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에 사는 구보 교코(48)는 무역회사 22년 근속의 베테랑이다. 일본은 한국처럼 여름휴가가 따로 있기보다는 자신의 휴가를 필요할 때 요령껏 나눠서 쓰는 게 보편적인데 구보도 그렇다. 구보는 3년 전까지만 해도 휴가를 내면, 고향 오사카(도쿄에서 고속철 신칸센으로 2시간36분, 왕복 약 2만8천엔(약 37만5천원))에 간 김에 친구와 온천여행(1박2일 2식 포함 약 1만~2만엔)까지 한꺼번에 즐기는 게 보통이었다.
‘상사가’ 우선 휴가일정 양보
하지만 결혼 뒤 대학에서 중국어를 가르치는 남편 덕에 ‘휴가=중국행’(1인당 약 15만엔)이 되었다. 지난해엔 남편의 중국 체류 기간에 맞춰 4월 말~5월 초 헌법기념일(5월3일), 녹색의 날(5월4일), 어린이날(5월5일)이 잇따르는 ‘황금연휴’ 기간을 포함해서 여름과 겨울 등 유급휴가 20일을 모두 중국에서 보냈다. 황금연휴 기간에 8~9일가량 쉴 수 있고 눈치껏 휴가를 붙이면 보름 가까이도 쉴 수 있다. 하지만 1년 중 황금연휴를 빼면 주말을 끼워 5일 휴가를 내도 한번에 최장 9일밖에 못 쉰다. 다만 1년 안에 못 쓰고 남은 유급휴가는 바로 다음해까지라면 이월해 활용할 수 있다.
일본은 이제 사회적으로 쉬는 것에 눈치 보던 옛 풍조를 쇄신하고 확실히 쉴 것을 권하는 사회가 되었지만, 여전히 휴가를 한꺼번에 몰아 쓴다거나 한 달 이상 휴가를 낸다는 것은 그리 녹록지 않다. 구보는 중국에 간 김에 휴가를 2주 연속으로 쓸 수 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한꺼번에 쓸 수만 있다면 유럽 등 멀리 가보고 싶지만, 일주일 정도의 휴가로 아시아권을 벗어나기엔 비용 대비 일정이 빡빡하다 보니 아깝고, 실제 일을 하다 보면 유급휴가를 한번에 몰아 쓸 상황도 안 된다”는 게 솔직한 현실이다. 휴가비를 주느냐고 물으니, 구보는 “그런 게 있다는 것은 22년 동안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일본에선 ‘여름휴가’란 말보다 ‘여름방학’이란 말이 일반적이다. 학생들의 방학 일정과 (양력) 8월 보름께의 오봉(추석) 연휴에 맞춰 직장인 부모들은 유급휴가를 붙여서 쉰다. 더운 8월 중순에 오봉 연휴가 있으니 따로 여름휴가를 가지 않고 오봉 연휴에 휴가를 붙여 길게는 9일을 쉬는 것이다. 오봉 연휴 때는 최절정 성수기라 국내외 항공편이 비싸고 호텔이나 온천 모두 붐벼서 예약 없이는 여행을 다니기가 힘들다. 이 때문에 30대 미혼 또는 자녀가 없는 젊은 층의 직장인은 굳이 여름에 휴가를 내지 않는다. 비성수기를 이용하면 항공비도 절약되고 붐비지도 않아 1석2조이기 때문이다. 휴가 기간을 정할 때는 동료끼리 겹치지 않도록 협의는 기본인데, 만약 상사와 겹친다면? ‘상사에게’가 아닌 ‘상사가’ 우선 양보한다. 젊은 직원들은 휴가를 꼬박꼬박 쓰려고 하는 반면, 책임이 많은 직급일수록 눈치를 보는 습성이 남아 있고 책임감 때문에 더 못 쉬는 분위기다. 또 휴가를 나눠서 쓰다 보니 원하는 날짜가 그리 겹치지 않는다.
대지진 여파로 줄어든 해외여행
구보는 애완동물도 안 키우고 휴가 중 빌 집에 대한 불안이 딱히 없지만, 주변에선 이웃끼리 서로 봐주거나 ‘애완동물 전용 호텔’을 이용하는데 보통 하루 4천엔 이상으로 유스호스텔이나 도미토리형 숙소보다 비싸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동북 지역 유명 온천들은 손님들의 발길이 끊기고 해외여행도 전년 대비 70% 수준으로 떨어졌다. 일부 대규모 회사들은 절전 대책으로 평일 휴무, 주말 근무를 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구보의 올여름 휴가는 고향 오사카나 해외로 가는 대신에 ‘친정어머니 모시고 도쿄에서 지내기’가 되었다.
도쿄(일본)=황자혜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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