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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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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한국에서 벌어진 일이다

자본과 노동의 세계화 현장, 뉴질랜드 EEZ… 뉴질랜드 정부가 어획량 등 규제하지만,
선상 노동·인권 문제는 선박 소속국에 속해
등록 2012-05-16 19:51 수정 2020-05-03 04:26
‘오양맛살’로 유명한 오양수산이 2007년 ‘대림선어묵’으로 유명한 사조산업에 인수돼, 수산업계의 대기업 사조오양이 태어났다. 사조오양 본사 모습.

‘오양맛살’로 유명한 오양수산이 2007년 ‘대림선어묵’으로 유명한 사조산업에 인수돼, 수산업계의 대기업 사조오양이 태어났다. 사조오양 본사 모습.

자본주의의 바다는 넓다. 뉴질랜드 배타적 경제수역(EEZ)은 그래서 넓은 바다다.

뉴질랜드에서 어업은 네 번째로 큰 산업으로, 해마다 15억달러(약 1조7천억원)의 매출을 가져다준다. 그러나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등 어업 대국의 조업 규모가 양적으로는 더 크다. 뉴질랜드의 특별함은 규모가 아닌 다국적성에 있다. 학자들이 즐겨쓰는 ‘자본과 노동의 세계화’라는 용어는 뉴질랜드 EEZ에 그대로 들어맞는다.

한국 어선, 뉴질랜드에서 문제되는 이유

뉴질랜드 EEZ에서 외국 원양어선이 조업한 역사는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뉴질랜드 자국 어선과 어부만으로는 물고기를 다 잡을 수 없었다. 국가 간 계약을 통해 면허를 받은 일본, 한국, 옛 소련의 원양어선이 조업하기 시작했다. 1986년 쿼터관리제도(Quarter Management System)가 도입됐다. 개별 원양업체와 선주들이 일정 비용을 뉴질랜드 정부에 내면 잡을 수 있는 어획량을 부여받는 방식이다. 오양70호, 오양75호, 신지호 등이 모두 쿼터관리제도에 따라 조업해왔다. 외국 어선의 조업은 오양75호처럼 1년 단위 조업 계약과 1년 중 수개월만 조업하는 단기 조업으로 나뉜다. 미국, 캐나다 등 대부분 어업 대국의 EEZ에서는 자국 어선만 조업한다.

한국 원양어선이 유독 뉴질랜드에서 사고를 내고, 그 사고가 국제적 이슈가 되는 토대가 여기에 있다. ‘어부가 물고기를 낚는다’는 행위는 단순하지만, 어부와 어선의 다국적성이 어장 관리를 복잡하게 한다. 뉴질랜드 정부는 외국 원양어선에 대해 주제별로 기준과 규제를 제시하고 있다. 먼저 어장 관리(Fishery Management)다. 해마다 특정 어종의 어획량 상한선(TAC·Total Allowable Catch)을 원양업체에 부여한다. 물고기 멸종을 막으려는 장치다. 국제조약에 따라 뉴질랜드 정부는 외국 어선이 어획량 상한선을 지켰는지 조사하고 징계할 권한을 갖는다. 뉴질랜드 정부는 안전 기준 강제권도 갖는다. 외국 선박은 선원들의 안전을 지키고 선박을 안전하게 운항해야 한다.

그러나 선상의 노동·임금·인권 문제에 관해 뉴질랜드 정부는 법적 권한이 없다. 행동강령(Code of Practice)을 지킬 것을 권고할 뿐이다. 이 문제에 대한 조사권과 형사처벌 권한은 오로지 선박이 소속된 나라에 있다. 그러므로 인도네시아 어부 사건은 사실상 대한민국 영토에서 벌어진 것과 같다.

한국 원양업계 전체가 부인하지만

수년 전부터 뉴질랜드 사회에서는 국부 유출을 이유로 외국 어선의 조업을 폐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오양70호와 오양75호 사건은 이런 와중에 벌어졌다. ‘뉴질랜드 어업자본이 오양 사건을 이용하려 일부러 과장하는 것 아니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다른 나라의 원양어선들은 외려 뉴질랜드 정부의 기준을 따름으로써 논란을 피하고 있다. 동원산업도 뉴질랜드 EEZ에서 단기 조업을 해마다 벌인다. 동원그룹에 ‘최근 5년간 뉴질랜드 정부로부터 제재를 받은 사실이 있느냐’고 물었다. 동원그룹은 “전혀 없다”며 “동원 소속 원양어선에서는 (외국인 선원에 대한) 그런 사건이 전혀 없다”고 답했다. 그러나 뉴질랜드 정부의 대응 수위는 업계 자율에 맡길 수준을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자카르타(인도네시아)=글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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