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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교육, 이동권 보장, 인터넷 토론, 교제 모임…

성매매가 금지된 상황에서 장애인의 성적 권리 보장할 한국적 대안 만들어야
등록 2010-09-30 12:46 수정 2020-05-03 04:26
둘 다 지적장애인인 이 부부는 복지시설 ‘평화의 집’에서 만나 부모의 반대를 이겨내고 2005년 가약을 맺었다. 하상균 사무장은 “부부 생활을 하면서 훨씬 더 성격이 밝아지고 삶에 대한 뿌듯함도 커졌다”고 말했다. 이 시설엔 부부들을 위한 방이 따로 있다. 한겨레 정용일 기자

둘 다 지적장애인인 이 부부는 복지시설 ‘평화의 집’에서 만나 부모의 반대를 이겨내고 2005년 가약을 맺었다. 하상균 사무장은 “부부 생활을 하면서 훨씬 더 성격이 밝아지고 삶에 대한 뿌듯함도 커졌다”고 말했다. 이 시설엔 부부들을 위한 방이 따로 있다. 한겨레 정용일 기자

최근 들어 젊은 장애인들이 결혼에 성공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얼마 전에도 친하게 지내던 남성 척수장애인에게서 결혼식의 주례를 맡아달라는 반가운 부탁을 받았다. 물론 기쁜 마음으로 주례를 맡았다. 휠체어를 타고 당당하게 입장하는 신랑과 행복해하는 신부의 모습이 다른 어느 커플보다 아름다웠다.

성교육 하면 뒷감당 어떻게 하냐고?

누군가에겐 낯선 풍경일지 모른다. 장애인에게도 성적 욕구가 있다는 사실조차 많은 사람들이 모른다. “당장 먹고살기도 힘든데, 장애인의 성이라니, 배부른 소리 하네”라고 일축하기도 한다. 그러니 ‘장애인도 인권을 가진 사람이며, 따라서 인간의 기본 욕구인 성적 욕구를 누릴 권리가 있고 사랑하고 결혼할 권리가 있다’는 당연한 사실조차 꺼내기가 쉽지 않다.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비교해 사랑과 결혼, 성 문제에서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 말이다.

장애 유형에 따라 정부와 사회, 주변 가족, 장애 당사자가 모색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다. 미혼 지적장애인의 경우부터 보자. 필자가 독일에서 만난 장애인 성전문 심리학자인 샌포트는, 지적장애인의 경우 성을 외면하고 억누르면 남성은 폭력적이 되고 여성은 우울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반대로 이들에게 적절한 성교육을 해주고 이성을 만날 기회를 주면 이들 스스로 자신의 위생과 외모를 관리하게 되면서 폭력적 성향과 우울의 문제가 해결된다고 한다.

하지만 우린 지적장애 아동에게 성교육의 기회조차 박탈하는 경우가 많다. 지적장애 아동의 부모나 교사들은 ‘나중에 성장하더라도 현실적으로 결혼할 수 있는 기회가 적은데, 성을 알게 됐을 때 어떻게 뒷감당할 것인가?’라는 우려를 많이 한다.

장애 아동에게도 비장애인 아동이 접하는 만큼의 성지식을 얻도록 교육해주는 게 옳다. 지적장애인이 드러내는 대표적 성 문제가 있는데, 남성은 공적 장소에서 성기를 노출하고 여성은 손쉽게 성폭력의 대상이 된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는 적절한 성교육과 행동수정으로 교정이 가능한 문제다. 중요한 건 지적장애 아동을 돌보는 교사나 부모들의 성인식 변화가 더 시급한 경우가 많아, 이들에 대한 교육도 확대돼야 한다는 점이다.

자기관리 능력이 떨어지는 지적장애인을 결혼시켜도 되는가라는 문제가 논란이 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지적장애인들끼리 결혼하도록 돕는 기관의 사례를 살펴보면, 이들이 성공적인 결혼생활을 이루어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결국 장애 가족과 주변의 인식 전환이 절대적이다.

다음으로 척수손상, 뇌성마비, 뇌졸중 등 신체장애를 겪는 이들은 지적 능력이 정상이며, 성적 욕구도 비장애인과 같이 강하게 느낀다. 하지만 대개 성 파트너가 없어 고충이 크고, 문제 해결도 쉽지 않다.

독립영화 에는 48살 뇌성마비 장애인이 출연해 “숫총각으로 죽으면 진짜 억울하다, 억울해”라고 부르짖는 장면이 나온다. 이처럼 자신의 평생 소원이 섹스 한 번, 아니 키스 한 번만이라도 해보는 것이라는 장애인을 주변에서 종종 만날 수 있다.

이동하면 사랑하게 된다

성적 욕구의 해결에 초점을 맞춘다면, 일부 선진국에서 시도되는 몇 가지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장애인 전용 성매매 업소인 ‘핑크팰리스’, 네덜란드에서 젊은 여성이 장애인 집으로 직접 찾아가는 성매매 서비스 형태인 ‘플렉조그’, 독일에서 이루어지는 ‘섹스 마사지’ 등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이들 나라에서는 합법이지만 우리나라에선 불법이다. 또한 우리 사회의 가치관과 충돌할 수밖에 없어 대안으로 받아들이기엔 어려움이 많다.

해외 선진 사례는 많지 않다. 가장 선도적이면서 논쟁적인 독일과 네덜란드도 장애인 성 문제를 깊이 있게 고민한 지 이제 겨우 10년이다. 네덜란드는 민간의 성서비스 이용을 합법화하지만, 정부의 금전 지원은 없다. 그곳에서 만난 한 공무원은 “장애인의 성은 복지의 문제가 아닌 웰빙의 문제”라고까지 말한다. 외견상 이런 모순이 발생하는 건, 무엇보다 유럽 등지에선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특별히 크지 않은 탓처럼 보인다. 장애를 얻은 뒤에도 자연스레 직장과 지역사회에 복귀한다. 그 틀에서 연애하고 결혼도 하게 되는 여건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 처지와 문화를 고려한 우리만의 대안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가령 성적 욕구를 완화하는 방법으로 미혼 장애인들이 욕구와 성 관련 문제를 허심탄회하게 쏟아놓을 수 있는 장을 인터넷상에 마련하는 것도 방법이겠다. 같거나 다른 고민들을 서로 드러내놓고 소통하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 공간에서 전문지식을 갖춘 상담자가 적절한 상담과 정보 제공을 해준다면 더 좋을 것이다. 또한 성적 욕구를 해결하기 위한 자위행위 방법과 자위행위 기구(성인용품) 사용을 적극적으로 교육하는 것도 대안이 되겠다.

미혼 장애인의 결혼을 위해 제도적 뒷받침이 동반돼야 한다. 이는 장애인의 보편적 권리 신장과 맞닿아 있다. 장애인이 집 밖으로 나와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이동권 보장은 가장 본질적인 문제가 된다. 휠체어를 타거나 불편한 몸을 이끌고서라도 지역사회로 나올 수 있어야 한다. 그러자면 거듭 전동휠체어 보급, 장애인 콜택시 확충 등 이동권 지원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장애인의 참여가 용이한 여러 프로그램이 제도적 차원에서 개발돼야 한다. 독일의 장애 기관에서 제공하는 ‘에로틱 워크숍’은 ‘섹스 동행자’라 불리는 섹스 서비스 제공자와 장애인이 함께 참여하는 캠프다. 저녁엔 장애 당사자의 선택에 따라 돈을 지불하고 사실상의 ‘성매매’를 하게 되지만, 전 단계는 이성과 만나 대화하는 방법을 배우고 함께 춤도 추는 등의 워크숍이다. 이를 그대로 이식할 순 없지만, 우리식의 이성교제 모임, 성교육 모임 등이 복지시설·병원 등에서 다채롭게 고안되고 행해져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의 지원도 늘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이동권만큼이나 장애인의 고용 문제도 본질적이다. 경제적 안정은 주변에서 결혼에 성공한 장애인의 공통점 가운데 대표적이다. 선진국과 우리의 간극도 여기서 크게 발생한다고 할 수 있다.

뭐니뭐니 해도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미혼 장애인들이 이성 친구를 만나고 사랑하고 결혼하는 것이다. 건강하고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 자연스럽게 성적 욕구가 해결되며 가정이라는 공동체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결혼에 성공하는 세가지 비결

이 때문에 당사자의 노력도 중요하다. 국립재활원에서 미혼 장애인 성 재활교육에 꼭 포함시키는 ‘결혼에 성공하는 세 가지 비결’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장애를 받아들이고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자신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장애를 가족이나 상대가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휠체어에 탄 자신의 모습까지도 사랑하는가? 장애를 받아들일 때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게 되고, 행복해질 수 있다. 둘째, 열정을 쏟을 일을 한 가지씩 찾아야 한다. 그림을 그리든, 글을 쓰든, 컴퓨터를 하든, 공부를 하든, 신앙생활을 하든 뭐든 좋다. 열정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고, 이성 친구를 끌어들이는 매력을 갖게 된다. 셋째, 젊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으로 가야 한다. 아무리 매력이 출중하고 준비된 이라 하더라도 집에만 있으면 결혼할 수 없다. 동호회, 자원봉사, 스포츠 등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집에만 머물던 장애인이 대인관계를 맺는 능력은, 직접 사람과 대화하고 관계하면서 얻어질 수밖에 없다. 장애 당사자들의 노력 없인, 사회의 인식 개선도 더디기만 할 것이다.

이범석 국립재활원 병원부장·재활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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