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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와 검찰, 국민이 통제해야

석궁사건 김명호 교수 쪽 변호인 박훈 변호사 기고… “판·검사 연루된 재판은 특별법원 설치해 국민참여재판과 결합해야”
등록 2012-02-01 17:20 수정 2020-05-03 04:26

영화 이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박준 변호사가 바로 필자다. 정지영 감독은 어느 인터뷰에서 필자의 실제 모습을 영화에 그렸다고 했는데 나는 영화와 달리 알코올중독자는 아니다. 대우자동차 정리해고 싸움 당시 필자가 노동조합원들을 이끌고 싸움을 하다가 조합원들이 경찰에게 맞는 장면은 당시 비디오로 촬영된 필름을 영화에 그대로 사용했다. 영화에서는 필자만 다치지 않은 것으로 돼 있는데 필자도 경찰들에게 두들겨맞아 병원에 일주일간 입원한 적이 있다.

» 영화 <부러진 화살>에서 석궁의 위력을 실험해보는 박준 변호사(맨 오른쪽). 실제 김명호 교수 변호를 맡았던 박훈 변호사를 스크린으로 옮겨놓은 등장인물이 박준 변호사다.

» 영화 <부러진 화살>에서 석궁의 위력을 실험해보는 박준 변호사(맨 오른쪽). 실제 김명호 교수 변호를 맡았던 박훈 변호사를 스크린으로 옮겨놓은 등장인물이 박준 변호사다.

“석궁으로 맞았다는 증거 없어”

영화 속 법정 장면이 초미의 관심을 끌고 있다. ‘그런 일이 진짜로 있었냐’며 많은 이들이 질문을 해온다. 법정 장면은 공판 속기록에 근거한 것이다.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 속기록에 있는 대사들로 가득해 필자가 불만을 표출했을 정도다. 법정만 있고 다른 것은 별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필자의 블로그(blog.naver.com/hunpk1)에 그 공판 속기록을 올려놓았다.

이른바 석궁 사건은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석궁에 맞아 상해를 입었다고 주장해 시작된 사건이었다. 사법사상 초유의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필자는 1심 변호를 하지 않았다. 김명호 교수 사건을 언론을 통해 접했을 때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사건 내용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집 있는 어떤 교수의 돌출행동쯤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건 초기에 김명호 교수 쪽에서 변호를 의뢰해왔을 때 완곡하게 거절했다. 그런데 1심 재판 과정이 언론에 보도되는 것을 보며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고, 실체적 진실을 밝혀봐야겠다는 강한 투쟁심이 들었다.

의문점을 밝히려고 재판 진행 과정에서 여러 가지 증거신청을 했다. 피해자로 자처하는 판사가 진술을 번복하는 동기가 석연치 않아 그 사실관계를 명백하게 하기 위한 증인 신청, 피해자 옷으로 주장하는 옷가지의 입수 경위, 옷에 묻은 혈흔이 피해자의 혈흔인지 아닌지를 감정하자는 혈흔 감정 신청, 석궁으로 그런 경미한 상처가 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알아보자는 석궁 발사 실험 신청, 그리고 영화의 제목으로 나타난 범행 도구인 ‘부러진 화살’이 어디로 갔는지, 왜 중간에 입은 와이셔츠 구멍 주변에는 혈흔이 없는지 등 정말 상식적인 증거신청을 했지만 무엇 하나 들어준 것이 없었거나, 밝혀진 것이 없었다. 오로지 재판을 빨리 끝내려는 강압적인 재판만이 존재했다.

김명호 교수가 석궁을 발사해 상해를 입혔다면 사건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싹싹 빌고 선처만을 바라는 변론을 하면 그만인 사건이었다. 그런데 석궁으로 맞지 않았다는 정황증거는 얼마든지 있는데 석궁으로 맞았다는 증거는 존재하지 않았다. 도대체 상처가 어떻게 해서 생겨난 것인지 지금도 필자는 궁금하기 짝이 없다. 필자는 항소심을 시작하며 이 사건이 사법부 불신에서 비롯된 것인 만큼 공정한 재판을 통해 사법부 불신을 해소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재판 진행은 너무나 참혹했다. 마지막 재판에서 방청석으로부터 계란이 투척되고 아우성이 일었을 때는 동참하고 싶었을 정도다. 사법 불신 해소는커녕 사법부에 대한 불신만을 키웠을 뿐이다.

재판 속기록 작성하고 생중계 도입해야

우리 사법부는 친일 사법부로 시작됐다. 독립군들에게 사형·징역형을 무더기로 선고하던 판사·검사들이 아무런 인적 청산 없이 사법부를 구성하더니 해방 이후에는 독재정권의 충실한 하수인 노릇을 했다. 조봉암 선생 사건, 인혁당 사건, 헤아릴 수조차 없는 조작 간첩단 사건, 1980년대 민주화를 부르짖던 학생들과 진보 인사에 대한 탄압의 최종점은 늘 사법부였다. 그런데 사법부는 이러한 부역행위에 대해 통렬한 반성을 한 적이 없다. 1987년 민주화 항쟁 이후로 입법부와 행정부는 어느 정도 국민에 의해 통제돼온 반면, 사법부는 선출되지 않은 막강한 권력을 행사해왔다. 국가·사회적으로 중요한 판결에서는 권력과 돈을 가진 자들의 편에 서서 어처구니없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사법부의 현실이다. 법복을 벗고 나온 정치인은 많지만 그들이 선택한 당은 예외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집권당이었다. 그만큼 그들은 보수 이념의 강력한 지지자였다. 권력의 눈치에서 벗어났지만 그들 스스로가 보수권력을 지탱하는 무한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사법부는 석궁 사건이 일어난 지 나흘 만에 전국법원장회의를 소집해 수사와 재판을 사실상 끝내버렸다. “사법 테러이고 엄단에 처하겠다”고 말이다.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밝혀지기도 전에, 화살을 맞았다는 판사의 말만 믿고 스스로 수사를 끝내고 판결을 해버린 것이다. 형사재판의 가장 큰 원칙은 무죄추정 원칙임에도 그들은 감히 사법부를 건드렸다는 이유로 자신의 본분을 망각해버린 것이다. 한마디로 재판할 자격이 없는 사법부였다. 사법부는 이제라도 통렬히 반성해야 한다.

국민의 의식 수준은 나날이 높아지지만 국민은 사법부를 들여다볼 수 없다. 자신이 재판의 당사자가 되어야만 겨우 한 끝자락을 넘겨볼 수 있을 뿐이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사법부와 검찰은 국민에 의해 통제되어야 한다. 각급 법원장급 이상, 지검장급 이상은 선출직으로 바꿔야 한다. 물론 재판이나 수사가 여론에 흔들릴 우려가 있다. 그래도 자기들 마음대로 수사하고 재판하는 현실을 통제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는 있어야 한다. 국민참여재판 제도도 강화해야 한다. 원하는 이들은 모두 국민참여재판에 회부되어야 한다. 국민참여재판 제도의 권고적 효력은 구속력 있는 결정으로 바뀌어야 한다. 더구나 판사와 검사가 연루된 재판은 사안마다 특별법원을 설치해, 강화된 국민참여재판 제도와 결합해 재판해야 한다. 특별법원 설치에는 좀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사법 불신을 해소하는 제도적 장치로서 가치 있는 문제제기가 될 것이다.

모든 재판은 속기록을 작성해야 한다. 공판조서나 증인신문조서가 재판장에 의해 각색되어서는 안 된다. 민사사건이든 형사사건이든 재판 과정에서 주고받은 모든 말들은 빠짐없이 기록돼야 한다. 이렇게 되면 막말하는 판사도 사라질 것이 분명하다. 또한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재판에 대한 생중계 도입도 적극 찬성한다. 재판 과정을 국민이 감시하는 데는 이만한 방식이 없을 것이다.



사법부는 석궁 사건이 일어난 지 나흘 만에 전국법원장회의를 소집해 수사와 재판을 사실상 끝내버렸다.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밝혀지기도 전에, 화살을 맞았다는 판사의 말만 믿고 스스로 수사를 끝내고 판결을 해버린 것이다. 형사재판의 가장 큰 원칙은 무죄추정 원칙임에도 그들은 감히 사법부를 건드렸다는 이유로 자신의 본분을 망각해버린 것이다.

사법부, 과거 통렬히 반성해야

사법부는 영화 을 성난 표정으로 지켜보면서 ‘판결문에 다 있으니 판결문을 보라’고 하는 식의 반응을 보여서는 안 된다. 사법부는 이번 일을 계기로 사법부의 과거를 통렬히 반성하고 재탄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2·제3의 석궁 사건은 여전히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박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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