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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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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가 버는 돈도 억억대네

온라인 게임에 선수 이름·캐릭터 등 쓰면 내는 퍼블리시티권 수십억~수백억원대…프로야구 선수협, 일구회 등에 속하지 않아 권리 못찾는 선수 적잖아
등록 2011-06-09 19:01 수정 2020-05-03 04:26

이민주(가명)씨는 1992년 프로야구 투수로 데뷔했다. 연봉은 1200만원으로 시작해 최고 4천만원이었다. 2008년 은퇴할 때까지 승과 패를 모두 합쳐 한 자릿수에 불과했지만 종종 역전 위기에 처한 팀을 구하기도 했다.
이제 그 모습을 야구장에서 볼 수 없다. 대신 게임에서 만날 수 있다. 그는 온라인 게임인 CJ E&M 넷마블의 를 비롯해 네오위즈게임즈 , NHN의 , 엔트리브소프트의 , KTH의 등에서 등장한다. 하지만 그는 게임에 등장한 대가를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이씨는 “게임에 등장하는 선수들이 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다”며 “일부만 게임업체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그 대가를 받았다”고 말했다.

선수가 소송 통해 지켜온 권리

» 최근 프로야구 온라인 게임이 인기를 끌면서 선수들의 퍼블리시티권 대가를 두고 갈등이 커지고 있다. 사진은 네오위즈게임즈의 <슬러거>, NHN의 <프로야구매니저>, CJ E&M 넷마블의 <마구마구>(왼쪽부터).

» 최근 프로야구 온라인 게임이 인기를 끌면서 선수들의 퍼블리시티권 대가를 두고 갈등이 커지고 있다. 사진은 네오위즈게임즈의 <슬러거>, NHN의 <프로야구매니저>, CJ E&M 넷마블의 <마구마구>(왼쪽부터).

이씨처럼 은퇴 선수들이 프로야구 게임에서 나오는 퍼블리시티권의 대가를 두고 업체와 선수들 사이의 갈등이 소송 등으로 번지고 있다. 퍼블리시티권은 영화배우·운동선수 등 유명인이 자신의 이름이나 초상, 서명, 음성 등이 지닌 경제적 이익이나 가치를 상업적으로 사용하는 권리를 배타적으로 갖는 것이다. 게임의 경우 선수들의 이름, 사진을 비롯해 이를 활용한 캐릭터의 사용 권한을 뜻한다.

특히 프로야구 게임이 프로야구 인기와 더불어 급성장하며 갈등은 커지고 있다. 프로야구는 지난 5월21일 올 시즌 누적관중 202만8020명을 기록했다. 지난 4월4일 개막 뒤 156경기 만이다. 1995년에 이어 두 번째로 빠른 기록이다. 덕분에 프로야구 게임도 잘나간다. 프로야구 관중이 쑥쑥 늘어난 것처럼 회원 수도 많아졌다. CJ E&M 넷마블의 가 2006년 가장 먼저 서비스를 시작해 누적회원이 900만 명을 넘어섰다. 한 해 늦게 서비스를 시작한 역시 350만 명의 회원을 확보했다. 또 지난해부터 서비스를 한 은 각각 90만 명과 80만 명의 회원 수를 자랑하고, 지난 4월부터 서비스에 들어간 은 한 달 만에 회원 수 60만 명을 돌파했다.

‘돈벌이’도 짭짤해졌다. 게임업체들은 게임별 매출을 공개하지 않지만 야구 게임으로만 수십억원에서 수백억원까지 벌어들이고 있다. 유일하게 공개된 자료가 네오위즈게임즈와 프로야구 은퇴 선수들의 모임인 ‘일구회’가 벌인 소송에서 드러난 의 매출이다. 는 2008년 약 159억원의 매출을 올린 데 이어 2009년에는 326억원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게임업계에서는 올해 프로야구 인기가 훨씬 올라간 만큼 매출도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만큼 선수들의 퍼블리시티권에 대한 대가도 커지고 있다. 지난 2월 법원은 일구회와 네오위즈게임즈 간의 소송에서 업체 선두권인 의 경우 매출의 11%가 선수들의 퍼블리시티권의 대가로 적당하다고 판결했다. 연매출 500억원이라면 55억원이 현역 및 은퇴 선수들에게 돌아가는 셈이다. 그동안 통상 게임업체는 5~7%를 퍼블리시티권 대가로 지불해왔다. 이번 판결로 그 대가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사실 선수들이 자신의 퍼블리시티권을 인정받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과거에는 한국야구위원회(KBO)나 소속 구단의 권리로 인식됐다. 이를 뒤집은 것이 2005년 이종범 등 123명의 프로야구 선수들이 라는 휴대전화용 게임을 만들어 판매한 그래텍과 그 퍼블리시티권을 판매한 더스포츠앤드컬처를 상대로 한 소송이었다. 더스포츠앤드컬처는 KBO의 마케팅 자회사인 KBOP로부터 퍼블리시티권을 따내 이를 다시 그래텍에 팔았다. 하지만 소송에서 법원은 퍼블리시티권이 선수들에게 있다고 판결했다.

아는 사람만 나눠 가지는 보상?

이렇게 선수들에게 권한이 돌아왔지만 여전히 문제는 남아 있었다. 한국프로야구선수협의회(선수협)가 2007년 KBOP와 계약을 맺어 퍼블리시티권을 줬지만 그 대상은 현역 선수들만이었다. 게임에는 현역뿐만 아니라 은퇴 선수들도 등장했지만 돈은 현역 선수들만 받았다. 예를 들어 네오위즈게임즈가 선수 퍼블리시티권과 함께 구단명과 기업 이미지(CI) 등을 사용한 대가로 2007~2009년 총 약 15억원을 KBOP에 지불했다. 이어 KBOP는 이 가운데 3억원을 선수협에 건넸다. 하지만 이 돈은 현역 선수들에게만 돌아갔다. 이에 대해 KBOP 류대환 이사는 “당시 선수협으로부터 퍼블리시티권을 위임받았지만 이만수·선동열 등과 같은 은퇴 선수가 포함되지 않았다”며 “계약을 해야 했지만 미처 생각을 못했다”고 말했다.

» 온라인 프로야구 게임 현황.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온라인 프로야구 게임 현황.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은퇴 선수들도 자신들의 권한을 요구했다. 2008년 말 옛 LG 트윈스의 이상훈씨는 등에서 자신의 캐릭터가 판매되는 것에 문제를 제기했다. 이어 2009년 마해영·박정태씨 등 전직 야구 선수 13명이 이들 업체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결국 이 선수들은 네오위즈게임즈와 합의해 보상을 받았다. 네오위즈게임즈는 지난해 3월 선수협과 퍼블리시티권 사용에 대한 계약을 맺고, 소송에 참여한 은퇴 선수들에게 2억원을 지급했다. 선수협은 여기서 소송 비용과 야구 발전기금을 제외한 1억3천만원을 34명(소송 제기 뒤 21명 추가)에게 200만~500만원씩 지급했다.

은퇴 선수들의 또 다른 모임인 일구회는 지난해 7월30일 CJ E&M 넷마블(당시 CJ인터넷)로부터 2007~2009년 퍼블리시티권 침해에 따른 보상으로 10억원을 받기로 합의했다. 지난 2월에는 네오위즈게임즈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일부 승소해 5억4천여만원의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도 얻어냈다. 네오위즈게임즈는 이에 불복해 항소를 진행 중이다.

이와 동시에 현재 이용하는 퍼블리시티권에 대해서도 상당한 보상을 받고 있다. 선수협은 지난 1월 NHN과 계약을 맺어 현역 선수와 일부 은퇴 선수들의 퍼블리시티권을 양도했다. 상당수 은퇴 선수들이 참여한 일구회는 CJ E&M 넷마블과 계약을 맺어 소속 선수들의 퍼블리시티권을 양도했다. 게임업체는 이를 자사 게임에 이용하는 동시에 다른 게임에 재판매하고 있다. 한 게임업체 관계자는 “퍼블리시티권과 관련해 NHN과 CJ E&M 넷마블이 양분하고 있다”며 “이들에 대한 사용 대가가 연간 10억원이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보상에서 상당수 은퇴 선수들이 배제됐다는 것이다. 프로야구에 몸담고 있는 한 관계자는 “선수협이나 일구회가 퍼블리시티권에 대해 대가를 받고, 소송을 진행했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았다”며 “여전히 모르는 선배나 동료가 많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은퇴 선수는 “보상금으로 형편이 어려운 선배나 동료들을 돕는 등의 방안을 마련했다면 이해라도 하겠다”며 “다른 사람들에게는 제대로 알리지 않은 채 아는 사람들끼리만 보상금을 나눠가진 것을 알고 실망감이 컸다”고 말했다.

선수협 간부 26억원 받은 혐의

아울러 퍼블리시티권에 대한 법적 해석도 논란이다. 선수들이 죽은 뒤 그 권한을 상속할 수 있느냐가 핵심이다. 이호선 국민대 교수(법학)는 “국내에서 퍼블리시티권을 지적재산권으로 볼 것인지, 인격권적 요소를 가진 재산권으로 볼 것인지 명확한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라며 “지적재산권으로 인정될 경우 선수가 죽은 뒤에도 배타적 권리가 인정되지만, 인격권적 재산권으로 볼 경우 사후에는 사라진다”고 말했다.

한편 인천지검 부천지청은 지난 5월30일 선수협 고위 간부 권아무개(47)씨를 프로야구 온라인 게임 개발업체로부터 선수들의 퍼블리시티권 독점 사용 청탁 대가로 수십억원을 받은 혐의(배임수재)로 불구속 기소했다. 권씨는 2009년 11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한 게임 개발업체 대표로부터 프로야구 선수들의 이름과 사진을 게임에 독점적으로 사용하게 해달라는 청탁을 받고 수십 차례에 걸쳐 모두 26억여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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