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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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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바닥인데 뭘?

사저 논란 등으로 지지율 바닥친 김에 FTA 날치기도 해치운 한나라당, 쇄신으로 민심을 달랠 수 있을까
등록 2011-11-30 14:23 수정 2020-05-03 04:26
지난 11월23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손학규 민주당 대표와 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가 침통한 표정을 지으며 앉아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과정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 민주당은 당 안팎에서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한겨레> 강창광 기자

지난 11월23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손학규 민주당 대표와 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가 침통한 표정을 지으며 앉아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과정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 민주당은 당 안팎에서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한겨레> 강창광 기자

정말 그 길밖에 없었을까? 절대다수 의석에 의존해, 여야 합의도 생략한 채 일방적으로 본회의를 열어, 기록조차 남기지 못하도록 비공개로, 국회의장이 직권상정해 날치기해야 할 만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이 절박한 문제였을까?

한나라당의 한 최고위원은 이렇게 말했다. “민주당이랑 대화를 더 한다고 타협이 됐겠나? 손학규 (민주당) 대표 말처럼 내년 총선 때 국민투표 하자고 하면, (쟁점 사안은) 뭐든지 뒤로 연기해야 한다. 하지만 이건 참여정부가 시작했고, 이명박 대통령도 공약한 거다. 더 미룰 수 없다. 우리는 비준안을 통과시킨 것에 이미 총선을 건 것이다.”

“한나라당, ‘한계 분노 체감의 법칙’”

이명박 대통령은 이미 국회를 방문해 ‘협정 발효 3개월 뒤 미국과 투자자-국가 소송제(ISD) 재논의’ 카드를 꺼내놓으며 정기국회 안에 비준안을 처리하라고 압박했다. 박근혜 전 대표도 비준안을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본회의에 참석해 날치기에 가담했다. 한나라당 지도부와 의원들로선 당의 ‘양대 주주’가 비준안 처리의 ‘판’을 깔아주는 데 안도감과 압박감을 동시에 느꼈을 수 있다. 비밀 군사작전을 수행하듯 소수의 당 지도부만 날치기 계획을 공유하고, 박희태 국회의장이 정의화 국회 부의장을 시켜 직권상정과 본회의 비공개 절차를 밟은 사실은 이를 방증한다.

내년 총선이 가까울수록 비준안을 처리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에 한나라당에선 “맞아야 할 매라면 일찍 맞는 게 낫다”는 인식도 팽배하다. 어차피 지금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셀프 탄핵’과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논란 등으로 여권을 향한 분노가 치솟을 만큼 치솟은 상황이다. 한편 협정 찬성 여론도 낮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 당 쇄신 작업만 순조롭게 진행되면 반전의 기회를 만들 수도 있다는 계산인 셈이다.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한나라당 관련 여론은 ‘한계분노 체감의 법칙’이 작동하는 것 같다. 민심이 들끓을 일을 워낙 많이 해서, 갈수록 더해지는 분노의 정도는 낮아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근혜 전 대표는 비준안 날치기 다음날인 11월23일 대전대와 한남대에서 특강을 했다. 대학 특강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을 치른 뒤 처음이다. 이날 박 전 대표는 비준안 날치기를 비판하는 학생들에게 “(한-미 FTA는) 경제영토를 넓히는 발전 가능성을 가진 것으로, (정기국회) 회기 내에 통과해야 한다는 소신이 있었다. FTA가 그런 방식으로 통과된 것은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우리 국익에 맞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그래도 ‘분노의 총수준’은 높아져

박 전 대표는 지난 11월21일 “정책 쇄신 뒤 정치 쇄신”이라는 당 쇄신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바 있다. 그래서인지 그는 대학생들을 만난 자리에서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젊은 층이 한나라당을 지지하지 않은 것과 관련해 “그동안 부족한 게 많아 한나라당이 벌 받은 것이다. 엄청나게 반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금리가 0%에 가까운 학자금 대출제도를 등록금 해결 방안으로 제시했다. 그는 곧 정책 세미나를 통해 과학기술에 기반을 둔 일자리 창출 방안 등도 내놓을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에선 그의 이런 행보에 공감을 표시하는 이가 적지 않다.

이게 먹혀들까? 비준안 날치기로 분노한 민심이 그 원인과 동떨어진 ‘쇄신’으로 진정될 수 있을까? 중요한 건 ‘한계분노’가 체감하더라도 ‘분노의 총수준’은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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