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리(동티모르)=글·사진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newscnx@hotmail.com
지난 7월1일 아침 9시, 딜리의 전 총리 사저. 신문을 뒤적이던 그이가 반갑게 맞았다. 2006년 총리 집무실에서 인터뷰할 때와는 영 딴판이었다. 긴장이 사라지고 웃음과 여유가 묻어났다. 동티모르 초대 총리(2002~2006년)를 지낸 마리 알카티리는 동티모르독립혁명전선 사무총장이다.
“하무스 오르타의 국민통일정부 절대 반대” -요즘은 편안해 보인다. 다들 당신이 변했다고 하던데, 그런 것 같기도 하고.=변했긴, 본디 내 모습이지. 혁명전선이나 총리 때는 상황이 달랐으니까.
-선거판과 차기 정부 이야기부터 해보자. 누가 이기든 과반이 되기는 불가능할 거고, 당신이 이기더라도 현 샤나나 구스망 총리 정부와 연립한 4개 정당을 빼내와야 다음 정부를 구성할 수 있을 텐데 쉽지 않겠더라. 특히 열쇠를 쥔 제3당 민주당(PD)이 당신을 탐탁잖게 여겨왔으니.=정반대로 읽고 있다. 민주당을 포함해 4개 정당을 다 만나봤다. 모두들 구스망의 독단적 태도와 무정견·무정책에 질려 다시는 손잡지 않겠다고 하더라. 연립이란 건 적도, 공격 행위도 아닌 민주주의 상식이다. 공감대를 만들면 누구와도 만날 수 있는 게 연립이다.
-조제 하무스 오르타를 만났더니, 다음 정부는 모든 당이 함께하는 ‘국민통일정부’로 가자는 아이디어를 내놓더라. 문제는 견제할 야당이 없어진다는 건데, 어떻게 생각하나?=절대 반대다. 그럴 바에야 일당제가 낫다. 그건 현재 구스망이 이끄는 5개 당이 뭉친 의회주류동맹(AMP) 연립정부가 저지른 실수를 반복하자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하무스 오르타는 구스망과 당신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고 하던데?=천만에, 절대 그런 적 없다. 모두 함께 가자는 말이었지 함께 정부를 구성하자는 것은 아니었다.
-총리로서 정부를 이끌 때와 야당 생활 5년을 비교하면 어떤가?=야당 하는 게 좀더 쉽긴 한데, 온통 좌절감이지 뭐. 정부가 잘못하는 게 뻔히 보여도 조절해줄 수 없으니까.
-말이 난 김에, 구스망 정부 5년은 어떻게 보았나?=정부란 게 없었다. 오직 구스망의 지휘만 있었지. 실패다.
-구스망 정부의 경제정책은?=경제정책이 아예 없었다. 오직 구스망이 모든 원천이었을 뿐. 계획도 감시도 없었다. 계산도 없었다. 그러니 공사 계약이든 수입이든 모든 게 비용 초과였다.
-2006년 구스망은 당신의 정부를 ‘부패정부’라며 쫓아냈다. 비교해볼 만하다.=구스망 정부가 지난 2년 동안 우리를 철저히 뒤졌다. 근데 아무것도 나온 게 없잖아. 오히려 구스망 정부에서 투명하게 드러난 건 오직 부정부패뿐이다. 폭발적으로.
-이쯤에서 지난 3월 대통령 선거에 대해 말해보자. 구스망이 하무스 오르타 대신 타우르 마탄 루아크를 지원했는데, 그걸 어떻게 읽고 있나?=구스망이 무소속 후보를 택한 거다. 정부에 늘 우호적이진 않았던 하무스 오르타를 구스망이 싫어했다. 근데 마탄 루아크도 강한 성격이라 앞으로 구스망이 쉽지 않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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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망을 쏜 자를 알고 있다, 하지만…”
-어쨌든 하무스 오르타는 여전히 구스망을 지지하던데, 강력한 지도력까지 거론하며.=그게 틀렸다. 구스망이 안정과 평화를 이뤘다는 것도 논쟁거리다. 그건 구스망의 지도력 때문이 아니다. 우리 독립혁명전선은 2006년 구스망처럼 결코 사람들을 동원해 정부를 공격하지 않았다. 만약 우리가 수천 명의 사람을 동원해 구스망 정부를 공격했다면 결과가 어땠겠나?
-좋든 싫든 구스망과 하무스 오르타의 애증관계를 건너뛰고는 여기 정치판을 읽기 힘든데.=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한다. 독립혁명전선에서 떨어져나간 그 둘은 조직이 없으니 서로 의지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근데 하무스 오르타가 이번에는 민주당 지지자로 나섰다. 판에 영향이 있겠나?=민주당 참가도 아니고, 그냥 여러 당에 이름만 팔고 다니는 중이다. 독립혁명전선에도 줄을 댔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그이 방식이 혼란스러워 우리가 거부했다.
-말이 좀 다르다. 하무스 오르타는 민주당뿐 아니라 당신 독립혁명전선도 ‘2번’(1번은 당헌상 대표인 의장, 2번은 실권자인 사무총장 순번)을 제의하며 참여를 요청했다던데?=(크게 놀라며) 함께하자는 정도였지 무슨 2번을? 상식적으로 2번은 절대 불가능하다. 그런 당치도 않은 말을.
-당신에겐 뼈아플 2006년을 되짚어보자. 당시 당신이 내게 말했듯 지금도 ‘쿠데타’라 부를 수 있고, 이제 그 ‘안팎 세력’의 정체를 밝힐 수 있는가?=늘 원칙을 따르는 게 내 정치 역정이었고, 그런 관점에서 보면 쿠데타다. 그 안팎 세력의 정체는 사법제도가 답해줘야 한다.
-2008년 대통령과 총리 암살 기도 사건을 말해보자. 내 의문은 오히려 그런 엉터리 정부 발표를 놓고 왜 야당 지도자인 당신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느냐는 대목이다.
=잘못 알고 있다. 구스망 총리 저격 건은 내가 성명까지 발표하면서 법정이 나를 불러주기를 기다렸다. 결국 법정이 나를 부르지도 않은 채 사건을 마무리해버렸다.
-구스망 총리는 누가 쏘았나?=구스망 총리가 탄 자동차에 총탄 14발이 박혔다. 근데 구스망을 비롯해 타고 있었다는 4명이 모두 온전했다. 믿을 수 없다. 나는 누가 쏘았는지 알고 있다.
-그러면 불러주기를 기다릴 게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 나설 수도 있지 않은가? 왜 당신을 포함한 관련자들조차 제대로 말을 못하는가?
=당신이 여기서 정치놀음을 파보겠다면 아주 조심해야 한다. 지나치게 밀어붙이지 않는 게 좋다. 당신의 원칙을 접으란 건 아니지만, 아직 여긴 진짜 민주주의가 아니니까….
그들의 ‘빨갱이’ 공격에 대해
-당신조차 불안감을 느끼는가?=물론이다. 다만 그런 분위기를 무시하려 애쓸 뿐이지.
-당신이 다음 정부를 구성한다면, 이 사안을 다시 의제에 올릴 가능성이 있나?=가능성이 있을 뿐 아니라 반드시 되돌려놓는다. 확신한다. 그걸 정치적으로만 다룰 게 아니라, 차기 정부에서 더 철저하게 수사해 법정으로 넘기도록 만들 것이다.
-아무튼 그런 정치 혼란 과정에서 당신이 가장 가슴 아팠을 대목은 2006년 구스망과 하무스 오르타가 당신을 ‘공산주의자’(Marxist-Leninist)로 몰아붙였을 때가 아닌가 싶은데. 그이들도 한때는 모두 사회주의자임을 자랑했던 터라.=그건 사상과 양심의 자유에 해당하지만, 워낙 말썽이 많아 입에 올리기도 싫다. 구스망은 마르크시스트레니니스트당을 만든 장본인이었지만 3년 뒤 제 발로 떠난 기회주의자였고, 요즘은 포퓰리스트로. 하무스 오르타는 가끔 사회주의자 성향을 보이는 자유주의자쯤으로.
‘21세기 최초 신생공화국’은 한반도와 함께 여전히 ‘빨갱이’ 노이로제에 시달리고 있다. 전직 총리도 예외가 아니다. 공화국엔 누구도 속 시원히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없다. 전직 총리도 예외가 아니다. 공화국의 아침은 아직 먼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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