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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권 환수 연기’, 돈 많이 든다

보수층 민심수습책으로 연기론 ‘부상’… 미국은 미사일방어체제 참여 등 반대급부 요구할 것
등록 2010-04-28 14:27 수정 2020-05-02 04:26
“군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김태영 국방부 장관은 2012년 4월17일로 예정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시기를 연기하는 문제와 관련해 4월8일 국회 외교·통일·안보 및 경제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이렇게 밝혔다. 한겨레 탁기형 기자

“군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김태영 국방부 장관은 2012년 4월17일로 예정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시기를 연기하는 문제와 관련해 4월8일 국회 외교·통일·안보 및 경제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이렇게 밝혔다. 한겨레 탁기형 기자

오는 2012년 4월17일로 예정된 전시작전통제권(이하 전작권) 환수 계획이 천안함 침몰 사고를 계기로 또다시 ‘연기론’에 직면하고 있다. 보수 진영에서는 천안함 침몰을 북한의 소행으로 몰아가면서 이를 국가안보상의 중대 위기로 규정하고, 전작권 환수를 늦춰 한-미 동맹을 더욱 굳건히 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이 와중에 가 4월22일 정부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한국 정부의 전작권 전환 시점 연기 요청에 대해 최근 백악관이 검토를 마치고 한국의 요청을 받아들이기로 했으며 이런 의견 접근에 따라 양국이 세부 후속조치를 논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청와대는 이를 즉각 부인했지만 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

미국의 방침 ‘예정대로’

그렇다면 전작권 환수는 연기될 것인가? 여기에는 매우 다양하고 복잡한 변수가 맞물려 있다. 우선 천안함 침몰 원인 규명이 1차적 변수다. 보수파의 주장처럼 북한의 소행으로 결론나면 환수 연기론은 더욱 탄력을 받을 것이고, 반면 북한과 무관한 것으로 드러나면 연기론은 해프닝으로 끝날 것이다. 이도 저도 아닌 영구미제로 남을 경우 보수파 사이에서 ‘북한의 소행’이라는 심증이 더욱 커지고 이에 따라 전작권 환수를 연기해야 한다는 주장도 끊이지 않을 것이다.

확증이든, 심증이든 ‘북한 소행설’이 누그러지지 않으면 이명박 정부로서는 보수 진영의 민심을 달랠 카드를 꺼낼 것이다. 이 대통령이 공언하는 국방 개혁의 방향은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대한 재평가를 바탕으로 대규모 전력 증강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이러한 방향은 대폭적 국방비 증액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경제 논리’를 앞세우는 MB 정부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에 따라 MB 정부는 더 확실한 민심 수습책, 즉 전작권 환수 연기를 미국에 요청할 가능성이 높다. 이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친밀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에서 그를 설득할 자신이 있다고 여길 것이다. 특히 전작권 환수가 예정된 2012년은 한국의 총선과 대선이 있는 해라는 점에서 보수파의 집결을 통한 선거 승리라는 정치적 계산도 깔리게 될 것이다.

일단 미국은 전작권 이양을 예정대로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최근 미국 내 한반도 전문가들 사이에서 한국의 요구를 긍정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또한 오바마 행정부도 MB 정부를 호의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MB 정부가 강력히 요청하면 전작권 이양 연기를 고려할 수 있다.

그러나 백악관과 국무부가 재검토를 추진하더라도, 의회와 펜타곤의 반대에 직면할 수 있다. 미국 상원 군사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민주당의 칼 레빈 의원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갖춘 한국이 아직도 전작권을 갖고 있지 않은 상황을 납득할 수 없다며, 조속한 이양을 촉구한 바 있다.

주무부처인 펜타곤은 두 가지 측면에서 계산기를 두드리게 될 것이다. 하나는 전작권 이양 연기가 전세계적인 군사력 운영 계획에 미칠 영향이다. 전작권 이양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붙박이형’ 주한미군을 신속기동군으로 재편해 전세계 어디든 신속하게 투입하려면 한국 방어의 주도적 역할을 한국군이 맡아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전략적 유연성을 강하게 요구했던 도널드 럼즈펠드 전 국방장관이 전작권 이양 시점을 2009년으로 요구한 까닭이었다. 그는 2006년 11월 이라크 정책 실패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고 그 여파로 전작권 전환 시점이 2012년으로 늦춰졌지만, 전세계 미군을 신속하게 순환 배치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럼즈펠드 독트린’은 여전히 살아 있다.

여기서 관건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상황이다. 오바마는 ‘부시의 전쟁’으로 불리는 이라크 전쟁의 종식을 핵심 대선공약으로 내세우면서 올해 하반기부터 철군을 시작해 내년 말까지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반면 ‘오바마의 전쟁’으로 불리는 아프간 전쟁은 승리를 공언하고 있다. 미국이 예정대로 이라크 철군을 진행해 그 병력을 아프간에 투입할 수 있다면, 주한미군의 차출 필요성은 그만큼 줄어들고 이에 따라 전작권 이양을 늦출 수 있다. 반면 이라크 철군이 여의치 않고 아프간 증파의 필요성이 커지면 전작권 이양 연기에 동의해줄 가능성은 낮아진다. ‘전작권 이양 연기’라는 한국 보수파의 염원이 탈레반과 알카에다의 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MD에 발 담그면 파장과 손실 상당해

오바마 행정부가 전작권 이양 재검토를 대가로 MB 정부에 요구할 ‘쇼핑 목록’도 주목거리다. △방위비 분담금 인상 △평택 미군기지 확장사업 및 연합 군사훈련 비용의 한국 쪽 부담 증액 △한국군의 아프간 파병 연장 및 규모 확대 등이 쇼핑 목록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 MB 정부가 전작권 환수 연기라는 ‘정치적 상징’을 얻어내는 데 막대한 국민 혈세의 낭비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미국의 요구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바로 미국 주도의 미사일방어체제(MD)에 한국이 참여하는 것을 반대급부로 요구할 것으로 점쳐지기 때문이다.

클린턴 행정부 때 시동을 건 MD는 부시와 오바마를 거치면서 가속도가 붙고 있다. 특히 MD의 명시적·잠재적 대상국인 북한·중국·러시아와 인접해 있고 대규모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으며 미국제 무기 최대 수입국 가운데 하나인 한국의 MD 참여는 펜타곤에 크나큰 선물이다. 오바마 행정부 역시 동북아를 유럽·중동과 함께 ‘지역 MD’의 핵심 지역으로 지목해 한·미·일 3국이 주축이 되는 동북아 MD 구축을 추진하고 있고, 이에 따라 한국의 동참을 요구하고 있다. MB 정부는 경제적 부담, 남북관계, 중국 및 러시아와의 관계를 고려해 신중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지만, 전작권 이양 연기를 받아내기 위해 미국의 요구를 수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만약 한국이 명시적이든 암묵적이든 미국의 MD에 발을 담그면 그 파장과 손실은 상당할 수밖에 없다. 남북관계의 악화는 물론 중국 및 러시아의 반발을 야기해 ‘동북아판 미사일 위기’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 또한 MD 무기체계를 수입하고 운영·유지하는 데도 수십조원의 예산 낭비가 불가피해진다.

환수는 노무현 유산이 아니라 친미적 선택

보수파가 전작권 환수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하나는 전작권 환수를 그들이 ‘반미·좌파’로 간주해온 노무현 정권의 유산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나 전작권 전환은 반미적 요구가 아니라 미국도 강력히 희망한 친미적 선택이었다. 다른 하나는 한국군의 군사적 능력에 대한 불신이다. 그러나 남한은 지난 20년간 북한보다 5~10배 많은 군사비를 지출해왔고 그 차이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이는 군사력에서 남한이 북한보다 열세에 있다며 전작권 환수를 반대하는 논리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끝으로 전작권이 미국의 손에 있는 것을 강력한 한-미 동맹과 동일시하는 사고다. 그러나 한-미 동맹보다 훨씬 강력한 미-영 동맹과 미-일 동맹 체계에서도 미군은 영국군이나 일본군에 대한 작전권을 갖고 있지 않다. 협조 체계를 구축해 유사시 합동작전이 가능한 구조를 갖추고 있을 뿐이다. 전작권이 환수된 이후 한-미 동맹의 미래상도 바로 이러한 형태로 재편하자는 취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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