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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은 알고 있다?

천안함 침몰 원인을 북한 어뢰로 확신하기 전에는 나오기 힘든 수준의 발언들 쏟아내
등록 2010-04-29 14:32 수정 2020-05-03 04:26

이명박 대통령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일까? 천안함 침몰 원인을 조사하고 있는 민·군합동조사단(이하 합조단)의 잠정 결론은 ‘외부 요인에 의한 폭발’ 정도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공식 발표 외에 시민이 접근하지 못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VIP 메모’로 ‘어뢰 발언’을 제어했는데…

천안함의 침몰 원인과 관련해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검증” “국제사회가 납득할 수 있는 원인 규명” 등을 강조해왔던 이 대통령 발언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그는 3월26일 천안함 침몰 사고 직후 줄곧 북한 연계 가능성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견지해왔다. 4월2일 김태영 국방장관이 국회 긴급현안질의에서 ‘어뢰 가능성’에 무게를 둔 답변을 하자 청와대는 이를 우려하는 ‘VIP 메모’를 전달해 김 장관의 발언을 수정하도록 했다. 그런데 최근 청와대에서 각계 인사들을 만나면서 발언의 기조가 달라지고 있다.
“바로 가까이에 북한이, 세계에서 가장 호전적인 세력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기회가 되면 희생된 사람에 대한 보답도 될 것이다.”(4월21일 7차 지역발전위원회 회의)
“북한이 인정하든 안 하든 관계없이 국제적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조사 결과를 내놓고 그에 따른 조치를 하겠다.”(4월22일 군 원로 오찬)
침몰 원인이 기뢰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어뢰에 의한 것인지, 어뢰라면 그 어뢰를 쏜 주체는 누구인지 드러난 것이 없는데도, 이 대통령은 북한을 ‘가장 호전적인 세력’으로 언급하면서 ‘천안함 희생자에 대한 보답’을 이야기했다. 침몰 원인을 북한 어뢰로 확신하기 전에는 나오기 힘든 수준의 발언이다. 백성엽 육군협회장, 박세환 재향군인회장 등을 비롯해 군 원로 22명과 만난 자리에서는, 북한의 소행 여부가 아니라 북한의 ‘인정’ 여부를 거론했다.
압권은 4월23일 전두환·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오찬 자리였다.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이 브리핑한 내용을 보면, 극우냉전 세력의 ‘대북규탄대회’를 방불케 한다. 천안함은 화두에 불과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원인이) 좀 나왔죠?”라고 묻자 이 대통령은 “이 시기가 뭐라 얘기할 수 없는 상태라서…”라고 말을 아꼈다. 하지만 그 직후부터는 △버마 아웅산 사건(1983) △대한항공기 폭파 사건(1987) △동해안 잠수함 침투 사건(1996) 등이 주요 화제로 올랐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우리 어머니도 간첩에게 당했다”는 말까지 했다.

전직 대통령과의 오찬은 ‘북한규탄대회’ 방불

두 전직 대통령의 정해진 결론은 “100% 북한 어뢰”였다. “국방백서에 다시 북한을 주적으로 넣어야 한다”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시점을 연기해야 한다” 등의 주문이 이어졌다. 이 대통령은 “‘중립국’인 스웨덴으로부터도 전문가를 파견받아 조사단에 투입하고, 투명하고 객관적인 결과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단호한 대응을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직전의 발언들에 비하면 다시 ‘원론’으로 돌아간 듯하지만, 천안함 침몰 원인은 이미 북한 어뢰로 ‘결론’이 난 뒤였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이 살아 있었다면 이런 식의 ‘전직 대통령과의 만남’ 자리가 마련됐을까. 침몰 원인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대북규탄대회’가 가능했을까.
청와대는 “국가안보를 위해 전·현직 국군통수권자 세 분이 모여 경륜과 지혜를 모으는 자리”였다고 밝혔다. 그런데 최근 이 대통령의 천안함 관련 발언과 ‘전·현직 국군통수권자 모임’의 성격을 분석하면, 커다란 배가 서서히 방향을 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천안함 뱃머리(함수)를 인양한 이후 속도가 붙을 진상 규명 작업의 결론이 이미 정해진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커지고 있다.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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