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들이 지난 4년 동안 가장 사랑했던 이름은 아마도 ‘MB’일 것이다. 이 정권의 비호 아래서 재벌은 그만큼 게걸스럽게 폭식을 했다. 그렇다면 배가 산처럼 부른 재벌이 가장 듣기 싫은 이름은 무엇일까. 대기업들에 앙케트라도 돌린다면 아마도 저 두 이름이 나란히 1~2위쯤에 걸려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은 대기업의 ‘싹쓸이’식 확장에 단단히 화가 난 여론을 배경 삼아 재벌 개혁을 관한 무성한 토론을 이끌고 있다.
» 김종인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왼쪽), 유종일 민주통합당 경제민주화특별위원장(오른쪽)
공히 경제민주화를 주장하는 두 사람 사이에는 공통점이 많다. 무엇보다 두 인물 모두 경제민주화를 한결같이 주장해온 경제학자다. 사실 재벌 문제에 대한 두 사람의 인식은 거의 동일하다. 특히 당대 문제의 진단에는 두 사람의 답을 맞바꿔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 비슷하다. 두 사람 모두 한국 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라도 국가가 재벌에 대해 분명하고 강력한 규제를 가해야 한다는 태도다. 유종일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최근 라는 책을 썼다. “경제민주화를 위한 정책들을 알리고 이를 지지하는 여론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는 이 책에 대해 소개하는 다른 글에서 “책의 제목은 물론 경제민주화를 규정하고 있는 (경제민주화 조항을 담은) 헌법 제119조에서 따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 헌법 119조를 입안한 사람이 다름 아닌 김종인 위원이었다. 1987년 당시 민정당 전국구 의원으로 있던 그는 개헌 과정에서 경제민주화 조항을 관철한 당사자였다. 그는 지난해 말 한 대담에서 “(당시) 경제조항위원장이 되니까 전경련이 갑자기 엄청난 로비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세상에 정부가 개헌을 하는데 전경련이 그렇게 로비를 하려고 드는 것은 상상을 하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당시 대기업들의 압박을 밀어내고 전두환 대통령을 설득해 헌법 119조 조항을 삽입했다. 그런 김 위원에 대해 유 교수는 평상시에도 “존경한다”는 말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령으로 보면 1940년생인 김 위원이 1958년생인 유 교수보다 한참 위다. 김 위원도 과의 인터뷰에서 민주통합당이 집권하게 되고, 진심으로 도움을 요청한다면 협력할 용의가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현재 한 사람은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으로, 다른 한 사람은 민주통합당에서 경제민주화특별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른바 진영을 달리한 두 사람은 마치 거울 속의 이미지를 마주 보듯 재벌정책에 관한 의제를 주거니 받거니 내놓으며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는 듯하다. 역설적이지만, 두 사람은 서로 필요한 존재이기도 하다. 새누리당에서 재벌 개혁을 이끄는 김 위원이 있기에 민주통합당은 그 이상의 재벌 개혁 의제를 내놓기 위해서라도 유 교수가 소중할 수밖에 없다. 반대도 성립한다. 민주통합당에서 유 교수가 재벌 개혁을 이끄는 동안, 시대정신에 눈감을 수 없는 새누리당도 김 위원의 경제민주화 요구에 귀기울일 수밖에 없다. 학자 출신인 두 사람 모두 각자 정당에 뚜렷한 정치적 기반은 없는 처지다. 따라서 서로의 존재가 자신의 입지를 넓혀주는 묘한 공생관계가 만들어진다. 결국 두 사람은 재벌 및 친재벌적 언론과 정당, 지식인 집단을 아우르는 거대한 연합군과 함께 맞서 싸우는 동지이기도 하다.
큰 폭의 지향에서는 두 사람 사이에 차이도 보인다. 독일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김 위원은 독일식 사회적 시장경제 모델을 모범으로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하다. 유종일 교수는 올해 초 출판한 에서 “아직까지 현실적으로 시장경제는 자본주의적 시장경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미래 한국의 모델로 ‘민주적 시장경제’를 제시했다. 김 위원이 민정당이나 민자당, 새천년민주당 등 여러 정당의 이름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등 ‘폭넓은’ 정치 행보를 밟아온 반면, 유 교수는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정당에서만 주로 활동을 벌인 것도 두 사람의 차이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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