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를 통틀어 자유주의자(리버럴)가 확고한 ‘진보성’을 인정받던 시기는 1970년대였다. 사상·표현의 자유는 물론 집회와 결사, 언론·출판의 자유마저 극도로 억압된 ‘일상화된 예외 상태’ 아래 시민권적 자유의 확보야말로 무엇보다 절실한 시대적 의제일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다. ‘유신’이란 이름의 우익 전체주의에 맞서 가장 비타협적인 투쟁을 펼친 조직이나 단체가 예외 없이 ‘자유의 실천과 수호’를 제1의 과업으로 내건 것도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그 전형적 사례가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동아(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였다.
분단과 전쟁에 포박당한 자유주의
한국의 자유주의가 서구의 자유주의가 구현한 역사적 진보성을 처음부터 담지하고 있었던 건 아니다. 이는 분단과 전쟁이 초래한 굴절과 왜곡의 과정을 겪으며 사상과 제도로서의 자유주의가 본래의 긍정성을 발휘할 기회를 제약받던 현실과 무관하지 않았다.
비극의 출발은 분단이었다. ‘미국-소련 갈등’이라는 외생변수에 의해 통일국가 수립 가능성이 희박해지자 자유주의 세력은 분단을 불가피한 현실로 인정하고 단독정부 수립에 참여한다. 이는 전쟁을 통한 ‘냉전의 내재화’ 과정을 거치며 한국의 자유주의에 무거운 멍에로 작용하게 된다. 이 시기 대표적인 자유주의자들은 조소앙·조봉암·안재홍·장준하 등 이른바 ‘중간파’였다. 이들은 기득권 보호와 권력 장악을 위해 일찍부터 단독정부(단정) 수립에 착수한 극우 보수세력과는 정치적·이념적 결이 달랐지만, 소비에트 사회주의에 강한 공포와 거부감을 갖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결과적으로 단정 참여를 통해 이뤄진 자유주의자와 극우 보수파의 공조는 한국의 이데올로기 지형을 협착화하고, 자유주의를 분단체제의 수호 이념으로 인식하는 비극을 초래한다.
단정 참여의 ‘원죄’를 떠안은 자유주의자들은 이후 비정상적 방법으로 과두제적 권력을 강화하려는 극우 보수세력과 대결하며, 자유주의를 독재를 정당화하는 체제 이념이 아니라 새로운 저항의 이념으로 자리잡게 한다. 이런 경향은 군사반란을 통해 집권한 박정희 정부가 거듭되는 개헌과 비상조치를 통해 반자유주의적 색채를 노골화하며 한층 강화된다. 자본주의의 고도화에 따른 경제적 불평등도 가중됐지만, 전쟁을 거치며 정치·사회적 기반을 상실한 급진세력은 저항의 전면에 나설 수 없었다. 따라서 ‘기본권 회복’과 ‘사회·경제적 불평등 해소’라는 이중의 과업을 떠맡은 것은 자유주의 세력이었다. 그 중심에 김대중·김영삼 등 야당 지도자와 장준하·함석헌 같은 재야 인사, 자유실천문인협의회로 대표되는 저항적 문인 집단과 해직 언론인, 김재준·문익환 등 종교인이 있었다.
반공주의·가부장제 한계에 갇혀
독재에 맞서 헌신적이고 비타협적인 투쟁을 벌였지만, 이 시기 자유주의자들이 지닌 한계는 명확했다. 그들의 자유주의는 여전히 시민권적 자유를 요구하는 정치적 자유주의의 경계 안에 완강히 머물렀고, 정치적 자유주의 역시 반공주의적 억압과 정면으로 대결하며 사상과 신념의 자유를 요구하는 수준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문화적으로는 여전히 군사주의와 결합한 유교적 위계질서와 성적 불평등에 기초한 가부장적 지배논리에 포박된 상태에서, 사회·경제적 차원에선 심화되는 계급 간 불평등과 양극화를 치유할 대안과 비전을 정책적으로 구체화하는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 이런 한계는 1980년대에 이르러 이념으로서의 지적·도덕적 헤게모니를 급진주의에 내주는 결정적 원인으로 작용했다. 이후 한국의 자유주의는 오랜 암흑기에 접어든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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