ㅎ씨는 평소 지하철을 자주 이용하지 않았다. 2003년 2월18일 운전교습을 받으러 가는 길에 지하철에 올랐다. 참사를 겪고 병원에 석 달 동안 입원했다.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생각했다. 가을부터 후유증이 왔다. 20대 중반의 건강한 여성이던 ㅎ씨는 더 이상 혼자서 잠들지 못했다. 부모의 손을 잡고서야 잠들었다. 그해 대구 유니버시아드 경기가 열렸다. 개막식을 보러 갔다. 행사가 끝나고 사람들 틈에 끼어 출구로 향했다. 갑자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온몸이 마비되는 것처럼 느꼈다. 공포가 밀려왔고, 그 자리에서 울기 시작했다. 성악을 전공한 ㅎ씨는 더 이상 노래를 부르지 못했다. 목소리는 정상이었지만 긴 호흡을 할 수 없었다.
“미래의 고통을 가지고 생명의 현실로”
ㅎ씨를 정신상담한 의료진이 본명을 밝히지 않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 역시 이번 의 인터뷰 요청을 거절한 것으로 추정된다. 젊은 부상자 대부분이 그랬다. 대신 전화받은 가족들은 젊은 부상자들이 불면증, 우울증, 공황장애 등에 시달리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번 취재 결과, 자살을 시도하는 등 심각한 트라우마(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가진 부상자만 6명으로 확인됐다. 정신적 어려움으로 이혼 등 가족 해체를 경험하거나, 정상적인 직장생활을 못하는 부상자도 적지 않았다.
사고 당시 10대였던 한 여성 부상자는 6차례 자살을 시도했다. 부모가 이혼하고, 가족이 흩어졌다. 부상자는 어머니와 단둘이 산다. 사고 당시 50대 초반의 주부는 격심한 우울과 공황장애를 앓았다.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상태가 됐다. 그는 결국 지난 2월 대구의 어느 병원 정신과 폐쇄병동에 입원했다. 2004년 말 트라우마로 인해 32%의 노동력 상실 판정을 받은 40대 후반의 여성은 아직도 정신과 진료를 받고 있다. 불면증은 대부분의 부상자들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었다.
이처럼 트라우마가 오래 지속될 가능성은 2006년 이미 감지됐다. 경북대 의대는 2006년 9월 대구시의 의뢰로 ‘대구지하철 참사 부상자 만성 후유증 관리를 위한 연구용역’ 보고서를 작성했다. 2004년부터 3차례 부상자들을 조사했다. 사고 뒤 2년이 지난 2005년 추적조사에 응한 생존자 37명 가운데 무려 21명이 트라우마 판정을 받았다. 보고서가 발표되고 6년이 지난 지금도 이들 중 상당수가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을 가능성이 의 취재로 확인된 셈이다.
트라우마란 극단적인 스트레스를 경험한 뒤 스스로 취약하다고 느끼는 상태를 뜻한다. 심리적 외상은 삶의 안정감을 파괴한다. 한 번 파괴된 안정감은 쉬 극복되지 않는다. 2006년 생존자 20명을 면접조사한 최남희 서울여자간호대학 교수는 논문에서 “대구지하철 생존자들은 미래로 지속되는 고통을 가진 채 생명의 현실로 돌아왔다”고 표현했다. 최 교수는 “(재난 피해자에 대한) 배려가 일시적 위로와 사회적 부담을 털어버리려는 의례”에 그치는 점도 지적했다. 대구시가 발주해 2009년 만들어진 ‘대구지하철 참사 부상자 백서’의 취지도 비슷하다. 백서에서도 정신적·육체적 후유증이 심각함이 지적됐다.
100억원 이상의 국민성금 남아
상처가 오래 지속되므로 치료도 지속적이어야 한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사고 이후 부상자들도 배·보상 및 의료지원을 받았다. 부상자들을 위한 만성후유기금도 조성됐다. 생존자들은 후유증의 심각성을 알지 못했다. 대부분 당장 돈이 필요했다. 2006년 보상금과 기금을 병이 중한 정도에 따라 일시불로 제공한다는 대구시의 결정에 부상자들도 찬성했다. 만성후유기금 배분액은 1천만원부터 7천만원까지 후유증의 경중에 따라 달랐다. 국가 보상은 500만~4천만원 수준이었다. 국민성금은 1천만원에서 4천만원까지 나눠 지급됐다. 중증 부상자도 1억원 남짓을 받은 셈이다. 2006년 이후 부상자에 대한 공식적인 지원은 전무하다. 병원비도 자비 부담이다. 트라우마 치료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이유다. 대구 사회의 시선도 장애물이다. 부상자 백서 작업을 맡은 이성환 계명대 교수는 “부상자라고 밝히면 (주위에서) 후유증이 있을 거라 생각할까봐 우려한다”며 “특히 취직하거나 결혼할 나이의 부상자들은 지하철 참사 부상자임을 숨기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대구시가 적극적으로 추가 지원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성환 교수는 “부상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추가 지원을 해야 한다”며 “부상자들이 일시불로 보상금을 받기로 결정할 때 후유증을 예측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100억원 이상의 국민성금이 남아 있다는 사실도 이 교수는 지적했다. 이동우 부상자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젊은 부상자들이 결혼과 취업에 누가 될까봐 사고 초기에만 정신과 진료를 받았고, 이후 지속적인 정신과 치료를 받지 않고 있다”며 “육체적·정신적 후유증과 관련해 병원 진료라도 지원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트라우마 집단치료는 2003년과 2004년 두 차례 있었던 게 전부다. 한 부상자는 “1년에 한 번 정기검진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구 사회 전체를 덮은 것은 ‘망각의 공기’다. 부상자 문제를 담당하는 대구시 보건과는 “2006년 보상 문제는 종결됐다”며 부정적 태도를 밝혔다. 부상자들의 정신과 진료를 담당한 의료진도 뜻밖에 비슷한 태도를 보였다. 곽병원과 동산병원 정신과는 부상자 트라우마 현황에 대한 답변을 거부했다. 동산병원 정신과 담당의사는 전자우편을 통해 “(지하철 얘기는) 덮어두고 싶고 지하철 부상자들에게 (본인이) 드러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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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탑에 달걀을 던진 것에서 보듯이
대구지하철 참사 추모탑에 지난 2월21일 달걀이 투척됐다. 상가연합회에서 추모탑 때문에 장사가 안 된다며 던진 것이다. 대구시가 1억여원을 들여 발주한 사망자 백서는 2년이 지났지만 뚜렷한 이유 없이 완성되지 않았다. 대구시는 백서 작업을 독촉하지도 않는다. 이런 태도는 최남희 교수의 제언과 다르다. 최남희 교수는 논문에서 “우리나라 재난 피해자 지원이 물질적 보상과 더불어 사태를 빠르게 종결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재난 피해자들의 사회·심리적 문제에 대한 집중적 연구가 이뤄지지 않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망각하지 않는 것이 트라우마 치료의 출발이라는 취지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참고 문헌 ‘재난 체험 내러티브 분석 및 기능적 자기공명영상 연구: 대구지하철 생존자를 중심으로’(서울여자간호대학 최남희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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