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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입 지킴이’ 선관위

지율 스님 ‘4대강 사진전’도 “선거법 위반”… 표현의 자유와 민주적 토론의 권리를 틀어막아
등록 2010-05-07 15:30 수정 2020-05-03 04:26

지난 3월 중순부터 종교·시민단체의 4대강 사업 반대 캠페인에 제동이 걸렸다. 선거관리위원회가 나섰다.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금지한다’는 공직선거법 조항을 근거로 삼았다. 전국 성당에 나붙은 4대강 사업 반대 펼침막, 환경운동연합의 ‘4대강 지킴이’ 모집 라디오 광고, 지율 스님의 ‘4대강 사진전’ 등을 선거법 위반으로 규정했다.

9명의 선관위원들. 왼쪽 위부터 양승태 위원장, 강경근, 강보현, 구욱서, 김진권. 왼쪽 아래부터 이한구, 임채균, 유승삼, 제갈융우 상임위원.

9명의 선관위원들. 왼쪽 위부터 양승태 위원장, 강경근, 강보현, 구욱서, 김진권. 왼쪽 아래부터 이한구, 임채균, 유승삼, 제갈융우 상임위원.

9명 선관위원들의 면면

경찰은 선관위의 잣대를 신속하고 철저하게 이행하고 있다. 지난 4월29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소속 목회자와 신도들의 행진을 가로막았다. ‘천안함 희생자, 4대강, 죽음에서 생명으로’라는 펼침막을 시비했다. 결국 종교인들은 ‘4대강’이라는 단어만 헝겊으로 가리고 행진했다.

전례를 찾기 힘든 ‘4대강 검열’의 한복판에는 9명의 중앙선관위원이 있다. 이들은 입법·사법·행정부(각 3명씩)로부터 추천을 받았다. 선관위원은 월 1회 정례모임을 열어 선거 관련 주요 의제를 논의·결정한다. 이견이 발생하는 사안은 다수결로 결정한다. 중앙선관위 공보실은 “처음에는 각 지역 선관위 차원에서 기존 법령을 기준으로 시민·종교 단체에 선거법 위반 사례를 알렸던 것이고, 중앙선관위 차원에서는 3월말 위원장 내부 보고를 거쳐 지난 4월9일 관련 기준을 다시 정리해 각 지역 선관위에 내려보낸 뒤 4월19일 중앙선관위원들이 모여 이 문제를 보고받고 다시 논의했다”고 설명했다. 공보실은 “당시 보고를 받은 선관위원 가운데 (4대강 반대 캠페인 단속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위원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9명의 선관위원을 대표하는 선관위원장은 대법관이 맡아왔다. 현재 위원장은 이용훈 대법원장이 올해 1월 지명한 양승태 대법관이다. 양 위원장은 ‘엘리트 판사’들의 모임인 ‘민사판례연구회’ 회원이다. 지난 2005년 대법관 청문회 당시 여야 모두로부터 “특별한 흠결이 없다”는 평을 들었다. 당시 기사를 보면 “‘합리적인 보수주의자’로 볼 수 있는데, 딱히 눈길을 끄는 판결이 없다. 너무 순탄했던 게 흠이라면 흠”이라고 말한 사법연수원 동기 변호사의 평가가 있다.

대법원장이 지명한 다른 2명의 선관위원은 구욱서 서울고등법원장, 김진권 대전고등법원장이다. 국회 추천을 받은 선관위원 3명은 대검 형사부장을 역임한 제갈융우 변호사(한나라당 추천)와 한국철학회 회장을 지낸 이한구 성균관대 교수(한나라당 추천), 논설위원을 역임한 유승삼 전 사장(민주당 추천) 등이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전직 선관위원은 “엘리트 의식이 강한 법조계 인사들은 선거법 관련 사항을 최대한 보수적으로 판단하고, 다른 생각을 가진 선관위원도 표결에서 보수적 법조 인사들의 의견에 밀리게 된다”고 말했다.

대통령 추천을 받은 3명의 선관위원은 판사 출신의 임채균 변호사, 강보현 변호사 그리고 강경근 숭실대 교수(법학)가 있다. 이 가운데 임채균·강보현 선관위원은 각각 2007년 12월과 2008년 2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명했다. 두 변호사는 국회 청문회 과정에서 여야 모두로부터 별다른 이견 없이 선관위원으로 임명됐다.

강경근 선관위원은 조금 다르다. 강 위원은 선관위원 9명 가운데 가장 ‘논쟁적’ 과정을 거쳐 선관위에 합류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명한 강 위원은 지난해 12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격론의 대상이 됐다. 민주당은 당시 강 후보자가 “정치적 중립 의무를 이행해야 할 선관위원으로 부적합하다”며 인사청문보고서 채택을 반대했지만, 한나라당 의원들의 지지를 받아 선관위원이 됐다.

4월29일 오후 서울 중구 성공회 대성당에서 ‘4대강 지키기 연합예배’가 끝난 뒤, 목회자와 신도들이 서울광장으로 행진하고 있다. 경찰의 제지로 펼침막의 ‘4대강’ 부분을 헝겊으로 가렸다.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4월29일 오후 서울 중구 성공회 대성당에서 ‘4대강 지키기 연합예배’가 끝난 뒤, 목회자와 신도들이 서울광장으로 행진하고 있다. 경찰의 제지로 펼침막의 ‘4대강’ 부분을 헝겊으로 가렸다.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좌파 정권 심판’ 단체 부의장이 상임위원

강 선관위원은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를 공개 지지한 ‘나라선진화·공작정치분쇄 국민연합’(이하 국민연합)의 부의장과 운영위원을 지냈다. 국민연합은 “무능한 좌파 정권을 심판하자”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단체다. 강 위원은 청문회에서 “헌법학자로서 국가·사회·정치를 연구한 것일 뿐 정치적 성향을 가진 적도, 정치에 관여한 바도 없다. (국민연합 활동은) 친한 교수가 가입해주면 어떻겠느냐고 해서 이름을 준 게 불찰이라면 불찰”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강 위원은 보수 싱크탱크인 한반도선진화재단, 보수 시민단체인 바른사회시민회의, 보수 변호사 모임인 헌법포럼 등에서도 간부로 활동한 바 있다.

강 위원은 선관위원 9명 가운데 유일한 상임위원이다. 선관위원장을 포함한 나머지 선관위원은 비상근이다. 대통령이 추천한 위원 가운데 한 사람이 상임위원을 맡는 게 관례다. 대통령 추천 위원 가운데 다른 2명은 노무현 대통령 시절 지명됐다. 한 전직 선관위원은 “선관위 사무총장이 쟁점을 정리해 보고하면 상임위원이 이를 검토해 전체 논의에 올릴 의제를 정하고, 이를 선관위원장이 재가한다”며 “선관위원장은 가급적 모든 사항을 전체 선관위원이 논의하길 바라므로, 상임위원이 제시하는 의제를 대부분 그대로 채택한다”고 말했다.

강 위원 직전의 상임위원은 선관위 사무총장 출신이 맡았다. 전직 선관위 간부는 “한동안 외부 인사가 상임위원에 오른 적이 있었지만, 오랫동안 실무를 맡아온 사무총장 출신이 상임위원이 되면 비상근 위원과 선관위 실무자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할 수 있고, 내부 승진을 요구하는 선관위 직원들의 바람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강 위원은 ‘외부 인사’가 다시 상임위원이 된 경우다. 한 전직 선관위원은 “선관위 사무처의 보고를 받아 논의 주제를 정하는 것은 상임위원의 몫이므로 논의 의제를 형성하는 힘이 상임위원에게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모든 사안은 선관위원 전원의 평등하고 자유로운 논의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지 위원장 또는 상임위원의 주도에 따라 위원회가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중앙선관위 공보실도 “(4대강 관련 논의는) 특정 위원이 제기한 문제가 아니라, 선거 때마다 선관위가 행하는 통상적 의제였고, (4대강 단속은) 선관위 사무처에서 자료를 준비해 위원들에게 보고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베일에 가려진 논의와 결정

헌법재판소는 재판관들의 다수 의견에 따라 판결하되, 개별 재판관의 의견을 외부에 공개한다. 선관위도 위원들의 다수 의견에 따라 결정을 내리지만, 헌재와 달리 개별 의견은 공개하지 않는다. △4대강 반대 캠페인 단속이 실정법보다 상위에 있는 헌법상 표현의 자유권을 침해하는 일이 아닌지 △단속 대상인 이른바 ‘선거 쟁점’의 내용은 무엇을 기준으로 결정되는지 △다양한 종교·시민단체의 공론 참여는 민주선거에서 권장할 일이 아닌지 등의 쟁점을 선관위원들이 어찌 판단했는지 알 도리가 없다. 개별 선관위원의 이력을 자꾸 들춰보게 되는 이유다.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진 선관위의 논의와 결정은 4대강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김수진 이화여대 교수(정치학)는 “선거 시기 시민의 의사표시 제한은 신중하게 이뤄져야 하는데, 지금 선관위는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선거 공정성을 훼손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핵발전소 건립이 선거 쟁점이던 1976년 스웨덴 총선, 낙태 문제가 선거 쟁점이던 2004년 미국 대선 등을 사례로 들면서 “종교기관, 시민단체, 그리고 일반 시민까지 격렬하게 논쟁을 벌이며 대규모 찬반 집회를 열었지만, 이를 선거법 위반이라고 처벌한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선관위만 ‘표현의 자유’와 ‘민주적 토론’의 권리를 틀어막고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진짜 ‘국격’을 떨어뜨리는 일을 누가 저지르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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