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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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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자는 더 웃고, 약자는 더 운다

자동차·철강 등 대기업 위주 산업은 경쟁력 커지고, 농민·소상공인은 위기에 처하는 한-미 FTA…부익부 빈익빈의 경제학
등록 2011-11-11 18:12 수정 2020-05-03 04:26
» 지난 10월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한-미 FTA 국회 비준 저지 농어민 결의대회’에 참가한 한 농민의 모습. 농업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최대 피해자로 연평균 8천억원이 넘는 생산 감소가 예상된다. 한겨레 류우종

» 지난 10월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한-미 FTA 국회 비준 저지 농어민 결의대회’에 참가한 한 농민의 모습. 농업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최대 피해자로 연평균 8천억원이 넘는 생산 감소가 예상된다. 한겨레 류우종

새로운 일자리 35만 개, 국내총생산(GDP) 5.66% 증가. 한국개발연구원(KDI)·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등 10개 국책 연구기관이 공동으로 낸 ‘한-미 FTA 경제적 효과 재분석 자료’(이하 정부 자료)는 장밋빛 미래를 그린다. 불가피한 시장 개방을 전제로 한 논리가 배어 있다.

자유무역협정(FTA)을 반대하는 쪽에서는 GDP 증가가 0.3%에 불과할 것이라고 맞선다. 일부 제조업은 미국 현지 생산을 늘리는 추세여서 현재의 고용불안이 더 심화될 것이라며, 일자리 증가의 혜택은 현실과는 거리가 멀 것이라고 지적한다. 근본적으로는 단순한 시장 개방 차원을 넘어 한국 사회 모든 영역의 생활세계에 심각한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예상한다. 경제제도의 동질화와 사회규범 및 가치가 같은 선상에 있다는 논리다. 날선 대립은 접점을 찾지 못한다.

하지만 양쪽 모두 ‘새로운 세상’이 온다는 데는 의견이 일치한다. 우는 자와 웃는 자의 갈림이 불가피하다는 것도 공감대를 이룬다. 다만 부문별 차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 안을 들여다보자.

제약업계 연간 무역적자 1590만 달러

농민은 운다. 이 또한 일치된 의견이다. 정부는 농수산업 부문에서 향후 15년간 연평균 8445억원(농업 8150억원, 수산업 295억원) 수준의 생산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한다. 다만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는 더 큰 피해를 상정한다. 운동본부가 내놓은 자료를 보면, 정부의 추산치는 농산물의 생산 감소만을 피해액으로 파악한 것이어서 소득이나 부가가치 기준의 피해액도 포함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한 식량안보·식량주권 기능이나 식품 안전성의 위험확산효과 등을 계측해야 피해액을 정확하게 산출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정부는 농어업 분야의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며 대책을 내놓았다. 한-미 FTA 대책 예산으로 향후 10년간 22조1천억원을 쓰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농민단체는 “현재 정부의 방안이 대농·전업농 위주로 지원하는 장치이기 때문에 다수의 중소농을 포기하는 것”이라며 “장기적으로는 농업을 축소시키려는 정책”이라고 주장한다. 농민단체는 근본적인 대책으로 초·중·고 교육과정에 농업·생태·자연 체험교육의 정례화나 학교급식과 농촌 살리기의 전면적 연계 등을 내놓았다. 대책과는 별개로 농민들은 한-칠레 FTA, 한-유럽연합(EU) FTA 등으로 예상되는 피해에 한-미 FTA까지 더해지는 상황이 받아들이기 힘들다. 농민운동가 출신인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은 “정부는 우리나라 관세가 높아서 곧바로 수입 농산물과 국내 농산물이 가격 경쟁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하지만 현재 농민은 350만 명에 불과하고 쌀값은 10년 전과 동일하다”며 “이런 상황에서 1300여 개 농산물 가운데 4할에 가까운 품목의 관세를 즉시 철폐하면 농산물 가격 폭락으로 농민들은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우는 건 농민만이 아니다. 제약업계도 울상이다. 정부 자료를 보면, 향후 10년 동안 수입은 연평균 1923만달러 증가하고 수출은 334만달러 증가해 무역수지 적자가 연간 1590만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신약에 대한 지적재산권 보호 의무가 강화되며 복제 의약품인 ‘제네릭’ 시장 위축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한국제약협회는 “농업 분야와 함께 한-미 FTA의 대표적인 피해가 예상된다”며 “고사를 피할 수 없을 것”고 우려했다.

방송·영화 등 서비스도 소득 감소가 예상된다. 가뜩이나 종사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이 문제가 되고 있는 부문이다. 정부 자료에도 영화·애니메이션 산업의 소득 감소를 앞으로 15년 동안 연평균 51억9천만원 수준으로 분석하고 있다. 유통 쪽도 안심할 수 없다. 특히 소상공인들은 대기업에 이어 미국 대형 프랜차이즈까지 진출했을 때의 후폭풍을 염려하고 있다. 전국소상공인단체연합회는 “소상공인들을 위한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현재 농민은 350만 명에 불과하고 쌀값은 10년 전과 동일하다. 이런 상황에서 1300여 개 농산물 가운데 4할에 가까운 품목의 관세를 즉시 철폐하면 농산물 가격 폭락으로 농민들은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된다”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

자동차를 위한 FTA?

자동차는 웃으며 달린다. 정부 자료는 산업별 생산 증가 효과 1위로 자동차를 꼽고 있다. 정부와 업계 관계자들의 전망이 크게 다르지 않다. 연평균 2조9천억원의 생산 증가 효과가 날 것으로 예상한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는 “미국 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이 높아진다”며 환한 낯을 굳이 숨기려 하지 않았다. 2016년부터 미국산 차량이 무관세로 수입되지만 내수시장 잠식이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만큼 국내 업계의 국내 시장 지배력에 자신하고 있다. 한-EU FTA 뒤 유럽 자동차들의 가격 인하에도 예상보다 판매율이 높지 않았다는 점도 고려됐다.

자동차가 웃으며 달리면 당연히 철강은 따라 웃는다. 자동차 등 수요가 간접적으로 늘어나는 후방효과를 기대한다. 2004년부터 한-미 간 무관세 수입이 이뤄져왔지만 철강업계는 자리를 지켰다는 것 또한 걱정을 더는 이유다.

섬유·화학 업종도 최대 32%, 평균 13.1%에 이르는 관세가 인하되면 가격경쟁력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한다. 경쟁국은 중국, 일본, 캐나다 등이다. 섬유업종의 경우 가격경쟁력의 우위로 중국으로 진출한 국내 기업들도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 과정에서 고용 창출 효과도 있을 것으로 낙관한다. 섬유 분야의 관세는 다른 분야보다 10배 정도 높은 편이었다.

자동차, 섬유·화학 등은 한-EU FTA 뒤 유럽 재정위기의 영향도 극복할 정도로 탄탄한 경쟁력을 검증받았다. 유럽 재정위기 뒤 최근 3개월 동안 우리나라의 유럽 수출은 1.1% 감소했지만, 자동차와 섬유·화학 등 수출이 10% 이상 증가한 덕에 수출 감소분을 그 정도로 상쇄된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협정이 발효되면 교역량과 인적 교류가 늘어나리라는 전망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항공·해운 업계의 수익이 기대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항공업계의 경우 미국의 수출입 화물 물동량 비중이 가장 크다. 교역량 증가는 여객 수요의 증가와도 연동될 것으로 보여 항공업계는 활황을 예상하고 있다. 현재 해운업계는 경기침체로 상황이 좋지 않은 편임에도 항공업계와 같은 이유로 실적 개선을 조심스럽게 전망한다.

전자산업 전망은 엇갈려

전기·전자 부문은 업계와 정부의 전망이 엇갈린다. 정부는 연간 2조원의 생산 증가 효과가 있을 것으로 내다본다. 하지만 업계의 전망은 다르다. 그다지 큰 영향을 주지는 않으리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대표적 업체인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이미 미국 현지에서 생산라인을 가동 중이어서 FTA 효과가 크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현행 5% 관세를 물고 있는 모니터와 컬러TV, 캠코더 등이 무관세 적용으로 혜택을 입을 것이라는 예상도 있지만 이 또한 해외 생산이 많아서 실제 혜택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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