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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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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처럼 강력한 여당”

등록 2012-07-26 16:55 수정 2020-05-03 04:26
노벨평화상 수상자이자 동티모르 총리와 대통령까지 니낸 조제 하무르 오르타는 첨예한 정치현실에 대해선 말을 아끼면서도, 여전히 ‘하고 싶은 일’은 많아 보였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이자 동티모르 총리와 대통령까지 니낸 조제 하무르 오르타는 첨예한 정치현실에 대해선 말을 아끼면서도, 여전히 ‘하고 싶은 일’은 많아 보였다.

딜리(동티모르)=글·사진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newscnx@hotmail.com

지난 6월30일, ‘단독 인터뷰’라던 약속이 라디오 기자에다 외교사절까지 끼어드는 바람에 딴 길로 새버렸다. 아웅산 수치에다 술 이야기 따위로 시간을 죽이는 ‘라디오’와 ‘외교’,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떠나는 그이를 붙잡았다. “인터뷰 이렇게 주면, 나도 당신도 엉망 되고 만다.” 그렇게 해서 7월2일 아침 9시 대통령 사저로 다시 약속을 잡았다.

그러고 보니 한동안 그이를 만나지 못했다. 2006년 정치 위기 뒤니까 꼭 6년 만이다. 그사이 기가 한풀 꺾인 게 아닌가 싶다. 혈색도 말투도 많이 가라앉은 듯싶고. 1996년 카를로스 벨로 주교와 공동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조제 하무스 오르타는 동티모르 제2대 총리(2000년 6월~2007년 5월)와 대통령(2008년 4월~2012년 5월)을 지냈다.

구스망의 연임 요청 거절하자 관계 틀어져

-이틀 전, 시간 없어 지나친 것부터 짚고 가자. 동티모르에 강력한 지도력이 필요하다며 박정희와 마하티르 모하마드(말레이시아 전 총리)·리콴유(싱가포르 전 총리)를 들었다. 철 지난 체제, 위험한 발상이다. 지금 동티모르는 견제와 균형을 갖춘 시스템이 돌아가도록 만들어야 할 때다.

=견제와 균형, 있다. 대통령제와 내각제를 섞은 것도 그런 의미고, 반부패위원회 같은 독립기구들이 정부 감시도 해왔고. 내 뜻은 시민사회와 야당에 겸손할 줄 아는 강력한 여당인데, 그게 박정희의 인권유린 같은 건 아니고.

-샤나나 구스망과의 관계도 다시 짚고 가자. 이틀 전 당신은 구스망과 이견이 없다고 했다. 근데 왜 틀어졌고, 지난 3월 대선에선 구스망이 왜 당신 대신 타우르 마탄 루아크 현 대통령을 지원했나?

=이견 없다. 우린 정치적 실용주의자고 인간적으론 따뜻한 가슴을 지녔고. 다른 점을 꼽자면, 나는 조직 중심인데 구스망은 조직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변칙이 많았다.


“내가 너무 천진난만했다. 그 무렵 나는 중재하고자 반군 지도자 알프레도 레이나도 소령을 두어 번 만났다. 한번은 미군 장교와 함께 산으로 그이를 찾아가기도 했고…. 나는 구스망과 알프레도가 관계를 맺고 있을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다.”
-그런 걸로 구스망이 당신 지지를 철회했다고 보기는 힘든데?

=구스망은 내게 대통령 연임을 거듭 요청했다. 6개월 전에도 그랬고. 근데 나는 그 자리에 5년 더 있을 만한 동기를 못 찾아 결정을 미뤘다. 대통령 일이란 게 결혼식장·장례식장에 얼굴을 내밀고 넘어온 법안에 사인하는 게 다다. 결과는, 구스망이 나를 끝까지 기다려주지 않았다. 내가 대선 참여를 결정했을 때 그이는 이미 마탄 루아크 지지를 선언해버렸으니까.

-근데 당신은 왜 민주당(PD) 선거운동 하고 다니나? 당원도 아니면서.

=그쪽은 젊은 세대다. 학생운동 주축들과 교육받은 이들이 많고. 구스망의 티모르재건국민회의와 마리 알카티리의 동티모르독립혁명전선을 넘어 미래 정치 대안이 될 수 있다.

-누가 이기든 민주당은 다음 정부 구성에서 ‘킹메이커’ 노릇을 할 건데, 연립정부 참여 조건으로 현 구스망 정부에 득실대는 반독립파 장관과 고위직을 쓸어낼 카드를 꺼낼 건가?

=구스망 정부에 모호한 이들이 너무 많다. 관광통상산업장관 질 다 코스타는 반독립파 민병대 대변인까지 했고. 근데 이번에 더 많은 반독립파를 끌어들였다. 내가 민주당에 명령할 순 없지만, 그런 인물들이 들어온다면 나는 연립정부에 참여 안 한다.

-이틀 전엔 직책에 관심 없다더니, 정부 참여 조건을 거는 걸 보니 욕심 있어 보인다. 외무장관, 국방장관, 총리에다 대통령까지 다 해봤는데 뭐가 더?

=자리 욕심 없다. 꼭 필요하다면,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특사 같은 걸로 한 1~2년 일하며 동티모르가 아세안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돕는 일 같은 게 있겠지만….

“너무 천진난만, 순진했다”

-이제 정의와 역사로 넘어가자. 2006년 위기 때 당신과 구스망은 알카티리 정부를 ‘부패한 정권’이라 공격했고 기어이 쫓아냈다. 구스망 정부와 알카티리 정부의 부패상을 비교해보라.

=알카티리 때는 부정이랄 게 없었다. 첫해 예산이 기껏 6500만달러였으니, 훔쳐갈 돈도 없었고 부정부패로 기소당한 예도 없었다. 구스망 정부 들어 예산이 20배나 튀더니 부정부패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최근 법무장관이 법정에 섰듯.

-그러면 2006년 알카티리 정부를 부패로 몰았던 게 정치적 공격이었음이 드러났네. 어쨌든 당신은 2006년 위기를 ‘제3세력’이 배경인 ‘쿠데타’라고 했다. 6년 지났다. 이제 말할 수 있나?

=상황이었을 뿐, 어떤 세력도 없었다. 반군 탓에 정부 기능이 마비된 가운데 총리·대통령·군사령관이 불협화음을 내며 안보 위기를 맞았던 국내 문제였고, 우리 지도자들 문제였다. 이론적으론 그 ‘제3세력’이란 게 오스트레일리아를 가리킨 셈인데, 사실은 아니다.

-2006년 정치 위기 뒤, 구스망이 알카티리를 몰아내는 과정을 보면 당신도 결국 한몫한 셈인데?

=내가 너무 천진난만했다. 그 무렵 나는 중재하고자 반군 지도자 알프레도 레이나도 소령을 두어 번 만났다. 한번은 미군 장교와 함께 산으로 그이를 찾아가기도 했고. (이 대목 뒤부터는 ‘오프더레코드’를 요구했다. 오스트레일리아 개입설은 이미 알려졌지만 미군 관련 사실은 처음 드러났다.) …나는 구스망과 알프레도가 관계를 맺고 있을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다.

-믿기 힘들다. 나 같은 기자도 초동 단계부터 의심을 품었던 대목인데 권력 핵심에 있던 당신이 몰랐다는 건? 그 둘은 처음부터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

=다 맞는 말이다. 어쨌든 내가 너무 순진했다. (그이는 탁자 위에 올려둔 내 전화기를 휴지로 닦기 시작했다.) 구스망이 알프레도에게 서부지역 군인 이탈 상황을 가서 확인하라는 명령까지 할 정도였고…. (갑자기 놀라면서) 미안, 미안, 내 전화긴 줄 알고.

-아니다. 닦아줘서 고맙다. 그렇고, 2008년 대통령이었던 당신을 누가 쐈나?

=몇 주 전 알프레도 여자친구였던 안젤리타 피레스가 찾아왔다. 그이 말로도 알프레도가 믿었던 유일한 사람이 나라고 했다. 알프레도가 나를 쏠 이유가 없었다. 구스망과 알프레도의 관계가 틀어져 파국으로 치달을 때도 내가 알프레도 사면을 외치며 중재했던 건 모두가 안다.

-알지. 대통령 살해하겠다는 자가 중무장 경호대가 설치는 대통령 집을 목표로 삼겠나? 대통령이 매일 아침 경호원 둘만 데리고 해변을 달린다는 걸 다 아는데. 해서 소설이란 거다.

=그렇지. 알프레도가 여기서(사건 현장 가리키며) 살해당하기 전 대통령이 불러서 왔다고 했다던데, 난 전화한 적 없었다. 나와 알프레도를 쏜 이들이 특별한 의도가 있었다고 본다.

“증거가 있더라도 다시 꺼낼 수는…”

-당신이 그 내막을 모두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근데 왜 그냥 묻어버렸는지가 더 의심스럽다. 공화국 역사에 가장 중대한 사건이다. 기록하자.

=2006년 위기와 2008년 암살 기도가 한 몸인 건 분명하다. 관련자 책임을 묻고, 기록해야 옳다. 나도 확실한 증거를 잡기가 어렵다. 물론 증거가 있더라도 지금 들이댈 순 없지만….

-두려움인가?

=바로 그거다. 공포다. 사회 분위기가 그 사안을 다시 꺼낼 만한 상황이 아니다.

-언제까지 침묵할 건가?

=앞으로 5년은 더(구스망의 재임 5년을 염두에 둔), 이쯤에서 닫자.

해도 해도 끝없이 맴도는 이야기, 아직은 때가 이른 모양이다. 동티모르에서 펄펄 살아 있는 현대사를 입에 올린다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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