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어디까지 뻔뻔해질 수 있을까?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은 그 자체로도 경악할 만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 일로 징역까지 살고 나온 이들에게서 잘못을 뉘우치는 흔적은 조금도 찾아보기 어렵다. 이인규 전 공직윤리지원관이 지난해 5월 출소하자마자 와 한 인터뷰에서 “진충보국(盡忠報國·충성을 다해 나라의 은혜를 갚음)의 마음으로 일했을 뿐인데…”라고 말한 것이 대표적이다.
사법부를 준엄히 꾸짖은 김충곤
이 입수한 재판 기록에서도 이런 ‘마음’은 어렵지 않게 드러난다. 특히 이인규 전 지원관과 함께 징역 10개월을 살고 나온 김충곤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점검1팀장은 2010년 12월23일 서울고등법원에 제출한 항소이유서에서, 이명박 대통령 비판 내용이 담긴 ‘쥐코 동영상’을 개인 블로그에 올려 사찰을 당한 피해자 김종익씨를 ‘빨갱이’로 매도한다. “바로 김종익 같은 자들이 ‘미국 쇠고기를 먹으면 광우병 걸린다’ ‘천안함 사건은 북조선이 일으킨 것이 아니다’ ‘연평도 포격은 남조선이 불필요한 군사훈련을 하였기 때문이다’라고 선전하는 반역의 무리”라는 것이다. 김 전 팀장은 김종익씨가 “이 나라 친북 세력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근거는 문화방송 〈PD수첩〉 인터뷰 때 화면에 비친 등과 같은 사회과학 서적이다. 그런데 이 책들은 1980~90년대 합법적으로 출간돼 유통된 것들이다.
김 전 팀장은 이런 색깔론에서 한발 더 나아가, 사법부를 꾸짖었다. “(김종익씨는) 이 나라의 경제체제 안에서 불로소득을 누리는 귀족 좌파”인데, “대한민국을 건국부터 깡그리 부정하는 친북세력은 호의호식하며 큰소리치고, 국가의 안위를 걱정하며 박봉에 나라를 지켜보겠다고 최선을 다한 피고인들은 차디찬 감방에서 신음하여야 합니까? 도대체 이 나라의 정의는 어디에 있으며, 법은 누구의 편입니까? 실로 개탄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라는 것이다. 자신들이 자행한 불법사찰 때문에 하루아침에 회사와 지분을 다른 사람 손에 넘겨주고 우울증에 시달린 이를 ‘가해자’로 만들고, 자신이 피해자라고 자임한 셈이다. 적반하장이다.
자신들의 사찰을 정당화하려는 태도는, 불법사찰이 알려진 뒤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작성했다가 검찰에 압수당한 문건에서도 확인된다. ‘김종익 KB한마음 주식 특혜 매수 의혹’이라는 제목의 문건에서 공직윤리지원관실 직원들은 “국회에서 의혹 제기” “김종익의 좌파 성향 실체 및 불법행위 아킬레스건을 적시함으로써 배후세력들의 자진 이탈 유도” 등을 ‘대책’으로 제시했다.
의원들, 민간인 매도해도 무혐의
공교롭게도 고흥길·김무성·조전혁·조해진 당시 한나라당 의원은 공직윤리지원관실과 똑같은 시각으로 김종익씨를 몰아세웠다. “좌파 성향의 단체에서 활동을 해온 사람”(김무성 의원), “특정 이념에 깊이 빠진 편향된 사고의 소유자”(조해진 의원)라는 것이다. 조전혁 의원은 김씨가 비자금을 조성해 참여정부 실세들에게 전달했다며 검찰 수사를 의뢰하기도 했다. 김씨는 이들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지만, 검찰은 최근 4명 모두를 무혐의 처분했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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