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30일 치러진 일본 총선에서 54년 집권 역사의 자민당이 13년 역사의 신생 정당 민주당에 완패했다. 민주당이 자민당 정권을 뒤엎고 집권에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크게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생활 밀착형 공약의 효과
첫째, 일본 사회가 직면한 현안에 대해 민주당이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는 인식을 국민에게 심어주는 데 성공했다는 점이다. 일본 국민은 1990년대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불리는 장기 침체와 고이즈미 내각의 개혁 부작용으로 인한 심각한 재정 적자, 고용 불안, 빈부 격차 등으로 자민당 정권에 극도의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민주당은 국민의 마음을 파고드는 정책 비전과 담론들을 제시하며 자신에 대한 기대감을 조성하는 데 성공했다.
민주당은 ‘철의 삼각형’으로 불리는 정·관·재계 기득권 집단에 선명하게 대립되는 정책 이념으로서 “콘크리트에서 사람으로!”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동시에 ‘국민생활 제일주의’라는 모토 아래 △어린이 수당 지급 △농가 호별 소득보상제도 △중소기업 대출 상환 3년 유예 △고속도로 무료화 등 생활 밀착형 공약을 제시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일본 유권자들이 민주당을 지지한 최대 요인으로 ‘정책에 대한 기대감’을 꼽을 만큼 민주당의 정책 노선은 효과적이었다.
정권 교체가 이뤄진 두 번째 요인은 민주당을 중심으로 ‘반자민당 연합’을 형성하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에 있다. 자민당의 장기 집권에는 자민당 주도의 전후 경제 부흥이 가장 큰 영향을 끼쳤지만, 근본적으로는 제1야당인 일본 사회당의 경직성과 무능력, 야당 세력들의 사분오열에도 큰 원인이 있었다. 그런데 민주당이라는 새로운 구심이 등장함으로써 강력한 반자민당 연합이 형성될 수 있었던 것이다.
변화의 효시는 1994년 중선거구제 폐지와 소선거구·비례대표 병립제 도입이었다. 이를 계기로 전후 정당 체제에 큰 지각변동이 일어났고, 다양한 선거 연합을 통한 합종연횡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물론 반자민당 연합이 처음부터 성과를 거둔 것은 아니었다. 초기에는 자민당의 구조가 안정적으로 유지된 반면, 야권 세력들은 더욱더 파편화되고 난립이 심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그런데 1996년 하토야마 유키오, 간 나오토 등 리버럴 성향의 지도자들이 새로운 정치세력을 결성하며 변화가 시작됐다. 이들은 일관되고 선명하게 반자민당 노선을 견지해갔다. 이는 과거 제1야당으로서 자민당과 연립하기도 하는 등 분열과 갈지자 행보를 반복한 사회당과는 비교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사회당, 중도보수 신당인 사키가케, 신진당 등의 일부 인사들을 합류시켜 좌에서 우에 이르는 포괄 정당의 면모를 갖춰나갔다. 이렇게 해서 민주당은 반자민 세력을 흡수해 실질적인 정권 교체의 대안으로 등장해갔으며, 2000년 중의원 선거와 2001년 참의원 선거에서 유력 야당으로서 위상을 확립하는 데 성공했다.
좌우 포괄 정당의 면모 갖춰그 뒤 자민당과 새롭게 부상하는 민주당의 틈바구니에 끼여 궁지에 몰리게 된 오자와의 자유당과 전격적인 통합도 단행했다. 이는 2003년 중의원 총선과 참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의 대약진으로 이어졌다.
자민당 역시 한때 고이즈미의 리더십을 바탕으로 원로그룹 퇴진, 지역구 경선제 도입 등 쇄신 노력을 기울였다. 이를 통해 2005년 총선에서 승리를 따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뒤 자민당은 또다시 아베·후쿠다·아소 총리의 잇단 실정으로 2009년 민주당에 정권을 내주기에 이르렀다.
일본 민주당 정권의 등장이 한국의 진보개혁 진영에도 두 개의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정권 교체에 성공하려면 우선 정책적 비전과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세력이 존재해야 하고, 동시에 구호에 그치는 이념과 명분이 아니라 기존 정권을 교체해낼 수 있는 실질적 힘과 의지를 현실 정치 속에서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고원 상지대 학술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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