지막 모습을 배웅했다. 사고 당시 쏟아지던 비처럼, 영결식내내 세찬 비가 내렸다.
‘안전불감증’ 대책에서 빠진 목소리공주사대 부고 학생 198명은 지난 7월18일 오후 5시께 충남 태안군 안면읍 백사장항 주변 해안에 있었다. 학교 주최로 2박3일 동안 연 해병대 캠프의 둘쨋날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비가 내려 궂은 날씨였지만 프로그램은 이어졌다. 구명조끼를 입지 않고 바다에 있던 학생들 앞으로 갑자기 큰 파도가 들이쳤다. 캠프 교관이 지켜보고 있었지만 파도는 순식간에 학생 5명을 집어삼켰다.
사고의 실상이 하나둘 드러나면서, 어른들은 모두 고개를 떨궜다. 해양경찰의 조사 결과, 캠프를 운영한 ‘해병대 캠프 코리아’는 정부 인가를 받지 않은 업체였다. 사고가 났을 때, 교사들은 학생들 곁에 없었
다. 재발 방지 대책도 쏟아졌다. 교육부는 시·도교육청에 공문을 보내 “학교에서 실시하는 체험활동에 대해 안전 여부를 즉각 파악하고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체험활동은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올해 초부터 전국 학교에서 진행한 체험활동 현황에 대한 전수조사도 시작했다. 해병대사령부는 “미인가 해병대 사설캠프를 막기 위해 ‘해병대캠프’라는 상표 등록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안전 불감증’을 막기 위한 대책들이었다. 10대를 대상으로 한 병영체험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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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대 또는 사설 업체가 운영하는 병영체험 캠프는 사실 생소한 프로그램이 아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학교뿐만 아니라 기업 등의 신입사원 연수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단골 메뉴이기 때문이다. 기업 등에서는 “병영체험 캠프를 통해 인내심과 협동심을 기를 수 있다”고 설명해왔다. 이른바 사흘 남짓의 ‘극기’를 통해 자기계발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병영체험 캠프에는 늘 사람이 몰린다. 학생·직장인뿐만 아니라 국가대표 선수, 외국인, 시·도의원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캠프에 뛰어든다.
지난 1월 한 대형 식품업체에 입사한 하아무개(27·여)씨도 신입사원 연수 기간에 안면도의 해병대 사설캠프를 다녀왔다. 한 달 동안 진행된 연수 프로그램의 하나로 2박3일로 짜인 캠프였다. 숙소는 실제 군대보다 나은 듯 보였지만,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체조를 하고 오전·오후 교육을 받는 등 ‘군대 따라잡기’ 프로그램이 이어졌다. “군복을 받고 기본적으로 얼차려를 받았어요. 줄맞춰 걷는 제식교육부터 시작했죠. 캠프에서는 뭐든 빨리 해야 해요. 밥 먹는 시간 10분, 양치질은 5분, 뭐 이렇게요.” 캠프의 저녁에는 해병대의 고된 훈련 과정이 담긴 동영상을 틀어줬다. 사흘 동안의 경험 가운데 하씨가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상륙용 고무보트(IBS) 훈련’이었다. 고무보트를 머리에 이고 오리걸음을 걷거나, 해병대 군가를 불렀다. 해병대에서 하는 훈련과 비슷하다. “처음에는 솔직히 짜증이 났어요. 군가 외우고 얼차려 시키고 하니까요. 그래도 나중에는 입사동기들 사이에 협동심이 생기는 것 같았어요. 갔다 와서 생각해보니 추억인 것 같고요.”
몸이 불편해도 병영체험 캠프의 문을 두드린다. 오히려 군 복무에서 소외되는 장애인들이 캠프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병영문화를 느끼려 한다. 사회를 지배하는 군대문화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싶기 때문이다. 인천에 있는 한 장애인복지관의 사회복지사 이아무개씨도 7월 초 안면도의 해병대 사설캠프를 2박3일 동안 다녀왔다. 복지관에 있는 20대 이상 지적·자폐 장애인과 직원 등 40여 명이 참가했다. “몇 년 전에도 비슷한 병영캠프에 갔었는데, 올해는 일정을 하루 더 늘렸어요. 복지관분들 대부분이 군 복무를 못하는데 이런 캠프를 통해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또 힘들게 참여하면서 ‘나도 해냈다’라는 성취감을 느끼고요.” 이들은 상륙용 고무보트를 타기 전 긴장을 유지하라는 교관의 지시에 따라 얼차려를 받았다.
캠프를 통해 이식되는 군대문화는 TV까지 지배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최근 자체 시청률 기록을 갈아치우며 인기를 끌고 있는 MBC 가 있다. 는 연예인들을 실제 군부대에 불러들여, 이들의 생활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리얼예능 프로그램’이다. 앞서 과 등이 대표했던 ‘리얼 버라이어티쇼’를 지나, 말 그대로 날것의 재미를 주는 ‘리얼 예능’의 대표 작품이라고 평가받는다. 는 지난 7월21일 전국 시청률 17.1%(닐슨코리아 집계)로 같은 시간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사실 군대는 오랫동안 방송 소재로 활용돼왔다. 징병제라는 특수한 상황 아래에서 군대라는 소재가 공감대를 이끌어내기 쉽기 때문이다. 문화평론가 강명석씨는 “그 옛날 KBS 의 ‘동작 그만’부터 tvN의 까지, 군을 소재로 한 작품은 대부분 고참과 후임, 간부와 사병 사이의 짜증나는 인간관계가 중요한 소재였다”고 설명했다. 그 밖에 실제 군인이 출연하는 위문공연형식의 (MBC), (KBS1) 등도 있었다. 그러나 육군본부의 전폭적 지원을 받는 는 군대에서 벌어지는 훈련과 군대 용어, 군사 장비 등을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형식을 통해 여과 없이 보여주면서 군대문화를 민간 영역에 이식하는 효과까지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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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왜 군대문화가 최근 들어 더욱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일까? 군대라는 ‘신화’가 우리 사회에 자리잡은 것은 아주 오래전부터다. 군사정부 시절부터 위계질서에 순응하는 군대 시스템을 통해‘남성상’을 가르치고 학교와 기업, 더 나아가 국가에서 이런 시스템을 이식해 사회를 움직여왔다.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사회학)는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군사 문화나 군대에 대한 생각은 기성세대 사이에서 ‘신화’처럼 받아들여지곤 했는데(병영체험 캠프를 보낸다는 건) 요즘 학교 당국자들의 머릿속에도 그 신화가 남아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IMAGE3%%]이어지는 보수 정권, 병영문화 비판 무뎌져 민주화 이후 군대문화는 가장 배격해야 할 문화 코드이기도 했다. 과거 군사정권이 남긴 병영문화의 흔적을 씻어내려는 노력도 이어졌다. 1980년대 초 학교의 병영화라는 비판을 받았던 교련실기대회가 없어지고, 1993년에는 고교 군사훈련도 폐지됐다. 1997년에는 교련 과목이 사라졌다. 민주화 과정에서 밀어낸 군대문화가 이제는 병영캠프, TV 프로그램 등으로 외주화해 소비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병영문화가 고개 드는 이유를 ‘정치 환경의 변화’에서 찾기도 한다. 보수화한 정권이 이어지면서 병영문화에 대한 비판 자체가 무뎌졌다는 것이다. 이대훈 성공회대 NGO대학원 겸임교수는 “10년만에 들어선 보수 정권인 이명박 정부 당시, 군은 초기부터 안보·병영 교육을 권장했다”고 말했다. 군부대가 지방 교육청과 협력 약정서를 맺었다. 교육청은 학생들에게 안보체험 교육을 권장 사항으로 제공했다. 이른바 ‘예비역 산업’을 창출한 것이다. 그는 “결국 군대가 정치에서 손을 뗀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시민사회에 침투해 오히려 군의 확장을 이룬 것”이라고 평가했다. 사회의 보수화에 따라 남성성에 대한 가치가 바뀌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문화평론가 이명석씨는 “과거에는 불의에 맞서 저항하고 사회성이 있는 남자를 강한 남자로 인식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런 남성상은 현실성이 떨어지고 있다”며 “말 그대로 근육이 울퉁불퉁한 ‘짐승남’이 남성성의 상징이 됐고, 그런 ‘강한 남자’를 자연스럽게 군대 안에서 찾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치·경제적 위기가 드리워지면, 군대 문화가 파고들 여지도 커진다. 병영체험 캠프가 확산되는 밑바탕에는 ‘강한 사람이 돼 경쟁 속에서 살아남으라’는 메시지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여성학자 권김현영씨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것을 개인의 책임으로 넘기는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에서 대부분의 사람이 가진 것은 몸밖에 없다. 몸뚱아리로 부딪혀 무언가 해낸다는 쾌감을 얻고 싶어 한다. 개별화된 삶에 지친 이들이 함께 무언가를 해보는 경험으로 국토대장정, 나아가 병영체험이 자리매김했다.”
권혁범 대전대 교수(정치언론학)는 “사회 전반에 통용되는 이른바 ‘진짜 사나이 콤플렉스’ 탓에 군대에만 머물러야 할 군대문화가 민간 영역에까지 넘쳐흐른다”고 지적했다. “우리 사회에서는 위기를 강조하면 똘똘 뭉쳐야 한다는 ‘집단주의적 회로판’이 작용한다. 또 세심하거나 유약하거나 까다로운 남성상에 적대적인 한국 사회에서 ‘극기’라는 이름으로 이것을 고치려고 한다. 결국 군사주의와 남성주의, 집단주의가 결합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교육부는 왜 ‘민주캠프’는 지원하지 않나이처럼 청소년 시기부터 군대문화를 이식시키는 사회 분위기는 결국 ‘굴종에 익숙한 성인’을 찍어낼 것이라는 우려로 이어진다. 서해성 작가는 “병영체험 캠프 등 군대문화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개인의 몸을 포기하는 제식훈련이며, 제식훈련에 익숙해지는 청소년들은 결국 국가를 위해 신체를 양도하는 걸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병영체험 캠프에서 인내를 가르친다고 하지만, 그건 인내가 아닌 굴종이다. 진짜 인내는 남의 이야기를 참고 들어주는 것이다. 교육부는 왜 그런 인내를 가르치는 ‘민주캠프’는 지원하지 않나?”
서남수 교육부 장관은 공주사대 부고 학생들의 영결식에서 이런 내용이 담긴 추도사를 읽었다. “우리 어른들의 잘못으로 더 이상 우리 아이들이 희생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는 ‘무엇으로부터’ 아이들을 지킬 것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그 아이들을 파도로부터 못 지켜준 것뿐만 아니라 군대문화로부터도 지켜주지 못했다는 사실 말이다.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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