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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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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인멸 방조 혐의로 기소한다



지원관실에 대포폰 건넨 청와대 행정관의 가상 공소장…
직제와 관련도 없는데 위법행위를 도운 이유는 무엇인가
등록 2010-11-12 15:13 수정 2020-05-03 04:26
‘청와대 대포폰’ 의혹에 등장하는 인물은 두 명이다.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실의 최아무개 행정관과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장아무개 주무관이다. 최 행정관도 민간인 사찰과 관련한 수사 선상에 오를 수 있는 인물이지만 현재는 비껴서 있다. 최 행정관이 만든 대포폰을 빌려쓴 장 주무관은 불법사찰 증거인멸 혐의로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은 ‘시민 검찰’을 임명해 검찰이 ‘내사 중’이라는 최 행정관의 대포폰 관련 혐의에 대한 ‘가상 공소장’을 작성했다. 이석현 민주당 의원이 제기한 의혹과 11월5일 검찰의 설명이 녹아 있다. 이상훈 변호사(이안 법률사무소)와 이름 밝히기를 꺼린 검사 출신 법조인의 도움을 받았다. 가상 공소장에서 피고인 최 행정관에게 적용한 죄명은 ‘사문서 위조’와 ‘증거인멸 방조’ 혐의다. 아직은 가상 공소장이지만, 상황에 따라 바뀔 수도 있다. _편집자

피고인 최○○은 청와대 고용노동비서관실에 행정관으로 근무하는 자로서 이영호 전 고용노동비서관의 직속 부하이자 민간인 사찰 의혹과 관련해 이미 구속된 이인규 전 공직윤리지원관과는 노동부에서 오랫동안 함께 근무했던 자이다.

2010년 6월29일 공직자의 비리만을 감시·감독해야 할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사찰 권한이 없는 민간인을 사찰했다는 내용이 문화방송 〈PD수첩〉을 통해 방송되면서 이런 ‘민간인 불법사찰’이 일반인뿐만 아니라 한나라당의 정두언·남경필·정태근 의원까지 상대로 광범위하게 진행됐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이러한 ‘민간인 불법사찰’은 단순히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단독으로 진행한 것이 아니라 그 배후에는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동비서관과 박영준 전 총리실 국무차장 등 이른바 ‘청와대 실세 라인’이 있다는 의혹으로까지 급격히 확대됐다.

이에 뒤늦게 검찰에서 이인규 등 공직윤리지원관실 소속 공무원들에 대해 수사에 착수하게 되자, ‘민간인 불법사찰’의 전모가 드러나길 꺼리는 장○○ 주무관 등 공직윤리지원관실에 소속된 다른 공무원들은 만일 총리실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저장된 불법 민간인 사찰 자료 등이 공개된다면 국내 및 국외로부터 엄청난 비난과 비판을 받을 것이 명백하다고 생각해, 개인 재산도 아닌 국가 재산인 위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아예 복원 불가능하게 삭제하려고 했고, 아마추어인 자신들이 하다가는 자칫 흔적이 남아 도리어 역효과가 날 것을 두려워해 이런 일을 전문적으로 해줄 수 있는 외부 전문가를 은밀히 알아보았다.

피고인 최○○은 국무총리실 공직윤리관실 소속 공무원들이 추진하는 위 증거인멸 시도가 일반 사기업들도 감히 생각할 수 없는 무모한 행위이고, 더구나 공직자의 비리를 감시·감독해야 할 공직윤리관실 소속 공무원들이 이런 행위를 한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업무직제상 자신이 속한 청와대 고용노동비서실과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직접적인 연관관계가 없음에도,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위험을 무릅쓰고 이러한 위법행위를 적극적으로 도와주기로 마음먹었다.

구체적으로 피고인 최○○은 국무총리실 공직윤리관실 소속 공무원이 증거인멸 전문가를 접촉하는 과정에서 혹시라도 검찰이나 언론에 증거인멸 사실이 발각되면 그 파장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될 것으로 우려했고, 이에 최소한 국무총리실 소속 공무원들이 외부 전문가를 접촉하게 된 경위만큼은 드러나지 않게 함으로써 국무총리실 소속 공무원과 그 전문가 사이의 관계를 추적할 검찰 수사를 어렵게 하려고 마음먹었다.

이에 피고인 최○○은,

1. 2010년 7월7일경 서울시 종로구 세종로 1 소재 청와대 부근 △△이동통신사 대리점에서, 청와대에 근무하는 근엄한 행정관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명의를 도용하여 개통함으로써 실제 통화자나 통화 내역을 추적하기 어렵게 하는 이른바 ‘대포폰’을 개설하는 데 행사할 목적으로, 명의자로부터 허락을 받는 등의 아무런 권한도 없이, 대리점 주인 ○○○과 공모하여 인쇄된 휴대전화 가입신청서 용지에 대리점 주인의 부인 ×××의 인적사항을 임의로 적어넣은 다음 ××× 명의로 서명을 하여 권리의무에 관한 사문서인 휴대전화 가입 신청서를 위조하고,

2. 같은 해 7월7일경 위와 같이 위조서류를 이용하여 개통한 이른바 대포폰을 청와대로 찾아온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소속 공무원 장○○에게 전해주고, 장○○는 위 대포폰을 이용하여 같은 날 수원시 □□전자에 근무하는 컴퓨터 하드디스크 삭제 및 복원 전문가 ◇◇◇에게 ‘민간인 불법사찰’에 관한 형사사건의 증거자료가 저장된 총리실 컴퓨터의 하드디스크를 복원 불가능하도록 삭제해달라고 은밀히 부탁했고, 자신이 삭제하려는 대상이 도저히 용인할 수 없는 국가에 의한 범죄행위의 증거이자 최고 기밀 정보라는 점을 알지 못하는 ◇◇◇은 영문도 모른 채 하드디스크를 복원 불가능하게 깨끗이 삭제함으로써, 결국 이인규 등의 직권남용죄에 관한 증거와 도대체 왜 국무총리실에서 민간인과 여당 중진 의원까지 사찰했는지, 과연 그 배후는 누구이며 사찰 대상과 사찰 정보는 어디까지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자료 일체를 인멸하는 것을 용이하게 함으로써 이를 방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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