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에서 극적으로 살아난 한 생존자의 어머니가 전화를 해왔다. 사고 당시 대학생이던 생존자는 이제 엄마가 될 준비를 하고 있단다. 보통 여성의 삶을 살아가는 딸을 자랑하고 싶어서였을까? 전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들떠 있었다. 사고 직후 큰 충격으로 세상을 등지고 싶어 했던 여학생은 이제 보통 젊은 여성의 일상을 회복했다. 오히려 더 씩씩하고 강인하게 세상을 보는 사람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러나 많은 생존자들은 여전히 2003년 2월18일의 어둠과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생존자들의 삶이 이렇게 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경험을 차분히 재구성할 때까지
대구지하철 참사 이후 우리 사회가 가장 두드러지게 달라진 것은 대형 사건·사고의 생존자들이 겪는 심리적 충격에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심은 생존자가 아니라 가족이나 연구자들의 목소리에 집중되었다. 생존자 가족은 심리적 외상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피해 보상에 집중했다. 전문가들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인한 부정적 결과에 집중했다.
우리는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 테러 생존자들을 위한 미국인의 대응에서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된다. 테러 사건이 지난 직후부터 미국 정부는 생존자들의 심리적 현상을 파악하고 그들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고 익힐 때까지 실질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대구지하철 사고 이후 1년이 채 되지 않은 2003년 말 손해 사정을 끝내고, 향후 치료비까지 산정해 위로금과 함께 지급해 2006년 사태를 종결한 우리의 접근과는 큰 차이가 있다. 미국은 사고 직후 보상을 통한 사건 종결이 아니라 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생존자들이 일상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 사회 전체가 도왔다. 학교, 직장, 민간단체, 단체 등이 ‘자유’(Liberty)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생존자와 가족을 위한 재적응에 동참했다. 뿐만 아니라 생존자들이 장기적으로 심리적·신체적으로 어떠한 어려움을 겪는지 함께 확인하고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였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대형 참사가 발생하면 사회적 안정을 이유로 사태에 대한 망각을 강요한다.
재난 생존자들에게 필요한 일은 지속적인 사회적 관심이다. 모든 생존자가 병적 상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어려움을 겪을 때 스스로를 추스를 수 있는 능력도 함께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되튐 현상’은 저절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재앙에 도전하고 극복하려는 노력을 통해 이루어진다. 따라서 가족과 사회는 그들이 자신의 경험을 차분하게 정리하고 다시 구성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우리의 인내심이 그들을 돕는다
생존자의 가족과 친지는 외상후 스트레스가 끼치는 영향을 이해하고 극복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사회는 그러한 지원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끔찍한 경험을 인내심을 갖고 듣고 그들의 정서적 고통을 공유하고 나누며 세상이 더 이상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알리도록 할 필요가 있다. 충격적 경험으로 인한 외상후 스트레스가 장애(트라우마)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외상을 겪은 뒤 인간적으로 더 성숙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가족과 사회가 통찰하고 생존자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최남희 서울여자간호대학 교수·서울내러티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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