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이 열리지 않는다면 모르겠지만, 일단 열린다면 G20 의제도 시민의 감시를 받아야 한다. 이번 G20 정상회의에서는 재정·금융 정책과 환율 정책, 그리고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출구전략 논의가 이어진다. 금융산업 개혁안과 국제금융기구 개편 방향도 핵심 의제다.
여기 4명의 가상인물이 있다. 비정규직 여성과 40대 실직 가장, 키코 피해자, 이주노동자다. G20이 이들의 삶과 어떻게 만나는지, 흔한 이야기로 풀어봤다._편집자
밤 12시가 넘은 지 오래인데 전화는 울리지 않았다. “다리 반 날개 반, 치킨무는 빼주세요. 카드로 할게요.” 거의 매일 밤 12시쯤 마치 깊은 동굴 속에서 말하듯 음산한 목소리로 데리야키 치킨 콤보를 주문하던 서울 연남동 게임 오타쿠의 전화도 없다. 단 한마디의 낭비도 없이 정확히 할 말만 하고 끊는 오타쿠였지만, 오늘따라 그가 못 견디게 그립다.
돌이킬 수 없는, 치킨집 사장
“그만 퇴근해라.”
지치지도 않는지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며 끊임없이 낄낄대는 녀석과 단둘이 고요한 새벽을 맞는 건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벌써 1시간째 홀에 앉아 일없이 노닥거리던 녀석은 ‘퇴근’이라는 단어를 접수하자마자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만 한 번 까딱 한 뒤 나가버렸다. 역시 너는 쿨한 놈이다.
그리고 찾아오는 고독. 끓어오른 기억이 가물가물한 기름은 제 몸이 식지 않을 정도의 온기만 유지하고 있었고, 여드름 잔뜩 돋은 아르바이트 녀석의 빈자리는 허전했다. 6~7평 남짓한 빈 가게에 금방 서늘한 기운이 가득 찼다.
○○치킨 강형석 사장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그는 번듯한 중소기업 대표였다. 인도네시아에서 종이류를 수입해 노트와 수첩을 만들어 미국에 내다 파는 업체였다. 한 해 매출은 100억원 아래로, 규모가 크지는 않았지만 내실 있는 경영으로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매년 꾸준히 2억~5억원 정도의 영업이익도 냈다. 2007년 초 △△은행 부지점장 N과의 만남이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그 정도 자금이면 저희가 해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강 사장의 귀가 번쩍 뜨였다. 그렇지 않아도 서울에 있던 공장을 경기도로 좀더 넓혀가려던 참이었다. 공장 건축비와 낡은 설비 교체에 적잖은 자금이 들어갔다. 모두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 생각에 대출이라도 받을 생각이었던 것이다. 금융기관에서 일하는 대학 후배에게 이것저것 물어본 적은 있었지만 아직 은행권에서 본격적인 대출 상담을 받은 적은 없었다. 모 대학 비즈니스스쿨에서 만나 서로 명함을 교환한 N이 먼저 만나자고 연락해왔을 때도 그저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그런데 상대방이 먼저 가려운 곳을 긁어준다면 피할 이유는 없는 것 아닌가.
“조건은 어떻게 됩니까. 지금 당장 담보 물건이 마땅치 않아서요.”
“왜 이러세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강 사장님인데, 게다가 회사도 탄탄하시잖아요. 담보는 무슨 담봅니까.”
믿기지 않는 행운이었다. 한국 사회는 역시 인맥이다. 그래, 일이 풀리려면 이렇게도 풀린다. 내가 오늘 귀인을 만났구나. 저녁 식사가 끝난 뒤 집으로 향하는 내내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다음날 강 사장은 4억원을 대출받았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뒤 N이 근무하는 지점의 차장이라는 자가 나타났다. 회사 재무구조를 컨설팅해준다며 복잡한 용어를 쓰며 환율 하락 위험을 경고했다. “지금 이거 가입 안 하시면 나중에 환율 왕창 내려갈 때 후회하십니다.” “강 사장님 스타일을 저희가 모르는 거 아니잖아요. 여기 가입했다고 해서 큰돈을 벌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미래에 있을지 모를 위험에 대비하는 건 직원을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거예요.”
은행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던 강 사장은 결국 막걸리라든가, 키코(KIKO)라든가 하여간 그 상품에 서명을 했다.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 유혹이었다. 가입하고 나니, 환율이 어느 정도 하락해도 손에 쥐는 원화가 크게 줄지는 않는다는 말이 든든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2007년 계약 당시 원-달러 환율 935원을 기준으로 했다. 첨단 금융, 통화옵션, 넉인·넉아웃, 뭐 이런 복잡한 용어가 난무했지만 기억하는 건 ‘어쨌든 환율이 970원까지만 오르지 않으면 된다’는 담당자의 말이었다. 그때마다 항상 ‘그럴 리야 없겠지만’이라는 단서가 붙었다.
어려울 때 도와주고 가려울 때 긁어주던 은행과 N이 얼굴을 바꾼 것은 2008년 초였다. 갑자기 치솟기 시작한 환율이 4월을 앞두고 1천원 선으로 올랐고 5월이 되자 환율 상승이 대세론을 형성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1500원까지도 오르고, 1600원 선을 찍기도 했다. 믿고 싶지 않았지만 현실이었다.
본능적으로 ‘도망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공장 정문을 통과하는 출입국 관계자들이 보였다.
마음이 너무 급했다. 반대쪽 창문으로 공장을 빠져나가려던 순간
A씨는 발을 헛디디고 말았다.
창문이 깨지며 왼쪽 옆구리가 뜨거워졌다.
강 사장과 은행의 키코 계약 조건은 ‘873원에 넉아웃, 970원에 넉인’한다는 내용이었다. 쉽게 말해서 환율이 873원과 970원 사이에서 오르내리면 내릴 때 강 사장이 이득을 보고, 오를 때 은행이 이득을 본다. 문제는 환율이 873원 밑으로 내려갈 때와 970원 이상으로 급등할 때다. 아래로 곤두박질치면 키코 계약이 아예 해지되는 조건이 있어 강 사장이 손해다. 970원 이상으로 급등하면 통상 계약 금액의 2배를 은행에 물어줘야 한다. 은행으로서는 873원 밑으로 내려가면 계약이 무효가 되니 손해가 없고, 970원 위로 올라가도 손해가 없다. 2008년 말 하루하루 불어나는 키코 피해액을 감당하지 못한 강 사장은 결국 회사 문을 닫았다. 공장을 옮기는 과정에서 빚을 낸 것과 키코 피해에 따른 자금난 때문이었다.
한동안 강 사장은 은행과 금융이라면 이를 갈았다. 키코 같은 상품이 왜 있어야 하는지, 공신력 있는 은행이 어떻게 이런 상품을 취급할 수 있는지 분통이 터졌다. 하지만 키코 같은 장외 파생상품은 금융기관의 일반 직원도 신고 없이 거래할 수 있고, 금융감독 당국은 상품 판매에 따른 금융기관의 위험만 관리할 뿐 일반 투자자의 위험을 돌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한번 절망했다.
‘이건 금융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개인을 상대로 합법화된 사기를 치는 것’이라고 생각한 강 사장은 최근 주요 20개국(G20)에 관심을 갖는 중이다. 24개국 금융정책 당국 최고책임자가 참석하는 금융안정위원회(FSB)가 장외 파생상품 시장 규제를 시도하고 있다는 소식 때문이다. 실제로 G20 서울 정상회의에서는 금융규제가 주요 이슈 가운데 하나로 다뤄질 예정이다. 과연 실효성 있는 규제 방안이 나올 수 있을까?
경기도 포천의 한 벽돌 공장에서 일하던 필리핀 남성 A(32)씨는 지난 7월 한창 작업을 하던 중 출입국관리소 단속이 떴다는 소식을 들었다. ‘단속’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 않아도 6월1일부터 G20 서울 정상회의를 맞아 경찰이 곧 자신과 같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집중적으로 단속한다는 소식에 가슴이 철렁했다.
한국에서 일한 1년4개월간 두 다리를 쭉 펴고 잠을 잔 날은 많지 않았다. 공장에 낯선 사람만 나타나면 가슴이 쿵쾅거렸다. 이따금 공장 주변으로 친구를 만나러 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사람이 두려워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하루하루가 불안한 삶이었지만 그래도 조금만 더 일하면 고향 필리핀에 있는 부인과 두 딸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는 희망에 공장 일을 그만둘 수는 없었다.
단속반이 나왔다는 말에 그는 앞뒤 가릴 것 없이 본능적으로 ‘도망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공장 정문을 통과하는 출입국 관계자들이 보였다. 마음이 너무 급했다. 반대쪽 창문으로 공장을 빠져나가려던 순간 A씨는 발을 헛디디고 말았다. 창문이 깨지며 왼쪽 옆구리가 뜨거워졌다. 몸은 그대로 공장 밖의 개울을 향해 굴렀다. A씨가 옆구리 부상과 추락으로 인한 충격 때문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던 틈을 출입국 관계자가 놓치지 않았다.
“그러게 얌전히 있지, 어딜 도망가.” 양쪽 손목에 수갑의 차가운 금속성이 느껴졌다.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소리가 터져나오지 않았다. 대신 소리도 나지 않는 울음이 터졌다. 옆구리 통증 때문만은 아니었다. 고향 필리핀에 있는 귀여운 두 딸의 모습이 눈앞을 스쳤다. 두 딸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빠이고 싶었는데, 한국 땅에서는 천한 ‘불법 사람’에 불과한 자신의 처지가 비참했다. A씨의 눈물은 그칠 줄 몰랐다.
출입국 관계자는 그래도 인간적이었다. 어쩌면 그도 겁이 난 건지 모르겠다. A씨의 옆구리에서 흐르는 피가 멈추지 않자 흠칫 놀라더니, 차에 태우기 직전 슬그머니 수갑을 풀어줬다. 공장 관리인에게 “여기는 안 올 테니 치료 잘 하세요”라는 말도 남겼다. A씨는 과연 G20 전까지 무사할 수 있을까?
너무도 쓸쓸한 당신, 비정규직 여성“희경아, 너 요즘 무슨 일 있니? 얼굴 좀 펴.”
아닌 게 아니라 ××백화점 화장품 코너에서 일하는 신희경(20대)씨는 최근 부쩍 말수가 줄었다. 지난 주말, 대학 시절 ‘절친’인 정희를 만난 뒤 우울증이 심해졌다. 불과 몇 년 전, 그러니까 대학을 졸업하기 전까지 자신과 정희는 비슷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가정 형편이나 성적, 심지어 외모까지 두 사람은 서로 빼닮았다.
대학 졸업 직후 두 사람은 다른 길을 걸었다. 희경은 일찌감치 취업을 선택했다. 협력업체 파견직원이라는 신분이었지만, 그래도 대형 백화점 화장품 코너에서 일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어 비정규직도 마다하지 않았다. 물론 자신이 욕심낸다고 정규직 자리를 쉽게 얻을 것도 아니었다.
급여는 거의 최저임금 수준이었다. 한 달 식대를 모두 합쳐도 실제 손에 쥐는 월급은 110만원을 간신히 넘었다. 월 35만원의 원룸 임대료와 10만원 안팎의 각종 공과금, 5만원 안팎의 교통비를 빼면 실제 가처분소득은 월 50만여원에 불과했다. 아무리 아끼고 줄여도 생활비를 빼고 나면 저축은 꿈도 꾸기 어려웠다.
며칠 전에 만난 정희의 삶은 자신과 완전히 달랐다. 대학 졸업 뒤에도 대기업 취직을 위해 취업 재수를 택한 그녀는 1년 뒤 기어이 원하던 대기업에 입사할 수 있었다. 본인의 악착같은 노력도 있었지만 적잖은 행운이 함께한 것도 사실이었다.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은 실력으로만 극복할 수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직장 경력은 희경보다 짧았지만 대기업 정규직과 백화점 파견직의 급여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희경이 아무리 허리띠를 졸라맨다 해도 따라잡을 수 있는 임금격차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더 나은 일자리로 옮기는 것이 당장 가능할 것 같지도 않았다. 현실은 20대 나이의 그녀에게 꿈꾸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희경은 알고 있었다. 자신과 친구의 계층이 이렇게 크게 벌어지게 만든 원인 제공자가 국제통화기금(IMF)이라는 사실 말이다. 1997년 한국이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IMF의 강력한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과 이 프로그램에 비정규직의 대폭 증가와 대규모 해고, 공기업 민영화가 모두 한 묶음으로 포함됐다는 것은 이제 그녀도 아는 상식이었다.
G20에서 IMF의 개혁을 논의한다는 사실은 그녀에게도 관심사다. 그녀의 바람대로 서울 G20 정상회의를 통해 IMF는 악역을 그만둘 수 있을까.
벼랑 끝에서, 실직 가장40대 실직자 김씨는 최근 사십 평생 처음으로 나라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한 달 전이었다. 회사에서 갑작스럽게 구조조정 대상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1인 시위라도 해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몇 날 며칠이라도 회사를 상대해보겠지만 그게 답은 아니었다. 회사 사정이 어떤지 그도 뻔히 알고 있었다.
비정규직 희경씨는 자신과 친구의 계층이이렇게 크게 벌어지게 만든 원인 제공자가
국제통화기금(IMF)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1997년 한국이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IMF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나 이 프로그램에 비정규직의 대폭
증가가 포함됐다는 것은 그녀도 아는 상식이었다.
그에게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아내 얼굴을 볼 면목이 없는 것은 둘째였다. 일단 먹고살 길이 막막했다. ‘월급으로도 세 가족 생활을 꾸려가는 것이 힘들었는데….’ 부인과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아들이 눈에 밟혔다.
그나마 도움이 된 것이 실업급여였다. 고용보험에 가입된 덕분에 당분간 월 120만원의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었다. 30살 이상 근로자로 10년 이상 고용보험을 납입했으니 7개월 동안은 급여 대상이었다. 3주에 한 번씩 고용지원센터를 방문해 구직 활동 사실을 보여줘야 하는 것이 귀찮았지만, 그래도 생계가 막막하던 김씨에게 하루 4만원씩 월 120만원의 고용안정지원금은 요긴했다.
‘만약 실업급여가 없었다면 살 수 있었을까.’
생각하기도 싫은 가정이지만 김씨의 걱정은 어쩌면 조만간 현실화될지도 모른다. 지난 6월 캐나다 토론토 G20 정상회의에서 각국 정상은 재정 긴축에 합의했다. 재정위기를 해소하려면 과도한 공공부채를 해소해야 한다는데 의견을 모은 것이다.
통상적으로 정부가 살림을 줄일 때 가장 손대기 쉬운 곳이 사회복지 비용이다. 교육 복지나 고용, 노인 복지 등에 투입되는 예산이 긴축을 말할 때 흔히 삭감되는 항목이다. 최근 고강도 긴축에 돌입한 그리스와 영국 등 유럽이 긴축재정안과 관련해 시민사회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히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번 서울 G20 회의에서도 각국은 재정 정책의 공조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토론토에서 합의한 재정 긴축안이 좀더 구체화될까? 이명박 정부는 G20에서 합의한 긴축안을 어떻게 정책화할까? 김씨 가족이 벼랑 끝에 내몰리느냐 여부가 여기에 달려 있다.
초대장을 받지 못한 그들
G20은 그들에게 초대장을 보내지 않았지만, 한국 사회에서 ‘루저’로 내몰리는 그들에게도 꿈꿀 권리는 있다. 키코 피해자인 강 사장, 필리핀에서 건너온 이주노동자 A씨, 20대 비정규직 노동자 희경씨, 그리고 40대 실직자 김씨까지 G20을 지켜보고 있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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