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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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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자본도 혼저 옵서예

7월 현재 투자 확정한 중국 자본 9개 사업장 3조172억원, 2010년 이후
3년간 집중적으로 이뤄져… 실제 투자 형편없고 투자와 투기 구분 분명치 않아
등록 2013-07-23 16:40 수정 2020-05-03 04:27

▶이야기 하나 제주공항에서 출발해 1118번도로(남조로)를 타고 한라산을 오르면 마을목장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어 먹는 말들을 만난다. 낮은 울타리를 훌쩍 뛰어 넘어가면 풀밭을 내달릴 수 있을 것만 같다. 파란 하늘에 두둥실 흘러가는 흰 구름이 그림인 듯, 사진인 듯 눈부시다. 탁 트인 목장에 익숙해질 무렵 빼곡한 숲이 나타난다. 전나무가 저 멀리 도로 끝까지 늘씬한 다리를 뽐내고 서 있다. 차들이 하나둘 멈춰서 그 자태를 감상한다. 수망교차로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한라산 중간산을 지나는 1119도로(서성로)를 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중국어 가판광고가 눈에 띈다. 중국 칭다오의 백통그룹이 지난 5월부터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에 건설 중인 휴양콘도 공사장이다. 이곳에도 한때 말들이 뛰놀았지만 지금은 건설기기와 흙먼지만 가득했다. 400m쯤 이어지는 건설공사 울타리에는 콘도를 사면 한국 영주권을 얻을 수 있다는 중국어 광고가 붙어 있다.

▶이야기 둘 서귀포시 성산읍 신양해수욕장에서 바다를 향해 길게 뻗은 육지와 닿은 섬, 섭지코지. 그림 같은 언덕과 푸른 바다가 어우러져 영화나 드라마의 단골 촬영지였다. 마을 주민들은 보리와 고구마, 유채 농사를 지으며 삶의 터전을 일궜다. 2006년 성산포 해양관광단지 개발사업을 승인받으면서 보광제주는 섭지 코지의 국공유지와 사유지를 사들였다. “관광단지로 개발되면 생활이 나아진다”는 말에 주민들은 앞다퉈 땅을 내놓았다. 2008년 성산포 관광단지는 제주 투자진흥지구로 지정받았다. 보광은 덕분에 취득세·등록세·재산세 등 모두 74억원을 감면받았다. 하지만 리조트 단지‘휘닉스아일랜드’ 이외에 다른 해양관광시설을 5년간 건설하지 않았다. 대신 지난해 지구 내 미개발 토지 3만7829m²를 중국 자본인 오삼코리아에 되팔아버렸다. 양도차익만 46억8900만원 남았다. 그리고 오삼코리아는 이곳에 또다시 콘도를 건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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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인 소유 면적 여의도의 4분의 3

제주 부동산 시장에 중국 자본이 몰려들고 있다. 7월 현재 투자를 확정한 중국 자본이 9개 사업장 3조172억원(투자 계획 금액 기준)에 이른다. 싱가포르·홍콩 등 범중국계 자본까지 합치면 12개 사업 5조4817억원으로, 제주도에 투자를 확정한 외국자본(14개 사업)의 97%를 차지한다. 그것도 2010년 2월 ‘부동산 투자 이민제도’ 시행 이후 3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녹지그룹의 헬스타운 조성사업 1조1천억원, 홍유개발의 차이나비욘드힐 관광단지 개발사업 7410억원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6월28일 중국을 방문했을 때 녹지그룹 장위량 회장과 면담하기도 했다. 장 회장이 헬스타운 개발 현황을 보고하자 박 대통령은 녹지그룹의 투자를 격려했다고 한다. 지난 7월11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2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도 박 대통령은 “투자하는 분들은 업고 다녀야 한다”고 말했다.

제주도민의 심리적 ‘그린벨트’인 한라산 중산간 지역에도 중국 자본이 몰려들고 있다. 중국 칭다오의 백통그룹이 지난 5월부터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에 건설 중인 휴양콘도 공사장의 모습.

제주도민의 심리적 ‘그린벨트’인 한라산 중산간 지역에도 중국 자본이 몰려들고 있다. 중국 칭다오의 백통그룹이 지난 5월부터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에 건설 중인 휴양콘도 공사장의 모습.

중국인이 보유한 제주도 땅도 늘고 있다. 3월 말 기준으로 중국인은 1374억원(공시지가 기준)어치 제주 땅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누적 취득 건수(필지 기준)도 1659건으로 미국(1298건)을 앞질렀다. 제주도 토지 중 중국인이 소유한 면적은 222만1538m²로 여의도 면적의 4분의 3 정도다. 2008년부터 무비자 입국이 허용돼 중국인 관광객이 급증하고 5억원(약 50만달러) 이상 투자하면 한국 영주권을 주는 ‘달콤한 유혹’이 시행된 결과다. 부동산 투자이민제도 도입 이후 제주도는 6월 현재까지 409세대 2657억원의 계약 실적을 올렸다. 부동산 구입으로 거주비자(F-2)를 발급받은 외국인도 191명이나 된다. 이들은 5년간 투자 상태를 유지하면 한국 영주권을 받을 수 있다.

제주도에서 효과를 나타내자 부동산 투자이민제도는 2011년부터 강원도 평창, 전남 여수 대경도, 인천 영종도로 확대됐다. 하지만 이 지역들에선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지 못했다. 고태민 제주도 투자유치과장은 제주도에만 중국 자본이 몰리는 이유를 “지리적으로 가깝고 중국 정상들이 자주 방문해 친밀하게 느껴서”라고 설명했다. “서울은 몰라도제주도는 중국인이 다 안다. 바다로 둘러싸인 섬에 숲과 녹지가 풍부해 보물섬이라고 부른다. 동남아시아처럼 덥지 않고 사계절이 뚜렷해 휴양도시로도 선호한다.” 제주도가 2012년 2차 국제자유도시 종합계획을 시작하면서 아예 중국을 주 타깃으로 정했다.

중국인 열풍으로 제주 부동산 시장은 황이다. 지난해 제주도 공동주택 가격은 전년 대비 7.4% 올랐다. 같은 기간 서울이 0.3% 떨어진 것과는 대조적이다. 지만 ‘장밋빛 수치’에도 여론은 우호적이지 않다.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획만 거창할 뿐 실제 투자가 형편없다. 중국 자본의 투자 계획 금액은 3조원이 넘지만 실제 투자 실적은 515억원(5%)에 그친다. 특히 투자 규모가 클수록 실행률이 떨어진다. 각종 인센티브를 얻어내려고 국내외 자본이 투자 계획을 부풀리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중국 자본 기업 정보가 달랑 A4용지 한 장”

섭지코지 개발로 보광이 74억원의 혜택을 제주도에서 받고 46억원의 시세차익까지 남긴 것도 거창한 투자 계획을 내세워 제주투자진흥지구로 선정된 덕분이다. 2002년 제주특별법에 의해 도입된 투자진흥지구는 투자하면 세금을 면제해주고 부담금을 감면해주는 센티브 제도다. 대상은 500만달러 이상을 투자하는 내·외국인 업체다.현재 36개 지구가 지정돼 있다. 인센티브 내용을 보면, 입주기업에 대해선 법인세와 소득세가 3년간 100% 면제된다. 이후 2년간 50%가 추가로 감면된다. 지방세와 취득세는 아예 면제된다. 재산세도 10년간 없고 공유수면 점용료, 개발부담금도 마찬가지다.

강경식 제주도의원(제주관광포럼 대표)은 “투자 이행 기간과 달성도를 명확히 정해 계획 대비 실적이 저조할 경우 자진흥지구 해제 및 인센티브 회수, 태료 부과 등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동일 제주발전연구원 연구위원은 “지지부진한 사업 이행 등을 방지하려면 세금 감면이 아닌 환급제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해보자”고 제안했다. 세금을 일단 받았다가 투자가 실제로 이행되고 고용률이 일정한 수준에 이르면 받았던 세금을 돌려주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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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중국 자본은 ‘투자’인지 ‘투기’인지 확인할 사전 검증 시스템이 미흡하다. 지난 3월 제주도가 보유한 비축토지(39만2431m²) 개발사업자로 이랜드그룹 계열 자회사를 선정했을 때의 경험을 홍영철 주참여환경대표가 전했다. “이랜드와 함께 중국 자본이 신청했다. 양지를 짓겠다는데 기업 정보라고 달랑 A4용지 한 장을 제출했다. 보도 빈약하고 자본 출처도 설명하지 않았다. 그래도 점수를 매겨 날 바로 결정해야 했다.” 여행업계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홍콩투자청에서 들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제주도가 중국 자본을 마구 받고 는데 그 출처를 따지지 않아 위험할 수 있다고 하더라. 그래서 (홍콩은 제주도) 투자를 늘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고태민 투자유치과장은 “자체 검증 시스템이 있다”고 말했다. “중국 기업의 현장을 직접 방문해 그 규모를 파악하고 최고경영자(CEO)의 인적사항, 사회적 기여도 등을 파악한다.”

공신력 있는 전문기관에 사전 검증을 기는 게 효율적이라는 지적이 다수다. 욱이 중국은 독특한 기업 문화 탓에 판 조회가 어렵기로 유명하다. 실제 국민연금공단은 외국 투자자본의 건전성을 심의하기 위해 DTZ KOREA에 검증받도록 요구한 적이 있다. 이에 해당 투자자본은 DTZ KOREA에 용역을 발주해 자사의 건전성을 확인받았다. 제주도도 이런 시스템을 갖추면 투자자본의 건전성은 외부 기관이 책임지고, 검증 비용은 그 투자자본이 지급해 많은 위험을 없앨 수 있다.

 병원도 중국 의료 관광객 위한 것

셋째, 투자가 관광사업에만 편중되고 있다. 제주투자진흥지구(36곳)에서 관광사업이 83.2%에 이른다. 휴양업이 24곳, 관광호텔이 6곳, 연수원·관광식당·국제학교·문화산업·의료기관·수련원이 각 1곳이다. 중국 자본의 투자도 휴양지와 상업위락시설 개발에 치우쳐 다. 녹지그룹이 투자하는 헬스타운이나 중국 의료기관인 CSC가 립하려는 싼얼병원도 중국 의료 관광객을 위한 사업이다. 신동일 구위원은 “물류, 기반시설, 인력 수습 등의 현실 여건을 감안하면 광 분야의 집중은 단기간에 해소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하와이도 투자의 94%가 관광개발 및 토지 등 부동산 개발이다. 이에 하와이는 개발 가능 지역과 불가능 지역을 엄격히 구분해 관리하는 데 을 쏟는다. 제주도가 거울로 삼을 대목이다.”

반대로 제주도에서는 개발의 심리적 마지노선이던 한라산 중산간이 무너지고 있다. 이영웅 제주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의 설명이다. 해발 200m 이하의 경우 웬만한 곳은 개발됐다. 반면 중산간은 마을목장이 있어 일부 지역이 남아 있다. 해안 지역보다 값은 싸고 경관은 수려하다. 한라산이 다 보이고 바다도 펼쳐진다. 한라산 허리를 는 산록도로 위쪽은 설마 개발할까 싶었다. 최근에는 개발사업이 곳에 몰려 있다.” 한영조 제주경실련 사무처장도 “현재는 사업자가 하는 곳이면 400~500m 고지도 투자진흥지구로 지정된다. 한라산 중산간 해발 몇m 이상에는 개발을 제한하는 규정이 필요하다”고 조했다.

제주=글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사진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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