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한국 경제의 취약성은 정부의 자업자득

일자리 창출 외면해 근본 약해진 한국 경제, 글로벌 자동인출기로 전락… 주가·외환보유고 수치에 집착하는 후진적 정책이 취약성 키워
등록 2011-08-18 16:38 수정 2020-05-03 04:26

큰 지진이 일어난 뒤에는 반드시 여진이 발생한다. 큰 지진으로 충격을 받은 지각은 제자리를 찾으려고 다시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으로 시작된 세계 경제위기는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기침체를 가져왔다. 충격을 받은 경제의 각 부문이 새로운 방식으로 적응해가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강한 여진이 이어지리라고 예상했다. 1929년 시작된 세계 대공황 당시에도 몇 년 뒤에 다시 심각한 경기침체를 겪었다. 일각에서는 세계 대공황은 시작된 지 10년이 지나 발발한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해결되었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그럴 정도로 경제위기의 여파는 심각하다.

<font size="3"><font color="#006699"> 일자리 창출 대신에 거품 창출</font></font>

경제위기 극복은 일종의 시간 싸움이다. 재정정책과 금융정책을 통해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위기가 퍼져가는 것을 억제하면서 한편에서는 고장 난 경제가 다시 정상적으로 작동하게 해야 한다. 세계 각국은 경제회복을 위해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었고 반짝 효과를 보는 듯하다가 각국에서 재정적자로 인한 문제가 불거졌다. 실업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은 상태에서 다시 금융시장이 불안해졌다. 결국 시간 싸움에서 패배했다는 의미다. 정책 대안이 소진된 상태이기 때문에 시장의 불확실성이 증폭됐다.
상황이 이럴진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위기를 극복했다고 자랑해온 한국의 정책 당국은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오판의 결과는 심각하다. 향후의 여진을 예상하고 경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대신 거품을 일으켜 일시적인 외형적 성장에 치중하는 바람에 경제는 위기에 더욱 취약하게 되었다.
이번 사태를 통해 위기 극복을 위한 정부 정책이 경제 안정과 일자리 창출에 집중되어야 한다는 중요한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 미국은 막대한 자금을 썼지만 충분한 일자리를 창출하지 못했다. 그래서 적자를 통제하려고 재정지출을 줄이면 실업률이 늘어나고, 이는 다시 세수 감소와 복지비용 증가로 인해 재정적자 증가의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한국은 지난 3년간 부자 감세와 대규모 토목사업으로 인해 정부와 민간의 부채가 크게 늘었지만 일자리는 늘지 않았고 서민들의 체감 경기도 좋아지지 않았다. 위기 상황에서 정부의 대책이 일자리 창출에 집중되지 않는다면 위기 극복의 시간 싸움에서 이길 수 없고, 한국의 재정도 급속히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의 문제는 다른 나라보다 더 심각하다. 거품 붕괴를 수습하는 다른 나라와 달리 한국의 부동산, 가계부채 거품은 심각한 수준이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는 안정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대출을 억제하는 정책을 취하기보다는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해제하는 등 오히려 대출을 촉진하는 정책을 취했다. 금융위기가 거품의 붕괴로 이어지면 한국 경제는 회복할 수 없는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한국 경제는 다른 나라보다 글로벌 경제위기에 더 취약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한국을 하나의 기업으로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이미 잘 알려진 대로 주식회사 한국의 주가지수는 미국의 주가지수, 그중에서도 상대적으로 변동성이 더 큰 기술주를 거래하는 시장인 나스닥 지수에 더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한국이 수출입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율이 100%가 넘을 정도로 대외의존도가 높은 국가인데다, 특히 수출이 반도체나 화학, 선박 등 경기에 민감한 일부 품목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수출 대상국 역시 일부 국가에 집중돼 있어 위기에 취약하다. 정부에서는 수출 다변화가 이루어졌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가장 큰 수요처인 중국 역시 미국이나 유럽의 경기에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결국 미국과 유럽에서 발생한 위기가 큰 영향을 끼치게 돼 있다. 거기에 수출 대기업 지원 위주의 정부 정책이 다른 부문을 취약하게 만들어 위기 대응을 어렵게 한다.

<font size="3"><font color="#006699"> 주식을 한 바구니에 담아서야</font></font>

자본시장 개방으로 한국의 금융시장은 외국인 투자 자금의 유·출입에 큰 영향을 받게 되었다. 이른바 3저 호황으로 발생한 막대한 무역수지 흑자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국내 경제를 불안하게 만들었던 1980년대 후반기부터, 외환위기 그리고 2008년 위기에 이르기까지 자본 유·출입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위기가 반복되고 있다.
합리적 자본 유·출입 정책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가 올린 막대한 이익으로 삼성전자의 자사주를 매입하는 것과 독립적인 다른 기업에 투자하는 경우를 비교해보자. 삼성전자가 아무리 수익이 많을 것이라고 예상되어도 불확실성이 있는 한 삼성전자 자사주에 다시 투자하는 것은 기업의 위험을 높인다. 반면 삼성전자보다 수익성은 떨어지더라도 삼성전자와 관련 없는 다른 기업에 투자하면 이는 일종의 보험 역할을 하게 되어 기업의 안정성을 높여준다.
주식회사 한국은 지금 자신이 번 돈으로 자사주를 사들이는 기업과 같다. 외국인이 한국 주식을 사는 본질적 이유는 위험의 분산이다. 그렇다면 세계화 시대 주식회사 한국도 벌어들인 돈으로 분산투자를 해야 하는 것은 자명한 진리다. 한국의 정책 당국은 이 간단한 원리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그저 주가가 오르면 좋다는 1970년대식 폐쇄경제에서의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외환보유고를 거론하는 것 역시 정책 당국의 후진성을 드러낸다. 선진국들은 민간이 보유하는 외환이 완충 역할을 하지 국가가 보유하는 외환보유고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미국과 영국은 민간이 막대한 해외 자산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만약 국내 사정이 불안해지면 이 자금을 회수해 안정을 유지한다. 그러니까 미국과 영국이 무너지기 전에 아마 이들 자금이 빠져나가는 국가들이 먼저 위기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외국인이 주식을 사들이면 내국인이 쫓아와 막대한 수익을 올릴 수 있고, 팔고 나갈 때는 한국 정부의 지시를 받은 기관투자가들이 받쳐주니 한국은 투기꾼의 천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투기꾼에게는 비용을 물리고 장기투자가에게는 안정적 투자처를 제공하는 외환거래세나 금융거래세를 도입해야 한다는 방안은 어느 사이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세계화로 인한 자본의 이동에 대해 이해하려 하지 않고 주먹구구식 정책을 편 결과다.

<font size="3"><font color="#006699"> 기회가 될 수도 있었던 위기</font></font>

한국 경제는 더 이상 후진국이 아니다. 외환보유고로 편입하려고 한국의 국채를 매입하는 국가가 늘고 있다고 한다. 한국에 장기자금을 대출해줄 투자자도 많다고 한다. 세계화에 따른 자본 이동에 합리적으로 대응만 한다면 한국은 안정적으로 성장해나갈 수 있다.
이번 위기는 어떤 의미에서는 한국 경제에 축복이 될 수도 있었다. 한국의 외환위기 때 선진국의 투자자들이 큰돈을 벌었다. 1970년대 미국이 위기를 맞자 일본의 은행들이 크게 도약했고, 1980년대 후반 일본에서 거품이 붕괴되자 다시 미국과 유럽의 은행이 선두 다툼을 하게 되었다. 만약 우리가 제대로 경제 운용을 해왔다면 지금쯤 한국은 세계 시장에서 큰소리를 치고 있었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위기의 진원지인 미국과 유럽보다 더 위기를 걱정해야 하는 난처한 처지에 빠져 있다. 한국 경제의 가장 큰 위험인 정책 당국의 쇄신과 인식의 전환이 없다면 한국 경제의 위기는 반복될 것이다.
홍종학 경원대 교수·경제학과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