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저지른 범죄의 증거기록을 관련자들이 삭제한 사건은 미국에서도 일어났다. 가장 유명한 사례로는 ‘워터게이트 사건’을 들 수있다. 1972년 6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상대 후보 캠프에 대한 불법도·감청 사건이 불거지자 수석보좌관과 사건 은폐를 모의했다. 그들의 대화 내용이 담긴 대통령 집무실 녹음기록을 워터게이트 특별검사가 요구했는데 녹음기록의 일부(18분30초)가 삭제된 상태로 제출됐다. “실수로 사라졌다”고 주장했지만 거짓말로 드러났고 닉슨의 사퇴를 불러오는 계기가 됐다.
테러 위험 경고 부분 삭제
최근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벵가지 스캔들’ 때문에 탄핵 위기에 몰려 있다. 2012년 9월11일 리비아 벵가지 미국 영사관에서 크리스토퍼 스티븐스 대사 등 4명이 숨졌다. 미국 국무부는 피습 사건 보고서에서 알카에다와 관련된 테러단체의 개입 가능성을 언급한 부분과 미 중앙정보국(CIA)이 사전에 수차례 테러 위험을 경고했다는 부분을 삭제하라고 압력을 가해 결국 CIA가 보고서를 변경·조작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수전 라이스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이후 TV토크쇼에 출연해 알카에다에 의한 테러가 아니라 반이슬람 비디오로 촉발된 시위대에 의한 우발적 사건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그는 결국 국무장관 인선 과정에서 낙마했다. 현재 공화당 정치인과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 대선을 2개월 남겨둔 시점에서 정치적 부담을 느낀 오바마 정권이 진실을 조직적으로 은폐한 것이라며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등 관련자에 대한 의회 청문회 조사와 함께 대통령 탄핵까지 거론하는 상황이다.
정치적 책임과 더불어, 미국에서는 정부기관의 기록 은폐를 중한범죄로 판단해 엄중하게 처벌한다. 미연방 형법 제1519조는 “수사 또는 미연방 정부 기관이나 부서가 관할하는 사안의 정당한 권한 행사를 지연·방해하거나 영향을 미칠 의도로 고의적으로 기록이나 문서, 유형물을 변경·파괴·훼손·은폐·은닉·조작하거나 허위 기재하는 자는 20년 이하의 징역과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이유는 명백하다. 국가는 법으로 국민을 강제하고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위임받아 행사하므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소지가 많다. 따라서 국민은 국가의 권한 행사가 합법적으로 입안·시행되는지 끊임없이 감시·견제해야 하고, 나중에 문제가 발생하면 관련 기록을 토대로 그 합법성 여부를 검증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공문서 등 국가기록의 보존과 보호는 국가기관의 중요한 법적 의무이자 책임이다. 이를 어기고 불법적으로 정부기록을 파괴·훼손하는 행위는 중대한 범죄로 처벌해야 마땅하다. 더욱이 이러한 범죄는 주로 권력자가 자신의 은밀하고 비도덕적인 범죄행위를 감추려는 목적으로 이뤄진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책임자 승인 없이 변경 못하도록
이제 우리나라도 법을 개정해야 한다. 첫째, 정부기관에 컴퓨터 하드 기록 등 모든 유·무형의 기록과 정보를 일정 기간 보존할 의무를 부과해야 한다. 둘째, 국가기록과 정보의 변경·삭제·파기 절차를 법제도화해 책임자의 승인 없이 함부로 실행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국가기록을 무단으로 삭제하면 현재보다 훨씬 가중된 형으로 처벌해야만 국가가 저지른 범죄가 은폐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김행선 미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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