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해군기지 반대 활동을 벌이는 서귀포시 강정마을회의 후원 계좌를 경찰이 조사하고 나섰다. 강정마을회가 기부금품 모집 등록을 하지 않은 채, 인터넷 사이트에 마을회 이름의 계좌를 게시하고 모금 활동을 벌였다는 게 이유다. 강정마을은 지난 5년간 후원계좌로 4억원을 모았고, 이 중 3억5천만원을 행정소송 비용과 벌금형을 받은 마을 주민 지원 등에 집행해왔다.
등록한 기부는 1%도 안 되는데
강동균 강정마을회장은 지난 5월 언론 보도를 보고 경찰 조사 사실을 알았다. “후원금 모금은 2007년부터 해오던 일이다. 제주 지역의 각 마을은 다 그렇게 후원금을 받아 마을 일에 쓴다. 도지사에게 등록해야 한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아무런 안내가 없다가 갑자기 불법 운운하며 수사하니 황당하다.” 법률 자문을 맡은 백신옥 변호사는 “기부금 단체가 대부분 지키지 않아 사문화된 법을 수사기관이 갑자기 들고 나와 강정마을에 적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행 기부금품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기부금품법)은 회원이 아닌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공개적 장소에서 1천만원 이상의 기부금품을 모집할 때는 지방자치단체(10억원 미만)나 행정안전부(10억원 이상)에 사전 등록하도록 돼 있다. 경찰은 강정마을회가 이 규정을 어겼다고 보고 수사하고 있다. 하지만 2010년 기준으로 보면, 한국의 연간 기부금 총액은 10조300억원인 데 비해 기부금품법에 따라 행정관청에 등록한 기부 규모는 1145억원에 그친다. 전체 모집 시장의 1% 수준에도 못 미친다.
강정마을회 후원 계좌를 개설한 강 회장은 지난 6월 경찰에서 참고인 조사를 한 차례 받은 뒤 피의자로 신분이 바뀌자 진술거부권을 행사하고 있다. 기부금품법 위반으로 기소돼 법정에 서면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성도 따져볼 계획이다. 마음에 걸리는 건 경찰이 후원금을 보낸 기부자들의 계좌까지 조회하고 신상정보를 수집했다는 사실이다. “제주경찰청에서 은행에 금융거래 정보 제출을 요구해 강정마을 계좌의 입금자 인적 사항을 파악했다. 은행이 입금자에게 최근 이를 통보해 강정마을회로 문의가 들어오고 있다.”(백신옥 변호사)
강정마을회는 ‘합법화’도 시도했다. 경찰 수사를 받는 중에 후원금 5억원을 목표로 기부금품 모집 등록을 제주도에 신청한 것이다. 모집 목적은 ‘해군기지 문제의 민주적 해결을 위한 활동 지원’ 등으로 적었다. 제주도는 행안부의 법률 검토를 받아 ‘불가하다’고 지난 6월28일 강정마을회에 통보했다. 기부금품법이 규정한 11개 분야의 사업이 아니기 때문이란다. 강정마을회는 “기부금품법이 명시한 환경보전사업, 시민참여사업, 공익사업 등에 해당한다”고 설명했지만 행안부 관계자는 이렇게 반박했다. “공익활동이라면 대다수가 찬성하고 지지해야 하는데 찬반 의견이 엇갈리는 사안이라서 갈등이 커질 위험이 있다. 이런 문제는 불특정 다수에게 후원금을 모집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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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부터 합법적으로 대중 후원금을 모집할 길이 강정마을에는 없었다는 뜻이다. 강정마을회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후원 계좌를 내렸고 후원금도 크게 줄었다. 백신옥 변호사는 “대법원에서 패소한 행정소송 탓에 제주도가 강정마을회에 소송 비용 3469만여원을 청구했다. 삼성물산 등도 업무방해죄로 주민들을 고발하고 손해배상금도 청구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강정마을이 ‘빚더미’에 올라앉을 날이 다가오고 있다.
정부가 기부금품법을 시민사회 활동을 억누르는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등록제’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허가제’로 기능하고 있어서다. 지자체나 행안부가 기부사업 내용을 멋대로 판단해 등록을 거부할 수 있다. 심사위원회도 따로 없다. 공무원이 결정하면 그만이다. 또 기부금품 등록 비율이 1% 미만이라서 특정 사회활동을 형사처벌하는 수단으로도 검찰이 활용한다.
강정마을도, 촛불시위도… 못박아 ‘거부’
2008년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활동이 그랬다. 서울중앙지검은 촛불집회 과정에서 회칼 테러를 당해 시민의 치료비를 모금한 김아무개(46)씨를 기부금품법 위반과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1천만원 이상을 모금했는데 기부금품법에 따른 등록을 하지 않았고 치료비 외에 택시비 등으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또 촛불집회와 관련한 광고를 게재하려고 기부금 1900만원을 모집한 대학생 김아무개(27)에게 세 차례나 구속영장을 청구하기도 했다.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사회활동에 대해서는 기부금품을 모집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이런 메시지를 이제는 법률에 못박기로 했다. 행안부는 8월3일 기부금품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명분은 법률명에 ‘기부문화 활성화’를 추가하고 기부금품 모집을 원칙적으로 등록해주고 일부만 규제하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바꾼다는 것이다. 악마는 각론에 숨어 있다. 등록할 수 없는 규제 사업 항목이 문제다. △영리·정치·종교 활동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 △국가 또는 지자체 정책에 대한 찬성 또는 반대를 목적으로 하는 사업 △재판·수사 중인 사건에 관여할 목적으로 하는 사업 △법령 위반 등 불법행위를 목적으로 하는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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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변호사모임 ‘공감’의 염형국 변호사는 “정부 정책에 대한 시민사회의 여론 형성을 원칙적으로 틀어막겠다는 취지”라고 평가했다.
입법예고안이 알려진 7월24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진선미 민주통합당 의원이 맹형규 행안부 장관에게 물었다.
“시민단체라는 것이 어떤 역할을 한다고 보십니까?”
“정부가 하지 못하는 구석구석의 국민이 필요로 하는 부분들의 일을 하는 단체로 알고 있습니다.”
“시민단체는 국가 정책이 제대로 가는지에 대한 감시 역할을 하기 때문에 당연히 찬성하거나 반대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정부 입법예고안은) 추상적이고, 광범위하게 정부 정책에 찬성과 반대하는 경우에는 기부금품을 모집할 수 없는 걸로 돼 있다. 이유가 뭡니까?”
“사실상 시민단체의 역할을 마비시키겠다는 의도인 게 너무나 명백하군요.”
시민사회단체의 반발은 거세다. 한상민 녹색연합 협동사무처장는 “어처구니가 없다”고 했다. “시민사회의 활동 근거, 시민의 사회참여를 아예 부정하겠다는 발상이다. 환경보호 활동하다가 정부가 이에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정책을 뒤늦게 내놓으면 그 활동을 중단해야 한다는 얘기인가?”
박영선 참여사회연구소 실장은 기부금품법 자체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시민의 자발적 기부 참여 행위를 국가가 차단하고 특정 영역에 가둘 필요가 없다. 무질서한 기부금품 요구나 난립은 형법으로 규율하고 투명성을 확보하는 사후 관리에 집중하면 된다.”
단속에 초점 맞춘 1951년 철학 그대로기부금품법은 사실 태생적 한계를 갖고 있다. 애초에 기부활동을 금지하려는 목적으로 제정됐기 때문이다. ‘기부의 자유’ ‘기부의 활성화’를 열망하는 21세기 기부문화와는 어울리지 않는 옷이다.
1951년 한국전쟁으로 사회가 혼란스러울 때 민간단체들이 반강제적 모금행위를 벌여 재산권을 침해해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이에 ‘누구든지 기부금품 모집을 할 수 없다’는 기부금품모집금지법을 제정했다. 다만 ‘국제구호, 천재지변 구호, 자선사업 등 법률이 규정한 공익사업에만 기부금품 모집을 허가한다’는 단서를 붙였다. 문제가 발생했다. 1997년 7월 ‘북한 어린이 살리기 의약품지원본부’가 북한 주민을 도우려고 현금과 의약품을 모집하겠다고 나섰는데 정부가 불허했다. 지원본부는 행정소송을 냈고 대법원은 원고 승소 판결했다. “북한이 반국가단체라는 사정이 기아와 질병으로 고통받는 북한 주민에 대한 구호와 지원 자제를 금할 명분이 되지 못한다. 국제구호에 유독 북한 주민만 제외할 이유가 없다.” 결국 1998년 5월 이 법률은 헌법재판소에서 생명력을 잃는다. △행복추구권을 제한하고 △기부행위의 허가 여부를 행정청의 재량 행위로 하며 △기부행위의 모집 목적을 지나치게 제한해 위헌이라는 결정이 나왔다.
기부금품법 모집 허가 범위를 넓히고 그 사용 결과를 공개하도록 하는 조항을 추가한 개정안이 만들어졌는데, 이 법률도 2010년 헌재 심판대에 올랐다. 이번에는 합헌이었다. “기부금품 모집의 권리를 부정하고 있지 않으며 옛 기부금품법과 달리 금지가 아니라 과잉모집 규제와 적정사용에 목적을 둔” 법률이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조대현 당시 재판관은 위헌이라고 반대 의견을 냈다. “기부행위는 기부자의 자유 의사에 따라 이뤄지는 것으로 모집 목적이 위법행위가 아니면 사회적으로 해로운 행위라고 볼 수 없다. 모집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위법행위는 형법 등이 규제하고 있으므로 기부금품의 모집을 금지하거나 허가 대상으로 삼을 필요가 없다.” 시민사회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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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이 이러한데도 행안부는 정부 정책에 찬성·반대하는 기부금품 모집을 규제하는 새로운 입법예고안을 냈다. 염형국 변호사는 “국민의 자유로운 기부를 국가가 지원하고 장려하는 방향으로 기부금품법을 운영해야 하는데, 기부활동을 입맛대로 규제·통제하겠다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부행위는 ‘표현’이며, 기부를 규제하는 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법률가들도 있다. 박경신 고려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기부할 것을 권고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로서 보호받아야 한다”며“상업적 거래를 권고하는 광고가 표현의 자유로 인정받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사무총장을 지낸 정연순 변호사는 기부행위를 “정치적 표현”이라고 진단했다. “1970~80년대는 시위하며 의견을 표현했고 시민단체가 생긴 1990년대에는 회원으로 가입해 회비를 내 사회에 참여했다. 하지만 이제는 관심 있는 사안에 모금을 하며 사회운동을 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평범한 일상을 살다가 강정마을에 후원금을 보내고 희망버스를 타며 사회에 연대감을 표현하는 거다. 특정 기부행위를 봉쇄하면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밖에 없다.”
국가 주도 사업은 ‘기부 특혜’지난해 12월 민변이 2주 만에 4억8097만원(9038명)의 후원금을 모은 일명 ‘쫄지마 기금’이 그런 사례다. 정식 명칭은 ‘표현의 자유 옹호 및 증진을 위한 공익변론기금’인데,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내세우다 공직선거법 위반, 명예훼손 등 민형사상 피소된 시민들을 변론하려는 기금이다. 팟캐스트 에 출연하던 정봉주 전 민주당 의원이 1년 징역형을 받아 수감된 게 계기였다. 민변은 기부금품법에 따라 지난해 11월에 기부금품 모집 등록을 서울시에 신청했고 서울시가 이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최근 입법 예고된 기부금품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다면, ‘쫄지마 기금’과 비슷한 공익변론기금은 앞으로 등록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 있다. 개정안에는 ‘재판·수사 중인 사건에 관여할 목적으로 하는 사업’의 등록을 받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어서다.
기부금품의 또 다른 문제는 형평성을 잃었다는 점이다. 정치자금법, 사회복지공동모금회법, 문화예술진흥법, 한국장학재단설립법 등 10개 법률에는 기부금품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국가가 주도하거나, 국가 정책에 따른 성금이나 기부금은 손쉽게 모집할 수 있는 ‘특혜’를 누리는 셈이다. 반면 매년 주무 관청에 사업보고서를 내고 국세청의 공시 의무도 이행하는 공익법인은 기부금품법을 추가로 따라야 한다.
공익단체도 등록을 거의 하지 않는다. 2010년 기준으로 정부에 등록된 기부금 단체는 2만9132개, 공익단체는 3164개인데, 불특정 다수에게 1천만원 이상을 모집한다고 등록한 건수는 97건에 그쳤다. 기부금 단체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법을 따르는 게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개별 사업 건별로 등록해야 하는데 각 사업이 1천만원이 넘을지 사전에 예측하기 어렵다. 건별로 등록할 인력도 없다. 기부금품법은 모집 비용을 최고 15%만 쓰라고 하는데 단체 규모가 작을수록 지키기 어려운 규정이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기준(15∼25%)에도 한참 못 미친다.” 그런데도 처벌 강도는 날로 높아진다. 기존의 3천만원 이하 벌금형, 3년 이하의 징역에서 올해부터는 지정기부금단체 자격 취소까지 가능하게 됐다.
‘잠재적 범죄자’가 넘쳐나다 보니 고소·고발이 잇따른다. 지난해 ‘제주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 범도민추진위원회’가 관련 캠페인을 열어 후원금 56억7200억원을 모금했는데 기부금법에 따라 행정관청에 등록하지 않았다. 강동균 강정마을회장만 기부금품법 위반 혐의로 경찰이 조사하자 제주 시민단체들이 부만근 범도민추진위원장을 고발했다. 지난 3월 정아무개씨가 노무현재단, 아름다운재단 등을 불법 모금단체로 고발했고 동물보호단체도 경찰 조사를 받아야 할 처지에 놓였다. 박아무개씨가 적법한 모금과 투명한 모금 사용을 목적으로 동물보호단체 20곳을 8월24일 경찰에 고발했기 때문이다. 가수 이효리씨가 에세이 의 인세를 전액 기부해 화제를 모았던 동물보호단체 카라의 관계자는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기부금품을 모집하려면 서울시에 등록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다”며“경찰에 고발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번달부터 등록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기부금 단체의 문의가 많이 들어온다. 8월23일까지 등록 신청한 건수가 44건으로 지난해(41건)보다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전체 기부금 규모의 1%도 되지 않는 수치다.
막무가내 고소·고발 잇따라시민사회단체도 대안을 마련하고 나섰다. 시민사회 대화마당을 8월27일 아름다운재단 1층에서 열어 시민사회 활동을 위축시킬 개정안의 ‘등록 금지 조항’을 전면 폐지하고 기부문화를 활성화할 새로운 대안 법안을 모색할 계획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9월11일까지 입법 예고 기간이라서 시민사회가 의견을 주면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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