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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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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 지방의회란 병풍을 둘렀구나



현장에서 일하는 단체장과 지방의원들에게 듣는 무엇이, 얼마나, 왜 망가졌는가, 개선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등록 2013-06-02 18:52 수정 2020-05-03 04:27

모두가 망가졌다고 했다. 지방자치 현장에서 일하는 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을 두루 접촉해 무엇이, 얼마나, 왜 망가졌는지, 그리고 그 망가진 현실을 개선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를 물었다.
우선 지방의원들은 의회가 자치단체를 견제·감시하는 기본 역할을 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여건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나 홀로 의원’으로서 한계를 느낀다는 얘기였다.

지역의 일꾼을 뽑는 지방선거는 오히려 유권자들에게 외면받기 일쑤다. 2010년 치러진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출마자들이 배포한 명함이 서울 지하철 4호선 수유역 입구에 마련된 임시 쓰레기통에 버려지고 있다. 한겨레 탁기형 기자

지역의 일꾼을 뽑는 지방선거는 오히려 유권자들에게 외면받기 일쑤다. 2010년 치러진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출마자들이 배포한 명함이 서울 지하철 4호선 수유역 입구에 마련된 임시 쓰레기통에 버려지고 있다. 한겨레 탁기형 기자

“행사장에 가도 시장·군수들은 곧바로 들어가는데, 지방의원들은 주차부터 해야 한다. 결국 병풍 역할만하는 행사는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피 터지게 의정활동을 해도 ‘지역구에서 술 한 번 더 먹는 게 낫다’고 말하는 동료 의원들이 있다 .” -신현석 경기도의원(새누리당)
20년 된 옷 그대로 입고

여영국 경남도의원(진보신당)은 “보좌관이라도 하나 있으면 날개를 달겠다 싶다. 정보 접근도 굉장히 어렵다. 자료를 요청해도 도에서는 정말 중요한 정보는 주지 않고, 이를 제어할 방법도 없다. 도정이라는 게 도지사 1인 지배체제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강희용 서울시의원(민주당)은 “지방분권이라는 가치 아래 지방정부로 권력을 많이 이양했는데, 단체장의 권한은 세졌지만 의회에 대한 제도적 보완이나 시스템 지원은 이뤄지지 않았다. 지방의회가 20년이 돼가지만 태어날 때 옷을 그대로 입고 있으니 견제와 감시가 제대로 안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방의회 상임위원회 전문위원을 단체장이 임명하는 구조에서는 단체장이 추진하는 사업에 대한 정당한 비판을 담은 보고서는 작성되기 어렵다는 지적도 여럿이 제기했다.

광역의회 의원에게 유급 보좌관을 지원하자는 주장은 번번이 좌절돼왔다. 자치단체에 대한 견제 기능 강화를 우려한 시·도지사들의 반대가 작용한 탓이다. 최근 유정복 안전행정부장관이 광역의원 유급 보좌관제의 연내 도입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밝혀 주목된다. 유 장관은 “유급 보좌관제는 의원들이 제대로 된 의정활동을 하도록 돕는 지방자치 발전의 핵심”이라며 “국회의원은 1인당 9명의 보좌관이 지원되는데 광역의원들은 100조원에 달하는 예산을 다루면서도 보좌 인력이 단 한 명도 없다. 의회사무처 인력을 재배치하고 전문인력을 충원한다면 연간 약 100억원으로 전국 광역의원에게 보좌관 지원이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혈세 낭비’라는 곱지 않은 시선과 “보좌관 한 명 생긴다고 지방자치가 갑자기 좋아지겠느냐”는 회의론은 여전히 넘어야 할 벽이다.

다른 시각도 물론 있다. 민형배 광주 광산구청장(민주당)은 “지방의회의 권한은 결코 작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의회의 동의 없이는 과장 자리 하나 못 만든다. 예산 편성을 해도 의회에서 통과되지 않으면 못한다. 의회는 견제할 수 있는 힘이 없는 게 아니다. 의회가 어떻게 구성돼 움직이냐를 먼저 봐야 한다”고 말했다.

지방의회에 대한 의원들 스스로의 인식도 굴레로 작용한다. 의정활동보다 ‘병풍활동’에 힘써야 다시 당선될 수 있는 현실에 목매는 의원이 적지 않다. 신현석 경기도의원(새누리당)은 “화장실에 자주 갈까봐 물도 잘 안 마신다. 그렇게 해도 시간이 부족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지역 행사가 하루에 8~9개다. 행사장에 가도 시장·군수들은 곧바로 들어가는데, 지방의원들은 주차부터 해야 한다. 주차장을 찾아헤매다 행사가 끝나버리는 경우도 생기더라. 결국 병풍 역할만 하는 행사는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피 터지게 의정활동을 해도 ‘그게 무슨 소용이냐. 누가 알아주냐. 지역구에서 술 한 번 더 먹는 게 낫다’고 말하는 동료 의원들이 있다. 실제로 선거가 1년 앞으로 다가오면서 의회보다 지역구 술자리를 찾는 데 더 열 올리는 의원이 많다. 거기가 표밭이니까. 지방의회에 대한 시각이 곱지 않은 건 자질이 검증되지 않은 사람이 많이 진출한 결과이기도 하다.”

“지방의원은 마을 숙원사업 해결자?”

지방의원들을 대하는 주민들의 의식도 안타깝다고 얘기한다. 도지사와 시장·군수, 구청장의 독주를 제어하고, 다양하게 얽힌 이해관계를 조정해 정책에 반영하는 게 지방의원의 주요 임무다. 그러나 지방의원들은 자신을 일종의 ‘민원 창구’로만 여기는 주민들의 인식에 좌절하곤 한다. 임병택 경기도의원(민주당)은 “주민들이 도의원과 시의원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지방의원은 돈 가져오는 사람, 마을 숙원사업을 해결해주는 사람, 행사장에서 배지 달고 인사해주는 사람이라고 여긴다”고 토로했다. 오진아 서울 마포구의원(진보정의당)도 “자신이 사는 곳의 구청장, 구의원, 시의원이 누구인지 물어보면 아는 사람이 없지 않느냐. 웬만한 지방의회 홈페이지에는 의원들의 휴대전화 번호까지 다 나와 있지만 그걸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고 말했다.

최진현 충북 청주시의원(새누리당)도 “주민들은 지방의원들이 의정활동을 열심히 하기보다는 옆에서 같이 막걸리 마시고 하는 것을 더 원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잘 안 하면 ‘고개가 뻣뻣하다’는 식으로 부정적으로 본다”며 “주민들이 자신들의 대표인 지방의원의 역할과 의미를 인정해줬으면 좋겠다. 시의원으로서 가장 아쉬운게 바로 그 대목”이라고 토로했다.

지방자치의 현장이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한 일차적 원인은 그 내부에서 찾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각종 비리와 추문에 단체장이나 지방의원들이 연루된 사례는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만큼 널려 있다. 감사원이 2012년 발표한 ‘지방자치단체 계약 관련 토착비리 점검 결과’에는 지방의원들의 친·인척이 운영하는 업체가 각급 지자체 발주공사를 부당하게 수주하거나 용역비를 과도하게 받는 등의 사례가 줄줄이 드러나기도 했다. 경북 구미시에서 활동하는 김수민 의원(녹색당)은 “지방의회는 곧 복마전이라는 인식이 있는데, 문제가 심각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강한옥 서울 동작구의원(민주당)은 “실제로 의원들이 이권에 개입해야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고본다. 공무원을 움직일 수도 있고, 업자를 소개할 수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963호 표지이야기

963호 표지이야기

“구청장이 민주당이라면 새누리당 의원들은 일단 반대부터 한다. 명분 있는 사업인데도 반대 거리를 찾는데 혈안이 된다. 산전수전 다 겪은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하기엔 논리가 허술할 때가 많다. 결국 사업은 그대로 진행되는데 추진시점 만 늦춰 진다.” -오진아 마포구의원(진보정의당)
김상곤 교육감 2중대, 김문수 지사 2중대

의회 내부의 감투싸움은 당리당략을 넘어서는 수준일 때도 있다. 의장단과 상임위원장 자리를 일종의 ‘특권’으로 보기 때문이다.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기초의회 의장의 경우 연봉과 별도로 월 300만원대의 업무추진비와 사무실, 관용차, 운전기사, 개인비서 등을 지급받는다. 부의장은 160만원대, 상임위원장은 110만원가량이 지원된다. 이를 둘러싸고 은밀한 거래와 이전투구, 심지어 ‘돈선거’가 끊이지 않는 건 그래서다. 서울 동작구의회는 2010년 동시선거에서 민주당 9명, 새누리당 8명인 ‘여대야소’ 체제로 출범했다. 그런데 민주당의원 한 명이 새누리당 의원들과 손잡고 구의장에 당선된 뒤 탈당했다고 한다. 졸지에 ‘여소야대’로 바뀐 것이다. 강한옥 구의원은 “주민들의 삶을 위한 정책을 고민해야 하는 지방의회가 자리싸움으로 날을 지새우는 건 이곳만이 아니다. 의원들끼리 농담처럼 ‘시험 봐서 뽑자’고 한다”고 말했다.

중앙정치, 소속 정당의 이해관계에 갇힌 지방정치는 점점 메말라가고 있다. 의원들이 소속 정당에 따라 단체장 사업에 ‘무조건 찬성’이나 ‘무조건 반대’를 하는 것도 늘상 있는 일이다. 신현석 경기도의원은 “민주당 의원들은 모두 김상곤 교육감의 2중대, 새누리당 의원들은 모두 김문수 지사의 2중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파에 따른 반대, 반대를 위한 반대에 갇혀 있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오진아 마포구의원은 “구청장이 민주당이라면 새누리당 의원들은 일단 반대부터 한다. 구청장 좋은 일 시키기 싫다는 거다. 명분 있는 사업인데도 반대 거리를 찾는 데 혈안이 된다. 그러나 산전수전 다 겪은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하기엔 논리가 허술할 때가 많다. 결국 사업은 그대로 진행되는데 추진 시점만 늦춰진다”고 말했다.

특히 영호남을 중심으로 한 ‘싹쓸이의 벽’은 두껍다. 현재 경북도의회의 민주당 의원은 1명뿐이다. 경남도의회와 부산시의회에는 각각 3명, 2명의 민주당 의원이 있다. 노동운동의 역사가 깊은 울산시의회에는 통합진보당 의원이 5명이지만 민주당 의원은 없다. 대구시의회에는 야당 의원이 전무하다.

호남 지역도 마찬가지다. 전북도의회와 전남도의회에서 새누리당의원이 1명씩 활동 중이다. 광주시의회에는 통합진보당, 진보정의당의원이 1명씩 있을 뿐 새누리당 의원은 없다. 지역주의 투표 경향이 지방선거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2006년 지방선거 때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 15개 시·도에서 광역단체장과 광역의회 과반수 의석 정당이 일치했다. 2010년 경남도·충남도·경기도 등지에서 단체장과 다수당의 소속 정당이 다르게 나타나는 균열이 드러났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정당들이 지방선거를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를 하는 대리전 선거로 몰아가는 경향이 되풀이된다면, 특정 지역 자치단체와 의회를 특정 정당이 싹쓸이하는 몰표 현상은 사라지기 어려울 것이다.

“지방의회에도 야당 세력 있어야”

노재갑 부산시의원(민주당)은 “임기 3년차에 들어서니 자기들끼리 커넥션이랄까, 참 골이 깊더라”고 토로했다. 그는 부산시 최초의 야당 소속 남성 시의원이다. 지금까지 부산에서 야당은 여성 몫 비례대표 의원만을 배출해왔다. “시장과 시의회, 지역 시민단체까지 수레바퀴처럼 한 몸이 되어 굴러가더라. 무소속 의원도 있지만 전부 새누리당 성향으로 보면 된다. 새누리당 국회의원이 결국 새누리당 소속 시장을 만드는 것 아니냐. 그런데 시의원이 시장의 정책과 행정에 반대한다면, 그 경우 시장이 시의원을 상대하겠느냐? 시장은 지역 국회의원을 찾아간다. 지방의회에서도 균형을 갖출 수 있는 정도의 야당 세력이 있어야 한다.”

송호균 기자 uknow@hani.co.kr·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김대중 ‘13일 단식투쟁’의 산물
제헌의회에서 1995년 6월27일까지
지방자치의 오늘은 기나긴 민주화 투쟁의 산물이기도 하다. 1949년 제헌의회는 의결기관인 지방의회와 집행기관인 자치기구를 두는 것을 골자로 한 지방자치법을 제정했다. 서울시장과 도지사는 대통령이 임명하되 시·읍·면장은 지방의회가 선출하는 구조였다. 당초 권력의 분산을 우려한 이승만 정권은 이를 시행하지 않고 보류하다가 대통령에 대항하는 국회의 권한을 약화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지방의회 선거를 실시하는 등 지방선거를 정략적으로 이용했다.
4·19 혁명으로 집권한 장면 정권은 지방선거의 전면적 시행을 추진했지만 곧 5·16 군사쿠데타와 박정희 정권의 등장으로 중단된다. 군사정권은 군사혁명위원회 포고 제4호로 지방의회를 해산하고 1961년 6월에는 각급 시·도지사와 시장·군수 등을 직접 임명했고, 이같은 지방자치의 단절기는 신군부의 집권 이후에도 계속 이어진다.
노태우 정권은 공약으로 지방자치제도의 도입을 내세웠으나 여러 차례 말을 바꾸며 시행하지 않았다. 1989년 이른바 3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은 지방자치제의 실시에 합의한다. 그러나 1990년 3당 합당으로 지방자치의 부활은 또다시 무산된다. 당시 평화민주당 총재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지방자치제도의 실시를 요구하며 유명한 ‘13일 단식투쟁’을 벌여 이를 관철시킨다. 지방자치는 그의 평생의 소원이었다.
전면적 의미의 지방자치는 광역·기초 단체장과 의원을 유권자가 직접 선출한 1995년 6월27일 제1회 동시지방선거에서야 비로소 시작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지방자치제의 도입 의의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지자제 도입으로 우리 사회는 많이 변했다. 무엇보다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그곳의 주인이 되었다. 풀뿌리 민주주의에 대한 자연스러운 실험은 주권 의식을 고취시켰다. 중앙에서 일률적으로 부정선거를 획책할 수 없고, 지방이 중앙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 있게 주민을 위한 행정을 펼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2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 각고의 노력 끝에 얻은 지방자치제도는 오히려 비리와 부정의 온상이며 지역 토호들의 기득권을 재생산하는 각축장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제도도, 사람도 문제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형식적 민주주의의 완성이 내용적·질적 민주주의를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다. 다음 지방선거는 2014년 6월4일 열린다.
송호균 기자 ukno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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