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한국의 대학생들은 ‘경쟁’하기 벅차다. 자신의 문제에만 관심을 갖는다. 틈만 나면 “취업이 힘들다” “대학이 해준 것이 뭐가 있느냐” 불만을 토로한다. 그러나 고민을 털어놓는 것조차 힘든 이들이 있다.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대학 내 소수자들이다.
셀림 카차르(23)는 터키에서 왔다. 지난 2007년, 서울대 사회과학계열에 입학했다. 그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한다. 2009년에 외국인 학생회장도 맡았다. 그러나 누군가 “삼겹살과 소주를 먹으러 가자”고 말하면 한숨이 나온다. 돼지고기도, 술도 카차르는 먹을 수 없다. 그는 무슬림이다.
대학 식당에 가도 마찬가지다. 무슬림들은 특수한 과정을 거친 재료가 아니면 고기를 먹지 않는다. 이를 할랄 음식이라고 부른다. 한국의 대학 식당이 내놓는 식단에는 대부분 고기가 들어간다. 그러나 할랄 음식은 아니다. 카차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없다. 서울대에는 119명의 무슬림 학생이 있다. 하루 종일 과자로 허기를 달래는 이도 있다. 무슬림 학생이 300명가량인 일본 도쿄대에는 식당에 할랄 음식 전용 코너가 마련돼 있다.
성공회대 서종혁(21·2년)씨는 한국인이다. 그러나 처지가 카차르와 비슷하다. 그는 채식주의자다. 대학에서 채식주의자로 사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 3월22~27일 성공회대 학생식당에서 제공한 식단을 조사했더니, 전체 16끼 가운데 완전 채식이 가능한 건 3끼에 불과했다. 고기반찬이 아니어도, 대부분의 찌개는 육수로 만든다. 볶음밥에도 다진 고기나 햄이 들어간다. 채식주의자들은 메뉴를 보고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다.
서씨와 같은 학생들은 학교 식당에서 채식 식단을 마련해주길 원한다. 그게 힘들다면 반찬을 직접 고를 수 있는 ‘카페테리아식’ 식당으로 개조되길 바란다. 먹지 않는 고기반찬의 값을 지불하지 않아도 되고, 궁여지책이나마 밥과 김치만 먹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학교 당국은 난색을 표한다. 카페테리아식 식당은 다른 식당보다 더 많은 반찬을 준비해야 한다. 돈이 더 들어간다. 그런 일에 돈을 쓸 수 없다는 것이다.
서울대에 다니는 중국인 장연(22)은 “수강 신청이 어렵다”고 말했다. 학교 웹사이트 등은 한국어로만 돼 있다. 수강편람이나 강의계획서처럼 기초적인 수업 정보에 대한 외국어 지원도 없다. 브라질 출신 크리스티나 해리(21·외교학 2년)도 “등록금이나 장학금에 대한 외국어 공지를 찾아보기 힘들어 불편했다”고 말했다.
어렵게 수강 신청을 해도 문제는 남는다. 처음 한국에 온 학생들은 한국어를 잘 모른다. 수업을 따라갈 수 없다. 대학 쪽은 “한국에 온 학생들이 감수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하지만, 1학년 때 꼭 들어야 할 수업까지 한국어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외국인 학생의 학교 만족도는 한국 대학생들보다 높다. 10개 대학 공동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유효응답자 142명 가운데 73명이 유학 중인 대학의 교육 환경에 ‘매우 만족하거나 만족하는 편’이라고 답했다. 51.4%다. 한국 학생은 33%가 안 됐다. 외국인 유학생의 경우 복지·교수 상담·장학금 제도 등 학교 서비스 만족도를 묻는 질문에도 45.4%가 긍정적 답변을 줬다. 하지만 한국 대학생들보다 만족도가 높다 해서 이들의 고민이 다 해결된 것일까. 설문 결과는 역으로 외국인 학생의 절반이 불편 또는 불만을 감수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특히 한국을 찾아온 유학생이라 해도, 여러 분야에 걸쳐 ‘언어 지원’을 하는 것은 세계 대학의 글로벌 스탠더드다. 유럽·미국·일본 등에 유학을 떠난 한국 학생들은 현지에 정착할 때까지 대학 당국이 제공하는 ‘한국어 도우미’의 조력을 받는다.
북에서 왔다는 편견이 굳어질까봐
북한 출신 대학생들은 외국인만큼이나 수업을 따라가기가 힘들다. 북한의 ‘문화어’와 한국의 표준어 문법은 많이 다르다. 사용하는 어휘도 다르다. 서울 소재 대학에 재학 중인 김영은(24·가명·사회학 2년)씨는 2년 전 한국에 왔다. 하지만 글 쓰는 일에 어려움이 많다. 그렇다고 김씨가 어려움을 토로할 수도 없다. 북에서 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자신에 대한 편견이 굳어질까 걱정하기 때문이다. 말투도 그런 이유에서 고쳤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소 박명규 소장(사회학)은 “기초학력에서 차이가 많이 난다면, 북한 출신 대학생들이 한국 대학에서 동등한 구성원으로 살아가기가 힘들다. 초등·중등·고등 교육의 단계별로 탈북자를 배려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북한 출신 대학생들은 경제적 압박도 받는다. 탈북자는 기초생활수급자에 포함된다. 최소한의 요건을 갖추면 등록금을 감면받는다. 그러나 나머지 생활은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김씨는 “돈을 벌어야 해서 공부할 시간이 없는 북한 출신 대학생이 많다”고 말한다. 처음부터 학업에 어려움을 겪는데, 돈까지 벌다 보니 격차가 더 커진다.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김씨는 “학부모들이 북한 출신 대학생들을 싫어하기 때문에, 과외를 할 실력이 돼도 과외 자리를 구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김씨 역시 학업과 생업 두 가지 일에 시달리고 있다.
학업과 생업을 병행하는 일은 남쪽 출신 대학생에게도 고역이다. 성공회대 정가희(27·가명)씨는 ‘엄마 대학생’의 시절을 거쳤다. 정씨는 대학교 3학년이던 2005년 임신했다. 고통을 참아가며 수업을 들었다. 2005년 11월 아이를 낳아 2006년 3월에 복학했다. ‘아이에게 꼭 젖을 먹이겠다’고 생각한 정씨는 캠퍼스 안에서 모유 수유를 할 수 있는 시설을 찾았다. 아무리 뒤져도 마땅한 장소는 없었다. 결국 화장실에서 축유를 했다. 식당 아주머니들한테 냉동 보관을 부탁하기도 했다. 정씨는 꼬박 13개월 동안 아이에게 줄 젖을 짜느라 학교 곳곳을 떠돌아다녔다.
여성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대학에 동성애자를 위한 자리가 있을 리 만무하다. 서울대 학생 박수진(22·가명)씨는 동성애자다. 성정체성을 드러내는 일이 여전히 쉽지 않다. ‘남자친구가 있느냐’는 일상적 질문에도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매번 고민한다. 학내 동성애자 모임에 소속돼 있긴 하다. 그러나 모임에서 ‘연애’를 할 수가 없다. 학내 성소수자 모임은 하나밖에 없다. 모임에서 연애를 하다 실패하면 박씨도, 그 상대도 모임을 떠나야 할 것이다. 모임 밖에서 또래 대학생을 만나는 것은 또 다른 고통이다. 그들은 동성애를 단순한 웃음거리로 생각한다. ‘게이’라는 단어를 하나의 욕설처럼 사용한다. 장난거리로 삼기도 한다. 박씨는 그 말을 들을 때 같이 웃어야 할지, 앞에서 화를 내야 할지 알 수 없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속기 업무 의무지만…서울대 인류학과 이원재(25·4년)씨는 지체장애인이다. 뇌성마비를 앓고 있다. 증세가 가볍다.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티가 나지 않는다. 입학 당시 이씨는 장애인의 어려움을 친구들에게 말하지 않았다. 친구를 사귀는 데 장벽이 될까 두려웠다. 고등학교 때와 달리, 의무적인 체육 수업이 없어서 장애를 숨기고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문제가 발생했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다 함께 율동을 하는 시간이 있었다. 이씨도 남들을 따라 몸을 움직였다. 곧 큰 고통이 찾아왔다. 다리가 마비되고, 근육통이 느껴졌다. 이씨는 이내 포기했다. 열심히 몸을 놀리는 친구들을 그저 멀리서 바라만 봤다.
장애인들은 학교 안에서 이동할 때도 어려움을 겪는다. 연세대 행정학과 배노혁(20·1년)씨는 휠체어 장애인이다. 장애를 숨기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혼자서 학교 생활을 해보려 하지만 여의치 않다. 경사를 오르기도, 강의실에 자리를 잡기도 힘들다.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지만 괜히 폐를 끼치는 것 같아 미안하다. 승강기가 설치되지 않아 아예 갈 수 없는 강의실도 있다.
서울대에는 건물의 60%에만 승강기가 설치돼 있다. 안양대는 50%, 성공회대는 40% 수준이다. 경사로가 없어서 휠체어론 출입이 불가능한 건물도 있다. 연세대 연희관의 경우, 많은 학생들이 이용하지만 경사로가 없다. 휠체어 장애인들은 건물에 한 번 들어갈 때마다 남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학교에 오는 것도 일이다. 셔틀버스에 장애인 전용 좌석이 없기 때문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도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저상버스도 없을뿐더러 택시는 승차를 거부하기 일쑤다. 장애학생들은 매일 아침 ‘전쟁’을 치른다.
청각장애인들도 큰 불편을 겪는다.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다. 수업에 대한 속기 작업도 잘 이뤄지지 않는다. 학칙에 ‘청각장애인을 위한 속기 업무를 지원하도록’ 돼 있는 서울대는 전문적인 속기사가 학교 전체에 한 명뿐이다. 안양대, 성공회대, 숙명여대, 조선대 등은 속기사가 아예 없다. 청각장애인을 위해 강의 내용을 속기하는 일은 대부분 일반 학생들이 담당한다. 그들은 전문적인 속기사가 아니다. 수업 내용을 잘못 알려주는 일이 많다. 속기를 해야 할 학생이 나타나지 않을 때는 낭패다.
장애학생 문제는 학교 안에서 그치지 않는다. 학교 안 문제는 당국에 건의라도 할 수 있지만, 학교 밖의 문제는 그마저도 불가능하다. 학생 모임이 학교 밖에서 있으면 상당수의 장애학생들은 참석을 포기한다. 지하에 있는 술집, 문턱이 있는 식당, 2층에 있는 찻집 등은 장애인들이 갈 수 없는 곳이다.
절반이 ‘소수자 매우 배려하는 편’ 자평
10개 대학 공동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 대학생의 46.7%(유효응답 971명)가 장애인·임신 여대생 등 소수자를 ‘매우 배려하거나 배려하는 편’이라고 자평했다. 반면 16%가 ‘절대 배려하지 않거나 배려하지 않는 편’이라고 답했다. 같은 설문에 응한 외국인 유학생의 56.3%가 배려하는 쪽, 12.7%만 배려하지 않는 쪽이라고 답했다. 스웨덴 웁살라대 학생 10명 역시 같은 설문을 받고, 9명이 ‘매우 배려한다’고 답한 것과는 차이가 크다. 1명만 ‘보통’이라고 답했다.
제 삶 하나 건사하기 바쁜 한국의 ‘일반’ 학생들이 소수자에게 관심을 나눌 여력은 적다. 그래서 한국 대학의 소수자들은 ‘사람’을 만나는 일도 벅차다.
이진혁 전 편집장·김수인 편집국장·권소영 기획취재부장·박중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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