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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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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의 슬픈 승리

자당 이기주의·색깔론 공세·신뢰 없는 연대로 ‘안방’ 지켜…
전략 부재와 체질화된 우경화 속 ‘민주세력 맏형’ 자격 있을까
등록 2010-08-06 19:45 수정 2020-05-03 04:26
7월30일 정세균 민주당 대표(가운데)가 7·28 재·보궐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대표직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광주 남구의 승리는 ‘상처뿐인 영광’이었다. 한겨레 탁기형 기자

7월30일 정세균 민주당 대표(가운데)가 7·28 재·보궐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대표직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광주 남구의 승리는 ‘상처뿐인 영광’이었다. 한겨레 탁기형 기자

7월의 광주는 뜨거웠다. 7·28 보궐선거를 하루 앞둔 27일 오후 4시30분, 무등시장 입구가 소란스러워졌다. 광주 남구에서 야 4당 단일후보로 출마한 오병윤 민주노동당 후보의 유세차량이 도착했다. 오 후보가 마이크를 잡자 갑자기 쏟아지던 폭우가 그쳤다.

“어제 민주당은 우리가 야권 연대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습니다. 여러분, 제가 민주노동당 사무총장입니다. 지방선거 때 야권 연대 협상 대표를 맡았던 사람입니다. 민노당 이상규 서울시장 후보가 한명숙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캠프에서 유세단장을 맡았습니다. 민노당 대표인 이정희 의원이 뭐했는지 아십니까. 그 캠프에서 대변인 했습니다. 그런데도 민노당이 야권 연대 하지 않은 겁니까.”

광주 남구 보궐선거 이틀 전, 김동철 광주시당위원장 등 민주당 광주 지역 의원들이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민노당을 겨냥해 “지금까지 대선에서 단 한 번도 단일화를 해주지 않고 민주개혁 세력의 표를 깎은 정당”이라며 막말에 가까운 비난을 쏟아내더니, 심지어 ‘한나라당 2중대’ ‘대안도 없이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정당’ ‘과격한 투쟁 정당’이라는 용어까지 서슴지 않았다.

민노당에 막말하다 기자 보고 달아난 ‘사회자’

야권 연대 논의의 흐름이 본격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6월 지방선거 직전이었다. 연대 논의를 가장 적극적으로 주도한 정당이 민노당이었다. 민노당 등 소수 정당의 양보가 없었다면 민주당의 지방선거 승리는 쉽지 않았다. 민주당 광주 지역 의원들이 민노당의 등에 칼을 꽂던 그 순간에도 서울 은평을에서는 이상규(민노당)·천호선(국민참여당) 후보가 장상 민주당 후보로 단일화한 뒤 장 후보를 지원하고 있었다.

민주당이 이중적 행태를 보이자 민노당은 물론 광주 시민사회단체가 발끈했다. 광주교육희망네트워크 등 시민사회단체가 7월27일 오후 기자회견을 열어 민주당을 성토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 등이 사태 진화에 나섰다.

민주당 지도부의 사과와 달리 민주당 광주시당은 뚜렷한 입장 표명을 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7월27일 저녁 7시30분, 광주 남구 진월동에서 장병완 민주당 후보가 마지막 유세를 했다. 마이크를 잡은 사회자가 민노당에 대한 공격을 쏟아냈다. “민노당을 단죄해야 합니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이 출마했을 때 민노당은 누구를 찍었습니까. 정동영 후보가 나왔을 때 민노당은 누구의 당선을 도왔습니까.” 하루 전 소동을 빚은 ‘한나라당 2중대’ 발언의 취지 그대로였다.

단일화 협상에서 그때그때 다른 얼굴

연설을 마치고 내려온 그에게 이름을 물었다. 반갑게 손을 내밀던 그는 기자수첩을 보더니 “나는 그냥 사회만 보는 사람”이라며 도망치듯 사라졌다. 박주선 최고위원이 ‘사회만 보는 사람’의 마이크를 넘겨받았다. 박 최고위원 역시 “민주당에 더부살이를 하고 있는 정당” “민주당과 정체성이 전혀 다른 정당”이라며 민노당을 깎아내렸다.

오병윤 민노당 후보의 돌풍을 예상하지 못한 탓이었다. 별다른 선거전략 없이 임한 ‘안방’ 보궐선거에서 밀리다보니 급한 대로 기댈 것은 네거티브 선거전밖에 없었다. 광주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는 “민주당은 속된 말로 똥줄이 탔다”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네거티브 선거전에 대한 광주 남구의 반응은 엇갈렸다. 봉선동에 사는 이아무개(39·건설업)씨는 “민주당 운동원들이 ‘광주를 노동판으로 만들겠느냐’는 식으로 말하며 돌아다니던데, 아무리 불리해도 민주당이 이러는 건 좀 아니라고 본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반면 지역 언론에서는 민주당의 막판 네거티브 전략이 일정한 효과를 얻은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민노당에 대한 색깔론 공세 등은 민주당 고정 지지층으로 분류되는 고연령대 유권자의 위기의식을 자극할 수 있는 소재였다는 설명이다.

광주 남구 선거는 민주당의 승리로 끝났지만, 민주당이 얻은 성과는 많지 않다. 오히려 민주당이 맞닥뜨리고 있는 위기를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계기였다는 평가다. 민주당은 평소 ‘민주평화개혁세력’의 맏형을 자임했다. 하지만 민주와 평화, 개혁을 외치던 민주당과, 민노당을 색깔론으로 공격하는 민주당 사이의 거리는 멀어도 한참 멀었다.

민주당은 7·28 재보선 직전 한국과 미국이 동해에서 벌인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군사훈련에 대해서도 소극적 대응으로 일관했다. 한-미 합동 군사훈련을 중단해야 한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선 사람은 최문순 의원 등 극히 일부였다. 민주당의 두 가지 한계가 동시에 드러났다. 전략 부재와 체질화된 우경화다. ‘평화세력’이 뭘 해야 하는지 몰랐고, 군사훈련에 반대해야 할 시간에 민노당에 빨간 칠을 하고 있었다. 한-미 합동 군사훈련은 선거 때 전혀 이슈로 떠오르지 못했다.

민노당에 대한 색깔론 공세는 선거 이후에도 적잖은 후유증을 남길 것으로 보인다. 광주 시민사회단체는 이미 김동철 민주당 광주시당위원장과 강기정 의원 등 민노당을 상대로 색깔론 공세에 앞장선 인사들에 대해 대응 방안을 모색 중이다. 민주당 일각에서도 이들에게 책임론을 묻지 않을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야권 연대의 미래도 순탄치 않게 됐다. 시민사회단체가 적극적으로 개입한 6·2 지방선거와 달리 ‘심판’이 사라진 7·28 재보선 야권 연대 협상에서 민주당의 이기주의를 견제할 세력이 없었다. 전면적인 연대 협상은 일찌감치 무산됐다. 대신 지역별로 이뤄진 단일화 협상에서 민주당은 ‘그때그때 다른’ 이유를 내세우며 자당 후보를 고집했다.

특히 서울 은평을 단일화 협상에서 민주당은 처음부터 끝까지 ‘대마불사’ 정신에 입각해 장상 후보를 고집하는 뚝심을 보였다. 장상 후보 캠프에서 만난 민주당 관계자는 경쟁 후보였던 천호선 국민참여당 후보를 가리켜 “선거가 막바지에 이르면 결국 단일화 압박에 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재보선이 치러진 8곳에서 민주당 후보가 나서지 않은 지역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정세균 대표 사퇴 이후 격랑 속으로

선거 참패라는 결과도 결과지만, 과정은 더 문제였다. 연대의 기본 정신이라 할 수 있는 신뢰를 먼저 훼손한 쪽은 민주당이다. 한쪽에서는 연대 파트너를 공격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협조를 구하는 꼴이었다. 연대의 시너지 효과가 생길 리 없었다. 서울 은평을에서 출마한 장상 후보는 결국 이재오 한나라당 당선자에게 18.4%포인트 차이로 대패를 당했다.

7·28 재·보궐 선거에서 뜻하지 않은 참패를 겪은 민주당의 앞날은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9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잠복해 있는 주류-비주류 간 계파 갈등과 선거 패배의 책임론이 맞물리면 민주당은 또다시 격랑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이미 7월30일 7·28 재보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사퇴하겠다는 뜻을 나타낸 상황이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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