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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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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서면 선거, 출마꾼들의 지방자치



5년 동안 치른 지방자치단체장·의원 재·보궐 선거 363건, 5일에 한 건꼴

재선거 이유 ‘선거범죄로 인한 당선 무효’ 가장 많고, 영호남이 전체의 절반 넘어서
등록 2013-06-02 21:18 수정 2020-05-03 04:27
서울 지역의 한 구의원이 물었다. “지금 살고 있는 지역의 구청장, 시의원, 도의원이 누군지 압니까?” 2010년 6월 동시지방선거 직후 이사를 해서 잘 모른다는 그럴 듯한 핑계가 있었다. 어린이집 행사 때 봤던 구청장의 이름을 대충 우물댔다. 2011년 재선거에서 당선된 구청장이었다. “그냥 내버려두니 지방자치가 ‘그들만의 리그’가 돼버렸다”고 구의원은 한탄했다. ‘그들’은 단체장과 지방의회를 동시에 겨냥한 말이었다. “자기들 커넥션”이라는 한 부산시의원의 표현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D-365. 2014년 6월4일 광역단체장·광역의원, 기초단체장·기초의원을 뽑는 제6회 동시지방선거가 실시된다. 1995년 민선 1기 지방자치를 시작했으니, 6기 지방정부에서 20살을 맞게 된다. 그동안 ‘풀뿌리 자치’는 주민들의 생활에 밀접한 복지 서비스를 개선시키고, 관청의 문턱을 낮추는 등 긍정적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돈선거’, 단체장 비리 등이 지방자치의 단골 뉴스가 된 지도 오래다. 지방의회가 제구실을 하고 있는지 의문도 여전하다.
은 ‘그들만의 리그’의 실태를 들여다봤다. 그리고 지방자치 현장에서 뛰고 있는 이들의 한숨과 고민을 들어봤다. 다음에는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 기초단체 정당공천 폐지 논란과 2014년 지방선거에 대한 정당들과 안철수 세력의 움직임 등을 짚어보려 한다. 지방자치를 ‘주민들의 리그’로 바꿔낼 ‘묘안’은 있는 걸까. _편집자
963호 표지이야기

963호 표지이야기

최근 5년 동안 치른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 재·보궐 선거가 363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자료를 받아 분석한 결과, 2006년 6월 4회 동시지방선거 이후 2년6개월, 2010년 6월 5회 동시지방선거 이후 2년6개월 동안 12차례에 걸쳐 363건의 재보선이 실시된 것으로 집계됐다. 단순 셈법으로 따지면 닷새마다 1명씩 단체장이나 지방의원이 바뀐 것이다. 특히 재보선 10건 가운데 9건(324건, 89.3%)은 선거범죄로 인해 당선 무효가 되거나, 임기 중 비리로 인해 낙마하거나, 총선 출마 등을 위해 중도 사퇴한 탓에 치러진 것으로 나타났다. 남은 임기가 1년 미만이면 재보선을 실시하지 않기 때문에 ‘지자체 비리’의 실제 규모는 이보다 더 클 것으로 추정된다. 잦은 재보선에 소요되는 막대한 예산은 결국 유권자가 져야 할 부담이다.

963호 표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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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군수 뽑은 함양·창녕 군민

기초단체장은 ‘지방의 소통령’이라고 불린다. 그만큼 권한이 막강하다. 그래서일까? 기초단체장의 재보선 비율이 가장 높았다. 재보선 실시 건수는 광역단체장 3건, 광역의원 117건, 기초단체장 64건, 기초의원 179건으로 나타났다. 기초단체장의 경우 재보선 비율이 민선 4기 15.2%, 민선 5기 12.7%로 가장 높았다. 광역의원 재보선 비율은 8.7~8.8% 수준이다. 기초단체장 10명 가운데 1~2명이 임기 중에 옷을 벗었다는 얘기다. 64명의 구체적 사유를 전수조사했다. 국회의원 보좌관에게 금품을 제공하거나, 언론사 선거 여론조사 비용을 제공하는 등 공천·선거 과정에서 저지른 비리로 낙마한 경우가 41건으로 가장 많았다. 공무원 인사와 인허가 청탁, 건설업체 뇌물수수 등 기초단체장 비리의 ‘고전 아이템’이 11건이었고, 총선 출마용 사퇴도 11건이나 됐다.

임기 4년 동안 기초단체장 재보선이 두 차례 치러진 곳도 있다. 지난 4월24일 치러진 경남 함양군수 재선거가 이런 사례다. 2010년 동시선거에서 당선된 이철우 군수가 선거법 위반으로 1년여 만에 낙마하자, 2011년 10월 재선거에서 최완식 군수가 당선됐다. 그러나 최군수가 재선거 과정에서 자원봉사자들에게 돈을 뿌리는 등 불법 선거운동을 한 사실이 드러나 군수직을 잃는 바람에 지난 4월 또다시 재선거를 치르게 된 것이다. 함양군민들은 1년마다 한 번씩 군수를 뽑는 처지가 됐다. 경남 창녕에서는 2명의 군수가 똑같은 비리를 잇달아 저질렀다. 김종규 군수가 골재채취업자한테 뇌물을 받아 군수직을 상실했는데, 2006년 10월 보궐선거를 통해 당선된 하종근 군수도 골재채취업자한테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하 군수의 사퇴로 창녕군은 2007년 12월 보궐선거를 또 치렀다.

기초단체장 때문에 ‘재보선 상습지역’으로 낙인찍힌 곳은 이 밖에도 여럿 있다. 2004년 이후 ‘부부 군수’와 ‘형제 군수’ 가운데 3명이 낙마한 전남 화순에서는 2011년 4월 재선거로 당선된 홍이식 군수가 재선거 과정에서 뇌물과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지난해 4월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다. 경북 청도는 2005~2008년 4년 동안 해마다 보궐선거, 동시선거, 재선거, 보궐선거를 잇달아 치렀다. 충남연기에서도 2006년 동시선거 이후 2007년과 2008년에 재선거가 실시됐다. 충북 충주와 서울 양천구도 툭하면 단체장 재보선을 치르는 곳이다.


서중현 대구시의원은 2008년 6월 구청장 재선거에 출마해 당선된다. 전해 4월 시의원 재선거에서 당선됐지만 1년여 만에 사퇴하고 출마했다. 그의 공백으로 인해 광역의원 보궐선거도 실시됐다. 2010년 재선된 그는 당선 1년3개월 만에 총선에 출마한다며 돌연 사퇴했다.
도미노 선거, 출마를 위한 중도 사퇴

선거가 선거를 낳는다. 중앙선관위가 분류한 재보선 실시 사유는 ‘선거범죄로 인한 당선 무효’가 38.6%(140건)로 가장 많았고, 그다음은 ‘사직’(123건, 33.9%), ‘비리 등으로 인한 피선거권 상실’(61건, 16.8%), ‘사망’(39건, 10.7%) 순이었다.

이 가운데 사직의 구체적 이유를 조사해보니, 대부분은 ‘입신용’ 공직선거 출마를 위한 중도 사퇴였다. 광역단체장 가운데는 김두관 경남도지사가 대선 출마를 위해 사퇴했고, 기초단체장 11명이 국회의원 금배지를 달기 위해 자리를 박찼다. 광역의원은 사직 71건 가운데 출마용 사퇴가 65건에 달했다. 총선 출마용 사퇴가 55건, 기초단체장 재보선 출마용 사퇴가 8건, 조합장 출마용 사퇴가 2건이다. 기초단체장이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사퇴하면, 공석이 된 기초단체장 자리를 노리고 광역의원·지방의원이 사퇴하고, 이들이 사퇴한 자리를 또 다른 보궐선거를 통해 채워넣는 ‘도미노 선거’가 발생하는 것이다.

실제로 단체장이나 지방의원 가운데는 ‘출마꾼’이라 부를 만한 이도 있다. 대구 서구에서 벌어진 일이다. 2008년 1월 윤진 구청장이 선거법 위반으로 당선 무효가 됐다. 서중현 대구시의원은 그해 6월 구청장 재선거에 출마해 당선된다. 전해 4월 시의원 재선거에서 당선됐지만 1년여 만에 사퇴하고 출마했다. 그의 공백으로 인해 광역의원 보궐선거도 구청장 재선거와 함께 실시됐다. 2010년 재선에 성공한 그는 당선 1년3개월 만에 총선에 출마한다며 돌연 사퇴했다. 대구 서구 주민들은 보궐선거로 구청장을 다시 뽑아야 했다. 서 구청장 한 사람 때문에 보궐선거를 두 번 치른 것이다. 광주에서는 ‘셀프 출마’도 있었다. 강도석 광주시의원이 2008년 총선에 나가겠다며 사퇴했다. 그 역시 재선거에서 당선돼 1년도 지나지 않은 상태였다. 총선에서 낙선한 뒤 그는 자신의 출마 공백으로 인해 실시되는 광역의원 보궐선거에 다시 출마했다.

재보선이 영호남에서 많을 것이라는 예상도 빗나가지 않았다. 영남 132건(36.4%), 호남 74건(20.4%)으로 전체의 절반이 넘었다. 수도권(102건, 28%)에 견주면 지나칠 만큼 많은 수치다. 충청·강원은 49건(13.5%), 제주는 6건(1.7%)이었다. 특히 전남 22개 시·군 가운데 9곳에서 10건의 단체장 재보선이, 경북 23개 시·군 가운데 8곳에서 9건의 단체장 재보선이 실시된 것으로 나타났다. 영호남에서는 단체장과 의회가 ‘끼리끼리’인 경우가 많아 단체장에 대한 의회의 견제와 감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의회도 특정 정당이 독식하는 경우가 많아 지방의원 관련 비리도 다른 지역보다 많은 것으로 풀이된다. 단체장과 지방의회가 동시에 망가지는 것이다.

2010년 민주당후보로 재선에 도전한 오현섭 여수시장이 판세가 불리해지자 민주당 소속 여수시의원 7명, 도의원 4명에게 500만~1천만원을 뿌렸다. 이 사건으로 여수시에서는 2012년 두 차례 재보선이 실시됐다. 시의원 7석 가운데 5석, 도의원 4석 가운데 2석을 민주당이 다시 차지했다.
뇌물이 쫙 깔린 의회

영남에서는 경북 문경 사례가 눈에 띈다. 지난해 총선 때 문경에서는 국회의원 선거뿐 아니라 시장 보궐선거, 시의원 보궐선거도 함께 실시됐다. 신현국 시장이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 사퇴하고, 시의회 고오환 의장이 빈 시장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사퇴했기 때문이다. ‘도미노 선거’로만 설명하기 어려운 지역 사정이 더 있다. 문경시의회는 2011년 11월 시의원 10명 중 6명이 참여한 가운데 고 의장 불신임안을 가결하고 새 의장을 뽑았다. 고 의장은 불신임안 무효 가처분신청을 냈다. ‘한 지붕 두 의장’은 의장실·관용차를 놓고 싸움을 벌이고, 지역 행사에서 번갈아 축사를 했다. 시의회가 의장 다툼에 몰두하는 와중에 신 시장이 돌연 사퇴했다. 그는 2006년 동시선거 때 한나라당 소속으로 시장에 당선됐으나, 2010년 동시선거 때 공천에서 탈락하자 탈당해 무소속으로 당선됐다. 사퇴 당시 신 시장은 지인들에게 1억4700만원을 받은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1심 징역 6개월, 2심 선고유예 선고를 받는 등 재판 중이었다. 그는 새누리당에 총선 공천을 신청해 입길에 오르기도 했다. 고 의장은 자신이 낸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졌는데도 시장 자리가 비자 의회를 떠났다. 국회의원·시장·시의장 자리를 둘러싼 다툼에 시민은 안중에 없었다.

전남 여수에서는 도의원·시의원 11명이 시장한테 돈을 받아 직을 잃었다. 2010년 동시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재선에 도전한 오현섭 여수시장이 판세가 불리해지자 민주당 소속 여수시의원 7명, 도의원 4명에게 500만~1천만원을 뿌렸다. 시의원 1명, 도의원 3명은 오시장이 추진하는 사업과 관련해 협조를 부탁하는 뇌물도 받았다. 이 사건으로 여수시에서는 2012년 두 차례에 걸쳐 재보선이 실시됐다. 시의원 7석 가운데 5석, 도의원 4석 가운데 2석을 민주당이 다시 차지했다. 이처럼 재보선 사유를 제공한 정당이 재보선에 후보를 공천해 당선되는 사례가 363건 가운데 44%(160건)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된다. 사유 제공자의 소속 정당은 새누리당 계열이 174건으로 가장 많았고, 민주당 계열 119건, 무소속 68건, 진보정당 2건 순이었다.

지방의원들의 수준도 민망할 정도다. 2007년 장문철 대전시의원은 교통사고를 내 경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당선 4개월 뒤 서울의 가족 집으로 주소를 옮긴 것이 드러나 물러났다. 광역의원의 경우 의장단 ‘돈선거’, 뇌물 등 금품 비리 외에 사기, 횡령, 유사성매매 적발, 대리시험 등 낙마 사유가 다양했다.

지방의원들이 의장단 구성을 놓고 정당을 초월해 이합집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자리싸움이다. 2011년 12월 경북 문경시의회는 ‘의장 2명’ 체제로 파행을 빚었다. 새 의장이 전 의장에게 의장석에서 비켜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문경시 제공

지방의원들이 의장단 구성을 놓고 정당을 초월해 이합집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자리싸움이다. 2011년 12월 경북 문경시의회는 ‘의장 2명’ 체제로 파행을 빚었다. 새 의장이 전 의장에게 의장석에서 비켜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문경시 제공

이탈표 방지를 위한 ‘약속해줘 투표’

재보선이 실시된 경우는 아니지만, 2010년 서울 강서구의회 의장선거에서 벌어진 사건은 기초의회의 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해 동시선거에서 민주당 11명, 한나라당 9명이 당선됐다. 민주당 소속 권오복 의원이 구의회 의장에 선출됐다. 그런데 민주당 의원 9명이 의장 불신임안을 제출해 통과시키고 새누리당 소속 이명호 의원을 새 의장으로 뽑았다. ‘2명의 의장’은 소송전을 벌인다. 관련 소송 판결문(2012년 10월 서울고등법원)에 나타난 사건의 전말이다. 권 의원은 민주당이 다른 의원을 의장 후보로 내정하자, 한나라당의원들에게 자신을 의장으로 뽑아주면 부의장과 상임위원장 2석을 주겠노라고 약속했다. 민주당 1명을 끌어들였고, 한나라당에서 이탈표가 나오지 않은 탓에 의장 당선에 성공했다. 무기명 투표로 진행된 의장 선거의 투표용지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판결문에 수록된 그림(위 사진)을 보자. 법원은 “9매의 투표용지가 우연이라고는 도저히 볼 수 없을 정도로 기명 위치와 크기, 방향 등을 각각 서로 달리하면서 동일한 후보자를 기재하고 있는 점, 새누리당 의원 9명이 권 의원을 의장으로 선출하는 대신 의장단 및 원내 구성에서 유리한 지위를 보장받기로 한 점 등을 종합하면, 이탈을 방지할 목적으로 투표내용을 제3자가 알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기표한 것”이라며 “무기명·비밀투표원칙에 위배돼 무효”라고 판결했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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