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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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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국의 노동자여, 파업은 정당하다


협상 타결된 베트남 이주노동자 파업에 뒤늦게 ‘업무방해’ 혐의 적용해 3년 구형한 검찰…
항소심까지 업무방해 혐의 10명 전원 무죄 선고했지만, 다른 혐의 유죄 받은 이들은 강제출국 당해
등록 2012-12-21 21:42 수정 2020-05-03 04:27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2011년 4월 경찰에 체포돼 인천구치소에 갇힌 베트남 국적의 ㅍ(당시 25살)씨는 두려움에 질려 있었다. 그는 고용 허가를 받아 한국에서 합법적으로 일하던 이주노동자였다. 경찰로부터 별다른 소환 통보도 받지 못한 채 곧바로 연행됐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일은 그에게만 닥친 게 아니었다. 그해 3월 초부터 인천지방경찰청은 인천 신항 공사 현장에서 태흥건설산업 소속으로 함께 일했던 베트남 노동자 10명을 줄줄이 체포·구속했다. 2010년 7월, 2011년 1월에 있은 두 차례의 ‘파업’ 때문이었다. 한국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의 파업은 이례적인 일이다. 10명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된 범죄 혐의는 ‘업무방해’였다. 

노동절을 이틀 앞둔 지난 4월29일 오후 서울 보신각 앞에서 열린 이주노동자 노동절 집회 모습. ‘노동권을 쟁취하자’는 말이 부끄럽게 다가온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노동절을 이틀 앞둔 지난 4월29일 오후 서울 보신각 앞에서 열린 이주노동자 노동절 집회 모습. ‘노동권을 쟁취하자’는 말이 부끄럽게 다가온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피고인들이 각 파업을 시행하면서 노동 관계 법령에 의한 절차를 따르지 않은 것은 사실이나, 현재 국내에서의 외국인 근로자의 현실적 지위를 고려할 때 한국 법령을 인지하고 그에 따라 사용자와 협의하는 등 적법한 절차에 따라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기는 어려웠다.”-인천지방법원 형사4단독 오상진 판사
징역 3년 구형, 극적인 만남

2010년 7월, 인천 신항 컨테이너 하부 축조 공사장에선 베트남 이주노동자 180여 명이 시급 4110원을 받으며 주야 맞교대로 하루 12시간씩 일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휴일은 반납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첫 파업은 ‘끼니’ 때문이었다. 그해 6월 회사는 세끼 식사를 무료로 제공하던 방침을 바꿔, 아침과 저녁 밥값으로 월급에서 24만원을 공제하기 시작했다. 7월22일부터 25일까지 베트남 노동자들은 ‘세끼 무료 제공, 강압적 야간근무 금지’ 등을 요구하며 작업을 거부했다. 파업 기간 나흘 가운데 이틀은 토·일요일이었다. 두 번째 파업은 ‘노동시간 인정’ 문제 때문이었다. 회사가 하루 12시간을 노동시간으로 인정하던 방침을 바꿔, 11시간만 인정하겠다고 한 것이다. 이틀간의 파업 가운데 하루는 일요일이었다.

두 차례의 파업은 회사가 노동자들의 요구 중 일부를 수용해 별다른 충돌 없이 해결된다. 첫 파업이 일어난 지 반년이나 지난 시점에서 경찰은 노동자 10명을 ‘불법 파업’ 주동자로 지목해 잡아들였다. 그때 6명은 회사를 옮겨 다른 업체에서 일하고 있었다. 회사의 고소나 고발은 따로 없었다. 이주인권단체들은 경찰이 실적을 쌓으려고 무리한 짜맞추기 수사를 진행했다고 의심했다. 사건을 송치받은 인천지방검찰청은 구속된 노동자들이 출근을 원하는 대부분의 베트남 노동자들을 협박하고 폭행해 출근을 저지하는 등 불법 파업을 벌여 회사 업무를 방해하고 손해를 끼쳤다며 최고 징역 3년의 중형을 내렸다.

베트남 노동자들은 1심 결심 공판이 다가올 때까지 제대로 된 변론을 하지 못했다. 국선변호인이 선임됐고, 베트남 통역인이 있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이들이 자신들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고 했다. 심지어 통역인은 그냥 죄를 인정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편이 좋다고 했다. 한국이주인권센터 김기돈 사무국장은 “인권단체에서 움직이기 시작한 게 결심공판을 바로 며칠 앞둔 시점이었다.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의 장서연 변호사가 베트남 출신의 결혼이주민이자 통역활동가인 원옥금씨와 함께 이들을 긴급 접견했다”고 회상했다. 베트남 노동자 가운데 가장 연장자였던 41살의 ㅇ씨는 변호사를 처음 만난 날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거의 3개월 동안 절망 속에서 살았고,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당신들이 나타나 도와주겠다고 하니 그동안 마음속에 쌓였던 억울함을 마음껏 말해야 하는데 그저 눈물만 계속 나왔다.”

절망 속에 있던 베트남 노동자들에게 희망의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인천지방법원 형사4단독 오상진 판사는 2011년 6월 베트남 노동자들이 기습적으로 파업을 진행해 공사 업무를 방해했다는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오 판사는 판결문에서 “근로자는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으로서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지고, 국적을 불문하고 외국인도 노동기본권의 향유 주체가 된다”며 “파업이 업무방해죄에 해당되는지를 심사함에 있어서는 헌법상 기본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엄격하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대법원 판례처럼 ‘파업’을 업무방해죄로 처벌하는 관행에 제동을 건 동시에, 외국인에게도 파업권을 인정한 것이다. ㅍ씨 등 업무방해 혐의만 있었던 3명은 무죄, 나머지 7명은 함께 기소된 다른 혐의에 대해 벌금형 및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검찰은 항소했다. 지난 4월 인천지방법원 형사2부(재판장 김양규, 배석판사 김신영·공두현)는 1심과 마찬가지로 업무방해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기타 혐의에 대해서도 1심 판결보다 낮은 형량이 선고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들이 각 파업을 시행하면서 노동 관계 법령에 의한 절차를 따르지 않은 것은 사실이나, 현재 국내에서의 외국인 근로자의 현실적 지위를 고려할 때 한국 법령을 인지하고 그에 따라 사용자와 협의하는 등 적법한 절차에 따라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기는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판결에 불복해 상고했으나, 지난 10월 대법원 3부(주심 이인복 대법관)는 이를 기각했다.

 

“국적을 불문하고 향유 주체가 된다”

재판이 진행되는 1년6개월의 시간은 낯선 땅에서 힘겹게 돈을 벌어나가던 베트남 노동자들의 삶을 흔들었다. 기소된 10명 가운데 3명은 한국을 떠났다. ㅍ씨는 1심 판결 뒤 자유의 몸이 됐지만, 벌금형이나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7명은 다시 갇혔다. 인천출입국관리사무소가 이들을 보호소로 인계해갔기 때문이다. 현행법 위반 사실이 있을 수 있으므로 강제퇴거 심사 대상자라는 것이다. 집행유예를 받은 2명은 강제퇴거를 당했다. 2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은 또 다른 노동자는 구치소에 있는 동안 고용허가제 재고용 기간을 넘겨버렸다. 고향에 남아 있던 아내의 출산이 임박해, 검찰에 출국금지 해제를 요청해 베트남으로 돌아갔다. 그는 이제 다시는 한국 땅을 밟을 수 없다.

 

명예와 시간, 누가 보상하나

원래 계획대로라면, ㅍ씨는 지난해 중순 여자친구와 베트남에 돌아가 결혼식을 올렸을 것이다. 그러나 재판이 마무리되지 않아 검찰의 출국금지 해제도 늦어졌다. 결국 한국에서 가족들 없이 결혼식을 치렀다. “한국 사람만 명예가 있는 건 아니잖나. 내가 감옥에 갔다 왔다는 걸 주위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너무 화가 난다. 한국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 그는 요즘 일마저 쉬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8월부터 사업장을 변경해 구직을 원하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사업장 명단을 제공하지 않고 고용주에게만 구직 희망 노동자 명단을 제공하고 있다. 이 때문에 ㅍ씨 등 이주노동자들은 사업장에서 연락이 오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 가난한 고향에 둔 부모를 위해 한국에서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시간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심사위원 20자평▶
한가람 ‘업무방해’ 조항으로 ‘노동권방해’는 안 돼
김보라미 업무방해죄, 폐지되지 못한다면 해석이라도 축소해야
안은정 밥 좀 제대로 먹게 해달라는 파업은 정당한 요구였다
최재홍 그들도 노동자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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