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는 것이 한반도의 안보와 평화를 지키는 데 도움이 되는가,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는가. 필자는 이 문제를 세 가지 차원에서 생각해본다.
첫째는 유사시 군사전술적 기능이다. 전술적 기능이란 실제 전쟁이 발발한 상황에서 의미가 있다. 전력의 효과적 배치와 작전에서 제주도 해군기지는 이를테면 전진배치의 군사적 이점을 준다. 그러나 오늘날 군사무기의 첨단성을 고려하면 거리상의 이점은 대부분 무의미해진다. 미국에 해외 군사기지는 수만km에 달하는 거리상의 명백한 전술적 이점과 함께 타국, 곧 ‘남의 부동산’에서 전쟁을 치른다는 차원의 지정학적 의미가 있다. 그러나 같은 국토 안에서 100km 안팎의 지리적 전진배치로는 별다른 전술적 의미를 가질 수 없을 뿐 아니라, 미미한 전술적 의의마저 전쟁의 첨단화 추세 속에서 힘을 얻기 힘들다. 또한 우리에게 제주도는 남의 부동산도 아니다. 잃는 것도 많다. 전쟁 상대방으로부터 집중적인 포화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음은 상식적인 얘기다. 어정쩡한 군사기지는 도움이 되기보다는 제주도의 초토화를 초래하는 빌미가 된다. 그러기에 전술적 차원에서 제주도 해군기지는 득보다 실이 많다고 할 수 있다.
군사전술·전략적 역기능 심각
둘째는 군사전략적 기능이다. 여기서 전략적 기능이란 전쟁 억지 기능을 가리킨다. 제주도에 해군기지가 있어서 외세의 무력도발을 억지하는 기능을 할 수 있는가, 아니면 오히려 군사적 긴장과 외세의 무력도발을 촉진할 수 있는가. 이 문제는 크게 주변 외세의 성격, 제주도 해군기지의 운용자인 한국이 속한 동맹 네트워크의 상호작용 패턴, 그리고 이에 따라 제주도 해군기지가 개입할 이 지역의 잠재적 분쟁 양상에 따라 결정된다.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의 명분으로 거론되는 ‘제주 남방해역 안보’라는 것은 일견 그럴듯하다. 그러나 사실 제주 남방해역은 동북아시아의 전쟁과 평화 그 자체로 직결되는 동중국해의 안정 및 평화와 관련된 영역이다. 그렇지 않으면 해군이 아닌 해경의 관할 영역이다. 어정쩡하게 제주도에 해군기지를 건설해 불안과 긴장을 안정과 평화로 돌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제주 남방해역’에 이해관계를 가진 외세가 중국과 일본이고, 무엇보다 이 지역 상황이 중국의 이해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제주 남방해역에서 중국·일본과 함께 동북아의 군사적 균형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미국이다. 그래서 그것은 한국의 문제라기보다는 미국의 문제다. 굳이 한국이 개입한다면 현재와 예측 가능한 미래에는 한-미 동맹 네트워크의 일환으로서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곧 한국의 의도와는 반드시 일치하지 않을 수 있는 미국의 전략적 판단과 이익에 말려드는 것, 즉 제주도가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도구로 구속되는 것을 뜻한다. 이어도의 안전을 거론하지만, 한국과 중국 사이에 이어도의 문제는 군사 문제가 아닌 외교 문제다. 그것을 군사 문제로 취급하는 것 자체가 위험한 사고다. 이어도 문제는 한반도 평화통일의 문제만큼이나 한-중 간 평화를 기축으로 한 동아시아 평화의 함수다. 제주도 해군기지는 이어도 문제의 군사화를 촉진할 뿐, 그것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일은 없다.
셋째는 군사전략의 영역을 벗어나는, 더 고차원적인 정치전략적 차원의 문제다. 그것은 현재 한국의 가장 절박한 정치전략적 과제에 제주 해군기지가 미칠 수 있는 기능 및 역기능과 관련된다. 우리에게 근본적으로 절박한 문제는 ‘제주 남방해역의 안보’가 아니다.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을 평화적으로 매듭짓고 통일된 공동체를 건설하는 일이다. 독일 통일 과정에서 미국과 함께 소련의 협력이 결정적이었듯이,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을 위해서는 미국과 함께 중국의 이해와 협력이 필수적이다. 바로 이 점에서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은 치명적인 정치전략적 문제점을 안고 있다. 한국이 제주도에 해군기지 건설을 강행하고, 그것이 사실상의 한-미-일 삼각 군사협력 형태로 작동하고 있는 미국 주도 동맹 네트워크의 최전선 기지로서 기능하게 될 때, 중국은 한국이 주도하는 한반도 통일은 물론 분단의 평화적 관리에 대해서조차 우리의 기대와 다른 전략적 판단과 행동을 취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통일에도 오히려 방해물
1990~2000년대 초에 여전히 먼 미래의 일로 비치던 미국과 중국 간의 동아시아 패권 경쟁은 거의 당장의 일로 다가서고 있다. 그 가장 치열한 영역이 중국의 대양해군력 건설과 미국의 부단한 군사력 첨단화 추구이며, 그 치열한 마당이 동중국해, 즉 한국 정부가 거론하는 ‘제주 남방해역’이다.
김대중 정권과 뒤이어 노무현 정권에서 추진해오고 이명박 정권이 강행하려는 제주도 해군기지는 한편으로 육군 중심 군사력 체제에서 해·공군력 증강으로 관심을 옮겨가는 추세를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경제와 군사력 경쟁을 포함한 체제 경쟁에서 남한이 북한을 질적으로 따돌렸다는 인식이 보편화하기 시작한 1990년대 후반을 시대적 배경으로, 한국의 군·산·정 복합체가 때로는 은근하고 때로는 노골적으로 ‘중국과 일본의 지정학적 위협’을 새롭게 운위하면서 국가 자원 배분의 우선순위를 배정받아온 과정의 한 표출 양상이다. 그럼으로써 전쟁과 평화에 관한 한국인의 상상 범위를 자신들의 방식으로 확장시킨 작업의 첫 작품이다.
먼저 지적한 바와 같이 이런 방식의 군사 개념 확장은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더욱이 장차 통일된 한반도의 장기적인 평화와 번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동아시아 평화 공동체를 향해 한반도인이 기여할 수 있는 비전과 그 방향감각을 심오하게 왜곡시키는 첫 단추가 될 수 있다.
중국 대륙과 한-미-일 군사동맹 네트워크 사이의 ‘대분단체제’는 그 지리적 표상으로서, 중-미 패권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여전히 긴장이 해소되지 않는 대만해협과 섬 전체가 군사기지인 오키나와, 그리고 한반도 서해상과 휴전선을 안고 있다. 한국이 동아시아의 정치외교적 비전의 균형자로서 우뚝 설 수 있는 일차적 조건은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이다.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은 그에 역기능을 하는 가운데, 동아시아 대분단체제의 군사적 전초기지들의 대열에 제주도를 합류시킴으로써 동아시아 대분단체제가 더욱 촘촘해지는 상황을 촉진할 것이다.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의 공간도, 동아시아 평화에 대한 한국인의 상상력도 대분단의 고리 속에 갇혀 표류할 가능성도 더 높아질 것이다.
‘동아시아 평화벨트’의 중추로
우리가 꼭 그 길을 가야 할 이유는 없다. 그렇다면 궁극적으로 한국에 제주도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자기의 함정을 파는 군사전술적·군사전략적 상상력에 기초한 군사기지가 아니라, 동아시아 평화의 철학과 활동이 숨 쉬고 넘치는 공간을 꿈꾸어야 한다. 군사화된 전초기지들로 구성된 대분단선의 한 징검다리가 아니라, 한반도의 휴전선을 걷어내면서 서해와 제주도를 거쳐서 오키나와와 대만해협의 군사화를 극복해 장차 우리가 만들어야 할 ‘동아시아 평화벨트’의 중추로서 제주도를 위치시켜야 한다. 그제야 동아시아인들 모두에게 전술과 전략이 아닌 평화를 사유하는 철학의 공간, 평화의 섬으로 제주를 가꾸어갈 수 있고, 평화를 위해 군사기지를 건설한다는 논리를 넘어서, 철학을 통해 현실을 바꾸어낼 수 있는 진정한 평화의 실험실을 건설할 수 있다.
이삼성 한림대 교수·정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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