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의 수상으로 인해 김기덕 감독을 ‘박해’한 평단과 ‘배신’한 제자의 이야기가 새삼스레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고군분투해온 스펙 없는 한 사람에 대한 뒤늦은 격려라기엔 지나치다는 지적이 많다. 64회 칸영화제에서 김기덕 감독 모습. 씨네21 최성렬
“세계적인 상을 받은 영화인데, 이렇게 작은 영화관에서 상영해서 되겠나?” 김기덕 감독의 를 보려고 찾은 한 독립영화전용관에서 들은 어떤 관객의 말이다. 과연 이 관객의 말은 누구를 향해 있는 것일까, 순간 생각이 스쳐갔다. 구체적으로 그 대상을 지목하진 않았지만, 아마도 ‘한국 영화계’라는 막연한 집단에게 들으라고 하는 말인 것 같았다.
김기덕 감독의 가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자 그동안 그를 홀대했다고 여겨지는 영화계에 대한 쓴소리들이 흘러나왔다. 언론 보도의 방향도 기본적으로 ‘무시당하던 감독의 금의환향’에 초점을 맞춘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짚어주는 시선들은 부족했다.
여성주의적 비판도 음해로 매도돼
김기덕 같은 감독의 능력을 알아주지 못하는 ‘한국 영화계의 후진성’이 부각되며, 상황은 정의롭지 못한 한국 사회 일반에 대한 개탄으로 확산되는 느낌이다. 여기에 ‘영화계’를 대표하지도 않고, 대표할 수도 없는 영화평론가들이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박해하는 주체인 양 포장되는 분위기마저 있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에 대한 여성주의적 비판을 김기덕 개인에 대한 음해로 이해하는 태도가 정당한 것으로 옹호되기도 한다.
이런 광경은 과거 심형래 감독에 대한 충무로의 무시를 둘러싸고 일어난 논란을 연상시킨다. 반지성주의에 근거한 지식인에 대한 불신이 ‘영화계’라는 실체 없는 대상을 향해 폭발할 준비가 갖춰진 셈이다. 그러나 는 가 아니고, 김기덕은 심형래가 아니다. 가 처럼 대대적인 마케팅을 등에 업고 개봉관을 점령하는 일은 없을 것이고, 관객이 김기덕 감독의 불편한 영화를 적극적으로 보러 가지도 않을 것이다.
영화가 상영되기 시작하자, 베니스영화제의 대상 수상작을 감상하려고 시간을 쪼개 작은 영화관을 찾아온 관객은 침묵에 빠져들었다. 이후 구체적인 현실 문제가 김기덕 영화에 본격적으로 진입해온 것은 오랜만이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현실’을 다루었다는 진술과 달리 영화는 자본주의에 대해 말한다기보다 복수와 구원에 대한 이야기에 더 집중하고 있었다. 그토록 악마 같던 주인공이 갑자기 심경 변화를 일으키는 설정은 치밀하지 못했고, 영화에 등장하는 청계천 공장지대도 현실적이라기보다 상징적인 무대에 가까웠다.
다른 영화에 비해 대중성을 갖추었다는 말도 있지만, 의 경우처럼 관객을 유인하는 요소가 잘 갖춰져 있다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오히려 는 사회적인 발언에 취약한 김기덕 감독의 한계를 보여줬다는 느낌이다. 자본주의의 모순을 ‘도덕’의 문제로 환원해 종교적 구원으로 얼버무렸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결국 이런 영화의 주제의식은 자본주의의 문제를 나쁜 자본가 탓으로 돌리는 태도를 되풀이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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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도자 이미지 확인시킨 의상
베니스영화제의 대상은 에 주어진 것이라기보다 김기덕 감독의 열정을 치하하기 위한 것이라는 말이 설득력을 갖는 지점이다. 누가 뭐래도 지금 아시아에서 가장 주목받는 문제 감독이 김기덕인 것은 확실하기 때문이다. 아시아 영화감독들 중에서 자국 내 관객을 염두에 두고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감독이 거의 없다는 사실도 김기덕 감독의 존재감을 부각시킬 만한 근거다. 물론 김기덕 감독 자신이 한국 개봉을 하지 않고 한국 관객을 위해 영화를 만들지 않겠다고 호언했지만, 한국의 영화시장은 자국 영화 점유율이 60%가 넘는 규모를 가진 곳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
흥미롭게도 김기덕 감독은 수상식장에서 개량한복을 입고 을 불러 외신기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뒤축을 구겨 신은 신발이 화제를 낳기도 했다. 화려한 세상과 담을 쌓고 오직 자신의 세계에 열중하는 구도자의 이미지가 라는 영화의 주제의식과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수상식에서 김기덕 감독이 보여준 모습은 그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다소 이질적인 것이었다. 2006년 김기덕 감독은 영국에서 이루어진 인터뷰에서 자신을 “한국 감독”이 아니라 그냥 “감독”으로 불러달라고 요구했다. 자신의 영화에서 대사가 점점 사라지는 이유를 설명하며 “침묵이야말로 만국 공통의 언어”라고 정의하는 발언에 덧붙이는 말이었다.
이렇게 한국적인 것을 거부하고 거리를 두고자 했던 감독이 시상식에서 보여준 모습은 정반대였다. 애써 부정했지만, 그에게 한국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요소였던 것이다. 거기다가 김기덕 감독은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견해를 표명하기도 했다. 귀국 기자회견에서 “해병대와 특전사의 관계” 때문이라고 지지 이유를 밝혔는데, 과연 적절한 대응인지 논란의 여지를 남길 수밖에 없었다. 이를 통해 김기덕 감독은 그동안 자신의 영화에서 드러나는 반여성주의적 경향에 대한 비판에 개의치 않는 태도를 공개적으로 확인시켜준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런 태도가 ‘김기덕 대 한국 영화계’라는 대립 구도를 더욱 강화하는 역할을 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김기덕 영화가 맞이한 새로운 환경
김기덕 감독은 과거 을 비롯한 블록버스터 영화의 개봉관 독점과 관련한 토론에서 자신과 같은 독자적인 제작자에게도 상영관을 허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제의 본질은 바로 이것이다. 한국 영화계가 김기덕 감독을 제대로 대접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사실은 영화시장이 그를 반기지 않았던 것이다. 베니스영화제 대상 수상이 시장성 자체를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앞으로 김기덕 영화를 둘러싼 논란은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행여 ‘김기덕 대 한국 영화계’라는 거짓 전선을 확대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된다면,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영화가 끝나고 자리를 떠나는 관객의 표정은 그렇게 밝지 않았다. 김기덕 감독이 상대해야 할 문제가 이 표정들에 숨어 있다는 생각이다. 지금까지 주목받지 못했지만 앞으로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언론에 오르내릴 것이다. 김기덕 감독을 알고자 하는 시선도 더 많아질 것이다. 그의 영화가 맞이한 새로운 환경이다.
이택광 문화평론가·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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