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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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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인재이며 산재다

우리 삶에 밀어닥친 비정규직 쓰나미, 해고자 죽음의 방사능, 그러나 긴박한 사이렌을 모르는 우리들
등록 2011-04-14 16:20 수정 2020-05-03 04:26

인터넷을 켜니 일본에 다시 7.4의 강진이 발생했다고 한다. 쓰나미 경보까지 내렸다. 상상할 수 없는 공포에 떨고 있을 일본 사람들에게 깊은 위로의 마음을 보낸다. 하지만 난 더불어 또 다른 형태의 쓰나미에 고통당하고 있는 우리 사회 모든 평범한 이들에게도 이젠 위로의 말을 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땅의 쓰나미는 천재지변은 아니다. 인재거나 산재다. 한꺼번에 사람들이 몰살당하진 않지만, 시나브로 사람들이 죽어가는 이상한 쓰나미다.

마지막 퇴로까지 덮친 죽음의 불길

» 지난해 10월 서울 구로구 가산동의 옛 기륭전자 공장 입구에서 비정규직 해고자들의 농성 천막을 철거하기 위해 들이닥친 용역업체의 굴착기를 조합원들이 몸으로 막고 있다. 한겨레21 윤운식 기자

» 지난해 10월 서울 구로구 가산동의 옛 기륭전자 공장 입구에서 비정규직 해고자들의 농성 천막을 철거하기 위해 들이닥친 용역업체의 굴착기를 조합원들이 몸으로 막고 있다. 한겨레21 윤운식 기자

내가 말하려는 것은 1997년 외환위기의 여파로 시작된 구조조정, 정리해고, 비정규직화라는 쓰나미다. 그간 공기업과 제조업, 금융 등 산업 전반이 이 구조조정과 정리해고의 쓰나미에 초토화되었다. 900만에 이르는 사람들이 비정규직이라는 살처분 판정을 받아야 했다.

일본에서 죽어간 2만여 명보다 더 많은 사람이 삶의 난간에서 떨어져 죽거나, 공포 속에 자기 삶을 마감해가는 자살공화국이 되었다. 근래에만 쌍용자동차에서 일하던 14명의 노동자·가족이 살처분당했다. 수많은 사람이 삶터와 일터에 불어닥친 이 쓰나미를 피해 망루라는 높은 지대로 피신해보았지만 역부족이었다. 서울 용산4가에서 망루로 피신한 사람들은 연이어 일어난 화마를 피할 수 없었다. 2008년 쌍용자동차 노동자가 피신한 공장 옥상에도 불길이 번졌다. 오늘도 한진중공업의 김진숙과 문철상과 채길용, 그리고 대우조선의 강병재와 전주버스여객 노동자가 다시 망루 위로 쫓겨올라가 위태롭게 구원을 기다리고 있지만 이 사회는 속수무책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런 무시무시한 지각변동을 느끼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못한다. 자신들이 어떤 구제역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어떤 무서운 방사능에 이미 피폭되어 있는지를 모른다. 나는 삼가 이 모든 사람들에게 이젠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다.

나는 아직 정규직이라고 안심하며, 구조조정 쓰나미가 비정규직이 일하는 라인까지만 몰려오기만을 소망하며 노심초사하고 있는 사람들의 헛된 기대에 위로의 말을 전한다. 자신이 살처분당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모든 비정규직에게도 이른 작별의 인사를 보낸다. 스스로 위험을 인식하고 뛰쳐나오지 않는 자를 구해줄 사람이 이 땅에는 많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 사회에 조의를 표한다. 900만에 이르는 사람들이 부당한 쓰나미에 휩쓸려 살처분당하고도 무슨 민란 하나, 폭동 하나 없는 이 험악한 사회에 삼가 안타까운 마음을 전한다. 내 탓일 거라며 알아서 착하게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살아남기 위해 온갖 스펙을 좇아 달려야 하는 이 땅의 젊음들에게도 깊은 위로의 말을 전한다.

우리가 우리를 구할까

지금 다시 어디에선가 긴박한 사이렌이 울린다. 지진과 쓰나미는 그 지역을 벗어나면 살 수 있지만, 이 땅을 휩쓰는 정리해고와 비정규직화의 쓰나미는 모든 삶의 지대에 전방위적으로 퍼져 있어 누구도 피할 수 없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운명과 관련된 일이다. 오늘도 우리 모두를 위해 쌍용차 해고자들, 한진중공업과 대우조선의 망루 농성자들, 노숙 중인 현대차 비정규직과 발레오공조코리아, 콜트·콜텍, 그리고 재능교육과 국민체육진흥공단에서 단식을 하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싸우고 있다. 이들을 구하는 일이 우리 자신을 구하는 일이라는 인식에 도달하지 못하는 순간, 우리 모두는 안전할 수 없다. 다만 연대하면 살 수 있다. 지금 다시 사이렌이 울리고 있다.

돌려 말하지 말라. 이것은 인재이며, 산재다. 이것은 부도덕한 학살이다.

송경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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